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목 파도 헤쳐온 10년… 이곳이 ‘통일 전진기지’
지난 2004년 6월 시범단지 준공 이후 10년째를 맞은 개성공단은 늘 위기이자 기회의 공간이었다. 격양하는 남북관계 속에서 존폐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개성공단은 여전히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자 남북 평화협력의 공간으로 통일시대를 향한 시험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후 어렵게 정상화의 길에 나선 개성공단. 통일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개성공단의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 발전 방안을 찾아봤다.
■ 남북 민간의 ‘경제공동체’
부천서 A양말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51)는 4년 전부터 개성공단에 공장을 가동했지만 지난해 4월, 북측의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로 바이어와의 계약이 모두 끊기면서 수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더 큰 문제는 남북관계 리스크에 불안감을 느낀 바이어들이 더이상 물량을 주지 않으려 하면서 위기감은 더 했다. 하는 수 없이 공단 내 공장을 철수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시아로 이전할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개성공단 내 공장을 오히려 더 확장해 오는 9월 이전을 앞두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막 남북 직원들과 함께 공장을 키워나가는 중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새롭게 도약해보기로 결심한 것. 김 대표는 “국내에서는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중소 제조기업의 생존 자체가 매우 어려운데, 개성공단은 양질의 노동력을 해외 경쟁국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채용할 수 있다”면서 “경쟁력 있는 물류비, 민족 내부 간 거래로 간주되는 무관세혜택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으로 개성공단이 남북 관계 리스크에도 기업인들의 수요가 높은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6월 30일, 역사적인 문을 연 개성공단은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 2010년 천안함 사건, 지난해 4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 등 숱한 남북 경색 국면에서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남측 기업인들의 수요와 북측 인력의 결합이 적절하게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가동 첫해인 2005년 1천491만 달러의 생산액에서 올해 누적 생산액 23억685만 달러, 교역액 94억5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7년 만에 31배가 넘는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도 6천 명가량에서 5만2천명으로 9배 가까이 늘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개성과 인근의 북한 주민 20만여 명이 개성공단을 통해 생계를 꾸리는 셈이다. 김 대표는 “개성공단은 현재 5만2천명의 북한 근로자와 125개 우리 기업의 종사자 수백 명이 함께 살아가는 경제 공동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을 통일의 초석으로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도 북한 근로자와 함께 이뤄가는 경제 공동체에서 연유한다. 바로 자본주의, 자유주의의 학습장이라는 것이다. 경제체제가 다른 남북은 개성공단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경제체제를 조금이나마 학습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계와 학계에서 제2ㆍ3 개성공단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개성공단은 자연스럽게 남북 간 경제격차를 줄이고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모델”이라며 “앞으로 제2ㆍ제3의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 간 경제적 이질감을 줄여나가야 정치적 통합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숱한 정치적 불안정에도 개성공단은 통일 마중물을 위해 힘껏 달려나가고 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는 개성공단의 기반시설에 국제표준인증을 취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제표준인증 취득을 통해 공단의 국제화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해외기업 투자유치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통일 마중물이 되려면 남북 간 정치적 안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정치적인 불안정 속에서도 개성공단은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 연구위원은 “작년 가동 중단 사태와 같은 한반도 리스크를 불식시켜나가는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자연기자
[Interview] 정기섭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장
남북 냉전 리스크 안전판 역할 5ㆍ24조치 전면 해제ㆍ완화 시급
개성공단은 늘 불안하다. 언제 또 어떤 수로 삐걱거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개성공단은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 언제나 꿋꿋이 버텨왔다. 통일 한반도 시대를 바라보는 현재, 개성공단은 통일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정기섭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장에게 그 해답을 들어봤다.
A 지난해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위시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할 때도 개성공단은 유일한 안전판으로 작용했다. 또 북측에는 일정한 외화수입과 경쟁력을 갖춘 기술 및 경영 노하우를 전달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남북리스크에 대한 안전판 역할로 한국의 국제 신인도 향상을 꾀한 것과 산업구조 고도화 속에 해외로 내몰리는 중소기업에 활로를 제공한 성과도 있었다.
Q 개성공단에 가장 시급한 사항은 무엇인가.
A 가장 큰 문제는 인력수급이다. 현재 최소 1만 6천명의 북측근로자가 부족하다. 북측은 인력 공급을 매개로 세금, 보험 가입 및 임금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경협보험 개정 역시 최소한의 입주기업의 최소한 보호장치로는 여전히 미비하다. 남북 간 정치ㆍ군사적인 상황변화에 영향을 받는 것 역시 공단이 안은 원초적인 취약점이다.
Q 남북경협이 중단된 지 4년이 지났다. 통일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대,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나.
A 5ㆍ24조치로 개성공단입주기업들의 신규투자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근로자 숙소를 입주기업들이 건설하는 것도 5ㆍ24조치의 변화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
지난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로 경영이 어려워진 일부 기업에서 분할매각을 하려고 해도 신규기업진출이 제한돼 거래가 이뤄질 수 없어 경영권 및 재산권 행사가 어렵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개성공단의 활성화, 국제화를 위해서도 이제는 5ㆍ24조치의 전면 해제 및 완화가 필요하다.
Q 남북 당국에 당부하고픈 말은.
A 남북관계에 따라 개성공단의 존폐가 좌지우지되고 있다. 남북 당국이 지난해 개성공단 재개 시 합의한 대로 정경 분리의 큰 틀에서 개성공단 사업의 청사진과 장기계획에 따라 개성공단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정경 분리의 큰 틀에서 개성공단 사업의 청사진과 장기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때 개성공단은 통일의 초석이자 국제적인 공단으로 ‘통일 대박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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