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작가 정여울

작가 정여울 인터뷰, 오늘을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한 기록

2004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작가 정여울은 2006년 출간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를 시작으로 최근작 ‘감수성 수업’, ‘데미안 프로젝트’까지 40권 이상 문학·예술·여행·심리학 등 주제를 넘나들며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다. “읽기와 쓰기를 매일 조금씩 쉬지 않고 해왔다”는 작가는 “불안과 우울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한다.

 

파리 프티팔레 박물관 정원에서 정여울 작가. 정여울 제공
파리 프티팔레 박물관 정원에서 정여울 작가. 정여울 제공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 또 한 사람의 용기

“시인은 시의 힘으로, 음악가는 음악의 힘으로, 화가는 그림의 힘으로, 엄마는 엄마의 용기로, 청년은 청년의 열정으로 이 엄혹한 민주주의의 겨울에 맞서자…그 모든 용기의 별자리들이 모여 끝내 세상을 지키는 아름다움의 바리케이드로 솟아오르리니.”

 

지난 12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에 관해 정 작가가 쓴 칼럼의 일부다. 작가는 이 혹독한 겨울에 맞선 시민들의 힘을 ‘별자리로 만든 바리케이드’로 표현하며 우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름다움의 근원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정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치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쓴 칼럼에서처럼 ‘2024,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시민들의 촛불, 응원봉, 행진, 노래들 속에서 찾아낸 ‘용기’ 또한 그렇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평범한 일상이 언제든 단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용기도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 또한 되찾게 됐습니다.”

 

계엄 사태의 비참함이 있기 전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우리 모두를 자랑스럽게 했다. 특히 광주 5·18, 제주 4·3 등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투명하게 적어 내린 한강 작가의 작품과 대비된 현실은 우리를 더욱 아프게 했다. 그러나 정 작가는 역사 속 사건이 되풀이될 것을 우려하는 우리들에게 과거의 고통보다는 희망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한강 작가가 광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고 말한 대목이 정말 가슴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저는 광주가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들이 아무런 죄 없이 살해당하고, 폭력에 희생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또 다른 보통명사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정 작가는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대표작에 대한 강연 연사로 자주 만날 수 있고 본인의 작품과 관련된 강연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등단 이래 매년 2~3권의 책을 출간할 정도로 얘깃거리가 풍부한 작가다. 문학, 글쓰기 등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여행 등 ‘애호가’ 수준을 넘어선 취향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문학을 좋아했는데 미술은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좋아하게 됐습니다. 음악, 문학, 미술, 여행, 그리고 심리학이 제 마음속에서 일종의 콜라주를 만들어가며 매일매일 그동안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느낌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배우고 느끼고 사랑하는 것들로 일종의 ‘힐링 패키지’를 만들어 필사적으로 제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그 힘으로 ‘상처입은 치유자’가 타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잘 느끼고 감동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출판사 제공.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잘 느끼고 감동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문장

이런 작가의 비전을 담은 책이 ‘감수성수업’이다. ‘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잘 느끼고 감동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성이라는 것은 기록함으로써 진짜 내 것이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일상을 장악하면서 종이에 일기를 쓴다든가 사진을 인화하는 아날로그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도 그 기억을 소중히 저장하지 않게 돼 버렸죠. 저 역시 읽고 쓰기가 직업임에도 어떤 때는 너무 피로하고 힘들어 기록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여지없이 그 좋은 감성이 날아가 버리고 기억조차 희미해져 버려요. 감성을 기록하는 것, 그때그때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들의 감수성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해 ‘문장’으로 반드시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정 작가가 문장으로 기록하는 영역은 넓고도 깊다. 작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많은 글과 이야기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저는 아주 힘든 날에도, 우울하거나 슬픈 날에도, 읽기와 쓰기만은 멈추기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저에게 읽기와 쓰기는 불안과 우울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미술과 문학의 발자취를 좇는 여행길도 정 작가에겐 새로운 영감이 된다.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때의 느낌, 그것 자체가 새로운 글감이고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상은 여행이 되고 여행은 일상이 되는 삶을 살며 다양한 주제를 모아 성실하게 글로 풀어낸다.

 

한편 지난 2024년 11월 11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제8회 서점의날 기념식’에서 정 작가의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이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정 작가는 “계속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용기와 응원을 선물받은 느낌”이라며 또 다른 분야에 대한 여러 구상을 전했다.

 

“미술과 음악에 대한 글을 새롭게 써볼 생각이고 제가 사랑하는 어떤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글도 써보고 싶습니다. 억압받고 차별당하면서도 결코 용기를 잃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정 작가는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읽는 것에서도 큰 치유를 얻는다고 말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기억, 꿈, 사상’,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김서영의 ‘내 무의식의 방’ 등 네 작가의 작품은 항상 곁에 두고 지낸다고. 정 작가는 이들의 글을 통해 응원을 받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용기, 나도 어렵지만 그래도 더 어려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을 배웠다.

 

“독자들도 너무 아프고 외로운 순간, 책 속의 문장이 힘이 돼 주고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순간이 있길 바랍니다. 책 속의 문장이 항상 내 마음속에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끊이지 않고 상영된다면 우리는 힘들 때마다 그 마음속 영화관에 앉아 아름다운 문장의 힘을 꺼내보며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책이 그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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