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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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 진짜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어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네.” 흔히 쓰는 표현이다. 가령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선수가 상대 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골을 놓쳤다고 치자. 그럴 때 가장 먼저 찾는 동물이 바로 원숭이다. 원숭이를 빗대 아무리 능숙한 사람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다는 속담을 풀어낸다. 실제로 원숭이는 나무를 타다가 추락사하거나 지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적절한 비유다. 그런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사체로 발견되고 있다. 멕시코 이야기다. 멕시코 환경부는 이달 들어 남부 타바스코와 치아파스에서 발견된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사체가 157마리로 확인됐다고 최근 밝혔는데,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폭염을 지목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에 지쳐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숭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최근 멕시코 지역을 강타한 불볕더위 속에 원숭이들이 온열질환 또는 영양실조 등으로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만 남부와 중미 북부를 중심으로 한 열돔(Heat Dome·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돼 뜨거운 공기가 갇히면서 기온이 오르는 현상) 영향으로 멕시코 곳곳에서 한낮 최고기온이 40∼45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원숭이를 포함해 앵무새와 박쥐 등 동물 폐사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더위가 이어지면 동물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현지 생태공원 책임자의 말처럼 자연을 이기는 생물체는 없다. 우리는 더 편한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미명(美名) 아래 자연에 ‘파괴’라는 비수를 끊임없이 꽂아 왔다. 기온 상승과 기상 이변은 그에 대한 결과인데도 “내 시대 일은 아닐 것”이라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원숭이처럼 가장 잘하는 것에서 실수할 때, 그때가 가장 무서울 때일 것이다. 더 이상 자연에 꽂은 비수를 방관하지 말자. 더 큰 재앙은 바로 오늘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데스크 칼럼] 물가 인상에 인상을 쓰다

마땅한 찬거리가 없을 때 맛있는 조미김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웬만한 집 팬트리(pantry·부엌에 인접해 식기나 식료품을 보관하는 방)에 쟁여둔 김 봉지 하나 없으면 한국 사람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김을 ‘국민 반찬’이라고 칭하고 사랑한다. 그랬던 김마저 우리를 배신했다. 이유야 어떠하든 인상(引上)된 물가로 우리들의 얼굴에 인상(人相)을 쓰게 했기 때문이다. 김의 대형마트 판매 가격이 이달 들어 일제히 올랐다. 국내 대표 김 전문업체인 광천김과 대천김, 성경식품이 주요 제품의 대형마트 판매 가격을 10∼30% 인상했다. 이들 업체는 앞서 지난달 초부터 슈퍼마켓 등 일부 유통채널에서 가격을 10∼20% 올린 데 이어 5월 들어서는 마트 판매 가격까지 인상한 것. 이들도 나름대로 항변한다. 업체들은 올해 김 원초(김 가공 전 원재료) 가격이 전년 대비 2배가량 올라 원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 등 기념일이 몰려 있는 5월. ‘가정의 달’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잔인한 달’이 돼 가고 있다. 치솟은 물가에 필부필녀(匹夫匹婦)들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한마디로 안 오른 것이 없다. 집밥을 해먹든 외식을 하든 지갑을 열기가 두렵다. 통계청의 자료를 들여다보자.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0% 올라 4월 전체 소비자물가 평균 증가율인 2.9%를 웃돌았다. 품목별로 보면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꼽히는 떡볶이 가격이 5.9% 올라 상승 폭이 가장 높았다. 비빔밥·김밥(5.3%)과 햄버거(5.0%), 도시락(4.7%), 칼국수(4.2%), 냉면(4.2%) 등도 올랐다. 39개 외식 품목 중 지난해보다 물가가 내린 품목은 없었다. 물가 상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결정된 건강보험 의료수가 인상분이 올해 반영되면서 병원비, 약값도 줄줄이 상승세다. 특히 소화제, 감기약 등 일부 상비약의 물가 상승 폭은 전체 소비자물가의 2∼4배 수준에 달하고 있다. 한방·치과진료비는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치과진료비는 1분기 3.2% 올라 2009년 3분기(3.4%) 이후 증가 폭이 가장 컸다. 한방진료비도 3.6% 올랐다. 2012년 4분기(3.7%) 이후 11년여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약값의 본인부담액도 수가 인상 폭만큼 오르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소화제는 올해 1분기 11.4%, 감기약은 7.1% 올랐다. 정말이지 팔짝 뛸 일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 각종 특검도 중요하지만 서민 물가 태스크포스(TF)를 먼저 꾸리는 것이 여야와 정부의 도리가 아닌가 싶은 오늘이다.

[지지대] 거짓의 시간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분명 ‘희비(喜悲)’는 존재했을 터. 선심성 공약도 없었고, 우리 동네를 발전시키겠다는 작은 비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파와 성 상납 등 막말, 편법 대출 논란.... 그렇게 국민을 위한 공약은 이들 단어들로 희석되고 말았고, 한동훈 위원장과 이재명 대표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진 기이한 선거로 역사에 기록되고 말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선거가 끝난 지금부터이기에 더욱 답답한 노릇이다. 공약이 없었으니 지역구 주민들을 위한 4년간의 빅플랜(Big Plan)은 어불성설(語不成說·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요, 국민과 국가를 위한 중·장기적인 비전은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정권을 심판하고(야당), 야당의 독주를 막아 달라(여당)는 실체 없는 양당의 대주제 속에 국민의 축제이자 민의를 대표할 선거는 그저 그런 차악(次惡·최악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최악보다는 그나마 나은 악을 빗대어 이르는 말)의 선택 종결지쯤이지 않았을까. 국민의 선택이니 국민이 감내해야 하는 것도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는 자세라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다만 아쉬운 것은 점점 선거에서 국민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선거 이후 정국은 앞으로 있을 예비 대선의 경연장이 될 것이며, 그 속에서 정쟁에만 빠져 있는 배지 다신 분들의 모습만 보게 될 것이다. ‘거짓의 시간’은 이렇게 카운트다운 됐다. ‘나라를 혁신하겠다, 정권을 심판하겠다, 독주를 막아 달라’에서 비롯된 잘못된 시작은 자신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포장하기 위한 거짓으로 관철될 뿐이다. 잘못된 선택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잡기까지 드는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둘 수도 없다. 거짓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타임머신이 아니라 국민들의 매서운 눈과 회초리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데스크 칼럼] 일본인에 빠진 대한민국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전으로 치러진 MLB 서울시리즈가 20, 21일 이틀간 고척돔에서 야구팬들의 관심 속에 성료했다. 김하성·고우석 선수가 포진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하지만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LA 다저스 소속 일본인 선수에 대한 관심에는 못 미친 듯하다. 오타니 쇼헤이. 처음 오타니 선수는 이도류(二刀流)로, 야구 팬 사이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도류는 일본 검술에서 양손(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칼 또는 검을 들고 공수를 행하는 기술의 총칭이다. 또 일본에서는 좌우 양손으로 무기를 다루는 것에서 두 가지 다른 수단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과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다. 오타니 선수는 투수로서 160㎞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고, 타자로서 메이저리그에서도 매년 4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 내는 거포다. 야구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진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인 것이다. 오타니 선수는 지난해 LA 다저스와 7억달러(약 9천376억원) 규모의 이적 계약을 맺었다. 이는 세계 프로스포츠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의 금액이다. 여기에 추가 상금과 광고수익 등을 더하면 1조원이 넘어 ‘1조원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타니 선수는 이전부터 뛰어난 실력과 비례하는 훌륭한 인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고교 시절 작성했던 성실함의 대명사인 버킷리스트에다 슈퍼스타가 된 후에도 야구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 포착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욱이 오타니 선수는 한국행에 앞서 베일에 싸여 있던 아내를 공개함과 동시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태극기와 ‘기다려지다’라는 한글 문구를 올리며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라고 언급해 대한민국 야구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아내 역시 일반석에서 활짝 웃으며 응원하는 모습에다 4만5천원짜리 핸드백을 든 사진까지 이슈가 되면서 이들 부부는 완전히 호감형 인사가 됐다. 야구장에는 곳곳에서 오타니 선수의 레플리카를 입은 한국 팬들의 모습이 보였고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오타니 선수의 유니폼은 인기리에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인에 대한 노골적인 응원이 이처럼 뜨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한일 관계의 특수성에 일본과 일본인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상이었고, 이들에 대한 응원은 곧 매국 행위였다. 그런데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오타니에 대한 신드롬은 바로 인성으로 귀결될 수 있겠다. 일본에 오타니 선수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손흥민 선수가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치러진 아시안컵에서 아홉 살이나 어린 이강인의 손흥민 선수에 대한 하극상으로 ‘인성’은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화두가 됐다. 그리고 등장한 인물이 바로 오타니 선수다. 뛰어난 운동 실력에 훌륭한 인성까지.... 한국의 축구 천재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에 대한민국은 지금 오타니에게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지지대] 고래 싸움에 쓰러지는 환자들

결국 8천816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7천813명은 현장을 이탈했다.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숫자가 1천2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전형적인 ‘강 대 강’ 대치 국면이다. 일각에서는 작금(昨今)의 의료계 파업이 짧으면 2개월, 길면 6개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야말로 재앙이다. 두 명의 골리앗 싸움에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것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피해 접수가 늘어가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사례는 20일 오후 6시 기준 58건으로 집계됐다. 수술 취소, 진료예약 취소, 진료 거절, 입원 지연 등이 포함됐다. 이 수치는 앞으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년 전부터 예약된 자녀의 수술을 위해 보호자가 회사도 휴직했지만 갑작스럽게 입원이 지연된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경기지역을 대표하는 성빈센트병원과 아주대병원을 ‘뺑뺑이’ 돌아도 의사가 없어 결국 자식의 수술을 진행하지 못한 부모가 울분을 토했다. 또 응급실 ‘전화 뺑뺑이’에 받아줄 곳을 찾지 못하던 80대 환자가 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기사회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모든 싸움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의료계 파업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사람의 목숨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어렵겠지만 현장을 지키면서 대표자들이 정부와 싸우면 환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일반인들이 우군(友軍)이 돼 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딱 반대 상황에 처한 의료계라고 보면 된다. ‘환자를 볼모로 잡고 있다’는 명제가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들의 대의명분을 덮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싸움에 시간은 의료계 편이 아님을 직시하자. 의료계의 고충도 알겠다. 그래도 돌봐야 할 환자가 우선이지 않을까. 현명한 판단을 기다려 본다.

[데스크 칼럼] 사람의 격이 국격을 높인다

일반화의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봐 주신다면, 상당수의 대한민국 국민은 다른 나라 국민을 일컬을 때 국민 정서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프랑스 사람, 덴마크 사람, 캐나다 사람....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은 어떨까.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라는 표현보다는 ‘짱X’, ‘떼X’이라든지 ‘왜X’, ‘쪽X리’라는 단어가 쉽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들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진 베트남이나 미얀마 국민들도 ‘베트남 사람’, ‘미얀마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말이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이 갖는 감정은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터다. 그런데 중국은 왜 그럴까. 고조선도 고구려, 발해도 다 자기들 역사란다.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그렇게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역사는 원래 고대 중국의 동북지방에 속한 지방정권인데, 한국의 학자 등이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고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전제 아래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김치도 자기들이 원조라고 우긴다. 그들이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파오차이는 배추류 등을 소금에 절인 식품인데도 배추에 각종 양념을 버무려 발효하는 김치를 패키지로 묶어 버리는 기술, 단연 창조적 사고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긴 전 세계인이 함께하는 동계올림픽에서 한복도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민족이니 더 할 말은 없다. 중국의 각종 논란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그냥 화가 났다. 공정해야 할 스포츠에서 그들은 또 개입하고 말았다. 카타르 아시안컵 E조 1차전 대한민국과 바레인 경기 시작 전 심판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느 정도는 편파적인 일들이 발생하겠구나’라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현실은 더 어이 없었다. 자기들이 못하는 축구, 아시안컵에 처음 출전하는 나라에도 쩔쩔매는 축구. “우리가 안 되니 대한민국도 잘 되면 안 돼.” 그 중국인 심판은 90분 내내 이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경기장을 뛰어다닌 듯하다. 그러면서 손흥민, 김민재, 조규성 등 대한민국 핵심 선수들에게 무려 5장의 옐로 카드를 날렸다. 스스로 국격을 낮춰 버린 것도 모르고 말이다. 결국 사람이 국격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외국인들에게 비친 대한민국 국민은 사람일까, 그저 그런 놈일까.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심판이 일본 경기의 주심으로 나섰으면 한다. 그 심판이 우리가 가진 어떠한 국민 감정을 배제하고 공정성 하나만 가지고 경기를 지배했으면 좋겠다. 그 심판이 보인 국격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될 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했네”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다름이 확실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지대] 모두를 바꿀 121번의 ‘작심삼일’

연초가 되면 누구나 자신과의 약속 하나 정도는 정하기 마련이다. 금연, 금주, 운동, 독서 등등. 그 약속이 ‘작심삼일’(作心三日·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에 그치더라도 말이다.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을 맞아 필자도 약속 아닌 약속들을 정하게 됐는데, 놀라운 사실은 ‘건강과 가족을 위해서’라는 단서 조항이 생기니 군말 없이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의사로부터 “혈압이 높아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는 충격 선언을 들었고 곧바로 실천에 들어 갔다. 가족 앞에서 금연을 선언했고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그 무섭다는 작심삼일은 일단 넘겼는데, 가족애(愛)로 버텨 보려 한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 ‘가족’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2024년. 참 많은 것들이 ‘약속’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가장 큰 무대는 목전으로 다가온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저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온 후보자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운운하며 달콤한 메시지를 남발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약속의 주체는 누구일까. 주체에 따라 약속의 이행 강도는 달라지기 마련인데, 허공에 날린 약속(국민 없는 약속)은 결국 지켜질 수 없는 허상이 되고 말 것이다. 동력이 사라진 열차처럼 말이다. 대통령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각자가 정하는 약속은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떠나 이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약속의 100% 이행’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약속을 실행해 보겠다는 다짐과 선언, 실천 의지가 쌓일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는 흘러갈 테니 말이다.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꿀 약속이라면 121번의 ‘작심삼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약속을 지키는 신(信)나는 사회를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데스크 칼럼] 후츠파와 셈법

12월 마지막 월례회의.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 한 해를 설계하는 시점에서 모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강의를 들었다.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의 ‘데이터 대항해 시대: 소프트파워를 키우자’가 그것이다. 그 강의에서 유독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단어가 바로 ‘후츠파(Chutzpah)’다. 강의가 끝나고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돼 있다. 후츠파란 이스라엘에서 ‘담대함’이나 ‘저돌적’을 뜻하는 단어로 후츠파 정신은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뻔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는 이스라엘인 특유의 도전정신을 뜻한다. 윤 전 차관은 후츠파를 ‘방아쇠를 당기는 힘’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후츠파의 7가지 의미를 더했다. △형식의 파괴(Informality) △질문의 권리(Questioning authority) △상상력과 섞임(Mash-up) △실패로부터의 교훈(Learning from failure) △목표 지향(Purpose driven) △끈질김(Tenacity) △위험의 감수(Risk taking). 결국 후츠파는 삶을 대하는 확고한 자세로, 이것저것을 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간다는 것이며, 당당하고 용감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태도라고 설명했다.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고, 국토 면적으로는 소국(小國)이지만 전 세계의 금융과 정보기술(IT), 생명공학 등을 선도하는 이스라엘의 힘이 이 후츠파 정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생각 하나. 전 세계에서 평균 아이큐가 가장 높고 학구열까지 갖춘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의 소프트파워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후츠파를 가로막는 우리만의 특유의 계산하는 방법, 셈법(셈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셈법을 고려한다고들 한다. A를 진행할 경우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B를 실행하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등등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 진행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에 벌어질 후폭풍을 계산하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만의 후츠파가 있는데도 말이다. 좋은 재료가 있으면서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리지 못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당리당략에만 빠져 있는 정치인들의 셈법을 깨부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롯이 국민만을 생각하고 국가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는 정치인을 선택할 담대한 후츠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정치인의 덕목을 갖추기보다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만을 고려하는 셈법에 빠진 대한민국의 정치 현주소에 국민들의 후츠파는 새로운 도약에 나서야 하는 대한민국의 거대 담론의 시작임을 우리 모두 명심하자.

[지지대] 특별한 존재

얼마 전, 고등학교와 대학 직속 선배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갖춰지는 예의랄까. 선배를 향한 예우에, 스윽 보이는 입가의 미소. 선배는 그런 필자의 모습이 좋았나 보다. 그러고는 슬쩍 건네는 라이터 하나. 다름 아닌 지포(ZIPPO)였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특별한 글귀와 일련번호. 앞면엔 ‘90th Anniversary Edition’이라는 글귀와 뒷면엔 한정판(limited Edition)을 상징하는 넘버링까지 돼 있었다. 지포 라이터 탄생 90주년을 맞아 출시된 ‘찐’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특별한 후배에게 어울릴 것 같아”라는 말과 함께. 왠지 모를 행복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선배에 대한 당연한 예우였는데 말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년 4월10일,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의 정치를 실현할 국회의원선거(22대 총선)가 예정돼 있다. 너도나도 그 주인공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며 정치의 세계로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주인공 역할이 본인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을 위한 것인지 말이다. 어찌 보면 국민의 선택을 받는 300명의 국회의원은 특별한 존재가 맞다. 그런데 그런 특별함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인, 그리고 국민을 먼저 특별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수반될 때 ‘찐’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그동안 살아온 이력만을 특별하게 대우받고 싶다면 일찌감치 선거판에서 사라지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본인들의 특별함만 내세워 정쟁의 끝으로 달려가는 대한민국 정치 아닌가. 지포 라이터에 새겨진 리미티드 에디션 넘버링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특별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만 빠져 현실 정치를 진흙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생각이라면 당장 정치의 세계에서 발을 뺄 것을 당부드린다. 아주 작은 라이터에 새겨진 의미부터 먼저 깨치고 오시라고 말이다.

[데스크 칼럼] 시민이 볼모가 된 사회

숨 죽이고 지켜보던 경기버스노조 파업이 철회됐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칫 파업으로 이어졌을 경우 애꿎은 출퇴근길 시민들이 볼모가 돼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경기도내 52개 버스업체 노조가 소속된 경기도버스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 25일 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사측과의 최종 조정회의에서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 노사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협상 결렬 시 26일 첫차부터 예고됐던 전면 파업도 철회돼 전 노선이 정상 운행됐다. 앞서 버스노조는 지난 8월22일 사측과의 4차 교섭에서 임금 인상 폭을 놓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최종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어 이달 10일 경기지노위에 조정 신청을 내고 3일 뒤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7.4%의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하는 등 파업 절차를 진행해 왔다. 노조협의회에는 경기도 전체 버스 1만648대 가운데 89%인 9천516대가 소속돼 있다. 이 가운데는 서울과 도내 각 시·군을 오가는 준공영제 노선버스 2천400여대도 포함돼 있어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 시민들은 발길이 끊어져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결국 볼모가 될 뻔했던 시민들이 이번 협상의 최종 중재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스 파업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과 관련된 협상에서 항상 볼모는 시민들 몫이다. 양측의 입장은 모두 이해가 간다. 이제는 시스템 싸움이다. 매번 협상 결렬 시 파업에서 오는 피해가 오롯이 시민들에게 전가되는 메커니즘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도 그렇다.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뒤 양측에서 5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기습공격과 인질을 납치한 하마스도 문제지만 이를 통해 대대적인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의 화력에 일반인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전쟁의 피해자 중 상당수가 무고한 어린이들이라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24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측 누적 사망자는 5천791명이며 이 가운데 아동이 2천360명이라고 밝혔다. 매일 400명의 어린이가 죽거나 다친다는 것. 이번 전쟁 이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28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고 최소 160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에서도 어린이 3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가자지구에 인질로 잡혀 있다. 이스라엘, 하마스 모두 결국 승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양쪽 모두 일반 시민들을 볼모로, 그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도 모자라 사망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민이 볼모인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속히 이 굴레에서 모두 벗어나야 한다. 시민들은 볼모가 아닌 주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