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호 맛대로 촌닭 사장 맛으로 통일되는 그날까지… 시련은 있지만 좌절은 없다
북한과의 인연은 없지만 닭 수입업을 하면서 외국에 달러를 주고 닭을 수입하는 것보다 북한에서 키우면 남북한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결과물이 바로 ‘평양 락원 닭고기 전문식당’이었다. 하지만 최 사장의 바람과는 달리 남북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고, 그가 진행하던 남과 북에서의 사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최 사장은 현재 어려워진 사업으로 자신의 소유였던 건물에 세입자로 들어가 있지만 ‘좌절이란 없다’고 외치며 남북경협의 온기를 기다리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맛으로 남북한 통일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닌 최 사장에게서 ‘맛 통일 대박론’을 들어본다.
■ 발상의 전환… 평양에 대한민국 치킨집 오픈
1997년 입맛대로 골라먹는 치킨을 표방하며 ‘맛대로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여 이후 체인점이 150여개까지 늘어났다. 중간에 닭꼬치 프랜차이즈도 했었다. 하지만 유행을 타고 반짝하는 것은 오래 못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50년이 가고 100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고 방향을 잡은 것이 ‘맛대로치킨’이었고 2005년에 ‘맛대로촌닭’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리고 최 사장은 2005년 북한 땅을 밟았다. 그는 “공주 태생으로 북한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북한 길에 올랐다. 백범일지를 수없이 읽으며 민족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특히 닭을 취급하면서 수입도 많이 했는데 어차피 외국으로 달러가 나갈 바에는 북한에서 길러서 가져오면 같이 잘 살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남북 화해모드가 조성됐던터라 평양에서 닭을 가져오면 인건비·물류비용 등이 싸기 때문에 현실화만 된다면 대박이었다.
하지만 희망가도 잠시, 당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수입을 할 수 없게 됐다. 고민 끝에 치킨 체인점을 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리 화해 분위기라도 북한에서 치킨집을 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세상은 열려고만 하면 열릴 것’ 이라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무작정 덤벼들었다.
결국 북한 ‘락원무역총회사’와 합자해서 시장조사와 점포작업을 거쳐 2007년 100평 규모의 ‘락원 닭고기 전문식당’을 정식으로 오픈했다. 향후 15년간 영업권을 보장하며 이익금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최 사장은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문동 북새거리 최고의 요지에 입점했다. 북한에서 치킨이라는 개념이 처음 들어갔기에 손님들 반응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워싱턴포스트 동경지국장이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이후 BBC와 산케이신문, 후지TV 등에서도 최 사장을 직접 만나 기사를 다룰 정도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기쁨도 잠시였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모든 길이 막히게 됐다.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소스·재료 등 물자가 우리나라에서 북한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단절됐다.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평양 치킨집을 오픈하고 2008년에 물자가 2번 올라간 뒤 관계가 끊어졌다.
최 사장은 “락원 닭고기 전문식당은 지금도 살아있고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물건도 안 들어오고 영업은 해야 되니 어쩔 수 없이 닭은 제대로 못 팔고 회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평양 치킨집이 잘되면 체인점을 늘리고 병아리 100만 마리를 북으로 보내 기르는 등 사업계획도 다 짜놨었지만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정책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켜야 했는데, 정권이 바뀌자 정책도 바뀌다보니 더 이상 평양에 올라갈 수 없게 됐다.
정경을 분리해 정치 부문은 냉각되더라도 경제인들에 대한 교류를 막아서는 안된다. 대만이나 동·서독은 경제인 교류를 오히려 지원해줬다. 경제인들이 들어가서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풀어내게끔 해야 한다”고 평소 소신을 밝혔다.
최 사장은 “아무리 철천지원수라도 밥상에 강제로 앉혀서 세 번 밥을 같이 먹으면 감정이 다 풀린다고 한다.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술도 같이 먹으면서 상대의 앙금을 털어내는 기회가 많아야 마음도 열리고 이해도 되고 배려도 할 수 있다. 부부생활에서도 상대의 단점만 보면 싸우게 되는 것처럼 서로 간 단점보다는 장점을 봐야 남북관계가 원활해 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사장은 평양에 치킨집을 내기 위해 빚을 져가며 올인했지만 단절된 탓에 수익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국내 사업도 잘 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의 장점인 똑 같은 재료, 똑 같은 맛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최 사장은 가맹점주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했다. 상생하기 위해 서로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윈-윈 할 길을 찾자고 했다.
가장 기초적인 레시피를 지켜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례로 치킨떡복이를 개발해 시금치, 당근, 고구마 등이 함유된 컬러 웰빙 떡을 사용해야 했지만 가맹점들이 시장에서 값싼 떡을 사용하다보니 광고 효과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시켜보면 웰빙 떡이 아닌 일반 떡이 들어있으니 품질을 스스로 죽인 꼴이었다.
2009년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사업은 더욱 내리막길로 갔다. 모든 수익이 떨어졌다. 심각한 경영난과 평양에 치킨집을 내면서 무리하게 얻은 빚 등으로 인해 본사 건물과 집도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현재는 본인의 건물이었던 곳에서 주인이 아닌 세입자 신분으로 가게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직원 하나 없지만 사무실 월세를 꼬박꼬박 3년 여간 내고 있는 것은 나를 지탱해온 자존심이자 재기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제2의 성공 신화는 이제부터…
최 사장은 올해부터 프랜차이즈를 활성화시킬 요량이다. 지난해에 체인점 1개를 냈다. 이제는 아무나 가맹시키지 않는다. 가맹점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를 개점하더라도 혼이 담긴 체인점을 낸다는 경영방침에서다.
사무실 한켠에는 ‘주향불파항자심’이란 중국속담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그는 “주향불파항자심은 술의 맛, 음식 맛이 좋으면 찾기 어려운 깊숙한 골목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으로 맛으로 승부해야하고 맛이 좋으면 손님들이 찾아간다는 뜻이다. 브랜드 간판만 내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본 즉, 맛을 안 갖추고 껍데기만 가지고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자신의 혼을 바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외래어인 치킨을 우리말인 촌닭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메뉴도 개발해 순 우리 말로 전부 바꿨다. 외국 사람에게도 한글로 우리 음식을 주문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KFC 등 메뉴를 보면 다 외래어고 무슨 뜻인지 알고 먹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진짜 우리 것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양에 가서 만들어 놓은 대표적인 메뉴가 칠향찜닭이다. 7가지 향이 있다고 해서 칠향이다. 우리 전통요리를 개량해 4~5년의 테스트를 거쳐 만든 것으로 평양칠향계는 ‘맛대로촌닭’의 주메뉴이기도 하다.
최 사장은 “나는 그래도 평양에 내 식당이 있고 언젠가 갈 수 있다. 돈을 까먹은 것이 아니라 투자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 번에 이뤄지는 일은 없다.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다보면 꽃이 피고 뿌리가 있는 것은 태풍이 불어도 뽑히지 않게 된다.
꿈은 크게 갖되 시작은 밑바닥에서부터 하면 반드시 꿈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중국 단둥에도 치킨점을 내 북한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며 “사업을 하는 이들을 선봉장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도와 준다면 남북관계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쉽게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 사장은 “후손들에게 자랑할 만한 국산 닭 브랜드를 만들고 북한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맛으로도 통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보여 줄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규태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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