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작품으로 재탄생된 폐플라스틱’…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無用之用>전

인간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물건들은 쓰임을 다하면 버려지게 되고 쓸모없는 것들은 어딘가에 남아 쌓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쓸모없다고 버리는 것들에 주목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이정걸, 정찬부 작가는 무심코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에 주목했다. 계속해서 언급되는 환경문제에 이끌려 유행처럼 버려진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작가는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게 바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메시지를 전한다. 오는 10월23일까지 시흥 소전미술관에서 열리는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無用之用> 전시에서 플라스틱으로 세상을 바라본 예술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정걸, 정찬부 두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선 평면이지만 입체적인 플라스틱 작품을 볼 수 있다. 크지 않은 소전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른 세상에 온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자주 쓰고 접하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낸 것들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정걸 작가는 우리가 쓰다 버린 물건을 박제하듯 작품으로 만들었다. 물병, 샴푸통, 헤드셋, 아이스크림 뚜껑, 칫솔 등 우리 일상에서 버려지기 전 유용하게 쓰였던 물건들이다. 이 작가는 버려진 것들을 한데 모아 캔버스 위에 석고로 찍어내 우리가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우리가 어떤 물건들을 버렸는지 등을 알게 한다. 이 작가는 작품을 통해 버려진 후 사라져가는 흔적에 생명의 불씨를 불어넣어 소멸의 흔적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발견해낸다. 정찬부 작가는 빨대를 이용해 자연을 재해석했다.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흰색, 검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빨대는 작은 조각으로 나눠져 다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 음료를 한 번 마실 때 이외엔 쓸모없는 빨대가 화분, 연잎, 물방울, 도마뱀 등 자연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최준석 학예사는 “지금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 새롭게 가공된 물질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게 되면서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 또한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쓸모없는 것들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가가 재해석한 쓸모없는 것들의 쓰임을 살펴보고 쓸모없음을 다시 쓸모 있게 바꾸는 지혜를 찾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전시리뷰] 경기도박물관, 실감 영상 ‘경기사대부 잔치로의 초대’ 등 선봬

4차 산업시대에 발맞춰 경기도박물관이 ‘디지털 놀이터’로 전환하고 있다. 도박물관은 스마트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개발해 실감 영상실인 ‘경기사대부 잔치로의 초대’와 전시 안내 앱인 ‘경기 천년 시간 수호대’를 공개했다. 사업비 12억원을 들여 1년여간 연구한 결과다. 도박물관은 지난 9일부터 실감 영상실을 개방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도박물관이 보유한 대표 유물, 보물 제930호 ‘이경석(李景奭)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에 담긴 내용을 재해석한 영상이 나온다. ‘백헌(白軒) 이경석’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현종으로부터 나이가 많은 공신 등에게 내리는 하사품인 궤장(의자와 지팡이)과 이를 기록한 ‘연회 도첩’을 받았다. 영상실의 벽처럼 보이던 몰입형 화면에서는 이경석에게 궤장을 하사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들어서는 궁중의 악사와 승정원 관리들, 가마꾼들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화려한 색감의 영상이 정면과 양측의 커다란 화면에 투사돼 입체감을 느끼게끔 하면서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든 북악산, 잔치를 하는 이경석의 집에 함께 있는 듯한 감동이 느껴진다. 도박물관은 3개의 독립된 카메라를 통해 상영관의 벽면을 에워싸듯 영상을 투사해 중앙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나타냈다. 특히 도박물관은 벽면과 어우러지는 바닥 면에 동작을 감지하는 인터렉션 장치를 설치했다. 바닥에 투사된 모란꽃 모양은 발걸음에 따라 피거나 지고, 별빛 등이 움직이면서 흥미로움을 더했다. 이와 함께 도박물관은 전시 안내 앱인 ‘경기 천년 시간 수호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의 전시 관람을 돕는 디지털 콘텐츠다.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태블릿으로 이 앱을 실행하면 박물관의 캐릭터 ‘뮤호’가 나오면서 증강현실(AR)의 세계로 들어간다. 태블릿으로 주먹도끼, 초조대장경 등 도박물관이 시대별로 선정한 10개의 유물을 찾는 것이 미션이다. 미션을 성공하면 유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퀴즈와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지루한 박물관’의 인식을 깨고, 어린이 관람객 등이 자연스럽게 역사와 유물에 흥미를 높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은 “이번에 공개한 영상과 앱은 ‘디지털 놀이터 박물관’으로 변화하는 첫 걸음”이라며 “경기도의 문화·역사를 누구나 알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해 젊은 박물관으로 변화하겠다”고 했다. 김보람기자

[전시리뷰] ‘예술적 도전의 한계 없는 즐거움’…백남준아트센터 ‘바로크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의 90번째 생일을 기념해 특별전 <바로크 백남준>이 개막했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대규모 미디어 설치 작업과 레이저 작업을 중심으로 한 이번 특별전을 내년 1월24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비디오와 레이저를 특정한 공간 안에 투사해 만들었던 ‘아날로그 몰입’에 중점을 뒀다. 전시는 백남준이 지난 1995년 독일 뮌스터의 작은 교회에서 연출한 ‘바로크 레이저’를 오마주한 작품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로 시작한다. 백남준은 당시 교회의 모든 창문을 닫아 내부를 어둡게 한 뒤 레이저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두 손으로 레이저 불빛을 모으다가 피아노 연주를 하듯 레이저에 손가락 끝을 맞추거나, 레이저로 담뱃불을 붙이고 담배연기를 만드는 등 레이저가 공간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특히 백남준은 이 작품에서 3차원 이미지를 영사하는 장치로서 레이저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센터는 이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거즈로 된 커튼을 드리우고 레이저 프로젝터로 머스 커닝햄이 춤추는 비디오를 RGB 세 가지 색으로 투사해 작품을 재현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작품은 ‘시스틴 성당’이다. 백남준은 지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 작품으로 독일관 대표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백남준은 건축공사에서 임시가설물로 쓰이는 비계를 쌓아올리고, 40여개의 프로젝터를 곳곳에 매달았다. 센터는 물고기 떼와 성조기 등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영상들의 위치를 계속 바꾸며 사방의 벽에 투사해 작품을 재현했다. 이는 마치 그림이 계속 바뀌는 벽화처럼 보였다. 쏟아지는 영상과 ‘윙~’ 하고 울리는 사운드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40여개의 프로젝터가 화가의 역할을 대신 하고 있었다. 센터는 작품 주위에 오래된 텔레비전과 모니터 등을 빙 둘러 마치 그 힘이 작품을 지키게끔 하려 했던 백남준의 전시 형태도 그대로 본떴다. 센터는 이 외에도 ‘비디오 샹들리에 No.1’, ‘촛불 하나’, ‘삼원소:원, 삼각형, 사각형’, ‘촛불 TV’ 등의 작품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이수영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의 레이저 작업, 대형 미디어 설치 작업 등을 생생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했다”며 “이를 통해 백남준이 다양한 예술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리고 관객들이 그를 새롭게 볼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김보람기자

[전시리뷰] ‘한국 채색화의 역할은?’…국립현대 과천관 '생의 찬미'

민화, 궁중회화, 종교화 등 한국의 채색화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며 교훈을 전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등 우리 곁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채색화는 수묵 감상화 위주의 미술사 서술이 주를 이루고 역할을 지닌 회화를 순수예술로 보지 않았던 탓에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소외됐었다. 이제는 한국의 채색화와 그의 역할을 조명하며 기울어진 한국미술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야심차게 선보이는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에서는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했다. <생의 찬미>라는 전시 명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성악가인 윤심덕이 인생의 허무함을 담아 불렀던 ‘사의 찬미’와 반대되는 의미로 지어졌다. 채색화는 새해 첫날, 돌잔치, 결혼식 등 삶의 여러 순간을 축하하는 의미로 쓰였기에 복을 불러일으키고 축복하는 채색화의 역할을 조명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전시는 전통회화의 역할을 ‘벽사’, ‘길상’, ‘교훈’, ‘감상’ 등 4가지 주제로 설정해 ▲마중 ▲문앞에서 : 벽사 ▲정원에서 : 십장생과 화조화 ▲오방색 ▲서가에서 :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 ▲담 너머, 저 산 : 산수화 등 6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왕신연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채색화의 역할에 방점을 두고 기획한 전시며 ‘이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이기도 하다”며 “역할 자체를 들여다 봄으로써 한국화의 기능을 확대하고 우리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기획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 ‘마중’에선 가장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인 처용을 주제로 한 스톤 존스턴 감독의 영상 ‘승화’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립무용단이 만든 4명의 처용은 춤으로 역신(疫神)과 인간의 폭력성을 정화시킨다. 춤이 시작되면 공간 가운데 있는 관람객이 중심을 상징하는 노란색 처용이 돼 벽사에 동참할 수 있다. ‘문앞에서 : 벽사’에선 신상호 도예가의 ‘토템상’을 볼 수 있다. 길상과 벽사의 의미가 담긴 장승, 솟대 등 한국의 전통 조형물과 아프리카의 원시적이고 과감한 아름다움을 결부한 작품이다. 또한 ‘오방신도’, ‘호작도’, ‘수기맹호도’ 등 전통적인 도상들이 한애규의 ‘기둥들’, 오윤의 ‘칼노래’ 등과 합을 이룬다.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정원에서 : 십장생과 화조화’다. 전통적인 길상화인 십장생도와 모란도 등 19세기 말 작품부터 길상의 의미와 표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최근의 회화까지 폭넓게 감상할 수 있다. 접시꽃, 모란 등이 화려한 색과 어우러져 한국 채색화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이외에도 오방색을 소재로 한 김신일의 ‘오색사이’, 거대한 4마리의 호랑이가 있는 이정교의 ‘사·방·호’, 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문자도와 책가도 등 격변의 시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록화를 경험하며 채색화의 변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오는 9월25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송규태, 이종상 등 총 6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윤범모 관장은 “단청, 불화, 민화 등으로 꾸준히 채색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채색화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미술사에서 채색화가 다뤄지지 않은 것을 반성하고 우리 민족의 회화 역사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전통의 채색화를 현대적으로 톺아보고 미래를 논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점에서 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관람객 박소진씨(42)는 "채색의 전통이 특정한 분야, 민화 등 다양한 형태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데 한국 채색화의 역사와 이야기를 마치 역사책을 읽는 듯 알게 됐다. 전시의 좋은 기획과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한국 채색화의 다양한 쓰임을 논하는 일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은진기자

[공연 리뷰] 용기내면, 상처는 봉합된다...연극 '해피버스데이'

모든 딸의 이야기이자 모든 엄마의 이야기인 연극 <해피버스데이>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수원시립공연단이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선보인 이 공연은 일본의 원로 작가 아오키 가즈오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극화한 작품이다. <해피버스데이>가 지금 이 시점에 관객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타인과의 교류는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가까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해 크고 작은 마찰을 겪었던 시기를 지나 왔다. 엔데믹으로 향하는 대면 전환기를 통과하는 지금, 연극<해피버스데이>는 모두에게 숨겨온 비밀을 용기 내서 직면하는 방법, 오랜 시간 쌓여 왔던 갈등의 벽이 허물어지는 과정, 대면과 접촉의 필요성에 관해 말한다. 이 공연만큼 이 시기에 관객과 만나기에 적절한 연극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해피버스데이>는 엄마 성희로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존재를 부정당한 딸 유아의 고군분투지만, 한편으로는 엄마(할머니)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성희의 고백록이기도 하다. 엄마는 딸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유아도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관객은 그들의 내면이 변화되는 과정을 같은 무대 위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교차 연출로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성희가 상담실에서, 유아가 엄마의 예전 방에서 각자 내뱉는 속마음이 교차되면서 관객의 마음을 자극한다. 음악 역시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면서 이들의 상처가 극복돼 가는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 마침내 성희는 딸 유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딸 유아 역시 엄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할머니 역시 응어리진 마음을 밖으로 꺼내서 진솔한 고백을 늘어놓는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만난 윤경란씨(60)는 입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윤 씨는 “할머니가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잘못을 유아에게 고백하는 모습을 볼 때 울컥했다”면서 “더 늦기 전에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유아가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이처럼 <해피 버스데이>는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아픔의 굴레를 끊어내려고 한다. 극의 초반부에 유아가 상담 선생님께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이다. 유아의 질문이 후반부에 이르러 ‘내가 먼저 엄마를 사랑해야겠다’는 행동으로 바뀔 때,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던 상처가 봉합될 수 있겠다는 자그마한 희망이 생겨난다. 송상호기자

[영화리뷰] '브로커', 햇살과 그늘을 함께 잡는 고레에다의 시선

배우 송강호에게 제7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지난 8일 개봉했다. <어느 가족>(2018)으로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의 거장과 한국 영화계의 만남으로 개봉 전부터 전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온 작품이다. <브로커>에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한 아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담겼다. <브로커>는 관객에게 난감한 질문을 펼쳐놓는다. 엄마가 아이를 버리는 이유에 대해 관객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의 행위도 입양 알선, 아동 유괴와 인신매매로 얽혀 있으며, 심지어 이들을 쫓는 형사들마저도 함정수사와 범죄 유도가 뒤섞인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브로커>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생명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쟁점을 다루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늘 사회의 주변부를 맴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왔다. <브로커>도 이 같은 소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를 민감하게 끄집어낸 뒤 어려움에 처한 인물들 각자의 사연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이때 영화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여정을 함께 하는 이들이 뜻하지 않게 서로를 가족처럼 받아들이는 순간들도 놓치지 않는다. <브로커>는 한없이 어두운 길을 택하지도 않고, 애써 밝아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감정 묘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소영(이지은)과 상현이 기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선 햇살이 비치는 곳과 그늘이 드리우는 곳을 동시에 잡아내려고 하는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도 엿볼 수 있다. <브로커>에서도 역시 그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다. 사람 사이의 갈등을 바라볼 때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안 된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은 늘 빛과 어둠이 혼재하는 곳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송상호기자

[공연 리뷰] 백마디 말보다 빛난 노부부의 사랑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현시대를 살아가는 ‘애증의 부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공감을 느낄 대사다. 서로가 사랑하는지, 소중한 가족인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 평생을 모르고 살지만 ‘내 남편이니까’, ‘내 아내이니까’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마음을 드러낸다.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한 노부부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눈가를 적시며 공감을 산 연극이 3일간의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에서 진행된 수원시립공연단의 가족극 <바람, 다녀가셔요>다. 공연은 시골 장터를 배경으로 각자의 진심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젊은 시절 자신을 구하다 불구가 된 ‘김씨’를 마음에 품고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온 ‘순자(손숙)’과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 번 해준 적 없는 남편 ‘박씨(이순재)’가 ‘사는 방식’을 보여준다. <바람, 다녀가셔요>의 순자는 ‘가정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의 모습을 박씨는 ‘무뚝뚝하고 괴팍한 남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노부부지만 한 번도 자신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말한 적이 없다. 그저 짜증 섞인 걱정과 무심한 듯 챙겨주는 말이 전부다. 특히 순자는 첫사랑인 김씨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알고 있는 박씨는 김씨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연 속 둘은 평생을 싸워온 사람들처럼 짧은 대화를 하는 것이 전부다. 더욱이 과거에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결혼하는 부부들이 많았다. 이혼도 흔치 않아 의무적으로 살곤 했다. 그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참고 사는 것’이다. 이는 순자가 남편과 못살겠다며 집을 뛰쳐나온 딸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 착해서 그런 거야, 너가 조금만 더 참으면 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더 참으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막연한 심정을 표현했다. 또한, 순자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박씨의 걱정뿐이다. “우리 영감 바지만 널고 갈게요, 닭 사료 주는 것을 잊었어요”라고 말하며 쉽게 떠나지 못하는 순자의 모습에서 가족을 생각하는 엄마, 아내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바람, 다녀가셔요>는 특별한 명대사, 명장면이 없다. 그저 묵묵히 관객 깊은 곳에 있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진심을 느끼게 한다. ‘애증의 부부’의 정 많은 말과 행동을 통해 큰 울림을 안겨준다. 남편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는 박진수씨(57)는 “공연 내내 울컥하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공연 속 부부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 부부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배우들의 대사 하나 하나가 마음에 와닿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전시 리뷰] 선조 지혜로 살펴 본 기후위기…실학박물관 '인류세, 기후 변화의 시대'展

지금은 더위가 문제지만, 예전엔 추위가 문제였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따뜻한 미래’를 이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그리고 크고 작은 기후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왔을까.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추구하며 현재의 이상 기후를 짚어보는 전시 <인류세, 기후 변화의 시대>가 오는 9월12일까지 남양주 실학박물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위험에 빠진 지구를 살리기 위해선 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주장했던 자연친화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메시지에서 시작됐다. 세계 최초의 강수량 측정기인 측우기, 대기근(大飢饉) 속 춥고 배고픈 백성을 구제하려던 대동법 등을 통해 오늘과 내일을 진단해보자는 취지다. 전시는 ▲1부 ‘하늘을 살피다’ ▲2부 ‘기후변화에 대처하다’ ▲3부 ‘기후온난화와 기후행동’ 등으로 구성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다양한 기후 변화를 짧은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7~18세기 소빙기가 조선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서술돼 있다. 추운 날씨를 이겨내려 온돌의 설치가 늘면서 땔감의 수요가 증가했고, 이것이 다시 산림의 황폐화를 가져왔다는 등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또 지구온난화 시대에 들면서 유명해진 기후변화 그래프 ‘하키스틱 커브’를 전시장 끝에 크게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끝이 더 오를지 내릴지’ 생각하게 한다. 무형(無形)의 실학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의 기후 위기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이고 특별한 전시였다. 무엇보다 전시장 내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와 ‘송시열 초구’가 인상깊다. 국보로 지정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의 경우, 조선후기 때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 측우기다. 경기관찰사가 정조에게 보고했던 강우량 기록 등을 통해 국가 주도로 기상관측체계가 운영됨을 보여주고, 재해를 대비하며 농업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어 송시열 초구의 경우, 왕이 하사한 의복이자 19세기 이전 털옷으로 유일하게 남은 자료다. 실학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복식사와 함께 옷을 재현해냈다. 추위에서 살아가기 위해 담비털로 만들어진 저고리를 입은 시점으로 점쳐진다. 이 밖에도 날씨 변화에 따라 전염병이 번져나갔을 때의 이야기, 가뭄·홍수 등 재해로 농경 문화가 변화한 이야기 등을 배워볼 수 있다. 정성희 실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로 우리 선조들이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하려 했는지 살펴보고, 인류가 맞닥뜨린 기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관람객들과 고민해 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연우기자

[전시리뷰] 사상 첫 ‘친일’ 전시…경기도박물관 '항일과 친일, 백년 전 그들의 선택' 개막

근대 이후 한국은 수십년간 ‘식민지’라는 암울한 터널을 지났다. 그런데 이 터널이 마냥 캄캄하지만은 않았던, 오히려 대대손손 부(富)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던 이들이 있다.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이다. 국내에서 이완용·송병준·홍사익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전시가 시작됐다. 지난 4월27일부터 오는 9월12일까지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는 <항일과 친일: 백년 전 그들의 선택>이다. 그간 역사·독립운동 기관에서 친일을 일부 코너로 담아 소개한 전시는 있었지만 전시의 대표 주제로 선정한 건 이번이 최초다. 경기도박물관은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소위 ‘이완용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얻는 게 뭐냐’는 고민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변 만류도 컸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친일파들의 행적을 짚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선택이 얼마나 숭고했는지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도박물관은 전시를 구성하게 됐다. 아울러 이번 전시는 경기도의회가 지난해 5월20일 제정한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에 따라 기획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경기문화재연구원·지역문화교육본부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전시는 ▲제1부 ‘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 ▲제2부 ‘항쟁과 학살, 그날 그곳을 기리다’ ▲제3부 ‘친일과 일제잔재’ ▲제4부 ‘유물로 만나는 경기도의 독립운동가’로 구성됐다.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서화, 판화, 사진, 영상물 등 200여 점을 볼 수 있다. <임오군란 다색판화>(35x71㎝)에선 일본군이 위풍당당하게 지시하는 듯한 모습이, <안성 마츠자키 대위 전투 그림>(35x900㎝)에선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군이 비겁하게 도망가는 모습이 보여 일본의 역사 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만세운동(총 367회)을 전개하며 격렬하게 싸워온 만큼 그 모습 역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대한 유화 <제암리 뒷동산 만세소리>(200x255㎝)는 물론 청사 조성환이 쓴 가방(17x25x8.3㎝), 류근 선생의 건국공로 훈장증(38.2x51㎝) 등이 전시됐다. 경기지역의 항일운동유적 120곳의 분포 지도 및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전국 4천857명 중 경기도 약 320명)를 한 눈에 볼 수 있기도 하다. 메인은 제3부다. 경기도의 주요 항일독립운동가와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못 박으며 을사조약·정미조약·병합조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 명단’도 내걸었다. 에필로그는 김구의 ‘나의 소원’(1947)이다.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은 “유사 이래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애국심을 가질만한 시기가 있었을까 싶다. 김구 선생의 희망대로 ‘문화 강국’의 길에 들어서면서 지금 서있는 우리가 100년 전 그때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메시지를 던진다”며 “그간 우리나라에 ‘친일’을 다룬 전시는 없었는데 이번 전시가 일종의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으로의 역사적 방향도 짚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연우기자

[전시리뷰] 수원 111CM '특색 : 타인의 영역' 展

세상에는 수천, 수만 가지의 색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색을 일상에서 마주한다. 같은 색이어도 누가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색의 표현이 달라진다. 형형색색 봄꽃이 만개한 오늘날 지금 여기 ‘색의 특성’으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지난 12일 수원 111CM에서 포문을 연 <특색 : 타인의 영역>이다. 오는 6월19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김원화·김양희·조윤진·싸비노 등 4명의 작가가 참여해 영상, 조각, 회화 등 총 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특색 : 타인의 영역> 관람 포인트는 색의 특색이다. 작가들은 색을 통해 어떠한 대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형태와 성질과는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관람객의 시각적 자극에서 오는 감성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색을 본질에 접근하고 색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을 채도 높은 색으로 표현한 싸비노 작가의 작품이다. 싸비노 작가는 우연히 얻는 색감을 이용해 건물, 카세트테이프, 연필 등 주변이나 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낯익은 대상을 색다른 모습으로 담아냈다. 특히, 그는 파랑-빨강, 주황-검정 등 보색대비가 되는 색을 사용해 사물을 명료화했으며 사물의 형태 역시 각진 부분을 생략해 단순화시켰다. 다양한 물성과 질감은 담은 ‘돌출 회화’를 작업하는 김양희 작가는 우레탄 폼, 물감 등을 이용해 촉각적 경험을 극대화했다. 김양희 작가는 ‘자주빛 숲’, ‘핑크빛 숲 No.3’, ‘푸른 협곡’ 등 작품으로 숲, 바다 등 다양한 자연에 주목했으며 분홍, 자주, 파랑, 노랑 등 비슷한 계역의 색을 조합해 각각의 질감과 색을 구분했다. 관람객들은 각각의 색을 인지하며 시각적인 훈련을 할 수도 있다. 김양희 작가 작품 반대편엔 낯선 세상을 탐색한 김원화 작가의 작품 ‘표류-발견-이야기 레이어드룸’이 펼쳐져 있다. 김원화 작가는 가상공간을 만들어 내 인공지능이 가상공간을 탐색하게 한다. 이어 인공지능이 가상공간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들에 색과 관련한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붙인 소재로 문장을 생성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전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조윤진 작가의 작품은 화려한 색감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조윤진 작가는 열두 가지 테이프를 조합해 수백 가지의 색을 만들고 인물과 동물의 다양한 표정을 그려냈다. 조 작가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담아냈지만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장을 찾은 김미현씨(35)는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표현으로 보는 내내 작품에 빠져들게 됐다"며 "색다르면서도 독특한 작품들을 보며 그동안 가졌던 여러 고정관념도 깨진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원문화재단 111CM 관계자는 “전시는 ‘특색(特色)’이라는 단어로 대상이 갖추고 있는 보통의 것과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관람객들은 작가들의 각기 다른 영역에서 특색 있는 작품과 관람객의 예술적 소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리뷰] "고립된 예술인의 고민"…'땅은 잠든 적 없이展'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혼자인 생활을 즐긴 이들이 있다. 혼자인 생활은 사회와 단절을 만들기도 했지만, 예술적 역량을 더 강화시키기도 했다. 고립된 레지던시와 단절된 사회 안에서 예술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전시가 열렸다. 지난 4일까지 아트스페이스 광교에서 진행된 수원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 입주작가 기획전 땅은 잠든 적 없이다. 이번 기획전을 시작으로 오는 13일부터 9월까지 푸른지대창작샘터에서 릴레이 개인전을 이어나간다. 수원문화재단은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해 지역예술인들이 활발한 교류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수원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를 마련했다. 이곳에 입주한 1기 작가들은 조용해 보이지만 잠들지 않고 계속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땅의 활동을 예술인들에 빗대었다. 1기 입주 선정작가는 고창선, 곽지수, 레레, 박영학, 박지현, 박형진, 박혜원, 봄로야, 송영준, 아웃스톨러, 이지현, 정진, 채효진, 한유진 등 14팀의 작가들이며 회화, 설치, 영상, 사진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크릴 페인팅, 도자, 숯, 쇼핑백 등 이들이 작품에 활용한 재료는 제각각이며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지만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은 조화를 이뤄나갔다. 박영학 작가는 같은 한국화를 하더라도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에 따라 다른 한국화 작품이 나온다며 개성 넘치는 예술인들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루는 주제 역시 다양하다. 일회성으로 소모되고 쉽게 교체되는 약자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작품부터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인 이동을 조명하기도 하며 공간의 한계를 넘어 소통이 가능한 것을 실험하기도 하는 등 삶과 사회적인 이슈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들의 작업은 코로나19로 무기력함이 계속되는 가운데 타인 간의 관계, 정체성과 공동체 등 동시대 주제를 탐구하고 불안과 무기력, 우울을 호소하며 팬데믹 시대를 차분히 바라보고 관람객들에게 다가올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전시관을 찾은 윤선희씨(29)는 "제각각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예술작품들이 작가들만의 개성이 넘치게 표현돼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게 흥미로웠다"면서 "무의식에 자리잡아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떤 것들로 약자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는지,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공연리뷰]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꺼낸, 수원시립공연단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수원시립공연단 정기공연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공연 장면 학교폭력, 동성애, 노부모 부양.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지만 선뜻 나서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이 쏟아져나온다. 단순히 이들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왜 말할 수 없었는지, 말하지 못했던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하며 자연스럽게 위로를 준다.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 올랐던 수원시립공연단 제15회 정기공연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이다. 공연은 도시개발로 폐관을 앞둔 영화관 레인보우 씨네마를 배경으로 한다. 폐관을 앞뒀지만 등장인물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영화관을 나가 무엇을 할지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무덤덤하게 영화관 정리에 나선다. 폐관을 계기로 영화관 주인 조한수와 초대 주인 조병식, 한수의 아들 조원우 3대가 모이고 폐관을 도우러 온 태호, 희원, 수영, 정숙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학교폭력으로 가족을 잃은 한수, 병식, 원우와 서로 사귀고 있지만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겨야 하는 태호와 원우, 치매를 앓는 부모를 홀로 모시며 힘들어하는 정숙,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무서워 인형 탈을 쓰고 지내는 수영 등 각자가 가진 고민을 서서히 공유한다. 서로의 아픔을 말하지만 활기찬 분위기가 계속된다. 단순히 폐관을 앞둔 동네의 작은 영화관 속의 이야기를 다루는 줄 알았던 공연은 한수의 죽은 둘째 아들 원식의 언급으로 분위기가 전환된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원식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해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 한수, 남자를 좋아하는 자신으로 동생의 아픔이 왜곡될까 봐, 또 자신이 외면당할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산 원우가 대립하면서 이들이 그동안 묻혀둔 속마음을 쏟아낸다. 등장인물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동안 관객들 역시 외면당하거나 외면했던 문제에 공감하며 같이 눈물을 보였다. 20대의 젊은층부터 50대의 눈물을 훔치는 한 남성까지. 지난 3월 수원시립공연단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후 첫 정기공연을 선보인 구태환 예술감독은 정의신 작가와 관객에게 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사했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의 대사와 몸짓은 거창하지 않다. 대단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뜻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무거울 수 있는 것들을 등장인물들만의 농담으로 풀어나가 아픔을 위로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관객들의 반응은다양했다. 모처럼만에 위로 받는 인생극을 한 편 봤다는 반응부터 작지만 따뜻한 이야기로 가슴이 뭉클하다는 반응이었다. 20대 자녀와 함께 연극을 관람한 이지현씨(56)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잔잔한 감동이 남아 특별한 시간이었다"면서 "지쳐있는 요즘, 이런 따뜻한 공연을 만나게 돼 좋았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공연 리뷰] 우리가 몰랐던 ‘꼰대’ 이야기…수원SK아트리움 ‘행궁동 사람들’

보다가 울컥하더군요, 50대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꼰대, 나 때는~ 20, 30대가 50대를 생각하는 이미지다. 조언과 충고를 일삼으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꼰대들에게도 고충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뒤처지는 것 같고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지만 소통의 방식이 변해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꼰대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 있다. 지난 11일부터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 오른 창작뮤지컬 행궁동 사람들이다. 행궁동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살았지만 ~리단길이 붙어 카페거리로 변한 행궁동의 옛 모습을 보여주며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행궁동의 터줏대감 정씨의 오래된 세탁소 인근에 프랜차이즈 세탁소 크림토피아가 문을 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세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정씨는 젊은 사장인 홍재가 돈만 벌어서 혼자 잘 살려고 한다, 애송이라고 생각하며 견제를 하게 된다. 홍재는 정씨를 사사건건 참견 부리는 꼰대라고 생각하며 대화조차 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대한다. 공연은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소통의 방식을 깨닫게 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오해를 풀어준다. 동네사람들이 서로 돕는 모습을 본 홍재는 따뜻한 정을 느끼고 꼰대라고 외면하던 정씨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정씨 역시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며 젊은 세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뮤지컬 넘버 역시 이야기를 더 몰입하게 한다. 행궁동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넘버와 젊은 세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으며 홀로 딸을 키우면서 희생한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공연을 본 50대 남성 관객은 공연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넘버를 듣고 울컥해 눈물이 나올뻔 했다며 그동안 말못했던 것들을 위로받고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김은진기자

[공연리뷰] 공연으로 다시 태어난 교과서 문학, 수원시립공연단 '북어대가리'

글자로만 읽히던 문학 작품이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되살아났다. 지난 21일 오후 7시30분께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열린 수원시립공연단의 기획공연 북어대가리다. 이번 공연은 수원시립공연단이 수원교육지원청과 함께 한 청소년 영상예술 교육사업으로 교과서로만 읽던 희곡 작품을 영상화해 청소년들의 학습효과를 극대화 시키려고 마련됐다. 공연은 영상으로 제작돼 2학기가 시작하면 수원시 내 여러 학교로 전달, 학생들의 교육자료로 쓰일 예정이다. 이강백 작가의 북어대가리는 이정민 수원시립공연단 극단 상임연출의 손에서 다시 탄생했다. 이 상임연출은 이번 공연에서는 탐색과 발견, 떠남과 머묾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대조적인 관계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 북어대가리는 창고 속에서 발생하는 두 주인공의 갈등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꼭 옳은 것인가?, 인간의 가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미 여러 번 연극으로 각색돼 무대에 오른 북어대가리는 관객들과 만나 왔다. 많이 알려진 만큼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코로나19로 공연장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을 위한 교육과 문화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4명의 배우는 기존에 어떤 얼굴과 성격을 가졌는지 모를 정도로 기임, 자앙, 다링, 트럭운전수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배우들은 작은 무대를 창고로 만들었고 2시간 동안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특히 공연은 학생들의 문학 작품이라는 특성을 그대로 녹여냈다. 배우들은 학생의 관점에서 쉽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담담하지만 강렬한 배우들의 연기로 따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지 않아도 북어대가리가 가진 의미를 쉽게 해석할 수 있었다. 글자로만 읽히고 문장 하나하나씩 분석해야 하는 것과는 다르게 배우의 움직임과 감정선이 변화하는 모습, 표정, 무대의 구성, 음악 등을 통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공연은 뒤통수를 한 대 친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 머리만 덜렁 남은 북어와 같이 혼자 남겨진 자앙을 통해 여전히 소모품처럼 소비되는 현대인들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삶은 무엇인지, 그저 성실하면 옳은 삶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답은 명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관객들에게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한다. 그저 연극으로 각색된 문학 작품이 아닌, 현대인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두 시간이었다. 김은진기자

[공연 리뷰]국악과 전자 음악의 만남... 색다름 선물

낯선 음악과 낯선 음악의 합. 지난 10일 오후 4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시즌 2021 공연 시나위 일렉트로니카는 완벽하게 서로 다른 음악이 만나 색다른 익숙함을 선사했다. 조금은 이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의 합은 보기 드물 뿐만 아니라 아직 낯설다. 영상과 조명 또한 아울렀다. 공연은 지루하고 이상할 것이라는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 1장부터 5장까지 진행될 동안 대극장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의 음악으로 가득 채워졌다. 막이 오르고 하임(haihm)과의 아미고가 시작됐다. 웅장한 전자 음악이 진동하고 대금과 소금, 아쟁과 해금 등이 전자 음악에 맞춰 연주하기 시작했다. 다른 장르의 음악이지만 합을 맞추어 가며 서로 음악을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아냈다. 두 번째 아킴보(Akimbo)의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몸을 움직이는 등 더 여유롭고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전자 드럼 소리와 북과 장구 등의 타악기가 어울려 빠른 박자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해금과 대금의 청량한 소리와 거문고와 가야금이 중심을 잡아 한 층 더 경쾌하고 밝은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여노(YeoNo)와 함께 한 화에서는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붉은 레이저 조명과 함께 전반적으로 어둡지만 높은 소리를 내며 우리가 가진 화와 한, 대화를 표현해냈다. 낮은 일렉트로닉 음악과 함께 피리, 아쟁 등 시나위만의 소리가 쌓여가면서 화에서 한, 한에서 대화로 화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120여분간의 연주는 합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음악이 하나가 돼 완벽한 합을 보였다. 1장의 시작에선 차츰 시나위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2ㆍ3장에서는 관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4ㆍ5장에선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완벽하게 표현돼 하나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연은 이질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두 장르의 음악이 익숙해졌고 곧 색다름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국악과 일렉트로닉 각각이 가진 본래의 특성을 끝까지 유지했다. 국악에 맞춰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것도 아니었으며 일렉트로닉 음악에 맞게 국악을 끼워 맞춘 것도 아니었다. 서로 음악에 맞추며 현대 악기와 우리 전통의 악기가 만들어낸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만의 음악이었다. 김은진기자

[전시 리뷰] 유머는 진중함 보다 강하다, 백남준아트센터 '웃어'

예술은 인간의 모든 창조적인 행위를 일컫는다.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머리를 물감 통에 집어넣어 흰 종이에 그려내는 것도 모두 예술이다. 고급 예술과 사회 통념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연대를 지향했던 1960~70년대 전위예술 플럭서스는 예술을 일상으로 확장하고 변화시켰다. 백남준아트센터가 지난 1일 개막한 2021 백남준전 웃어는 플럭서스를 통해 백남준을 바라본다. 재치와 유머, 그 안의 해학은 플럭서스 운동과 백남준 세계의 핵심이다. 백남준과 플럭서스 작가들의 작품과 아카이브 200여점을 통해 플럭서스의 당시 활동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전시의 출발점은 장피에르에게다. 플럭서스를 적극 후원했던 장피에르 빌헬름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평범한 일상의 행동을 통해 장피에르를 추모한 백남준의 사진이 걸렸다. 걷고, 뛰고, 행인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기고 웃는 일상의 행동으로 예술과 삶의 경계를 흐리고 예술매체에 질문을 던진 장피에르를 추모한다. 고스기 다케히사의 사우스 2번 (백남준에게)(1964) 영상은 일상 행위의 원래 목적을 상실하고 새로운 예술적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을 탐구하게 한다. 작품은 백남준의 이름자 중 하나인 남(南)과 영어단어를 교차해 만든 헌정곡이다. 15분간 사우스 발음을 최대한 늘려 여기서 파생하는 새로운 예술적 의미를 부여한다. 최초의 휴대용 TV(1975), 컬러의자, 흑백의자(1984), 냄비(한국 조리법)(1985) 등 일상성을 구현한 백남준의 작품도 전시됐다. 전시는 관객에게 보면 볼수록 색다른 재미와 의미를 부여한다. 작품을 제작하려고 신체를 매치로 활용하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선문답과 같은 지시문으로 질문을 던진 백남준의 유머를 깨알같이 발견할 수 있다. 제도, 규범, 통념을 받아치는 백남준식 웃음의 반격을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대입해 보면 좋지 않을까. 유머는 때론 진중함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리투아니아 출신인 조지 머추너스의 작품을 대여하기 위해 요나스 메카스 비주얼아트센터, 빌뉴스 시, 리투아니아 문화원, 리투아니아 대사관과 2018년부터 협력해 대규모 플럭서스 컬렉션을 선보였다. 박상애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실장은 백남준은 짜인 틀이나 규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움을 도전하고 실험했다며 백남준식 웃음의 반격을 일상에 비춰보는 재미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일까지. 정자연기자

[공연리뷰] 수원의 독립운동가 김향화를 조명, 경기아트센터 창작가무극 [향화]

일제강점기, 잊힌 독립운동가가 있다. 수원에서 32명의 기생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 열사다. 기생이라는 이유로 김향화 열사에 대한 자료와 기록이 충분하지 않으며 32명 기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많지 않다. 삼일절을 앞두고 경기아트센터가 서울예술단과 함께 19일부터 21일까지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 열사의 삶을 되살렸다. 창작 뮤지컬 향화다. 적막이 흐르는 무대 위, 매일신보 퇴역 기자(강상준)는 오랜 수소문 끝에 만나고 싶던 그녀를 만난다. 기자는 그녀의 오래전 소식을 묻고 여러 번 거절하던 그녀가 입을 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순이(송문선ㆍ김나니)는 일제강점기, 아버지 김인영이 앓아눕게 되자 곤궁한 집안 사정으로 15세 어린 나이에 수원까지 시집을 간다. 이 장면에서 #5. 내 나이 열다섯을 통해 어린 나이 집안 사정으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어린 순이를 표현했다. 배우의 애절한 목소리와 조명을 거의 쓰지 않은 어두운 무대로 연출했으며 어린 순이와 혼례복을 입은 순이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 서글픈 그녀의 마음을 잘 나타냈다. 3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수원으로 야반도주하자 순이는 남편과 이혼하고 가족의 부양을 위해 인력거를 몰던 나승현(신상언)의 도움으로 수원 권번에 들어간다. 순이는 고된 수련으로 향화(香花)라는 이름으로 수원 일패기생으로 거듭나며 #14. 내 이름은 향화를 부르기 시작한다. 북과 장구를 연주하고 검무로 수련한 향화가 마침내 수원 일패 기생으로 다시 태어난 장면을 보여준다. 기생인 만큼 진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배우들이 일렬로 북을 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장구춤과 검무 역시 화려하지만 절제된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향화는 32명의 기생과 함께 1919년 3월29일 수원경찰서와 화성 봉수당에서 만세를 부르다 체포된다. 공연은 #25. 우리의 이름은 그리고 너의 이름은을 부르며 33명의 기생 이름과 얼굴을 담은 조선미인도감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이번 공연은 모처럼만에 열린 뮤지컬 공연으로 코로나19 속 침체된 공연예술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뮤지컬의 넘버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 대신 큰 박수를 보냈다. 경기아트센터는 철저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50% 좌석 허용인 현재의 방역 지침보다 더 강화해 관객석의 30%만 열었다. 본격적인 시즌제 공연을 앞두고 열린 이번 무대는 코로나19 속 도민들이 안전하게 다양한 문화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주인공 향화역을 맡은 김나니 소리꾼은 곧 봄이 와서 꽃이 필 것이다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모두가 조금만 더 희망을 가지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전시리뷰] 수원시립미술관 [□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 낯섦과 친숙함의 경계

사물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사용된다. 시대에 따라 편리와 필요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며 인간의 삶과 연결돼 다양한 흔적을 담고 있다. 오는 6월20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은 이러한 사물과 인간의 다양한 관계성에 주목한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2021년 첫 기획전으로 선보인다. 이번 기획전은 11팀의 작가들이 참여해 회화, 사진, 설치, 영상 등 총 62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 제목엔 특정한 주어 대신 빈칸을 넣어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자신만의 정의를 담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전시는 미술관 1,2,4,5전시실에서 2가지 주제로 나눠 진행된다. 1부 익숙하지만 낯선은 사물이 원래 쓰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능과 의미를 지닌 형태로 재구성된 사물에 집중한다. 1부에서 오민 작가는 5분 동안 퍼포머가 실, 냄비, 테이프, 쇠막대 등을 불안정하게 세우는 영상을 선보였다. 제각각 다른 모양의 물건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이고 정리되는 것으로 자신의 불안감과 압박을 표현했다. 또 12개의 스피커로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작가의 불안정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는 자신들이 자주 쓰는 소품을 이용해 쌓고 붙여 알 수 없는 형태의 사물을 만들어냈다. 작품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아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던진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 2부인 낯설지만 익숙한이 펼쳐진다. 2부는 사물의 본래 기능을 지우고 다시 태어난 모습에 주목했다. 최제헌 작가의 여기에 없는 것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전선관과 페인트로 초록색의 낯선 사물을 표현했다. 최고은 작가의 머터리어 풀은 냉장고, 스탠딩 에어컨 등을 반으로 나눠 알 수 없는 형태의 사물을 만들어냈다. 또 다른 전시실과는 다르게 흰색 조명을 사용해 우리가 아는 냉장고와 에어컨이 있던 공간을 느끼게 한다. 이 사물의 본래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일상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은진기자

[공연 리뷰] 경기필과 마시모 자네티가 전한 앤솔러지 IV "음악이어야 한다"

6개월여 만의 만남이었다. 연주자들은 환한 미소로 관객은 박수로 서로를 맞이했다. 기약없는 만남을 고대했던 이들은 무대에 불이 켜지자 오래도록 응시했다. 지난 18일 오후 5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앤솔러지 시리즈 IV - 모차르트&베토벤이 무대에 올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년 간 관객에 닫혔던 대극장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 속 진행하는 첫 대면 공연인 만큼 철저한 사전 방역 작업도 필요했다. 티켓은 대극장 1천514석 중 30%인 438장만 열었다. 객석은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해 관객들이 지그재그로 앉아 겹치는 접점을 최소화했다. 관객들은 입구에서 발열체크 등을 하고 마스크를 낀 채 공연을 지켜봤다. 관객의 동선을 최소화하고자 공연 중간 인터미션도 없앴다. 긴 기다림이었던 만큼 음악은 더 빛났고 묵직한 메시지를 줬다. 앤솔러지 시리즈 네 번째 무대는 70명의 합창단이 출연하는 말러 교향곡 3번을 연주할 예정이었으나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트라우스 등 프로그램을 소규모 편성으로 변경했다. 소규모 편성에도 무대 위 음악의 울림은 대극장을 가득 메웠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생을 마감하기 전 각각 완성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과 베토벤 현악 사중주 16번(오케스트라 버전)은 두 음악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객석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이진상의연주는 음표가 날개를 단 듯 명쾌했다. 관객이 지그재그로 앉고 사람 대신 음악이 공간을 채우다 보니 시야도 넓어졌다. 공연장이 북적이지 않은 탓에 연주자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여유롭게제대로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공연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무대는 관객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고양에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이수민씨(43)는 코로나 사태 이후 공연장을 찾은 것이 처음인데, 멋진 음악을 들은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공간에 다시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좋고, 감격스럽다면서 공간을 넉넉하게 쓰니 감염 걱정 없이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우종 경기아트센터 사장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관객 비중을 안정적으로 늘려 하반기 시즌제 공연 때는 50%의 관객이 공연장에 들어오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인 베토벤 현악 사중주 16번 제4악장에는 Muss es sein?(그래야만 하는가?) Es mu sein.(그래야만 한다.) 라고 적혀있다. 마시모 자네티는 앞서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나에게 이 질문은 음악이어야 하는가? 그렇다, 음악이어야 한다 이다. 음악은 삶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음악이 지속할 수 있게, 삶이 지속할 수 있게 공연장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 날이 오길 기대한다. 정자연기자

[공연 리뷰] 원일 예술감독 첫 무대… 경기도립국악단 기획공연 ‘반향’

원일, 그리고 경기도립국악단만의 음악이었다. 지난 6일 저녁 8시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경기도립국악단 기획공연 반향에는 다른 형용사를 붙이는 게 의미가 없는 듯하다. 보통이 아닐 거란 예상은 했다. 국악에선 보기 드문 콘서트 메디테이션을 접목하고 관객 참여형 콘서트로 전례 없는 형식을 예고했다. 영상과 무용도 아우른다 했다. 공연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 장르의 파괴이자 독창적인 무대였다. 1장부터 9장까지 음악이 끝나는 90여 분 동안 공연장의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삶과 죽음, 공포와 침묵, 흑과 백, 동양과 서양, 이분법적인 것들이 국악관현악으로 하모니를 이뤘다. 막이 오르고 관현악 천장과 진혼곡 Bardo-k가 연주됐다. 천장이 국악기와 탬버린, 트라이앵글까지 아우르며 삶과 죽음을 말했다면, 여창가객 강권순과 용인시립합창단이 함께 하는 Bardo-k는 죽은 이가 저승으로 천도가 되기까지 머무는 살고도 죽은, 죽고도 산 상태를 이르는 티베트어인 바르도(Bardo)의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묘사했다. 강권순과 용인시립합창단의 목소리는 산자의 슬픔과 고통, 절규, 죽은 자를 향한 위로를 고스란히 관객에 전달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관객 참여형 공연인 현악영산회상 中 상령산은 메디테이션 공연의 취지를 잘 살렸다. 뒤이어진 무대들은 전통 악기의 소리를 현시대에 작곡된 음악으로 아름답게 드러냈다. 무대 연출과 기획 역시 매우 세련됐다. 무용수가 무대로 나와 국악에 맞춰 춤을 출 땐 땅에 기반을 둔 국악의 본성, 공중으로 치솟으려는 발레의 속성이 아슬아슬하게 동양과 서양의 것을 자연스럽게 빚어냈다. 유희경의 시 구름은 구름처럼 구름같이 구름이 되어서를 편곡한 곡에서는 영상으로 시를 선보이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귀와 눈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애써 현대적으로 변신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내세워 국악을 애써 살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국악의 변신, 국악의 재탄생이 아니라, 우리 악기로 만들어 낸 현재의 음악이자 이야기, 울림이었다. 한류가 세계무대에서 넘실대고, 케이팝이 주목받으면서 국악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한 고민 역시 깊은 시기다. 경기도립국악단의 반향은 국악이 어떻게 현시대와 소통하는지, 또 미래의 음악이 되는지를 잘 보여줬다. 반향 공연을 앞두고 만난 한 국악단원은 새로운 길을 가는 거라 설레면서도 두렵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나 떨린다라는 말을 했다. 단언컨대, 경기도립국악단의 새로운 길은 그게 무엇이든 흥미롭고, 감각적이고 신선한 여정이 될 거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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