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반성

반성 함민복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강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 요즘처럼 반려견이 흔하다 못해 발에 채이던 때가 있었나 싶다. 뭣한 말로 한 집 건너 반려견을 키운다. 아침 산책길에 나서면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이들로 길이 좁을 정도다. 어느 땐 반려견 때문에 산책로를 벗어나 딴 길을 택할 때도 있다. 가히 반려견 천국이다. 허나 이렇게 애지중지 여기는 반려견을 거리에 내다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동시는 강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았다. 강아지를 사랑하면서도 무슨 병균이 묻지 않았을까 싶어 손을 씻었던 그 마음을 반성하고 있다. ‘늘/강아지 만지고/손을 씻었다//내일부터는/손을 씻고/강아지를 만져야지.’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이 이 동시의 매력이다. 여기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동시는 이래야 한다. 예쁘게 보이려고 이런저런 설명이나 치장은 금물이다. 함민복 시인의 작품은 어느 것이고 핵심만 찌르는 게 매력이다. 마치 주먹만 한 쇠뭉치로 거대한 종을 치는 것과 같다. 사방으로 퍼지는 종의 울림은 그 단순함에서 나온다.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독자들의 심금을 오래도록 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 울타리를 둘렀다//울타리가 가장 낮다//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그의 「섬」 또한 읽을수록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추석

추석 허정예 올 추석에도 엄마 혼자만 바쁘다 내가 좋아하는 깨송편 찜통에서 익어가고 고소한 기름 냄새 침이 꼴깍 게임하다 보면 어느새 아파트 지붕에 떠오른 둥근달 환하게 웃고 있다 할머니도 벽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환한 둥근달처럼… 엄마의 얼굴도 밝았으면 엄마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존재였다. 예전엔 그랬다. 밥하고 빨래하고, 여기에다 청소까지.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누볐다. 어디 그뿐인가. 명절엔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이것 해놓으면 저것이 기다리고, 저것 해놓으면 어느새 식사 때가 되고. 오죽했으면 호랑이더러 명절 좀 깨물어가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 이 동시는 추석 준비에 한창 바쁜 엄마를, 아파트 지붕에 떠오른 둥근달을 그리고 벽사진 속의 웃는 할머니를 하나로 연결하는 재미난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다. 무엇보다도 둥근달을 내세워 추석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다.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둥근달! 그 달은 어느 한 집 위에만 뜨는 게 아니다. 돌이네 집에도 뜨고, 순이네 집에도 뜨고, 억수네 집에도 뜬다. 달은 한 개지만 세상의 달은 수천, 수만 개인 것이다. 그 많은 달은 각자의 사연을 담고 있을 것이다.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명절이 오히려 슬픈 날이 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도 벽사진 속에서/환하게 웃고 있다.’ 시인의 이 구절은 세상의 모든 가정에 평화와 안식, 희망이 고루 내려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로 보였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거미의 인사

거미의 인사 이성자 베란다 구석에 지어 놓은 거미집 보았어 날름 없애 버리기 미안해서 들고 있던 빗자루 슬며시 내려놓았지 웅크리고 있던 거미 금세 다리 쭉 펴더니 엉덩이에서 뿜어낸 줄을 타고 내려왔다가 올라갔다가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인간만 사는 게 아니라 갖가지 생명체들과 어울려 산다. 거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집이고 좀 오래 산 집엔 거미줄 한둘 쯤 걸려 있게 마련이다. 시인의 베란다 구석에도 거미줄이 있는 모양이다. 이를 본 시인이 철거 대신 문학을 생산했다. ‘날름 없애 버리기 미안해서/들고 있던 빗자루/슬며시 내려놓았지’. 이런 마음이 곧 동심이다. 하찮은 생명체 하나라도 무시하지 않는 마음, 서로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상생의 기쁨.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엉덩이에서 뿜어낸 줄을 타고/내려왔다가/올라갔다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거미. 물론 이는 시인의 느낌이지만, 그 느낌이 문학이 되는 게 아닌가. 요즘엔 학교에서도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안 내주는 걸로 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어릴 적에 난 곤충채집 숙제가 가장 싫었다. 곤충을 잡는 일도 두려웠지만 그 파닥이는 생명체를 상자 바닥에 핀으로 꽂는 일은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사촌형의 손을 빌려 숙제를 해갔을까. 이 동시를 본 순간 떠오른 어두운 추억 중 하나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들이 건재할 때 우리도 함께 건강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작품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수박

수박 김명숙 내 머리보다 큰 수박을 샀다 가운데를 쩍 갈랐다 잘 익어 달디 단 수박 나누어 먹으니 더 달다 뱉어낸 씨앗으론 글씨를 썼다 수박 수박 수박...... 이라고 쓴 까만 글씨가 박수박수박수......로 읽혔다 잘 익은 게 박수 받을 만하다 박수 받을 만한 잘 익은 삶 여름 과일 가운데 가장 먹음직스러운 건 아무래도 수박이 아닐까 싶다. 우선 덩치부터가 그렇고, 속살은 또 어떤가? 벌겋게 익은 게 보기만 해도 군침을 돋운다. 여기에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 즐거움이 있다. 제아무리 여름 햇살이 뜨거워도 수박을 앞에 놓고 먹을 때만은 덥지 않았던 추억을 필자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뱉어낸 씨앗으론 글씨를 썼다/수박 수박 수박....../이라고 쓴 까만 글씨가/박수박수박수......로 읽혔다’. 시인은 잘 익은 수박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니 칭송했다. 이 수박 예찬론은 여기서만 멈추지 않고 인간사(人間事)에까지 암시를 던진다. 우리네 삶에서 ‘익는다’는 건 뭘 의미할까? 그렇다.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삶이란 생각이 든다. 주어진 자기 일에 열심히 매달리는 것, 땀을 쏟는 것, 스스로 만족하는 것, 빙긋이 웃는 것. 이 모두 박수 받을 만하지 않은가? 며칠 전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모여 점심을 함께했다. 다들 주름진 얼굴에 허연 머리들이었지만 입가엔 웃음이 맴 돌았다. 이 동시를 읽다가 그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들도 다 ‘잘 익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알고 보면 수박이나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책상 섬

책상 섬 오명희 특수학교에서 전학 온 재덕이는 혼자 놀아요 멀리 떨어진 책상 섬 우리가 재덕이의 섬에 놀러 가 함께 놀아 줄래요 함께 놀고,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 시든 동시든 꾸밈이 없어야 오히려 맛이 난다. 이 동시가 그 본보기다.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를 적은 것 외에 특별히 한 게 없다. 그런데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가? 재덕이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전학 와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빙빙 겉돈다. 꼭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같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들이 재덕이와 함께 놀아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게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멀리 떨어진/책상/섬’. 요 구절이 이 동시의 백미다. 책상을 섬으로 본 시인의 눈이 놀랍기 그지없다. 그 다음은 또 어떤가? ‘우리가/재덕이의 섬에 놀러 가/함께 놀아 줄래요’. 이 얼마나 따뜻한가? 혼자 빙빙 겉도는 친구를 그냥 놔두지 않고 달려가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미덕이다.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시인은 곧 첫 동시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의 작품에 발문을 쓰면서 필자는 문학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은 젊었을 때보다도 나이 들었을 때가 더 멀리 보고 깊게 느끼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동시나 동화 같은 아동문학은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여겨졌다. 이 또한 새로운 인생 공부였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수평선

수평선 김경옥 끝없이 높은 하늘 끝없이 넓은 바다 달라도 너무 다른데 날마다 만나네 억만년 찰랑거리며 무슨 얘기 나눌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청’ 멀수록 아름답게 보이는 게 있다. 수평선도 그 가운데 하나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 그러나 사실은 맞닿은 게 아니라 거리가 주는 착각의 현상으로 그렇게 보일뿐이다. ‘착각’은 모든 문학작품과 예술을 낳은 원천. 시인은 이 동시 속에서 착각의 미학을 얘기하고 있다. ‘끝없이 높은 하늘 끝없이/넓은 바다//달라도 너무 다른데/날마다 만나네’. 서로 다른 하늘과 서로 다른 바다가 날마다 만난다고 했다. 그래서 한 폭의 풍경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 하늘은 하늘의 이야기를, 바다는 바다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단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할까? 그건 고역 가운데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역일 것이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흥미롭고 즐거운 법. 우리가 사는 사회라고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것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초등학교 교과서에 ‘말하기 듣기’가 별도로 들어있는 것도 다 뜻이 있는 것이다.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둘인 것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경청은 대화의 기본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함과 아울러 ‘우리’를 이끌어내는 최상의 방법인 것이다. 수평선을 하늘과 바다의 대화로 본 시인의 눈이 퍽 이채롭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덧니 교정

덧니 교정 강희진 -뒤에 있으니까, 잘 안 보여. 나도 앞자리에 앉고 싶어. -몰랐어, 어서 나와. 자기 자리 못 찾고 겉돌던 친구 좁지만 조금씩 조금씩 비켜주니까 드디어 그 친구 앉을 자리가 생겼다. 같이 있어야, 가치 있는 행복 덧니는 치열을 벗어나서 난 이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모양새가 예쁘지 않다. 덧니를 가진 아이는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다. 심하면 웃음이 날 때도 억지로 참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 동시는 덧니에 관한 이야기다. 참 재미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열을 벗어난 덧니를 옆의 친구들이 조금씩 자리를 내주어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얘기다. 덧니를 통해 우리들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비켜주니까/드디어/그 친구 앉을 자리가 생겼다.’ 당신들은 이처럼 살고 있는지. 동시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뜨끔하다. 아픈 곳을 콕 찌르기 때문이다. 남이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면 어딜 끼어들려고 하느냐며 밀치는 세상이다 보니 이 동시가 유독 눈을 사로잡는다. 아이들을 위해 쓴 작품이 어른들에게는 회초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는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의 마음이 길이다』는 필자가 2년 전에 펴낸 동시 해설집이다. 순수하고 맑은 동심이야말로 인생의 참된 삶의 길 안내가 된다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행복은 혼자 사는 데 있지 않고 나무들처럼 서로서로 어울려 더불어 사는 데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꽃의 춤

꽃의 춤 김경은 강물 따라 걸어본 둑방길 옆에는 유월 국화 하늘하늘 가냘픈 몸짓들 연초록 도화지 위에 노란 물감 뿌려 놓네 떼 지어 달려온 하얀 구름 셋, 넷, 다섯 반짝이는 조약돌에 햇살 모여 앉으면 꽃물결 황금손 들고 덩실덩실 춤춘다 생명감 넘치는 초록빛 세상 6월은 초록빛 세상이다. 어딜 가나 푸름과 만난다. 그 푸름 속에서 산은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지고, 들녘은 펼쳐진다. 이 동시조는 6월의 풍경을 한 폭의 수채화로 담았다. 그 엷은 물감의 색채가 주는 평온함이 이 동시조의 장점이다. 왜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지침서라고나 할까? 강물, 둑방길, 하얀 구름, 조약돌, 꽃물결...6월을 상징하는 어휘들이 징검다리로 놓인 것도 시선을 끈다. 여기에 율격을 살린 맛이 낭송의 묘미까지 안겨준다. 시인은 시조 창작과 함께 시낭송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음절 하나, 어휘 하나를 맛나게 읊조린다. 꼭 금방 담근 열무 맛이다. ‘연초록 도화지 위에 뿌려 놓은 노란 물감’, ‘반짝이는 조약돌에 모여 앉은 햇살’. 이 환한 6월의 세상 앞에 우리가 서 있다. 삶의 기쁨, 그렇다! 하나의 생명으로 대지 위에 우뚝 서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나는 가끔 인간이 두 발로 처음 대지 위를 걸었을 적 생각을 한다. 그 직립(直立)의 위대함! 인류 역사의 시작은 그 직립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초록빛으로 펼쳐진 저 꽃의 세상을 향해 힘찬 걸음을 떼어 놓자. 자연의 저 정직함과 아름다움을 직시하며 겸손한 자세로 배우는 일, 그게 진짜 행복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올라가고, 내려오고

올라가고, 내려오고 문삼석 순이가 올라가면, 내가 내려오고, 내가 올라가면 순이가 내려오고... 올라갔다 내려왔다 신나는 시소놀이. 해가 져도 좋아요. 신나는 시소 놀이. 시소 타며 배우는 양보와 배려 어린이 공원에서 제일 인기 있는 놀이 하면, 시소 놀이다. 두 사람이 서로 장대 끝에 마주앉아 힘을 굴러주는 두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놀이. 한 사람이 하늘로 치솟으면 한 사람은 내려가고, 한 사람이 내려가면 한 사람은 하늘로 치솟는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존재’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이 동시를 지은 문삼석 시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어린이 공원에 앉아 시소 놀이를 구경하는데, 이건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교훈이란 생각이 들더란다. 곧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배려’. 내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내려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 단순한 진리가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는 얘기다. 그건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두 사람의 입장과도 같다는 얘기다. 백번 옳은 얘기다. 내가 무사히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려면 먼저 상대방에게 외나무다리를 양보해야 한다. 양보와 배려는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는 숲과 같다. 나는 왜 어린이 공원에 시소 놀이를 만들었을까를 가끔 생각하곤 한다. 그건 단순한 놀이 이전에 사회 공부가 아닐까? 어릴 적부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파도

파도 김경옥 기분이 좋을 때는 부드럽게 쓰다듬고 엄마에게 혼난 날은 거칠게 투정부렸어 모래밭 얼굴 묻은 조개야 조심할게 미안해 투명하고 맑은 ‘어린이 마음 바다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없으리라. 문학작품은 물론 그림으로, 음악으로 우리네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수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다. 이 작품은 파도를 어린 아이로 둔갑시킨 재미난 동시조다. 기분이 좋을 때는 얼굴 가득 웃음을 물고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지만 엄마에게 혼이 난 날은 갖고 놀던 장난감까지도 마구 팽개치는 심통난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동시조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삼는 만큼 동시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보란 듯이 깨뜨린 점이 특히 좋다. 그와 함께 ‘자기반성’을 깨닫는 후미 부분도 귀엽다. ‘모래밭 얼굴 묻은 조개야/조심할게 미안해’. 사나운 파도에 겁먹은 조개를 위로하는 이 대목이 또한 예쁘다. 여기에 시종 대화체로 이끌어간 시적 흐름도 어린이 눈높이에 딱 어울린다. 내일은 5월 5일 어린이날, 방정환 선생에 의해 ‘어린이’란 말이 세상에 나온 지 100주년이 되었다.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억압받고 차별받는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부르짖은 지 100년이 되었다. 과연 그 뜻대로 이 땅의 어린이들이 대우받고 있는지 어른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키 크는 지팡이

키 크는 지팡이 이명희 우리 할머니 지팡이 자꾸 키가 큰다. 올해는 할머니 키보다 크다. 허리 굽어지고 눈 어두운 할머니 지켜 드리려고 듬직하게 키가 컸다. 할머니 외출하실 때 얼른 와서 손을 잡는다. 우스운 얘기로 어릴 적엔 하늘을 향해서 키가 크지만 나이를 먹으면 땅을 향해서 키가 큰다고 한다. 키가 줄어드는 것을 반대로 하는 말이다. 이 동시를 대하자마자 떠오른 생각이다. 할머니의 키는 해마다 자꾸 주는데 지팡이의 키는 되레 큰다. 아이의 눈엔 꼭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다음 순간, 참 기특한 생각을 한다. ‘허리 굽어지고/눈 어두운 할머니/지켜 드리려고/듬직하게 키가 컸다.’ 지팡이가 키가 큰 것은 허리 굽어지고 눈 어두운 할머니를 지켜드리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예쁜 생각인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요렇게 표현할 줄 아는 아이(시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지팡이가 유모차로 둔갑을 했다. 그 이유를 굳이 다질 필요는 없겠다.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유모차에 의지하는 게 훨씬 모양새가 나아 보여서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할머니에겐 지팡이가 더 어울린다. ‘할머니 외출하실 때/얼른 와서/손을 잡는다.’ 손을 내미는 건 지팡이여야지 손 달린 유모차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어릴 땐 네 발로, 커서는 두 발로, 나이 들어서는 세 발로란 속담을 위해서 라도 지팡이가 사라져서는 안 될 것 같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물수제비

물수제비 황병숙 차르르 통통 튕기며 강물에 쓴 아빠의 말 우·리·환·희·사·랑·해 멀리멀리 일곱 마디 공손히 허리 굽혀 쓴 짧은 대답 퐁당 나·도 물결에 수놓은 자식 사랑 우리나라 말 가운데는 재미있는 말이 참 많다. ‘물수제비’란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물로 뜬 수제비라니! 이런 말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이 동시는 아빠와 자식이 강에 나가 둥글고 얄팍한 돌로 강물에 물수제비를 뜨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빠는 힘이 좋아서 멀리, 나는 힘이 모자라서 가까이 뜰 수밖에 없는 물수제비. ‘우·리·환·희·사·랑·해’ 아빠가 뜬 물수제비에 ‘나·도’라고 화답하는 그림이 너무너무 곱고 예쁘다. 더욱이 재밌는 것은 글자 사이에 방점(·)을 찍은 것. 물수제비가 물 위를 날 때마다 하나씩 놓은 징검다리다. 아니, 물 위에 다리를 놓은 가교(架橋)다. 해서 말인데, 이 아름다운 가교를 물 위에만 놓지 말고 우리들의 세상에도 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언제부턴가 멀어진 인간관계를 물수제비로 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시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지만 때론 어른들을 향한 문학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모임에서는 만남이 있을 때마다 동시를 한 꼭지씩 준비해 와서 돌려가며 낭독한다고 하지 않는가. 날로 때 묻어가는 세상살이에서 동심이 깃든 문학을 통해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노력한다니 이 얼마나 예쁜가. 동시는 세상을 가꾸는 꽃이요 숲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입김

입김 김훈동 아른아른 아지랑이 우리 할머니 입김 같다. 눈싸움하다 집에 오면 우리 할머니 귀여운 우리 강아지 얼마나 손이 시릴까? 내 손 꼬옥 쥐고 입으로 호호 불어주면 얼었던 손이 녹았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잠들지 않는 동심의 추억 봄의 상징은 아지랑이다. 겨우내 말랐던 들녘에 안개처럼 아지랑이가 피면 봄이 온다는 신호다. 시인은 이 아지랑이를 할머니 입김으로 보았다. 어디 그 뿐인가. 가슴속에서 잠자던 저 어린 날의 눈싸움까지 끄집어냈다. 친구들이랑 한바탕 눈싸움을 하고 들어오면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얼었던 손을 녹여주곤 했다.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해가며. 이 세상에서 할머니의 손주 사랑만큼 따슨 사랑이 어디 있을까? 이 동시 속의 할머니 입김은 그 사랑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입 속의 김을 모아 호호 불어줄 때 친구랑 다퉜던 응어리까지도 녹여 주었을 것이다. 추억은 잠들지 않는다. 잠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새잎처럼 파릇파릇 되살아난다. 저 들녘의 봄꽃들처럼. 어찌 보면 야구란 경기와도 흡사하다. 홈을 떠나 자기 힘으로 1루, 2루, 3루를 거쳐 다시 홈으로 돌아오듯이 멀리 떠날수록 홈(집)이 그리운 법, 그게 추억의 속성이다. 어린 날의 추억은 그래서 보석이라고나 할까? 세상살이가 고단할수록 가끔은 어린 날로 돌아가 볼 일이다. 세상 모르고 지냈던 저 동심 어린 시간을 목욕물삼아 때에 전 자신을 세척할 필요가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양말 꽃다발

양말 꽃다발 김하늘 형은 식탁 밑에 누나는 책상 옆에 엄마는 욕실 앞에 아빠는 현관에 한 짝 소파에 한 짝 모두 주워 발목을 모아 쥐고 모두 앞에 내민다. 자, 꽃다발 오늘 우리가 가꾼 꽃이야. 무질서 속 보이는 가족애 바쁘게 사는 가족의 모습을 양말로 보여주는 동시다. 아빠와 엄마는 직장으로, 형과 누나는 학교로 바삐 가다 보니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두게 되고, 그 벗어놓은 양말 때문에 집안은 어지럽기 그지없다. 어느 집이고 간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양말을 모아 놓고 보니 꽃다발이 됐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엉뚱한 발상인가? 양말 꽃다발! 세상에는 별의별 꽃다발이 다 있다지만 양말 꽃다발이라니? 그런데 이게 우습게도 문학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평소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야기를 건졌다. 건졌을 뿐 아니라 이를 장난기 어린 익살로 풀어냈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단추를 꽉 채운 옷보다 하나쯤 덜 채운 옷에서 사람 냄새가 풍기듯 이 동시는 정돈되지 않은 무질서한 가정을 통해 오히려 화목한 가족애를 보여준다. 여기저기 벗어던진 양말이 오히려 가족이란 의미와 함께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 비록 어린이를 위한 동시지만 그 뜻은 성인(成人) 시에 못잖다. 이런 게 동시다. 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른이 읽어도 좋을 시여야 한다. 그래서 동시도 먼저 시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철 수세미

철 수세미 구옥순 아빠에게 칭찬받으려고 엄청 아끼는 새 차를 철 수세미로 빡빡 문질렀어. 칭찬하러 주차장에 나간 아빠 차를 보더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아이는 칭찬받고 싶었다. 궁리 끝에 아빠의 새 차를 청소해 드리기로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철 수세미로 빡빡 문질렀다. 아빠에게서 받은 사랑만큼 빡빡 문질렀다. 아들이 세차를 했다는 소리를 들은 아빠는 너무도 기뻐 부리나케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동시는 아빠의 새 차를 청소한 아이의 마음을 담았다. 그런데 철 수세미가 문제였다. 아이는 생각했을 것이다. 기왕에 청소해 드리는 거 철 수세미가 좋을 거라고. 그러면 오래오래 청소를 하지 않아도 깨끗할 거라고. 칭찬하러/주차장에 나간 아빠/차를 보더니/웃어야 하나!/울어야 하나!. 그다음은 독자에게 맡겨 놓았다. 아빠는 어떻게 했을까? 웃었을까? 울었을까? 짐작건대 처음엔 황당했을지 몰라도 이내 웃었을 것 같다. 그까짓 차쯤이 문젠가. 차야 새로 구입하면 되지. 아들의 저 철 수세미 사랑이 얼마나 예쁘고 고마운가. 아빠는 두고두고 그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동심은 때로 본의 아니게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나무랄 수 없는 게 또한 마음이다. 이 작품은 그 동심에 미소를 보내고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만두 만드는 날

만두 만드는 날 -이복순 배추편 잘해라 무편도 잘해라 오늘은 팔도 야채들의 신나는 운동회 응원가도 높게 기쁨의 함성도 높게 모두모두 모여라 둥근 운동장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춤을 춰보자 내 편도 네 편도 가르지 말고 이긴 것 진 것도 따지지 말고 손잡고 마음 모아 노래 부르자 오늘은 온 가족 모여 앉자 하하 호호 만두 만드는 날. 온 가족이 빚는 행복한 삶 만두 만드는 것을 운동회로 표현한 재미있는 동시다. 배추편, 무편으로 갈라진 두 편의 경기가 운동장에서 기세 좋게 펼쳐진다. 놀라워라! 만두 속을 이리도 표현하다니! 여기에 응원가와 함성까지 합세하니 그야말로 축제도 보통 축제가 아니다. 둥근 운동장이 커다란 춤판이다. 어디 그뿐인가. 내 편도 네 편도 가르지 말고/이긴 것 진 것도 따지지 말고/손잡고 마음 모아 노래 부르자. 만두를 빚으며 하나가 되자는 것이 이 동시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다. 이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넌지시 질타하는 목소리로 해석해도 좋으리라. 언제부턴가 내 편, 네 편, 편 가르기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볼썽사나운 삶. 한쪽이 뭐라고 하면 다른 한쪽은 그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든 거기엔 다툼이 있었고, 갈라섬이 있었다. 오늘은/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하하 호호/만두 만드는 날. 이 동시가 보여주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다. 온 가족이 빚는 만두는 음식 이전에 가족 간의 화합이요, 사랑이니까. 시인은 오랜 세월 만두집을 운영해오고 있다. 거기서 얻은 삶의 교훈을 시 속에 담았다. 문학은 멀고 먼 별에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찾는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겨울밤

겨울밤 -진순분 사락사락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밤 찹쌀떡ㅡ 메밀묵 사ㅡ려! 골목 소리 멀어진 밤 순이는 일기 쓰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밤 겨울밤 적막을 깨는 정겨운 소리 낮의 온갖 소음들이 자취를 감춘 겨울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조차 한 겨울밤. 희디흰 눈만이 내려와 지상을 한 장의 도화지로 수놓는 그 겨울밤의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는 동시조(童時調)다. 찹쌀떡-/메밀묵 사ㅡ려!. 적막한 거리를 깨우는 그 반가운 소리. 그건 단지 음식을 팔려는 소리라기보다는 집집의 안부를 묻는 인사요, 사람의 소리였다. 이 반가운 사람의 소리가 언제부터 그쳤을까? 필자는 겨울밤에 누나를 깨워 찹쌀떡을 사 먹던 일이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그 몰캉한 떡 속에 들어 있던 달큼한 팥고물의 맛! 입 주위가 허예가지고는 서로 쳐다보며 웃고 또 웃던 누나와 필자는 어느새 80를 훌쩍 넘은 노인이 되었다. 순이는/일기 쓰다가/스르르/잠이 드는 밤. 골목 저 너머로 사라지는 찹쌀떡 장수와 메밀묵 장수의 소리를 들으며 순이는 일기를 적는다. 오늘 낮에 있었던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일을 하나하나 적는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떨어진다. 연필을 꼭 쥔 채. 시인은 밤이 되어도 좀처럼 고요해질 수 없는 이 도시 속에서 저 평화로운 지난날의 겨울밤을 그리워하고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산타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 정명희 빨간 모자에 하얀 수염 산타할아버진 왜 별들이 반짝이는 밤에만 오실까? 해마다 할아버지 보고 싶어 잠 안자고 기다리는데 올해도 살짝 다녀가신 산타할아버지 말씀 얘들아, 무럭무럭 아프지 말고 잘 자라렴. 잘 자라렴 산타할아버지의 기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신자를 불문하고 이 땅의 모든 이들이 반기는 세계인의 축제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내 곳곳마다 세워졌던 성탄절 추리가 눈을 씻어야 보이고, 거리마다 넘쳐나던 징글벨 소리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들뜨게 하는 크리스마스. 이 동시는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의 솔직한 마음을 가감 없이 담았다. 왜 산타할아버지는 해마다 잠든 한밤중에만 찾아오시냐고, 그것도 발소리도 없이 몰래 다녀가시냐고, 조금은 심통이 난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그렇고, 이 동시에서 눈여겨볼 것은 산타할아버지가 썰매에 싣고 온 선물이란 게 학용품이나 장난감이 아닌 말씀이다. 얘들아, 무럭무럭 아프지 말고/잘 자라렴. 산타할아버지가 싣고 온 말씀이란 선물은 요즘의 세태를 감안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고귀한 생명들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딴 것 다 놔두고 건강이란 선물을 챙겨가지고 온 것.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바라건대, 산타할아버지의 간절한 기도가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고루고루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두 손

두 손 이지엽 흔들어 줄 때 가장 따뜻한 노래가 되고 깍지를 껼 때 가장 단단한 밧줄이 된다 맞대고 하늘을 향할 때 너를 위한 기도가 된다 손의 다양한 감정표현 손처럼 많은 이미지를 지닌 어휘도 없지 싶다. 이 동시는 손이 지닌 의미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부분을 드러내 보여준다. 흔들어 줄 때 가장 따뜻한 노래가 되고/깍지를 껼 때 가장 단단한 밧줄이 된다고 했다. 이 얼마나 황홀한 표현인가! 노래가 되는 손. 밧줄이 되는 손. 손이 그려 보이는 저 눈부신 풍경과 손이 발휘할 힘의 역동성을 시인은 함께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맞대고 하늘을 향할 때/너를 위한 기도가 된다고 했다. 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인가! 인간의 모습 가운데서 기도하는 모습만큼 숙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을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올리는 저 간절함이야말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의 기원이요, 숭고한 노래이리라. 더욱이 기도가 아름다운 건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하는 기도라는 것! 알고 보면 이 세상은 그런 이타(利他)의 사랑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건강하게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기아와 질병, 인권 탄압의 어둠을 밝히려면 이런 간절한 기도가 더욱 필요하리라고 본다. 시인은 현재 전남 진도에서 사재를 털어 마련한 시에그린한국시화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산등성이 다람쥐

산등성이 다람쥐 최동호 밤송이가 가을바람에 우두둑 떨어지니 산등성이가 따갑다고 낙엽을 날린다 고슴도치처럼 산등성이가 움츠리니 밤송이가 미안하다 입을 벌리는데 알밤 구르는 산등성이 다람쥐 날쌔다 다람쥐보다 잽싼 시인의 눈썰미 사계절 중 가을 산만큼 많은 이야기를 지닌 산도 없지 싶다. 위 동시가 그 좋은 본보기다. 밤송이가 가을바람에 우두둑 떨어지다 보니 이에 찔린 산등성이가 따갑다고 몸을 움츠리고, 이를 본 밤송이가 미안하다고 입을 벌리자 언제 나타났는지 다람쥐가 잽싸게도 알밤을 물고 달아난다. 가을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눈여겨볼 것은 시인의 노련한 솜씨다. 시인은 숙련공답게 다람쥐의 이 범죄행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서만 그치지 않고 다람쥐의 이 행위를 오히려 아름다운 시(詩)로 만들었다.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한순간의 영상을 잡아챌 줄 아는 눈썰미와 이를 풍부한 감성으로 감싸 안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요구된다. 이 얼마나 귀여운가? 남의 물건을 훔친 다람쥐가 밉기는커녕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모르면 몰라도 알밤을 물고 자기네 집으로 달려간 다람쥐는 식구들에게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산밤은 다람쥐들의 겨울 양식이다. 이를 위해 다람쥐들은 가을이 가기 전에 온 산을 헤집고 다닌다. 며칠 전 모처럼의 산행에서 밤을 주워왔다며 선심 쓰듯 주고 간 친구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 다람쥐들한테 허락은 받고 가져온 밤이겠지?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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