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일보 연중기획

함께 토닥토닥

[함께 토닥토닥] 장정희 빵사랑생활개선 회장 “대이은 봉사의 길, 빵으로 나눠요”

어릴 때부터 남들을 위해서만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당시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향일까. 어느 순간 아버지의 봉사의 길을 그대로 밟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은 아버지가 왜 평생을 봉사하며 사셨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장정희 빵사랑생활개선 회장(52·여)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는 남양주 퇴계원 토박이로 30대 후반 친구의 권유로 빵을 만들러 갔다. 단지 빵을 먹으러 가기 위해서였지만, 빵을 만드는 게 재미있고, 취미로 만든 빵이 어려운 이웃들에겐 중요한 한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곧바로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장씨는 시간이 흘러 한국생활개선 남양주시연합회 빵사랑생활개선회장을 맡았다. 애초 농촌여성 1인1특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빵사랑개선회는 한동안 빵동아리로만 활동하다 지난 2005년 빵사랑생활개선회로 재탄생했다. 장 회장은 13년 동안 한달에 1~2번씩 회원들과 빵을 만들어 장애인센터에 기부하고, 식사봉사 등도 실시했다. 아이들이 빵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남양주시복지문화재단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도 하고 있다. 장 회장과 회원 등 7명은 최대 6시간 동안 식빵과 단팥빵, 소보루빵 등 200~300개를 만들어 기부 중이다. 그는 회원들보다 일찍 나와 빵을 반죽하고 있다. 반죽이 미리 완료돼야 회원들이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장씨는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겨 수술까지 했지만 봉사 행보는 멈출 수 없었다. 이밖에도 장 회장은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생활하는 보육원을 찾아 청소와 목욕 등 일반적인 봉사도 실천 중이다. 또 아픈 아이들이 병원에 갈 때 차가 없는 사실을 알고 개인 차량을 이용해 병원에 데려다 주고 있다. 장 회장은 “남들에게 보여줄 때 착용하는 게 액세서리인데 봉사는 액세서리가 아니”라며 “남들이 몰라도, 필요가 없어도 하는 게 진정한 봉사다. 그런 봉사의 삶을 살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활짝 웃었다. 남양주=유창재·이대현기자

[함께 토닥토닥] 홀몸노인·노숙인 100명에 무료 급식 24년째 맛있는 사랑나눔

“누군가에겐 따뜻한 식사 한끼가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밥만 나누는 게 아니라 말 한마디라도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30일 오후 2시께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의 한 건물. 구수한 내음을 따라 도착한 건물 2층에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완성된 밥과 반찬들은 일회용 도시락통에 정성스럽게 담겨 식탁 한 켠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도시락 포장을 마친 봉사자들은 100인분의 식사를 들고 건물 1층 출입구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시락을 전달받는 이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전했고, 전달하는 이들 역시 노숙인들의 손을 꼭 잡으며 따뜻한 위로와 함께 도시락을 건넸다. 24년째 지역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유쾌한공동체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다. 유쾌한공동체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된 취약계층을 위해 다양한 나눔문화를 실천하고 있다. 같은 건물 4층에서는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을 위한 ‘희망사랑방’도 운영하고 있다. 숙식을 제공하면서 취업 지원 교육 등을 통해 사회 적응도 돕는다. 유쾌한공동체의 나눔은 코로나19 기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감염 확산 우려로 인근 시설들의 무료급식까지 끊기면서 갈 곳 잃은 소외된 이웃들까지 보듬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쾌한공동체의 무료급식은 올해 3월 시설 내부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던 단 2주를 제외하곤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이 기간에도 도시락을 구매해 소외계층에게 직접 전달하는 등 따뜻한 나눔은 계속됐다. 나눔의 고마움을 느낀 노숙인들이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포장일을 돕던 50대 노숙인 김씨는 “인생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도움을 받고 나니, 나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서 “누군가에겐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하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승영 유쾌한공동체 대표는 “유쾌한공동체가 소외된 지역 이웃들의 마지막 버팀목이라는 생각으로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면서 “지역 사회에 소외된 이웃들이 없도록 앞으로도 나눔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수진기자

[함께 토닥토닥] 장애·비장애, 희망 Job고… 자립 꿈 키워요

“10명 중 7명 이상이 장애인, 이들도 우리 회사의 대표 일꾼들입니다” 명함의 직함은 대표인데, 직원들을 부르는 호칭은 권위의식을 던진 ‘우리 아기’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등 대표의 사랑을 듬뿍 받은 직원들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홀로 서기를 준비 중이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심 향상에 선봉장 역할을 맡은 양천후 ㈜디와이테크(전자제품 임가공업체·안산시 단원구 소재) 대표(47)와 그 직원들의 이야기다. 해당 업체는 직원 총 30명 중 22명이 발달(20명)·청각·지체(각 1명)장애인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표준사업장 인증 기준인 장애인 고용 30%를 훌쩍 뛰어넘는 대다수의 근로자가 장애인들이다. 애초 양 대표는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장애인의 채용에 앞장섰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같은 당시 회사의 내부 분위기라는 벽이 그를 가로막자 지난 2019년 6월 회사를 창업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주변 사업장으로부터 ‘발달장애인들이 많아 불편하다’ 등의 수군거림이 귀에 들리자 표준사업장 인증 팻말을 내부에 걸어놓는 등 남몰래 속병을 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도 이제는 한때의 추억이 됐다. ‘일한 만큼 돈을 줘서 우리 아기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만들자’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 대표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만들었다. 장애인에 대한 일부 직업재활시설의 경우 사실상 일하는 시간 일부를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변경해 놓은 사례도 있다. 이러한 구조 탓에 장애인들은 온종일 사업장에 머무는 데도 정작 받는 금액은 적은 실정이다. 일할 곳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러한 곳에 다니는 장애인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양 대표는 오전 반, 오후 반, 종일 반으로 나눠 이들을 근무시키고 있다. 일에 쉽게 적응하는 직원들은 종일 반으로 편성, 정당한 대가를 주면서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다. 지난해 초 입사한 임원택씨(22)가 대표적인 예다. 임씨는 “전에 있던 곳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데다 일에 점점 재미를 느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가족들과 수시로 통화하는 등 제2의 아버지를 역할을 자처한 양 대표는 이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양 대표는 “최근 어느 단체에 기부를 하는 등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와 같은 기업들이 많이 나와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정민기자

[함께 토닥토닥] 7명에 장기기증... 아름다운 생명나눔 ‘최고의 선물’

“우리 세상을 떠날 때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생명을 구하고 떠납시다” 아내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그리고 10년 전 그날,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자녀를 모두 키워 놓고 지난 2008년 해남으로 귀농해 작은 정원을 꾸리며 소박하게 산 지 4년째 되던 해였다. 쓰러진 아내는 뇌사 상태에 빠졌고, 그는 아내의 평소 뜻을 받아들여 장기기증을 선택했다. 아내의 각막, 콩팥, 간, 췌장, 폐, 안구는 20대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7명의 환자에게 이식됐다. 고(故) 신창자씨의 남편 이춘남씨(79)의 이야기다. “우리 부부는 질병도 없었고 운동도 꾸준히 해 정말 건강했었어요. 그래서 아내도 저도 많은 이들을 위해 장기기증을 하자고 다짐했었죠. 어차피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텐데, 새 삶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고 떠나면 더 뜻깊을 테니까요.” 생명을 구하고, 사랑을 나누는 형태 중 하나로 장기기증이 널리 퍼지고 있지만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씨는 아내가 떠난 지 10년이 된 지금도 장기기증을 택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가 떠나고 힘들었지만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됐지 않았냐”며 “나 역시 아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삶이 되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신장이 망가져 두 번에 걸쳐 장기를 기증받은 정원수씨(60)는 장기기증으로 ‘두 번의 기회’를 얻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아팠던 정 씨는 신장이 망가져 1994년 첫 장기기증을 받았다. 3년여간의 투석과 호르몬 주사, 수혈 등을 중단한 채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15년 뒤 폐혈증 위기와 탈수로 또 한 번의 이식이 필요하던 중 4개월의 기다림 끝에 또 다시 적합한 기증자를 만나 2009년 4월16일 두 번째 장기기증을 받았다. “가족도 아닌 남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두 번의 장기기증으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어요. 저에겐 기적입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정 씨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장기기증은 환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다. 더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에 동참해 새로운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경기도내 장기기증자는 1천494명(뇌사 기증자)이며 장기기증 수혜를 받은 사람은 4천526명에 이른다. 기증자 한 명으로 약 3~4명의 생명을 살리는 셈이다. 장기기증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4만명의 대기자가 장기기증을 기다리고 있다. 정영숙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경기지부 본부장은 “기증은 대가 없는 나눔이고, 나 또한 대가 없이 받을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나눔”이라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더욱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참여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은진기자/사진=윤원규기자

[함께 토닥토닥] 르완다 300가구 '희망 불씨' 살리다

“가족 모두가 지속적인 나눔의 실천을 이어가겠습니다” 오산시 소재 부동산개발 전문업체 ㈜RMS-D&J를 운영하고 있는 이덕주 대표(63)의 가족은 지난해 “어려운 아프리카의 아동을 후원하고 싶다”며 월드비전 경기남부사업본부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 대표와 그의 가족은 평소 다른 사람들의 선행을 보면서 동일한 마음이 피어올라 이 같은 발걸음을 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지만, 특별히 외국에도 도움이 필요한 일이 많은 만큼 그곳에 있는 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부인 김진아씨(57)는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생계를 지원하고 싶다며 나눔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김씨는 “학교에 다니는 것, 직업을 갖는 것 모두 중요하다. 그런데 배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먼저 먹고살 수 있어야 배우고 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덕주 대표 가족은 지난해 르완다 극빈층 생계지원사업에 1억원을 후원했다. 후원금은 극빈 가정에서 식량을 생산하고 수입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토지, 가축, 종자, 농기계, 비료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됐다. 그뿐만 아니라 농업교육과 가축사양교육, 시장활동교육, 재무교육 진행에도 쓰였다. 이 같은 이 대표 가족의 후원으로 올해 르완다 극빈층 300가구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성과를 이루게 됐다. 이 대표는 “오히려 우리 가족에게 돌아오는 기쁨이 더 크게 다가와서 흐뭇했다”고 회상했다. 또 이런 성과로 지난해 이 대표의 가족은 월드비전 후원자 모임인 밥피어스아너클럽에 위촉됐다. ‘밥피어스아너클럽’은 월드비전 창립자인 ‘밥피어스’의 이름을 딴 고액후원자 모임이다. 다양한 지구촌 문제에 공감하고, 나눔의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선 후원자를 회원으로 위촉하고 있다. 사실 이 대표의 가족은 장남 이우형씨(34) 덕분에 선행에 동참할 수 있었다. 이우형씨는 지난 2018년 아이티 강진피해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는 구호현장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봉사활동에 참여, 월드비전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부모님에게도 이 같은 봉사활동을 권유, 온 가족이 함께 이웃을 돕는 일에 나서게 됐다. 이우형씨는 “어렸을 때부터 나눔에 대한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부모님이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신 가르침이 나눔에 대한 가치관을 갖는 데 큰 힘이 됐다”며 “누구보다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최현호기자

[함께 토닥토닥] 연필 쥔 백발의 만학도들...배움의 恨 50년만에 풉니다

“50여년 만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려니 낯설고 두렵지만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꼭 졸업장을 타겠습니다” 14일 평택시 이충동에 위치한 평택시민아카데미 평택상록평생학교의 한 교실. 이곳에선 50~70대 학생 10명이 화이트보드에 적힌 시에 대한 현황을 열심히 공책에 적고 있었다. 모두 늦깎이 학생들이다. 이날 수업은 중학 국어. 그 가운데서도 ‘새로운 시작’ 주제의 시를 배우는 시간이다. 정채봉 시인의 ‘첫마음’을 소리 내 읽은 뒤 다시 공부를 시작한 각오를 나눴다. 어르신들은 “이 나이에 공부한다는 게 아직은 두렵지만 학교에 열심히 나와 중학교 졸업장을 받겠다”고 입을 모았다. 학기 초. 아직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게 어색하고, 굽어가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는 게 예전 같지 않지만 집중이 흐트러지는 학생은 없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 같았다. 지난 1993년 평택상록평생학교 개교 이래 평택은 물론 안성, 천안, 아산 등지에 이르기까지 1천여명 이상이 이곳에서 한글을 배웠고 100여명이 초등‧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가난으로, 여성이어서, 시대적인 이유 등 저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연과 한을 가슴에 품고 다시 펜을 쥔 백발의 만학도들이다. 이날 중학 국어 수업을 맡은 윤희진 평택상록평생학교 교감(51)이 10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던 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10여명이 굽은 손가락으로 ‘개나리’, ‘개구리’ 등을 따라 읽으며 공책에 받아 적는 풍경.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글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열의에 의욕을 얻어 지난 2013년 성인문해교육 강사로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윤 교감처럼 상록학교에서 문해 교육을 하는 교사는 12명이다. 이들은 전업주부부터 학원 등 생업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늦깎이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에 되레 감동을 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윤 교감은 “중학교 과정 개설 후 처음 간 수학여행 버스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이 본인 생전에 수학여행을 갈 줄은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우셨다”며 “이 일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윤 교감을 통해 졸업장을 받은 학생은 44명.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대입 검정고시를 치른다. 벌써 4명의 어르신이 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저도 어르신들로부터 좋은 점을 배우며 교학상장(敎學相長)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더 큰 배움을 마치고 돌아와 저희와 함께 교육봉사를 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바람을 전했다. 황우갑 평택시민아카데미 회장은 “봉사자들과 후원자들 덕분에 넉넉하진 않아도 29년 동안 꾸준히 어르신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드릴 수 있었다”며 “앞으로 평택상록평생학교를 독립 교육기관으로 만들어 다양한 학습반과 더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함께 토닥토닥] 치유 통해 함께 얻는 행복…더불어 사는 사회 꿈꾸다

“일을 시작하며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식물들에 둘러싸여 여러모로 배려해주는 동료들과 함께 일해 좋습니다” 24일 용인특례시 처인구의 한 화훼 농장. 장애인(지적장애) 직원들이 비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분갈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장애인 직원은 11명, 비장애인 직원은 14명으로 총 25명에 달한다. 잠시 뒤 직원들 사이로 지적장애를 가진 정창욱씨(58)가 어눌한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직원은 “저거(분무기) 맞지?”라며 물건을 정확히 집어 정씨에게 건넸다. 정씨도, 마주보던 동료도 서로를 향해 씩 웃은 뒤 다시 일에 집중했다. 일하는 내내 불명확한 발음과 어색한 문장을 구사해도 1년 넘게 함께 일해온 직원들은 장애인 동료들의 크고 작은 요구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오랫동안 호흡해온 가족 같았다. 점심 시간이 되자 구내식당에 옹기종기 모인 직원들은 왁자지껄 했다. 어젯밤 있었던 일부터 오전 작업 중 벌어진 실수까지 쉴 새 없는 수다가 이어졌고, 이들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곳에서 만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허물어진듯 보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공간에서 근무하면 불편할 것이란 시선이 많지만 이들에겐 조금의 어색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비장애인 직원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며, 남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화훼 생산 유통 전문기업 ㈜그리니쉬 농업회사법인(대표 권영석)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구현해 나가고 있다. 권영석 대표(57)는 2년 전 도내 한 지자체 복지과 담당자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들과의 우연한 자리를 통해 장애인 고용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각종 정보를 수집해 장애인들이 노동을 통해 땀을 흘리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농업’을 회사에 접목시켰다. 또한 장애인들에게 직업(현장)에 맞는 치유와 교육이 우선이라고 판단, 장애인 직원들의 직장 생활을 도울 ‘원예 치유사’를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이후 ‘원예치유농업’ 프로그램을 통해 3명의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한 그는 현장 실습을 통해 활짝 웃는 이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더욱이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마음이 뭉클해했다. 그렇게 장애인 직원은 하나둘씩 늘어났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권 대표는 “장애인들이 치유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 기술을 배우고, 기술력을 키워 직원들과 회사가 동시에 자립하는 길, 그것이 회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장애인 치유 농업을 통한 자생력 있는 사회적 농업을 계속 실현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경수기자

[함께 토닥토닥] 14년째 머리카락 기부… 한올한올 희망 선물

“제 머리카락이 필요한 곳에 뜻 깊게 쓰이길 바랍니다.”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무려 14년 동안 자신의 머리카락을 기부해 온 경찰관이 있다. 안양동안경찰서 범계지구대 소속 김선경 경사(36·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9년 경찰관의 꿈을 키우던 ‘청년 김선경’은 우연히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시청했다.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이 항암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린 김 경사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돕고 싶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서 소아암 환자를 위해 가발을 제작하는 데 머리카락을 기부 받는다는 내용을 발견하게 됐다. ‘이거다’ 눈이 번쩍 뜨인 그는 자신이 아끼던 머리카락을 망설임 없이 잘라냈다. 기부 이전까지 비교적 길지 않은 머리 길이를 유지했던 김 경사는 그날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때로는 예쁜 파마도 해보고 싶고, 봄날에는 산뜻하게 염색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가발을 필요로 할 아이들을 떠올리며 머릿결을 관리하는 데 애를 썼고, 머리카락이 더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김 경사는 2년간 25㎝씩 기른 머리카락을 어머나 운동본부(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본부)에 기부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지난 2014년 2월, 그는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갑작스러운 머리 스타일의 변화는 심경의 변화라고 했던가. 내내 긴 머리를 유지하던 막내가 어느날 불쑥 단발머리로 등장하자, 선배와 동료들이 그를 걱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단발머리에 담긴 김 경사의 따뜻한 기부를 알게 된 동료들도 이젠 김 경사의 마음과 노력을 응원하고 있다. 김 경사의 집 한켠에 하나 둘 쌓여가는 기부증서는 어느덧 6장이 됐고, 그만큼 단단한 자부심이 됐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부분은 자신의 작은 선행이 주변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료 경찰들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나서 머리카락 기부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어느 새 김 경사와 함께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는 이들은 10명이 됐다. 지난해 10월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기부를 한 김 경사는 다음 기부를 위한 길이가 만들어질 2023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 경사는 “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가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더욱 뼈저리게 알게 됐다”며 “비록 작은 행동이지만, 병마와 싸워나갈 아이들에게 큰 행복과 응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카락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규기자

[2022 함께 토닥토닥] 외롭지 않게… 입양 전 따뜻한 기억 선물

아가야 네가 품은 인형이 자칫 외로울 수 있는 타국 땅에서 따스한 온기가 되어주길 기도할게. 2019년 11월 부천의 한 가정집. 가위로 재단하고 한 땀 한 땀 정성 껏 바느질해 완성한 토끼 모양의 애 착인형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이 선물은 세 살배기 여자 아이의 축복과 행복을 빌어주고자 만들어졌지만,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인형을 품에 안고 해맑게 웃는 아이를 제외하고. 이 사연은 배냇저고리, 손싸개, 발싸개, 수면조끼, 짱구베개, 애착인형 등 아이 용품을 제작해 입양 위탁가정과 미혼모쉼터, 북한이탈주 민가정 등 다양한 복지단체에 선물하는 박영아씨(48)의 이야기다. 그는 부천에서 평소 뜻을 함께한 봉사원들과 함께 2017년부터 영유아에게 무상으로 용품을 제공하는 봉사단체인 나눔스토리 소잉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수천개의 용품을 만들어 나눔을 실천하던 박씨에게도 3년 전 그날의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당시 주변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한 입양 위탁가정(입양 가기 전 아이들이 잠시 머무는 가정)의 부모는 박씨에게 불안한 마음을 토로했다. 함께 사는 위탁가정 부모를 친엄마아빠로 인식하는 세 살 된 아이가 있는데, 미국으로 입양이 결정되면서 혹시 아이가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느끼게 될까 불안하 고 걱정된다는 이야기였다. 사연을 접한 박씨의 마음은 무너져내렸다. 홀로 떠날 아이가 느낄 충격과 공포를 생각할 때 위탁가정 부모가 전한 절절한 걱정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아이가 홀로 외롭지 않도록 애착인형과 수면조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박씨는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나 느낄 두려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면서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애착인형과 어두운 밤에도 엄마 품에 안기듯 포근하게 잠들 수 있는 수면조끼를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박씨의 마음은 아이에게 밝은 미소를 선물했다. 아이의 고사리손에는 늘 귀여운 애착인형이 들려 있었고, 그 인형을 바라보는 눈은 햇살처럼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두 달 후 아이는 그렇게 선물과 함께 한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포근히 간직한 채 미국으로 떠났다. 이 같은 박씨의 아름다운 선행이 주변에 널리 알려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동참 의지도 함께 높아졌다. 소식이 전해진 후 송내고등학교와 부천시자원봉사센터에서 박씨와 함께 봉사를 펼칠 수 있는 청소년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등 훈훈한 동참 의지가 지역사회 곳곳으로 전파 됐다. 박씨는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축복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라며 제 선물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 누구보다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광희기자

[함께 토닥토닥]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구수~한 ‘나눔’ 26년째

입춘을 하루 앞둔 3일 오전 11시께 광명시 가학동의 한 농촌마을. 명절 연휴의 아쉬움을 달래듯 마을 어귀부터 고소한 전 내음이 풍겨왔다. 이를 쫓아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명절 스트레스도 잊은 듯한 5명의 주부가 전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쉴 틈 없는 수다와 웃음이 오가는 가운데 주부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동그랑땡과 동태전을 노릇노릇하게 지졌다. 이윽고 전들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한껏 뽐냈다. 여기 모인 주부들은 밑반찬 나눔 등 지역사회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 회원들이다.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의 시작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농촌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고 가족과 사회, 농촌과 도시를 잇고자 농업에 종사하는 주부들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도내 26개 시군에 4천600여명의 주부들이 함께하고 있다. 주부들로 구성되다 보니 대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처럼 화려하진 않다. 손수 만든 장바구니를 나누며 탄소중립 캠페인을 벌이고, 회원들의 유휴 농경지에서 재배한 작물로 밑반찬과 김치를 만들어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한다. 일손이 부족한 영농철에는 농촌일손돕기를 자처하는 등 단순히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담긴 활동이 대부분인 탓이다. 이 중에서도 경기도연합회 회원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나눔은 장 담그기다. 매년 회원들은 600kg의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담궈 지역 경로당과 노인보호시설 어르신들에게 전달한다.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부득이하게 장 담그기를 중단했지만, 이듬해 곧바로 재개했다. 재래식 된장을 맛 볼 수 없게 됐다는 어르신들의 아쉬움과 탄식이 회원들에게 전해지면서다. 김봉선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장은 코로나 시국에 오히려 누를 끼칠까봐 장 담그기를 중단했는데, 어르신들이 간절히 기다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재개하게 됐다라며 된장을 전달할 때면 버선발로 마중나와 찬사를 보내주시는 어르신들을 뵈며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연합회는 또 여름 김치 나눔도 전개하고 있다. 김장철이 아닌 여름에 전달되는 열무김치는 홀몸어르신과 소외계층 가정의 입맛을 돋우는 최고의 반찬으로 꼽힌다. 김봉선 회장은 이웃을 위한 작은 나눔일 뿐인데 두 손을 꼭 잡으며 고마움을 표해 주시는 이웃들을 만날 때마다 오히려 우리 회원들이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누구나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정성으로도 이웃에게 온기를 전달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라며 지역 사회가 훈훈해질 때까지 농가주부모임 회원들과 나눔 활동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홍완식기자

[함께 토닥토닥] 25년째 국경없는 의료나눔

36년 전 그날도 요즘 같이 추운 겨울이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가시지 않았던 이른 아침, 전남 영광군 한 마을에서 80대 할머니가 분홍색 보따리를 품에 꼭 안은 채 종종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원광대학교 치과대생들이 머물던 초교 앞에 멈춘 노인은 한 청년에게 보따리를 건넸다. 청년은 어리둥절한 채 꽁꽁 싸맨 보자기를 풀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 이 안에는 10개의 고구마가 있었다. 먼 곳까지 와서 우리 치료해줘서 고마워. 방금 삶은 건데 식었는지 모르겠다 컴컴한 새벽부터 일어나 부랴부랴 첫차를 타고 먼 길을 온 할머니를 생각하니 울컥했다. 눈물을 꾹 참은 채 고구마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갓 스무 살이던 이 청년은 5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소개가 늦었다. 최신규 이사랑치과(고양시 일산동구 소재) 원장(54)은 치아 치료 봉사활동을 계기로 25년째 국경 없는 의료 나눔을 펼치고 있다. 지난 1997년 개원 첫해. 20대 중반이자 동남아 국적의 한 남성이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이에 최 원장은 간단한 치료로 통증을 없앨 수 있다고 얘기해줬다. 그러나 한국말조차 할 줄 모르는 이 남성은 돈이 없으니 아예 치아를 빼달라는 의사를 손짓 발짓으로 전달했다. 순간 최 원장은 자신의 봉사활동으로 고마워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그때의 다짐을 되뇌였다. 의료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님에도 내국인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그 남성을 치료해줬다. 이후 최 원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고맙습니다 비뚤배뚤한 이 한 단어를 그리기 위해 주변 사람한테 알음알음 한글을 물어봤을 남성의 모습을 상상하자 치대생 시절 느꼈던 감동이 몰려왔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매년 20명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최 원장을 찾아왔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타국에서 번 돈을 가족에게 모두 보내고 정작 자신은 치료비에 전전긍긍했을 그들을 성심성의껏 보살폈다. 그리고 고마워요라는 어눌한 한국말을 들을 때마다 의사를 하기 정말 잘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최 원장은 또 봉사활동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해주고 있다. 이 수까지 합치면 최 원장이 돌본 외국인 근로자는 모두 1천300명에 달한다. 최 원장은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면서 국적 가릴 것 없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맙다라는 한마디는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 따스한 빛 한줄기가 될 것이라고 웃음지었다. 이정민김태훈기자

[2022 함께 토닥토닥] 서로 안아주고 위로… 희망찬 새해 응원해

범이 내려왔다. 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이다. 어제까지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문 코로나19로 어둠의 터널을 걸어왔다. 자영업자는 팍팍한 살림살이에 할퀴이고, 실업자는 흔들리는 채용시장에 헐뜯겼다. 신생아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동시에 주름 깊은 어르신은 늘어났고, 집값이 천정부지 뛰는 만큼 비트코인 투자자도 치솟는 격동의 시간이었다. 사건ㆍ사고도 끊이지 않는 각종 고통 속에서 모두가 2021년 한 해를 잘 견디고 잘 버텼다. 오늘부터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밝은 내일을 꿈꾸며 새해를 맞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던 평범한 일상을 되찾긴 물론이고 오롯이 지방자치를 이루는 한 해를 꿈꾼다. 그동안 사회 곳곳에 산적해 있던 수많은 갈등과 불신을 없애면서, 잘못된 제도와 인식도 바꾸는 화합의 신년을 염원한다. 오는 3월9일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선 누가 가라앉은 경제를 되살릴까. 이편저편으로 갈라진 민심을 어떻게 달래고, 무너진 신뢰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시킬까. 6월1일 실시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우리 동네 일꾼들이 선출된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인 만큼 참된 일꾼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길 희망한다. 또, 2월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11월 열릴 카타르 월드컵 등 다양한 이벤트에선 어떤 땀과 열정이 선보여질까. 공정한 스포츠맨십을 통해 힘차게 비상하는 날을 꿈꾼다. 지난해 1차 발사를 진행한 누리호는 올해 2차 발사(5월)와 궤도선 발사(8월)를 앞두고 있다. 우주를 향한 새로운 비행길이 어디로 향할지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에 발맞춰 1천400만 국민이 살고 있는 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 경기도 역시 더욱 혁신하고 성장할 것이다. 탄소 중립 이행 원년을 맞아 전기ㆍ수소차가 늘어나고,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맞춰 고도화된 AIㆍ6G 기술이 서서히 도입될 것이다. 문 닫은 공연장ㆍ영화관이 다시 활기를 찾으면서 우리네 도시가, 지역이, 나라가 한 걸음 더 도약할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경기일보가 함께 하겠다. 언제 어디서나 독자 여러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리겠다. 때로는 예리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서로 다독이며 성장해 나가겠다. 민족의 영물 호랑이의 해를 맞아 경기일보는 강건한 경기도를, 튼튼한 미래를 응원한다. 우리, 행복하게 웃으며 서로를 토닥이자. 이연우기자

[함께 토닥토닥] 토닥이며 사는 부평깡시장 사람들 `어둠속에도 희망은 온다'

새벽 2시, 멀리서 다가오는 이웃 상인의 모습에 이리와 손을 흔들며 따뜻한 장작불 앞자리를 내어준다. 전국 각지에서 밤새 달려온 식재료가 인천 부평깡시장에 내려진다. 어둠이 내리는 새벽마다 밝아올 희망을 기다리며 이곳의 하루는 시작한다. 경매를 깡 부른다고 하던 어원에서 시작한 부평깡시장은 1950년,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숱하게 늘어선 노점들이 장사하며 자연스레 형성한 곳이다.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엄마 손을 잡고 왔던 어린아이가 자라 딸의 손을 잡고 다시 찾는 추억의 깡시장. 이곳은 존재 자체만으로 인천시민의 퍽퍽한 삶을 토닥이는 가장 친근한 터전이다. 형님, 이리와. 언니, 밥 먹었어? 점심시간이면 점포를 임대해 장사하는 상인과 그 앞에 자리한 노점 상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함께 식사한다. 싸온 반찬을 서로 나누며, 온정으로 고된 시간을 위로한다. 김남제 상인회장(68)은 다 같은 상인인데, 노점이면 어떻고 점포면 어떻나라며 먹을 거 있으면 나누고, 서로 토닥이며 함께 가는거다라고 했다. 3년 전 이곳에 온 한과가게 강정옥씨(62)는 상인들의 이런 토닥임 덕분에 매일이 행복하다. 혼자 자영업을 할 때는 느끼지 못한 온기를 이곳에서 느낀다. 그는 노점이며 옆 가게며 모두 다같이 모여 밥도 먹고, 힘들땐 서로 술잔도 기울이며 위로한다며 활짝 웃어보인다. 부평깡시장 180여개의 점포 상인들은 지난 14년간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처음 나눔기부 프로그램을 만든 전 상인회장 왕룡물산 이용노씨(70)는 여기 다 주민들이 와서 사주니까 장사가 되는 건데, 큰 거 나누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해야할 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십시일반의 이 작은 나눔은 부평깡시장 인근 어려운 주민들에겐 한 겨울의 화롯불같은 토닥임으로 마음을 데운다. 이씨는 자신이 파는 배추며 무 같은 채소를, 삼화농산 김보균씨(54)는 깨나 고춧가루를 내놓으며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내놓은 기부 물품들은 1t트럭 2대에 가득 채워져 1개월에 1~2번씩 이웃에게 전해진다. 1년에 1번씩 지역 어르신들께 정성껏 만든 닭곰탕을 대접하고, 상인들이 내놓은 배추와 무 등으로 1천200포기가 넘는 김장을 해 전달하기도 한다. 어려운 이웃들의 지친 어깨를 토닥이며, 더 오래 건강하게 함께하자는 바람을 담아 온 상인들이 힘을 모은다. 채소가게 이정숙씨(75)도, 양곡 가게 최원묵씨(65), 건어물가게 김종범씨(59)도 모두 이런 나눔이 행복하다. 내가 받았으니, 나도 돌려주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한다. 그저 상인들은 어서 빨리 코로나19 상황이 끝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흡하고, 나누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북적이는 손님들 속에서 새해의 희망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부평깡시장, 그들에게서 주변으로의 토닥임이 우리에게는 몇 배의 온기로 돌아옴을 배운다. 2022년, 이제 우리도 주변을 돌아보며 온 힘을 다해 토닥이자. 그 온기가 온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수 있도록. 김경희최종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