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고통스러운 노동을 넘어

황종원 단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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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노동 관련 공약이 자못 주목을 받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냐, 노동시간 유연화냐 하는 노동시간 문제부터 정년 연장 문제,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문제, 최저임금을 지역이나 국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문제 등에 대해 이른바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자가 내건 공약은 선명하게 대립한다. 대체로 진보 진영 후보는 노동자의 각종 권익을 보호, 강화하려 하며 보수 진영 후보는 기업의 경영 여건을 개선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 같은 노동정책의 대립에는 그 심층에 노동의 의미에 관한 상당히 다른 견해 또한 있는 듯하다. 사람은 왜 일을 할까. 이 물음에 누구든 우선은 ‘먹고살기 위해서’, 그다음으로는 ‘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은 생존의 욕구와 더 나은 삶의 갖가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러나 이 단순해 보이는 욕구나 욕망을 채우는 일이 인류 역사에서는 결코 간단했던 적이 없다. 생존 여건이 가장 녹록지 않았던 원시사회에서 채집을 위주로 살던 인류의 조상들은 역설적으로 열매를 따 먹는 평범한 일상에서 한없는 감사와 황홀함을 느꼈고 사회적 관계도 상당히 평등했다. 그러다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 노동은 축복과 고통이 함께하는 일이 됐다.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는 부가 축적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축복이었지만 더 많은 수확은 얻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자연 및 이웃과 싸우는 과정은 고투였다. 그리고 근대 이후 더 많은 향유와 전면적인 지배를 위해 자연과 사회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더욱 노골화했다. 그 결과 21세기 인류는 이제 갖가지 지성적인 작업도 함께해주는 훌륭한 비서인 챗GPT를 얻기에 이르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하고 말았다.

 

인류 노동의 역사를 이같이 스케치해 얻는 한 가지 새로운 생각의 실마리는 오늘날 진보 진영은 노동의 고통과 재앙에 주목하고 있는 데 반해 보수 진영은 노동이 가져다준 축복의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노동 방법의 발전, 즉 기술의 혁신은 인간사회에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편의를 가져다줬다. 그렇지만 기술 발전과 노동의 효과적 조직화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은 사실 재앙 수준의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고갈의 문제나 지나친 경쟁으로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건강한 삶에 대해서는 사실상 크게 관심이 없고 근본적 해결책도 없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이 행복한 노동이 돼야 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물론 이 일은 쉽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제까지의 노동은 축복과 고통이 교차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이 좀 더 즐거운 노동이 되려면 이제까지 노동이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웠던 측면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예컨대 첨단 기술이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자연 생태계와 노동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도덕적으로 고려하는 쪽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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