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곱하기 0의 정치를 플러스의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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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임금은 물가수준과 주거비 등을 고려해, 노동자의 최저생활비를 보장해주는 개념이다. 경기도의 생활임금은 작년에 비해 220원 오른 7천30원이다. 경기도에 생활임금이 도입된 데는 경기도 연정이라는 독특한 운영방식이 있었다.

 

지난 2013년 8월 경기도의회는 생활임금을 제시했다. 최저임금의 150% 수준이었다. 경기도는 야당이 다수였던 경기도의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샅바싸움을 벌인 기간이 무려 9개월. 물꼬를 튼 건 연정이었다. 

남경필 지사와 이에 화답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힘을 합친 ‘연정’이라는 제도로 생활임금제가 도입되었다. 경기도 연정 ‘정책 1호’가 탄생되었다.

 

정치를 수학에 빗대면, 플러스의 정치다. 플러스, 마이너스라는 셈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이전의 수치보다는 더 나은 수치를 내와야 하는 분야다. 국민의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정치는 모든 것을 제로로 만드는 ‘곱하기 0’의 정치에 가깝다.

여야가 협상하자고 만난 테이블은 엉망이 되기 일쑤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야당 탓을 한다. 그러면서도 야당 대표를 만나긴 꺼려 한다. 대화보다는 언론 장악 등을 통해 일방통행 정치를 선호한다.

 

국민들도 한국정치에 대해 부정적이다. OECD회원국 중 자국의 정부신뢰도 순위를 보면, 한국의 경우 29위로 100% 만점에 고작 23%다.

 

노력은 있었다. 우리당 원혜영 의원이 주도해 만든 ‘혁신과 정의의 나라’ 포럼에서 독일연정을 공부하고, 우리식의 대타협의 정치에 대해 논의해 왔다. 필자 역시 회원으로서 독일식경제모델과 합의의 정신에 대해 공부하고, 제도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지금의 독일을 이룬 힘은 독일식 연정의 성공이다. 독일식 연정은 지방분권 제도와 민주시민교육이 있어 가능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자유분방한 자유주의, 나치의 전체주의 등 독일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던 제도에 대해 비판의식을 높이고, 자율적 시민의식을 높여 국민 스스로 독일식 연정의 주체가 되도록 했다. 1976년 각 정파들이 모여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정신을 도출했다.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경기도는 실험 중이다. 알맹이 없는 연정, 성과 없는 연정이라며 ‘쇼’라고 치부하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경기도는 연정을 통해 최저임금의 117%인 생활임금제를 채택했고 공공산후조리원, 대학생과 근로자의 주거지원을 확대했으며, 지방 가장 아래 단위까지 가닿는 마을육아공동체라는 의제를 개발했다. 경기도가 한창 홍보 중인 ‘일하는 청년통장’ 역시 연정을 도맡아 하는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사회통합부지사 영역에서 나온 제도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DJP연합의 연정방식이 있었지만, 제도 개선과 적극적 의제 개발에 치중하기보다는 단순한 권력 분산을 위한 선택이었다.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방분권, 안정된 정치시스템, 보편적인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정은 ‘가치선언’에 불과했다. 

연정을 통해서라도 갈등의 정치를 종식하고 대타협의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고 싶었던 대통령의 진정성은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한 채 거절당했고, 큰 꿈은 좌절당했다. 선언이 아닌 제도로써의 연정은 먼 이야기였다.

 

경기도 연정이 실험이 아닌 정치제도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독일 시민교육의 원칙인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담긴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길 잃은 대한민국에서 한국 정치가 정신 바짝 차리고 길을 제시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갈등의 정치, 갈등의 대한민국에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 한 시대의 매듭이 있어야 다른 시대가 가능하다. 사회적 대타협의 정신으로 ‘합의의 대한민국’을 도출해야 한다.

 

20대 국회 개원을 20여일 앞두고 있다. 국민이 건네 준 청동거울에 내려앉은 시간의 흔적을 닦고, 그 앞에 선다. 옷깃을 여민다. 19대 국회 임기를 맞이했던 초심으로 그렇게 시작하자. 초심에 지혜를 얹어 새롭게 시작하자. 이 길에서 경기도 연정에 담긴 가치는 플러스의 정치를 시작하는 지혜가 될 것이다.

 

이원욱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화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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