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5·16군사정변 때 서울에 출동한 군인들은 팔에 ‘혁명군’이라고 쓴 완장을 차게 했다. 그것을 찬 군인들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김종필 전 국무총리 회고록에 의하면 완장을 차지 못한 군인들이 차별감을 느껴 곧바로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때는 군인들이 완장 차고 정부 청사를 장악하는 것에 우월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군의 의식도 변했다.
지난 3일 밤 벌어진 계엄령 파동이 실패로 끝난 데는 출동한 군인들의 태도가 소극적이었고 지휘관급에서 ‘묵시적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 관련 작전으로 알고 출동했다며 수줍어 하는 병사도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제 우리 군인들도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정치군인으로 기록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렇듯 45년 동안 경제발전만 아니라 사회 의식, 특히 군인 의식도 달라진 것이다. 공무원 사회도 군 사회처럼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 ‘직업공무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5·16군사정변 때 군 장성들이 장차관을 차지했는데 그 무렵 가뭄이 심각했다. 그래서 가뭄 관련 장관이 충남 부여 현지 시찰을 왔다. 물론 군복에 권총을 찬 육군 소장. 충남도청 가뭄 대책 H국장이 현장에서 장관을 맞이해 브리핑을 했는데 도중에 장관과 국장 사이에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H국장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장관에게 맞서자 장관은 갑자기 권총을 꺼내고는 “당신 죽고 싶어” 하고 언성을 높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긴장했다. 가까스로 자리는 파했으나 H국장은 “이제 나는 공직생활이 끝났구나” 하고 낙담하며 도청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곧 도지사실에서 호출이 왔다. H국장은 이제 사표 쓰라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지사실에 들어서니 자기에게 권총으로 위협하던 장관이 지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장관은 뜻밖에도 국장의 손을 잡고는 “당신 같은 소신 있는 공무원은 처음 봤소. 존경합니다” 하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H국장은 이후 부지사에 오르는 등 공직생활을 잘 마쳤다.
문재인 정부는 월성 원전 1호기의 가동 중단을 비롯해 탈원전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래서 한번은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가동 연장 여부를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담당 과장이 눈치 없이 ‘가동 연장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너무 낡아 가동 중단하는 게 경제성이 있다는 답변을 기대한 상관은 그 과장에게 ‘너 죽을래’ 하고 버럭 화를 냈다는 것이다. 5·16 때 권총을 빼들고 ‘당신 죽고 싶어’ 하며 H국장에게 화를 냈던 군인 출신 장관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탈원전을 다루던 부서의 공무원들 중에는 상관의 지시로 탈원전 자료를 주말에 삭제하는 듯 불법행위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더러는 구속되기도 했다. 청와대만 쳐다보는 정치 공무원 상관들 때문에 직업공무원들이 희생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새 풍속도로 정부의 공약 사업이나 정책에 관련된 업무에서는 손을 떼는가 하면 기왕 손을 댄 공무원들도 열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대통령실 파견 근무를 승진 혜택 등을 고려해 서로 지원했는데 지금은 기회가 주어져도 거절한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유능한 인재를 골라 장관 등 요직에 기용하려 해도 청문회 같은 절차도 피곤하게 하고 훗날 구설수에 오를까 봐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와 군 조직에 새로운 풍속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보여 준 발전적 시그널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