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⑥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6층 전시실은 조각 예술품의 전용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은 로댕의 열렬한 애호가로 알려진 슬림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곳이라 보안 요원들의 감시도 한층 엄격하다. 그는 로댕의 작품 380여 점을 소유하고 있어 개인으로는 단연 세계 최대의 로댕 작품 소장자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한다. 6층 전시실은 로댕의 작품 외에도 여러 조각가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어 조각 예술의 극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3차원의 현실 공간에서 시각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조형 작업을 통하여 2차원적인 화면을 재구성하는 미술 작품과 달리 입체적 형상 속에 현실과 내면 세계를 함께 표출시킨 조각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이곳에 있는 많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모두 진품일까 하며 순간적으로 한 번쯤 의심해 본다. 하지만 진품으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미술 작품과 달리 조각 작품은 하나의 형틀에서 찍어낸 조형물에 제작 순서대로 에디션 번호를 붙이는 작품이 다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여러 곳의 로댕 전문 갤러리에서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사실 때문이다. 삼성문화재단이 한때 운영했던 갤러리 플라토(Plateau)에도 로댕의 ‘지옥의 문’ 7번째 에디션 작품과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 12번째 에디션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다. 현재 이 작품은 호암미술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어 관람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⑤

2층에는 단아하면서도 예쁜 생활 집기와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펜던트 초상화 작품이 있고, 회중시계와 여러 시대의 옛 동전이 전시돼 있다. 또한 멕시코에서 사용됐던 과거 지폐도 전시돼 있으나 발행 지역명이 다른 것이 이색적이다. 아마도 당시 연방마다 서로 다른 지폐를 발행한 듯하다. 3층에는 동양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소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중국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공예품이 있다. 특히 상아를 정교하게 세공해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고, 이것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나 보인다. 4층과 5층에는 수많은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엘 그레코, 틴토레토, 고흐, 마티스, 모네, 르누아르, 미로, 달리, 피카소의 작품을 비롯해 작품 하나하나가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라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황홀감에 빠진다. 이처럼 당대 세계 최고 화가들의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렬한 색감과 더불어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멕시코 작가의 작품은 색다른 미술 세계로 인도하고, 낯설지만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방대한 컬렉션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고통스러운 민중의 삶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과 그녀의 남편이자 남미 벽화 운동의 선구자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Man at the Crossroads)’에서는 더욱 강렬함을 느낀다. 당시 이들의 작품은 내용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의 호소력이 뛰어나고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정부 박해로부터 해방됐다는 후문이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④

로댕은 ‘지옥의 문’을 만들 때 피렌체 출신의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산 조반니 광장에 남긴 ‘세례당의 청동문’이라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로댕은 1880년부터 1917년에 죽을 때까지 이 작품을 위해 기나긴 시간을 바쳤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로댕 박물관 수석학예관이 ‘지옥의 문’을 짜 맞춰 완성한 것은 로댕의 사후 9년이 지난 1926년에서야 이뤄졌다. 단테의 ‘신곡 - 지옥’ 편 33번째에 나오는 ‘우골리노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지옥의 문’에는 여러 인물상이 등장한다.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해 ‘세 망령’, ‘웅크린 여인’, ‘아담’과 ‘이브’ 등은 독립된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지옥의 문’에 등장한 인물들은 로댕의 인생 말년까지 그에게 풍부한 예술적 영감을 줬다. 비선형 원형 공간에 전시된 걸작을 뒤로 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층의 전시 공간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치 커다란 소라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층고가 높아 계단 수가 많아도 지루하지 않게 벽면에 다양한 작품을 사진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어 느릿느릿 감상하다 보면 위층에 다다른다. 올라가는 계단 중간 한가운데서 미켈란젤로의 대작 ‘피에타(The Pieta)’를 만난다. 피에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기독교 예술의 상징적인 대표작이다. 피에타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에서 원작을 볼 수 있고, 수많은 예술가가 이 작품을 만들었기에 유럽 대성당에서는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조각이나 유화, 목각 작품 등으로 만날 수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③

찬란했던 멕시코의 다양한 고대 문명 시대 석조 유물은 다수 전시돼 있으나 국립인류사박물관에 비할 바 못 되고, 콜로니얼 시대 종교 예술품은 가톨릭 성화와 성물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콜로니얼 시대 작성된 역사적인 기록 문서, 주화와 지폐도 소장하고 있는데, 식민 지배를 받던 시대 동전은 세계 최대 컬렉션을 자랑하며, 그 외에도 메소아메리카 지역 예술 작품도 다수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 중 한 부분으로 만들어졌는데, 지옥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기 전 자기 삶과 운명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는 인간 내면 세계의 팽팽한 긴장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일명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라고도 한다. 로댕의 전기를 쓴 릴케는 이 작품에 대해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를 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뇌가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거친 질감과 인물의 본질적 묘사에 탁월했던 로댕의 대표작을 만나는 행운을 이곳에서 찾았다. 로댕의 원작은 파리에 있는 로댕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니, 이곳의 작품은 후순위 에디션 작품처럼 느껴진다. 같은 공간에서 ‘지옥의 문’을 감상한다. 밝은 갈색의 청동 작품으로 단단하고 차가운 질감이 뒤틀린 인체를 거칠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표현해 생동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면과 굴곡이 있어 박물관의 조명 불빛의 반사로 다양함을 느낀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②

박물관 앞에 다다르자 입장하기 전부터 건물 형상이 신비로움을 자아내어 멕시코가 가진 혼성의 예술 문화 사조가 설계에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장품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도 커진다. 박물관은 세계 10대 거부이자 멕시코 최대 기업군 카르소 그룹과 텔멕스 텔레콤의 회장인 카를로스 슬림이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 소우마야를 위해 세웠고, 일명 플라자 까르소(Plaza Carso)라고도 한다. 카를로스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그의 그룹 명칭에서 알 수 있다. ‘Carlos’와 ‘Soumaya’의 첫 글자를 조합해 ‘Grupo Carso’라고 지었을 정도였으니, 아내를 위해 세운 ‘무세오 소우마야’에 소장된 예술품의 가치도 짐작할 수 있다. 카를로스는 26세 때 17세인 레바논 이민자인 소우마야를 만나 결혼했다. 소우마야는 서른 살에 신부전으로 어머니 콩팥 한쪽을 이식 받았으나 1991년 51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카를로스는 예술 애호가였던 아내를 위해 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그 후 카를로스는 멕시코시티 옛 공업지대 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무세오 소우마야’를 건립했다. 박물관은 1만6천여 개의 육각형 알루미늄 모듈을 사용해 지었다. 건물 외장과 전면 파사드에 불투명한 마감재를 사용해 노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건물의 수명을 최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건축적 특징이 돋보인다. 검색대를 거친 후 안으로 들어서자 높은 층고와 전시된 대작의 예술품이 관람자를 압도한다. 이곳에는 대규모 전시실 6곳과 강당, 도서관, 수장고를 포함한 여러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다. 박물관은 기원전 400년대 고대 유물을 포함해 수십 세기에 걸친 6만6천여 점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럽 작가들의 다양한 회화와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기간도 있다. 그리고 멕시코를 포함한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근·현대 예술가 작품과 가구 및 금·은 세공품을 비롯한 장신구 등 많은 공예품도 전시돼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9-①

여행지에서 찾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 나라 예술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특히 멕시코는 고대와 중세문명의 반복된 폐허 위에 콜로니얼 시대를 거치면서 고대와 근대의 다양한 혼합 문화를 형성했고 멕시코혁명 이후에는 새로운 융합 예술을 꽃피우며 세계적인 예술가를 분야별로 배출했다. 그들 중에는 멕시코 전통과 혁명적 정신에 공명(共鳴)하며 뿌리 내린 민중 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오가며 멕시코 전통문화와 결합해 화려한 화풍으로 발전시킨 화가이자 리베라의 아내 프리다 칼로가 있다. 멕시코의 융합 예술의 영향으로 1920년대에는 세계 미술가들이 대거 멕시코를 찾으며 전위예술의 메카가 됐고 20세기 중반에는 과거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예술은 이 세상 어느 곳의 어떤 사람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는 표현 방법이다”라고 외치며 멕시코 전통미술을 파블로 피카소 및 앙리 마티스 양식과 결합해 단순함과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화풍을 만든 루피노 타마요라는 현대미술의 대가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오늘은 멕시코시티 마지막 여정으로 많은 예술 애호가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박물관 중 하나라고 일컫는 무세오 소우마야에서 드라마틱한 멕시코 문화와 예술 세계를 감상하러 발길을 재촉한다. 멕시코시티에 찬란했던 멕시코의 고대와 중세문명의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인류사박물관이 있다면 예술 분야에선 외관부터 정형적인 건축물의 형상과 달리 비대칭이고 파격적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의 곡선이 마치 스트레이트 실루엣 드레스를 입은 아리따운 여인처럼 날씬한 무세오 소우마야가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⑨

‘올멕’은 나우아틀어로 ‘고무 사람(rubber people)’이란 뜻의 올메카틀(olmecatl)이 변형된 데에서 유래했다. 박물관과 치첸이트사를 비롯한 고대 유적지에 있는 고무공 놀이 석조 원형 틀도 올멕 시대에 처음 시작했다고 하니, 이 놀이 역시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와 연관된 해와 달은 빛과 어둠·삶과 죽음·기쁨과 고독이 공존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고대 벽화와 현대 미술에도 희화돼 있다. 아스텍의 해골과 얼굴 가면은 죽음과 삶의 공존을 나타내는 정체성으로, 현대 문학과 미술에 두드러지는 이러한 죽음에 대한 초연한 자세는 멕시코 문화가 갖는 이원성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 정체성은 콜로니얼 시대 기독교 문화와 혼합된 ‘죽은 자의 날’ 전통으로 계승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특성이 있다. 이렇듯 멕시코 문화에서 ‘죽음’은 마음에 꺼리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 존재하는 또 다른 단면이고, 죽음에 얽매이지 않는 인생관에서 멕시코 문화의 이중적인 면을 본다. 박물관만큼 그 나라 문화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통로도 드물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웅장하고 고색 찬란한 박물관 외관에 익숙한 경험에 비춰 입장할 때는 다소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박물관을 둘러보고 유물의 가치·종류·수량 뿐만 아니라 독특한 건축 설계와 전시 방식은 손색이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후 신축하는 나라에서는 이 박물관을 많이 참고한다고 한다. 여행이란 계획하고 정해진 길에서 많은 것을 만날 수 있지만, 벗어난 길에서도 또 다른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박물관 여행은 처음부터 찾는 일정이었지만, 현장에서 예상과 달리 멕시코의 다양한 고대 문명을 만났고, 문헌과 사료 조사과정에서 고대 사회의 변천과 흥망 과정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도 보았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⑧

치아파스고원 원주민들을 뒤로 하고 제21실에 도착했다. 멕시코 서북부 시에라 사막과 계곡에 거주했던 세리(Seri)와 파파고(Papago) 등 여러 부족의 농경 생활과 의식·바구니 세공 기술·사슴 춤을 포함한 다양한 의식에 중점을 둔 문화관이다. 제22실은 박물관의 마지막 전시실로 멕시코 13개 주에 퍼져있는 나우아족과 같은 언어적 공통성과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공유했던 부족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멕시코 자긍심의 상징인 국립 인류사박물관은 1964년에 개관해 아프리카에서 발현한 원시인이 메소아메리카 지역으로 이주한 과정과 원주민 문화의 형성 시기 별로 구분, 다양한 유물 8천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멕시코의 고대 문명은 올멕(BC 12세기∼AD 2세기)과 마야(BC 9세기∼AD 16세기), 사포텍(BC 5세기∼AD 8세기), 테오티우아칸(BC 2세기∼AD 7세기), 톨텍(AD 7세기∼AD 12세기), 아스텍(AD 13세기∼AD 16세기) 문명으로 이어지고, 박물관은 선사 문화와 고대 문명을 국가의 상징인 정체성과 이념적·과학적·정치적 위업의 총합을 보여준다. 멕시코의 주요 고대 문명 별 사료를 살펴보면, 올멕인은 종교적 제의로 인신공희를 처음 했고, 그들이 썼던 문자와 달력은 그 후 마야 문자·숫자·달력에 영향을 줬다. 올멕인의 예술성은 ‘돌에서부터 샘솟는 생각으로 거대한 석조 두상을 창조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돌을 사용한 역동적인 이미지 창조에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 박물관 안팎 곳곳에 있는 올멕의 얼굴 석조 유물과 회화 작품은 메소아메리카에 있었던 다른 문명과 달리 동양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듯하다. 일부 고고학자의 마야 문명의 중국 기원설을 주장하는 가설을 떠올리니 궁금증이 더해진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⑦

제14실은 히스패닉 시대 이전부터 미초아칸(Michoacan) 지역에 거주하였던 퓨레체리오(Pureecherio) 부족의 낚시와 축제 행사 그리고 조상 공경 의식을 전시하고 있다. 제15실은 멕시코 중부 광활한 지역에 거주하였던 오토파메(Otopame) 부족의 세계관·농경 의식·수호신과 파메(Pame)와 마틀라친카(Matlatzinca) 등 여러 부족의 조상 공경 의식을 보여준다. 제16실은 시에라 데 뿌에블라 지역에 거주하였던 나우아(Nahua) 부족을 포함한 여러 집단의 섬세하고 다양한 바구니·깃털·보석 세공과 직물·종이 생산에 대한 그들의 예술적 전문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전시실로 이 분야 관심 있는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제17실은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 지역의 믹스텍과 사포텍족을 포함한 16개의 토착 부족이 거주했던 광범위한 지역의 화려한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시실로 제16실과 함께 멕시코 고대 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제18실은 걸프 연안 안티구아(Antigua)강변에서 중앙 베라크루즈(Central Veracruz) 지역과 타마우리파스(Tamaulipas)의 파누코(Panuco) 지역에 거주했던 우아스텍(Huasteca)과 토토나카판(Totonacapan) 부족의 토토낙(Totonac) 직물과 우아스텍의 다양한 악기가 전시돼 있다. 제19실은 유카탄반도의 저지대 정글 속 마야 부족이 어업과 농업을 통한 풍요로운 삶의 흔적과 정글에서 가장 고립되고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종족 중의 하나인 라칸돈(Lacandon) 마야족의 조상 공경 의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곳이다. 제20실은 치아파스고원 원주민의 종교의식 관련 물건과 음악·직물과 호박 세공 기술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⑥

전시실 지하에는 팔렝케(Palenque)의 궁전 지하에 있는 ‘키니치 하나브 파칼’(K'inich Janaab Pakal) 왕의 석관묘를 완벽하게 재현해 놓아 관람자의 눈길을 끌고, 300개의 옥 조각으로 된 마스크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이처럼 마야는 높은 수준의 예술·건축·수학·달력·천문학 기술을 가진 문명국이었고, 그 흔적은 후고전기 대유적지 치첸이트사에서 볼 수 있다. 제10실은 멕시코 서부 지역 유물 전시실로 이 지역에 살았던 고대인이 형성한 사회의 유물로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 담긴 토기와 인체 개념 및 금속 가공 기술이 두드러진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제11실은 멕시코 북부 치와와(Chihuahua)주 파키메 고대 유적지(Archaeological Zone of Paquime, Casas Grandes)에서 발굴한 다채색 토기·인물·동물 모양 항아리와 알타 비스타 찰치우이테스(Alta Vista Chalchihuites) 유적지 발굴에서 출토한 유물이 있고, 호호캄(Hohokam) 및 아나사지(Anasazi) 고대 정착촌에서 출토한 유물을 볼 수 있다. 1층 전시실 탐방을 마치고 2층으로 발길을 옮긴다. 2층도 11개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1층과 달리 멕시코 초기 토착 원주민과 지역별로 분화한 부족들의 오랜 삶의 흔적들이 정리돼 있고, 제16실 시에라 데 푸에블라(Sierra de Puebla)·제17실 오악사카(Oaxaca)·제21실 시에라스 사막과 계곡(Sierras, Deserts and Valleys)이 타 전시실보다 규모가 크며, 전시하고 있는 유물도 다채롭다. 제12실은 멕시코 고대 토착 부족의 독특한 세계관·종교·경제·의식·춤·의례·조상 숭배·사회 조직과 일상생활을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제13실은 그란 나야르(Gran Nayar) 지역에 거주하였던 코라(Cora)·후이촐(Huichol)·테페우아노(Tepehuano)·나우아 부족의 구슬 세공·실 염색·파워 오브제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 두드러진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⑤

믹스텍족 장인의 수준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뛰어났다. 그들은 터키옥으로 된 모자이크·금 장신구·그림책·돌조각 등 화려하고 섬세한 형식의 다양한 유물을 남겼고, 멕시코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들은 대부분 믹스텍족의 유산이며, 이들의 유물을 ‘믹스텍 푸에블라(Mixtec Puebla)’라고 불린다. 이 시기 부족장의 껴묻거리(副葬品) 유품 중 가지무늬토기(彩紋土器)와 독창적인 황금 의장(意匠) 세공품은 매우 아름답다. 이 전시관에서 보지 못한 유물은 몬테 알반 유적지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서 추가로 볼 수 있다. 제8실은 역사적 시기가 서로 다른 올멕(Olmec)·토토낙(Totonac)·우아스텍(Huastec)이 존재하였던 걸프 연안(Gulf Coast)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올멕은 메소아메리카에 등장한 최초의 문명 중 하나로, 이후 이 지역에 형성된 문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올멕인의 대표적 유물로는 여러 개의 거대한 석조 두상(巨頭像)이 있는데, 무거운 것은 25t이나 되고 가장 긴 것은 3m에 달한다. 두상은 토실토실한 편이고, 눈은 상당히 동양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흑인을 연상케 하는 두꺼운 입술을 지니고 있다. 이마에 두른 띠는 일종의 투구로 보이고, 이 두상은 귀족이나 전사(戰士), 혹은 죽은 이를 기리거나 신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밖에도 걸프 연안 토토낙 유적지에서 발굴한 도자기 조각상과 야금술을 개발하고 구리 합금을 생산한 후아스텍 문명 유적지에서 발굴한 할라파(Jalapa) 조각상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제9실은 멕시코 고대 문명의 또 하나의 축인 마야 문명 시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마야는 지배 왕조의 정치를 특징짓는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복잡한 상형 문자를 사용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발달한 언어와 고도의 문화를 누렸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④

제6실은 멕시코의 국명이 유래한 멕시카(Mexica, AD 1200∼1521) 시대로 아스텍의 또 다른 이름으로 테노치카(Tenochica)라고도 부른다. 15세기 메소아메리카 중앙고원에서 패권을 잡은 멕시카는 전쟁을 통하여 주변에 있는 여러 부족국가를 복속하여 제국의 반열에 올랐고, 농업과 무역 그리고 조공을 받아 멕시코 문화를 찬란하게 부흥한 시기로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다. 아스텍 문명관인 멕시카 전시실은 박물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앙에는 아스텍 문명의 우주관을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유물이자 달력으로 종교의식과 경작 시기를 결정하는 데 사용한 거대한 원형 석판인 ‘태양의 돌’이 있다. 이곳에는 멕시코 계곡의 얕은 호수 바닥에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하여 만든 비옥한 경작지로 작은 직사각형 틀 안에 흙을 메워 곡물을 심는 농업 기술인 치나미(chināmitl)를 재현한 거대한 조감도가 있다. 이 밖에도 아스텍 신앙의 중심인 섭리와 어둠의 신인 ‘테즈카틀리포카(Tezcatlipoca)’의 형상과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가 가장 많다. 제7실은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Oaxaca) 지역에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믹스텍(Mixtec)과 사포텍(Zapotec)족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14세기경 믹스텍족은 이 지역으로 들어와 사포텍족을 압도하였고, 점령 후에는 사포텍족의 수도이자 제사(祭祀) 중심지인 몬테 알반(Monte Alban)을 차지하였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③

제3실은 전 고전기(Preclassic)인 BC 2,500∼AD 100년 메소아메리카 중부 고원 지대 원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인구 증가와 함께 초기 계층화 사회가 출현하여 올멕과 마야 같은 고대 원시 부족 국가가 탄생하였고, 종교가 부족 국가를 지탱하며 발전하는 데 이바지한 과정을 보여준다. 제4실은 기원전 2세기경에 세운 고대 국가 테오티우아칸 유물관으로 전성기를 거쳐 쇠퇴한 후에도 메소아메리카 안팎의 먼 지역까지 영향을 끼친 나라로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꽃피웠던 찬란한 문화 유물을 보여준다. 테오티우아칸은 4∼7세기에 번성하였던 메소아메리카 최대 문명국가로 7세기 말 멸망하였다. 문명의 흔적은 멕시코시티에서 52km 떨어진 곳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에 해와 달 피라미드를 포함한 거대한 석조 유적이 있고, 전시실에는 비의 신 ‘틀라록’과 ‘케찰코아틀’을 포함한 다양한 석조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제5실은 후 고전기(Epiclassic)인 7∼12세기 멕시코 중앙 고원지대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 톨텍(Toltec) 문명관으로 테오티우아칸을 비롯한 여러 고대 문화를 이어받았다. 이들은 수준 높은 역법(曆法)과 우주관을 바탕으로 종교 체계를 이루었고, 기예를 살려 멕시코 고대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친 다양한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톨텍은 10세기 말∼11세기 초 유카탄반도에 있던 마야를 점령한 후 치첸이트사(Chichen-Itza)에 톨텍 마야 왕국의 수도를 건설하여 꽃피웠던 문명의 흔적을 전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후 고전기의 도시국가로 모렐로스(Morelos)주에 있는 요새 소치칼코(Xochicalco), 푸에블라(Puebla)와 베라크루즈(Veracruz)주 경계에 있는 칸토나(Cantona), 틀락스칼라(Tlaxcala)주의 카카스틀라(Cacaxtla) 유적지에서 발굴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②

아침 일찍 지하철 7호선을 타고 파세오 데 라 레포르마(Paseo de la Reforma) 거리에 있는 오디토리오(Auditorio) 역에 내려 걸어서 박물관에 도착한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입장해야 할까 망설였지만, 입장권을 구입하고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박물관 중앙 탁 트인 광장에는 마야의 우주관을 작품화한 우산 모양의 분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페드로 라미네스 바스케스(Pedro Ramirez Vazquez) 설계로 지은 국립 인류사박물관에서 가장 특징적인 구조물인 이 작품은 고대 멕시코의 신화적인 나무를 표현하여 하나의 기둥으로 세웠고, 기둥에는 콜로니얼 시대 이전 원주민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던 독수리와 재규어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입구에서부터 규모에 놀라고, 들어가서는 전시된 유물의 다양성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박물관은 지상 2층 규모의 ‘□’자형 건물로 전체면적 약 8만㎡(8헥타르)에 22개 전시실·2만 5천 권의 장서를 소장한 도서관·연구실·극장·강당·서점·식당·카페 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한 해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박물관 1층에는 멕시코 고대 문명을 시대별·지역별로 분류해 11개 전시실로 나누어 유물을 전시하고 건물 밖 야외에는 문명별로 크고 작은 상징적인 유물을 복원해 놓아 잠시 쉬어가며 관람하기 좋다. 시간에 쫓기지만 욕심내어 탐방로를 따라 관람하며 유물을 카메라에 담는다. 제1실은 아프리카에서 발현한 원시 인류가 수백만 년 자연에 적응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을 정리하고, 현생 인류가 어떻게 신체적·사회적·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발전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제2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인류가 기원전 3만∼2천5백년대까지 기후 변화를 겪으며 초기 원시인의 생존 수단인 수렵 생활에서 한 지역에 정착하여 농경사회를 형성하고 변화·발전해 가는 인류사적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8-①

박물관(Museum)은 여행 간 나라의 문명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강대국일수록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국력을 모아 그 힘을 과시한다. 영국 대영박물관과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은 아름답고 중후한 멋을 가진 중세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예술성이 높은 현대식 건물을 지어 수많은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고대 로마인들에게 ‘진리를 탐구하는 토론 장소’로 사용됐고, 중세 때는 수도원과 교회가 박물관 역할을 했다. 유물을 전시하는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은 중세 말에 생기기 시작, 현대에 들어서는 수집품에 따라 민속·미술·과학·역사박물관 등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고 있다. 근대 박물관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공박물관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왕실과 귀족들이 신분 과시용으로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중심의 박물관을 세워 일반인에게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19세기 이후로는 전문 박물관이 등장하고 경제와 기술발전을 이룬 신흥 국가나 도시는 그 성과를 과시하려는 데 목적을 둔 다양한 형태의 박물관을 개관했다. 현대 박물관은 보여주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교육·연구·전시·홍보 등 다양한 기능이 강조되고, 문명과 역사 권역별로 다양화해 중앙과 지방으로 나누는 추세다. 오늘은 멕시코가 자랑하는 차풀테펙(Chapultepec) 공원에 있는 국립 인류사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 e Historia)을 찾는다. 멕시코를 찾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방문하는 이 박물관은 유럽인들이 발들이기 이전 멕시코 고대 문명과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원주민 문화도 접할 수 있다. 특히 메소아메리카의 어머니 문명이라고 불리는 올멕인의 거두석(巨頭石)과 아스텍 문명의 ‘태양의 돌’(Piedra del Sol)을 비롯한 다양한 고대 유물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7-⑦

앞서 말하던 이 작품(디에고 리베라의 내부 프레스코 벽화)은 원래 미국 흑인과 라틴아메리카 농부가 러시아 군인과 손을 맞잡고 있는 익명의 노동자 얼굴을 그려야 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리베라가 레닌 얼굴로 대체해 넬슨 록펠러는 그 부분을 참지 못하고 작품을 포기했다는 후문이 있다. 또 하나 특별한 것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든 무대 커튼이다.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과 멕시코의 계곡을 그렸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초창기에 이 전당의 오페라에 여러 차례 출연했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한때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국립 예술의 전당은 멕시코 작곡가의 작품을 매우 중요시 했고, 멕시코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마리아 펠릭스(Maria Felix)는 모두 이곳을 통해 데뷔했다. 멕시코는 고대 올멕과 마야·아스테크와 톨테크 문명 등 인디오 조상들의 찬란한 토착 문명의 혼을 지니고 있으며, 에스파냐 식민통치 시대를 통해 서구 문명이 유입돼 혼합 문명이 형성됐다. 이로 인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는 예술·유행·관습 등 모든 것을 모방하는 추세였기에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예술 문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포르피리오 디아즈 대통령은 직접 멕시코시티 상업 중심가 한복판에 국립 예술의 전당을 건설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이런 사회적 흐름은 마리아치의 고향 과달라하라와 지하 도시 과나후아토 등 크고 작은 도시에 예술극장을 세운 것을 볼 때, 멕시코는 예술의 혼을 가진 문명의 나라다. 인생은 세월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가며 자신을 찾아 떠나는 도전의 여행이다. 심리학자들은 행복해지고 싶다면 무엇인가를 구입하기보다 여행하라고 권유한다. 그 이유는 소비를 통한 행복이 한순간이라면, 여행에서 쌓은 추억과 경험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몸속에 엔도르핀이 솟아나고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한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7-⑥

예술의 전당 내부는 2층 정면과 돔 천장이 매우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며, 아래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20세기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도한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인간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수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고대 동굴이나 무덤 벽면에 그렸으며, 고대 마야 시대부터 그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콘클라베(Conclave)를 열어 교황을 선출하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는 성경에 나오는 300여 명의 인물로 가득한 벽화를 그리며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국립 예술의 전당에도 현대 벽화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멕시코 화가의 벽화가 가득하다. 3층에는 1920년대 이념성이 강한 멕시코 3대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그리고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e Clemente Orozco)의 작품이 걸려있다. 이들은 권력자의 이념에 반하여 처절한 삶을 사는 서민의 아픔을 그리려 하였고, 작품 속에는 그런 이념을 강하게 담고 있어 당시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특히 디에고 리베라의 <교차로의 사람(Man at the Crossroads)> 또는 <우주의 통치자 인간>이라는 내부 프레스코 벽화가 유명하다. 원래 뉴욕 록펠러센터의 벽화로 시작했으나 거의 완성 단계에서 록펠러 측이 그림에 레닌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작업을 중지시켰다. 리베라는 이 작품을 뉴욕의 뉴 워커서 스쿨(New Workers School) 벽면에 그렸으며, 그 후 멕시코시티 예술의 전당에 다시 그렸다. 작품 가운데는 기계를 조작하는 노동자가 두 개의 타원이 교차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타원은 대우주와 소우주를 연상케 하고, 기계의 양쪽에는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녀의 모습이 있으며, 오른쪽 아래에는 소비에트 노동절 퍼레이드가 왼쪽 위에는 찰스 다윈이 그려져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7-⑤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보면 궁전 못지않게 발길 닿는 곳이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예술극장이나 오페라하우스 같은 문화예술 건축물이다. 파리 센 강 근처에는 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의 실제 배경이 된 ‘파리 오페라 하우스’가 있고, 뉴욕에는 종합예술극장인 링컨센터가 있으며, 호주에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멕시코시티에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극장인 ‘국립 예술의 전당’이 있다. 아르누보 건축 양식의 이 궁전의 외관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최고급 흰 대리석으로 장식했고, 전면 파사드 하모니는 이탈리아 조각가 레오나르도 비스톨피(Leonardo Bistolfi)의 작품이다. 내․외관의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은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고풍스러운 예술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는 건축 초기부터 난관을 겪고 오랜 기간에 완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예술의 전당은 1904년 멕시코시티 상업 중심가 한복판에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기존에 있었던 국립극장을 허물고 착공하였으나 지반이 조금씩 내려앉아 보강공사를 하다 보니 30년이나 걸려 완공했다. 1910년에는 멕시코혁명이 일어나 정부가 바뀌었고, 이 과정에 애초 설계를 맡았던 이탈리아 건축가 아다모 보아리(Adamo Moari)가 고향으로 돌아 가버려 공사는 1932년까지 중단됐다. 그 후 멕시코 건축가 페데리코 마리스칼(Federico Mariscal)이 이어받아 2년 후인 1934년 겨우 완공하였지만, 보아리가 설계한 정원이 있는 광장과 페가서스 조각상은 1994년에야 완성됐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7-④

탐험가 제임스 엘턴(James Elton)은 차풀테펙 성을 둘러보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없다”고 썼을 정도로 비할 데 없는 전망과 테라스를 가지고 있다. 성은 북미에 있는 유일한 왕궁일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무대로 즐겨 찾는 촬영 명소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 배경으로 재해석한 베즈 루어먼(Baz Luhrmann) 감독의 영화에서 반항적인 로미오 역할로 매력을 한껏 드러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열연한 곳이고, 로버트 알드리치(Robert Aldrich) 감독의 <베라 크루즈>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성에 오르면 멕시코시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고풍스러운 성은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멕시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차풀테펙 성을 둘러보고 언덕 아래로 내려오는데, 공원길 한쪽에서 트레몰로(tremolo) 주법의 귀에 익은 기타연주가 들려온다. 남루한 차림의 길거리 연주가는 화음에 심취해 에스파냐의 영혼을 되살린 기타 작곡가 타래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한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현란한 손가락 놀림에서 인간의 직관적인 느낌을 넘어 시간과 공간의 허공을 향해 잔잔하게 흐르는 리듬에 마음을 뺏겼다. 바구니에 동전 한 닢 놓아주고 역사지구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예술극장(Palacio de Bellas Artes)으로 발길을 옮긴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7-③

황제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유럽의 ‘노이슈반스타인(Neuschwanstein)’성과 여러 성의 신·개축에 참여한 강골프 카이저(Gangolf Kayse)와 줄리어스 호프만(Julius Hofmann)을 영입해 자국의 건축가와 함께 차풀테펙 성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증·개축하면서 거주하기 편리하게 고쳤고, 궁전의 예술적 아름다움도 극대화했다. 증·개축 과정에는 인상적인 정원을 새로 꾸미고 지붕을 개수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수많은 가구를 들여와 성 내부에 진귀한 예술 작품을 진열했다. 특히 차풀테펙 성의 정원은 무어인이 이베리아반도에 지은 마지막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정원과 비추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일품이다. 박물관 2층에는 그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관람 통로를 따라 돌아보며 화려했던 그 시절의 시간 여행을 즐긴다. 1867년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돼 성은 또다시 버려지다시피 했다. 1878년 기상관측소로 사용하다가 5년이 지난 후 다시 군사학교가 됐으나 1882년 대대적인 궁전 내부 공사를 하고,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 대통령을 시작으로 성을 공식 관저로 사용했다. 1939년 라싸로 카르데나스(Lazaro Cardenas) 대통령은 차풀테펙 성을 국립역사박물관(Museo Nacional de Historia)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유물을 이곳으로 옮겼고, 1944년부터 차풀테펙 성은 국립 역사박물관이 됐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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