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전문 큐레이팅... 수원 행궁동 '책방 시요' [우리동네 독립서점]

수원시 행궁동에 위치한 ‘책방 시요’는 시 전문 소규모 큐레이팅 서점이다. 쌓여 가는 시집을 나누고 싶어 서점을 차린 주인장은 독립출판 문예지 A;lone을 발행하며 시집 ‘나의 외로움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를 출간한 김고요 시인이다. 시요는 시인의 취향이 묻어 있는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시가 있다, 시입니다’ 2023년 8월에 문을 연 ‘책방 시요’는 시 전문 독립서점이다. ‘시가 있다’, ‘시입니다’라는 뜻의 시요는 ‘나의 외로움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를 쓴 김고요 시인이 운영하는 서점이다. “시 전문 서점으로 다양한 시집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서점에 입고된 시집도 그렇고 시집 외 도서들도 전부 저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고릅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큐레이팅하고 있어요.” 수원은 김씨가 유년시절부터 쭉 자란 곳으로 익숙한 지역이다. 가게를 차린다면 당연히 수원에서 열 계획이었고 그중 유동 인구가 많은 행궁동 장안문 근처에 자리 잡았다. “갖고 있는 시집은 자꾸 쌓여 가는데 이 좋은 책들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점을 열었습니다. 철저히 제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로망으로 시작했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시요는 분야별로 책장을 꾸리고 있다. 시집을 필두로 에세이, 매거진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시요에서 판매하고 있는 시집들은 주인장이 한 권씩 소유하고 있어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인상 깊은 페이지마다 표시가 돼 있어 한번 더 눈여겨볼 수 있고 때때로 시 추천을 원하는 손님에겐 그에 걸맞은 시를 소개한다. 책, 커피, 사람이 있는 곳 시요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게시물이 많다. 가게 오픈 일정만 고지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관리자의 마음 상태, 좋은 글귀 등을 공유하며 친한 친구의 근황을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저는 제 할 일을 할 테니 편히 들러 주세요” 같은 문구는 한 번쯤 서점에 들르고 싶게 만든다. “저희는 카페도 겸하고 있어 혼자서 조용히 차만 즐기다 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시가 좋아서, 책에 집중하고 싶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등 오시는 분들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시요에 들른 손님들이 뭔가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실 수 있길 바랍니다.” 책 수요가 한정적이고 책 읽는 사람들이 줄고 있음을 느낀다는 김씨는 현실적으로 책방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내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가게를 운영할 정도의 수익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책방을 지속할 수 있고 손님들이 오래도록 시를, 책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공간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상상력으로 채운 소리와 울림, 수평선 너머 어부를 그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판소리로 재해석한 이자람 작창(作唱)극 ‘노인과 바다’가 제주, 경남 김해, 경기 화성을 거쳐 안양 평촌아트홀을 끝으로 상반기 공연을 마무리했다. 쿠바의 어부 산티아고의 삶을 연기한 소리꾼 이자람과 고수 이준형의 능수능란한 장단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느끼게 하는 무대였다.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작창극 ‘노인과 바다’가 지난 1일 안양 평촌아트홀 무대에 올랐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하는 동요 ‘내 이름 예솔아’로 5세에 방송 활동을 시작한 이자람은 1990년 국악과 인연을 맺어 국립국악중·고교, 서울대 국악과를 거쳐 판소리 인간문화재 오정숙, 송순섭, 성우향 명창을 사사했다. 1997년 ‘심청가’를, 1999년 20세의 나이로 최연소 ‘춘향가’ 완창 기록을 세운 이자람은 2007년 ‘수궁가’, 2010년 ‘적벽가’, 2015년 ‘흥보가’까지 주요 판소리 다섯 작품을 모두 완창했다. 한편 이자람은 2008년부터 작창극을 통해 대중을 만났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을 기반으로 한 ‘사천가’, 2011년에는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모티브로 한 ‘억척가’의 대본, 음악, 연기를 맡으며 젊은 관객을 국악의 세계로 이끄는 성과를 거뒀다. 2019년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신작으로 초연한 판소리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소설을 판소리로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추물/살인’으로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박지혜가 연출하고 무대미술가 여신동이 시노그래퍼로 참여했다. 쿠바 어촌에 얹는 판소리 가락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텅 빈 공간에 등장한 소리꾼 이자람과 고수 이준형은 암전도 되지 않은 환한 객석을 향해 인사를 대신한 소리 한 자락으로 무대를 열었다. “볼 것도, 할 것도, 갈 곳도 많은 세상에 우리의 공연을 찾아줘 고맙다”며 한순간 판소리의 벽을 허문다. 판소리가 낯선 관객을 위해 틈틈이 해설과 설명을 덧붙이며 추임새를 독려하고 장단을 가르치는 모습은 렉처 콘서트를 연상케 했다. 평생을 바다 위에서 외줄낚시를 하며 살아온 주인공 산티아고는 커다란 고기를 낚는 재주가 있어 타고난 어부 소리를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좀처럼 큰 고기가 찾아오지 않아 대물에 대한 염원을 품고 바다에서 버틴다. 80여일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청새치 한 마리가 나타나고 바다 깊은 곳에서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청새치와 수면 위의 산티아고는 꼬박 이틀을 대치한다. 이날 무대를 채운 것은 이자람의 소리와 북소리, 거기에 ‘부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전통 판소리 무대에서도 부채는 소리꾼 신체의 일부분으로 여겨지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로 쓰인다. 이자람은 거기에 더해 넘실대는 파도, 팽팽한 낚싯줄, 청새치의 숨통을 끊는 작살 등 그림을 그리듯 부채에 생명을 불어넣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렇게 사투 끝에 마침내 청새치 등에 작살을 꽂은 산티아고는 마을로 돌아가 잔치를 벌이고, 연인을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상어 떼의 습격에 청새치 몸통을 다 뜯기고 뼈와 머리만 갖고 돌아간다. 손이 끊어지는 고통을 이겨내며 지켜낸 청새치가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리자 산티아고는 밀려 드는 후회를 되뇐다. 좀 더 큰 배를 가져올 걸, 작살을 넉넉히 준비했더라면, 혼자가 아닌 누구와 함께했으면 상어를 물리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내 육지에 도착하고 며칠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난 산티아고는 다시 바다에 나갈 채비를 한다. 이자람은 노인이 만난 청새치가 특별한 하루가 아닌 일상으로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극을 마무리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하루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탕치는 하루도 모두 일상 속 하루일 뿐, 특별한 것도 대단할 것 없는 하루는 매일매일 그렇게 계속 됨을 노래했다. 소리꾼 이자람은 여는 소리에 이어 닫는 소리로 무대를 마쳤다. “여러분 엉덩이도 아플 테고, 이자람 몸도 부서질 것 같고.” 웃음으로 마무리했지만 2시간여 바닥에 앉아 있던 고수는 일어나기도, 걷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런 그를 부축하며 퇴장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은 더 큰 박수를 보냈다. 이자람은 ‘노인과 바다’ 상반기 일정이 끝나자마자 지난 13, 15일 양일에 걸쳐 ‘적벽가’ 완창을 또 한 번 해냈다. 전통과 작창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이자람의 다음 무대가 기다려진다.

무더위에 ‘콜록콜록’… 에어컨·제습기 청결관리 신경써야

올여름 불볕더위와 함께 본격적인 장마가 예고되며 여름철 가전제품 사용도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컨과 제습기 내부에 쌓인 먼지와 습기는 각종 곰팡이 및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전문가들은 면역력이 약한 유아와 노인, 환자 등이 있는 가정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기기를 작동시켰을 때 퀴퀴한 냄새가 난다면 곰팡이가 생겼을 확률이 매우 높다. 곰팡이는 천식,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경우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에 의한 감염이 생길 수 있는데 오한, 발열, 흉통, 호흡곤란, 가래 끓는 기침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에어컨에서 증식하는 또 다른 대표 균은 레지오넬라균이다. 레지오넬라균은 주로 사무실 등 중앙냉방 장치를 사용하는 빌딩의 냉각기 내 냉각수 오염으로 생긴다. 레지오넬라균 감염 시 독감과 같은 호흡기 증상의 독감형과 두통, 오한 등 폐렴형 증상을 보이기에 감기로 오인하기 쉽다. 여름철 가전제품을 건강하게 사용하려면 정기적인 청소가 중요하다. 필터는 최소 2주에 한 번씩 청소해 미생물이나 곰팡이가 장기간 머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필터 청소 시 청소기 또는 칫솔 등으로 먼지를 털고, 먼지가 많다면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를 풀어서 세척하고 그늘에 완전히 건조해야 한다. 청소 중에는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창문은 열어둔다. 에어컨 사용 습관도 중요하다. 작동 초반에 곰팡이가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초반 5분가량 창문을 열고 환기하는 것을 권장한다. 사용 후에는 바로 끄지 말고 10~20분 정도 송풍모드를 작동해 내부를 건조시키면 곰팡이 번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류혜승 인천힘찬종합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은 “에어컨과 제습기의 필터와 열교환기 등에는 미생물이 서식하기 쉽다”며 “알레르기 반응, 천식, 비염 등 다양한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에 가정과 사무실의 가전을 정비해 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더 위험하다”며 “에어컨 사용 후 열과 콧물, 코막힘 등 증상이 생길 시 단순 감기로 생각하지 말고 정확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예는 왜 모두 바깥쪽이 작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화성에는 대문이 네 곳이 있다. 장안문(북문), 팔달문(남문), 창룡문(동문), 화서문(서문)이다. 문의 함락은 곧 성의 함락이기 때문에 문은 매우 중요하다. 성을 공략할 때 문을 최우선 공격 목표로 삼는 이유다. 이처럼 안과 밖이 개방된 문은 특별한 방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화성에는 앞쪽에 옹성을, 좌우에 적대를, 위에는 문루를 배치해 시스템 방어를 구축했다. 이외에도 철판을 입힌 두꺼운 문짝을 설치했다. 의궤에도 “두 선문은 철엽으로 싸고 횡경을 갖췄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문은 문짝을, 철엽은 나무 문짝에 붙여 놓은 철판을, 횡경은 문을 잠그는 나무 빗장을 말한다. 원산석은 문을 닫았을 때 문짝이 밖으로 밀려 나가지 못하게 막는 돌로 문 밖 바닥 중앙에 박는다. 문짝은 회전축을 중심으로 90도로 여닫는다. 나무 축을 ‘지도리’라 부르는데 아래는 돌구멍에, 위는 나무 구멍에 꽂혀 있다. 모든 문짝은 바깥 홍예에 설치했고 안 여닫이로 여닫는다. 홍예에서 아래쪽 수직 부분에 쌓은 돌을 선단석이라 한다. 선단석 위 무지개 모양을 한 돌을 홍예석이라 한다. 모든 문에는 이런 홍예가 안쪽에 하나, 바깥쪽에 하나로 구성돼 있다.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사이는 그냥 수직 벽이다. 이 벽을 쌓은 돌을 무사석이라 한다. 홍예 크기를 보자. 홍예 넓이는 장안문 경우 안쪽 홍예가 18척2촌, 바깥쪽 홍예가 16척2촌이고, 팔달문은 안쪽이 18척, 바깥쪽이 16척이다. 창룡문과 화서문은 안쪽이 14척, 바깥쪽이 12척이다. 모든 문에서 바깥 홍예가 안쪽 홍예보다 2척이 작다. 지금까지 문짝과 홍예의 제도를 보며 누구나 이런 의문이 떠올랐을 것이다. 왜 문짝을 모두 바깥쪽 홍예에 설치했을까, 왜 모두 안 여닫이로 했을까, 왜 바깥쪽 홍예가 안쪽보다 2척이 작을까이다. 그 이유를 찾아보자. 앞서 말했듯 문은 방어에 가장 취약한 시설이므로 방어전략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중 어디가 유리할까? 안쪽에 문짝을 설치하면 안 된다. 안쪽에 설치할 경우 적군이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사이로 들어가 버리면 문루나 옹성 위에서 전혀 볼 수 없다. 홍예 사이에 들어간 적은 마음껏 문짝을 부술 것이다. 반면 바깥쪽에 설치하면 적은 옹성 안에 갇히고 아군에게 완전히 노출된다. 문짝 앞에 도달해도 문루와 옹성 위의 아군에 의해 몰살당한다. 그야말로 독(옹성) 안에 든 쥐가 된다. 이것이 문짝을 바깥쪽 홍예에 설치한 이유다. 안 여닫이와 바깥 여닫이 중 무엇이 유리할까? 바깥 여닫이로 설치하면 안 된다. 바깥 여닫이로 하려면 문짝은 홍예 바깥에 설치해야 한다. 이 경우 문짝과 가장 취약한 부분인 문의 회전축은 외부에 노출된다. 즉, 옹성으로 들어온 적에게 문짝을 내주는 꼴이 된다. 반면 안 여닫이로 설치하면 첫째, 문짝에서 가장 취약한 축을 선단석과 홍예석 뒤에 완벽하게 숨길 수 있고 둘째, 문을 닫으면 적군이 옹성 안에 갇히게 돼 몰살당한다. 이것이 안 여닫이로 설치한 이유다. 지금까지 바깥 홍예 안쪽에 설치하고 안 여닫이로 한 이유를 알았다. 가장 취약한 회전축을 선단석과 홍예석 뒤에 완벽히 은폐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문짝을 감추기 위한 폭은 얼마나 필요할까? 완전히 열었을 때 문짝을 구성하는 나무 널판, 띠장, 빗장이 감춰져야 한다. 전체 두께가 최소 1척이다. 문짝이 2개이므로 합하면 2척이다. 이 2척이 바로 안팎 홍예의 크기 차이가 되는 것이다. 차이를 확인해 보자. 장안문 경우 18척2촌과 16척2촌으로 2척 차이가 난다. 팔달문, 북옹성, 남옹성 경우 18척과 16척으로 2척이고 창룡문과 화서문도 14척과 12척으로 차이가 2척이다. 모두 바깥쪽이 안쪽보다 2척이 좁다.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지금도 문을 활짝 연 상태를 보면 문짝 전체가 선단석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로써 문짝을 안쪽이 아닌 바깥쪽 홍예에 설치한 이유, 문의 개폐 방향이 바깥 여닫이가 아닌 안 여닫이로 한 이유,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넓이가 2척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러면 암문도 마찬가지일까? 답은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의 크기는 다르다. 암문 다섯 곳도 바깥쪽 홍예가 안쪽보다 작다.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넓이 차이는 북암문이 5촌, 서남암문과 동암문이 1척, 남암문 1척3촌, 서암문이 1척5촌이다. 차이가 서로 다른 이유는 암문의 통로 폭과 길이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통로 크기에 따라 문 두께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암문은 경사지에 세워 문짝도 작고, 안팎 홍예 크기의 차이도 작다. 그러나 암문은 적으로부터 문을 보호하려는 의도와 관련은 없다. 원래 암문은 비상시 흙을 쏟아부어 폐쇄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화성의 모든 문에서 바깥쪽 홍예가 안쪽 홍예보다 작다. 문의 취약부인 회전축을 선단석 뒤에 숨겨 보호하도록 설계했다. 모두 문은 안 여닫이로 했다. 문을 닫았을 때 적을 옹성 안에 묶어 놓을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성에서 문과 문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설치 위치, 여닫는 방식, 안팎 홍예의 크기 차이 이유를 살펴보며 정조의 전략적 사고를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국대급 갤러리·작품 만나는…‘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 [주말, 여기어때]

“아트페어는 처음이에요. 평소에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면 한 작가의 작품이나 특정 콘셉트에 따른 작품들만 보게 되는데,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여러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 개막 둘째날 전시장을 찾은 강 양(14·수원시 영통구)은 눈을 반짝 거리며 전시장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평소 미술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는 “디자인쪽으로만 길(진로)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 순수미술의 세계를 처음 접해보고 다양한 미술 분야를 알게 돼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경기 남부권 최초의 대규모 아트페어 ‘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이 지난 27일 VIP 프리뷰를 시작한 데 이어 30일까지 4일간의 축제를 이어간다. 화랑미술제는 40여년 전통의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이자 설립 10년 이상의 한국화랑협회 소속 갤러리(화랑)들이 시민과 콜렉터(수집가), 바이어(구매자)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문화교류의 장이다. 특히 올 4월 코엑스에서 열린 ‘2024 화랑미술제’를 이어받아 광교 호수공원에 위치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경기지역의 인프라를 활용해 지역의 미술시장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비서울권에선 부산을 제외하고 처음 열리는 화랑미술제는 화랑협회에도 갤러리와 작가들에게도, 시민에게도 실험적인 도전이다. ■ MZ 눈길 사로잡는 트렌디함부터 품격까지…어떤 작품, 갤러리 둘러볼까? 이번 미술제에는 한국화랑협회 소속의 서울, 경기, 대구, 부산, 울산 등 국내 대표 갤러리 95곳, 특별전 포함 6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2천5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랑 받는 블루칩 중진, 원로 작가들의 유명 작품부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의 하이라이트(우수) 섹션 선정 작가, 독특하고 감각적인 색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눈길을 끌었다. 전시 현장에는 미술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한 20~30대 MZ 콜렉터부터 외국인 관람객, 유모차를 끌고 작품을 둘러보는 가족 단위 시민 등 다양한 이들이 모여 들었다. 유명 스포츠카 페라리가 눈길을 끄는 김명진 작가(갤러리가이아)의 작품은 전시 첫날 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 신호탄을 쐈다. 김 작가는 큰 고래를 중심으로 젤리맨, 캔디걸, 마법사 등 다양한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세계관으로 유명한 팝아티스트이다. 2023 키아프의 우수 작가 중 한 명인 그의 작품 속에는 무한대를 나타내는 ‘1/9999…9’라는 숫자가 눈에 띈다. 무수히 많은 존재 중 하나인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돼 희망과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보다 젊고, 신선한 축제를 목표로 삼은 이번 화랑미술제에는 1985년생 전후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포진했다. ‘대왕 오징어’를 소재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며 두터운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남진우 작가(스페이스 윌링앤딜링)가 대표적이다. 갤러리가이아의 김명진 작가와 마찬가지로 2023 키아프의 우수 작가 중 한 명인 남 작가의 작품에는 괴물처럼 보이는 대왕 오징어와 이를 물리치며 정의를 구현하는 듯한 히어로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청작화랑의 젊은 작가들이 선보이는 바다를 주제로 한 상반된 작품들 역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강렬한 색감으로 위압감을 드러내는 양민희 작가의 작품 ‘홍연’ 시리즈는 거친 비바람이 불어치는 제주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양 작가는 “바다에 돌을 들여다보면 어떠한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삶을 굳건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굳센 의지와 열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용암의 불타오르는 붉은 색깔은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다시 새롭게 무언가 시작될 수 있다는 작가 스스로의 깨달음이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기라 작가(청작화랑)의 ‘윤슬’ 시리즈는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하늘 위를 올려다 보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와이어에 전기를 가해서 색을 입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는 반짝이는 잔물결을 표현한 작가는 밤과 낮 두 가지 시간대의 윤슬을 작품화했다. 작가는 바다를 바라보면 유유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우리네 평탄한 일상과 닮아있음을 표현했다. ■ 중진 작가들의 작품이 건네는 품격 젊음으로 무장한 작가들이 감각적이며 화려한 색채를 뽐냈다면 이미 다수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중진, 원로 작가들의 작품은 미술제의 품격을 더했다. 솔로 부스 중 하나인 갤러리 미루나무의 최성환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어린 시절 풍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수박밭에 자리한 원두막에 벌러덩 누워있는 누군가, 분홍빛 꽃이 만개한 들판 속 평상에 오손도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 등 가장 한국적인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최 작가의 작품 ‘산들바람’과 ‘여름방학’ 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원근법과 조금은 다른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새, 사람, 민들레 홀씨가 모두 같은 크기로 표현된 것이다. 최 작가는 “서양 중심의 원근법과 달리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새든 사람이든 꽃이든 모두가 똑같이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여숙화랑 부스에서는 한국 모노크롬의 대가이자 단색화로 유명한 김태호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김 작가는 대표작 ‘인터널 리듬(Internal Rhythm)’ 시리즈는 아크릴을 20층 이상의 레이어(층)로 쌓아올리고 이를 깎아내며 탄탄한 격자무늬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박 대표는 “단색화는 구조 자체가 그림이 된다”며 “이는 한국 작가만이 할 수 있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부스의 한쪽 벽면을 차지한 박종필 작가의 작품은 꽃이 전하는 생기로움을 더했다. 그의 작품에는 생화와 조화가 섞여 있다. 생화와 조화가 한 공간에 있으면 차이가 없음을 통해 실제와 가상의 믹싱(혼합)을 나타낸 것이다. 토포하우스에선 유니크하고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회화와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빛을 머금은 선명하고 페인팅과 명쾌한 형태가 자유롭고 천진한 아름다움, 행복을 발산하는 유준희 작가의 작품부터 19세기 남종화의 대가이자 서예가로 한국화 창시 집안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5대 손인 허준 작가의 현대적 산수화, 시각디자이너 출신의 도예가로 팝아트의 제작 과정과 순수 미술의 정신을 아우르는 박선애 작가의 유니크한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 수원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영(young)한 미술제 수원컨벤션센터 1층에서 대표 화랑들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유리창 너머 호수공원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올라간 3층은 보다 다채롭고, 수원과 경기도를 기반으로 한 지역적이며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자리 잡고 있다. 3층 컨벤션홀에는 토크라운지, F&B 라운지, 미디어 라운지, 어린이 미술 프로그램과 더불어 각종 특별전이 마련됐다. 화랑미술제 신진작가 특별전 ‘줌인(ZOOM-IN) 파노라마’에서는 강민기, 김종규, 손모아 등 화랑미술제의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의 역대 선발 작가 12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이혜진 작가는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인 수원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 4기 작가이기도 하다. 로컬문화 콘텐츠 직거래 장터인 ‘수문장 아트페어’의 청년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수문장 0! 아티스트’에도 관람객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감탄사 ‘oh!’와 ‘young(젊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낸 해당 부스는 10월 있을 본 전시의 프리뷰 형태로 총 4가지 섹션으로 구분됐다. 단색과 추상성을 나타내는 ‘모노미니’ 섹션부터 ‘모노맥스’, ‘칼라미니’를 지나 화려한 컬러감과 독특한 질감의 풍성함으로 무장한 ‘컬러맥스’까지 단계별, 주제별로 시민들이 취향에 맞춰 전시를 즐길 수 있게 구분해놨다. 인정전과 해태를 표현한 이미연 작가의 ‘메멘토’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체성을 담아냈다. 이 작가는 “변하지 않는 영원성의 금과 변화를 경험하는 은이라는 두가지 정체성의 대비를 통해 흐르는 시간 속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 무언가를 시끌벅적 사고파는 재래시장’도 한 편에 자리 잡았다. “‘화이트 월’이 주는 위계감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유통 방식을 고민했다. 그게 바로 사고 파는 걸 넘어선 행위가 이뤄지는 시장”이라는 김월식 무늬만뮤지엄 관장이 기획한 ‘2024 아트경기 미술장트-오타쿠 바자르’다. 이 곳은 예술작품이 단순히 거래 되지 않는다. 한쪽에선 ‘오타쿠 극장’이 열리고, 전시장 안에선 방석을 깔고 앉은 도사가 명리학을 토대로 작품 구입 컨설팅을 해준다. 미술 애호가들이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팔 통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획됐다. 경기도 예술과 지역예술인이 어떻게 지속성을 갖고 활동할 수 있을까란 유통방식의 고민을 담은 실험 그 자체를 만날 수 있다. ■ 어린이 위한 도슨트 프로그램에 다채로운 강연까지 전시 마지막날까지 회차별 10명 이내의 만 5세~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나만의 시계를 만드는 ‘키즈 아트살롱’과 어려운 현대 미술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설명하는 ‘어린이/가족 도슨트’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3층 컨벤션홀 토크 라운지에서는 미술 전문 기자와 변호사, 컬렉터, 교수 등 다채로운 연사들이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강연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이번 미술제는 그야말로 실험과 도전이다. 경기 남부지역에서 처음 열린 이번 대형 아트페어가 미술시장의 불균형을 깨는 단비가 될지 지역 미술인들과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1980년대부터 한국 미술시장에서 컬렉션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온 박여숙 화랑 대표는 “이건희 컬렉션 등으로 현재 미술에 관한 국민 전체의 관심도가 올라갔다. 지방은 이러한 구조가 너무 약한데, (‘화랑미술제 in 수원’을 통해) 미술시장의 저변이 확대된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바람직하다”며 “미술관계 기관과의 밀접한 연결이 이어지면 앞으로도 활발하게 수원에서의 미술제가 이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경임 한국화랑협회 총무이사(갤러리 위 대표)는 “처음 이 도시를 접했을 때 특히 광교 호수공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이곳은 경기지역의 풍부한 인프라를 통해 무궁무진한 미술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미술제와 자연의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이사는 “앞으로 최소 3년간은 꾸준하게 수원에서 화랑미술제를 열 계획으로 미술시장의 저변 확대의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남희의 길 위에서] 지중해 도시 니스에서 ‘샤갈의 블루’에 빠져

이른 아침의 항구에는 신선한 빛이 번져 가고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빛이었다. 부드럽고 투명하면서도 농밀한 빛.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그려내고자 했던 인상파의 성지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나에게도 성지. 성지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문제는 신전을 찾아온 신자의 드레스 코드가 영 틀렸다는 점. 신전의 기온을 오판한 탓에 계절에도 안 맞는 옷을 입고 벌벌 떨며 다니고 있으니. 4월의 지중해는 날씨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추울 줄이야. 올리브 나무가 자라는 곳이니 서울보다는 따뜻하겠지 싶었는데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후드티에 경량 패딩, 그 위에 바람막이 잠바까지. 거기다 스카프 칭칭 두르고 후드티의 모자까지 쓰고 다니는 패션 테러리스트가 됐는데도 추웠다. 내가 소설에서만 읽으며 로맨틱하게 상상했던 그 바람, 미스트랄 때문이다. 겨울과 봄철, 프랑스 남부에서 불어 지중해 북부로 올라가는 차갑고 강한 바람. 미스트랄에게 매일 뺨을 얻어맞으며 다니느라 얼얼할 지경이다. 어찌나 차가운지 손가락이 곱을 지경이다. 어느 날 아침 기온을 찾아보니 서울은 13도, 니스는 6도였다. 프랑스 최고의 휴양지라고 원피스를 비롯한 봄옷을 챙겨온 터였다. 내가 어찌 ‘프렌치 시크 룩’을 이기겠냐마는 나름대로 각오하고 넣어온 옷들은 트렁크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도 해변에는 반바지에 반팔 티 차림으로 앉아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이들이 있었다. 체스판을 두고 마주 앉은 두 청년이 와인으로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낮술은 몰라도 아침술은 좀 그렇지 않은가 생각을 하다가 이런 바다 앞에서라면 무죄지, 아무렴 무죄고 말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을 잊게 만드는 물색이었다. 햇빛도, 물빛도 눈부시게 빛났고 발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는 따스했다. 미세 먼지 없는 이 깨끗한 하늘과 공기만으로 여기까지 온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사실 휴양지를 좋아하지 않아 니스는 기대도 없이 들른 터였다. 30년 전, 처음 유럽 여행을 할 때 니스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야간 기차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니스에서 뭔가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여기가 왜 유명한 거지? 의문을 품고 지나갔을 뿐. 이번에는 사흘을 머물렀다. 샤갈 미술관과 마티스 미술관을 보기 위해. 샤갈, 이 복 많은 남자!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인데 난봉꾼에 가까웠던 피카소에 비하면 첫사랑과 결혼해 아내가 먼저 죽을 때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데다 살아서 자기 이름의 미술관이 건립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가 프랑스에 기증한 종교화를 주제로 꾸며진 니스의 샤갈 미술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에 귀화했지만 유대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샤갈답게 유대인들의 성경인 구약성서의 내용이 중심이다. 별 흥미가 안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미술관을 세 번 돌았다. 과연 색채의 마술사였다. 막 노을이 진 후의 밤하늘,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지중해의 물빛, 새벽녘 여명이 밝아올 때의 수평선. 이 모든 색을 부드럽게 섞어 놓은 것 같은 샤갈의 블루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이런 명작을 ‘직관’할 수 있다니 샤갈 못지않게 나도 복 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반면 마티스 미술관은 작품이 거의 다 일본에 대여 중이어서 텅 비어 있었다. 미술관이 아니어도 니스는 볼 만한 곳이 꽤 있었다. 오래된 항구도, 언덕 위의 콜린성도, 지중해가 보이는 살레야 시장도 저마다 다 아름다웠다. 살레야 시장은 카트를 끌고 가 과일이며 야채를 다 담아오고 싶었다. 무슨 시장이 이렇게 예쁜가. 무슨 과일을 이렇게 예쁘게 담아 놓나. 이곳에 일주일쯤 머물면서 매일 아침 장을 보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바람에 제동을 걸어준 건 아찔할 정도인 니스의 장바구니 물가. ‘살레야 시장이라니. 사려야 살 수가 없는 시장이네.’ 이런 농담을 혼자 중얼거렸다. 하루 종일 걷고 돌아다니느라 점심은 니스의 특산인 쏘카(병아리콩을 납작하게 부친 간식으로 담백하고 고소하다)로 대충 때울 때가 많았다. 파스타 한 개에 물 한 병만 시켜도 4만~5만원인 물가라 식당 들어가기도 무서울 정도였다. 니스에 머무는 동안 근교의 에즈(Eze)에도 다녀왔다. 에즈는 해발 427m의 중세 마을로 월트 디즈니, 비욘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즐겨 여름을 보내던 곳이다. 마을의 모양이 독수리 둥지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독수리의 둥지’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오전 9시 문을 여는 ‘이국 정원’에 가기 위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다육식물로 유명한 이국 정원은 잘 꾸며 놓은 산책로 사이로 다양한 선인장과 지중해 식물이 무성했다. 어디에나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낭만적인 정원이었다. 정원만이 아니라 에즈는 마을 자체가 아름다웠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에는 무화과며 올리브며 부겐빌레아가 그늘을 드리웠다. 아직 햇살은 여름의 그것처럼 잔혹하지 않았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집들은 햇볕과 세월에 잘 익어 반들반들했다. 에즈는 딱 내 취향이었다. 그렇게 마을 분위기에 취해 돌아다니다가 생수병 수십개를 이고 지고 나르는 청년들과 마주쳤다. 건장한 청년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몇 번을 쉬면서 마을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이곳에 사는 이들은 일상적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인구는 2천명 남짓이라는데 거주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대부분 숙박업과 관광업에 종사한다고 했다. 에즈만이 아니라 니스는 물론이고 남프랑스의 인기 있는 마을에 사는 이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불편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밀려 드는 관광객, 치솟는 물가, 청년세대를 위한 주택의 부족, 쓰레기와 소음 같은 문제들.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마을을 벗어났다. 지나가는 이의 예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라 여겨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가 되고자 도시락 통이며 물통, 수저와 장바구니를 배낭에 넣어 다니지만 내가 여행자로 사는 이상 어떤 곳에서는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으리라. 에즈에는 니체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가 이곳에 머물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있었다. 니체의 길을 따라 바닷가까지 내려갔다. 미안함은 잠시, 나는 어느새 앙티브와 칸 같은 주변 마을을 보기 위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조금 더 길게 이 도시에 머물며 이번에 놓친 것들을 찾아내겠다는 탐욕스러운 눈빛을 하고서.

“더 젊고, 신선”…경기 남부권 최대 미술장터 ‘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 개막

‘젊은 콜렉터와 MZ세대, 원로작가 작품의 어우러짐.’ 경기 남부권에서 처음으로 펼쳐지는 대규모 아트페어 ‘2024 화랑미술제 in 수원’이 첫날부터 4천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막을 올렸다. 통 넓은 바지에 선글라스, 타투를 새긴 20~30대 콜렉터들이 몰려왔고 MZ세대 작가들의 감각적인 작품들은 ‘젊은 미술제’의 분위기를 한껏 드러냈다. (사)한국화랑협회와 (재)수원컨벤션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2024 화랑미술제 인(in) 수원’이 27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개막했다. 오는 30일까지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이번 화랑미술제에는 가나아트, 학고재 등 서울, 대구, 부산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갤러리와 한국화랑협회 소속의 우수 갤러리 95곳, 특별전을 포함한 6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2천5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페어는 1979년부터 시작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장터 ‘화랑미술제’가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 열린다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이번 행사는 수원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아트 페어다. 광교호수공원 인근에 자리한 수원컨벤션센터의 인프라를 접목해 경기 남부권 중심의 새로운 미술 유통시장을 형성하고 서울 집중의 미술시장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VIP 데이가 시작된 가운데 오후 5시 전시장 로비에서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이재준 수원특례시장, 김기정 수원특례시의회 의장, 이필근 수원컨벤션센터 이사장, 유인택 경기문화재단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전시장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랑 받는 중진, 원로 작가들의 유명 작품부터 독특하고 감각적인 색채로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눈길을 끌었다. 첫날부터 갤러리가이아의 김명진, 갤러리 우의 한충석, 갤러리위의 고스, 선화랑의 이영지, 오션갤러리의 제니박, 키다리 갤러리의 최형길 작가 등의 작품이 판매되며 미술제는 활기를 띄었다. 전통의 갤러리들과 감각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는 갤러리들의 구성도 다양하다. 토포하우스갤러리에선 빛을 머금은 선명한 페인팅과 명쾌한 형태가 자유로운 천진함과 아름다움, 행복을 힘껏 발산하는 유준희 작가의 작품부터 19세기 남종화의 대가이자 서예가로 한국화 창시 집안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5대 손인 허준 작가의 현대적 산수화, 시각디자이너 출신의 도예가로 팝아트의 제작 과정과 순수 미술의 정신을 아우르는 박선애 작가의 유니크한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미술세계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열렸다. 1층 로비 좌측의 ‘작가의 아뜰리에’에서는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듯한 공간에서 작품의 탄생과정을 엿볼 수 있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이어 28일 정킹, 29일 Lily, 30일에는 안정모 작가가 참여한다. 3층 컨벤션홀에서는 신진작가 중심의 특별전과 특별부스가 열렸다. 만 39세 이하의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 ‘줌인’의 역대 선발작가 12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 ‘줌인 파노라마’, 독립영화 감독들의 영상 상영공간, 수원지역 작가 특별전 등의 부스가 미술제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한 편에선 남다른 미술장터도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2024 아트경기 미술장트-오타쿠 바자르’로 김월식 무늬만뮤지엄 관장이 기획해 아트경기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 곳은 예술작품이 단순히 거래 되지 않는다. 한쪽에선 ‘오타쿠 극장’이 열리고, 전시장 안에선 방석을 깔고 앉은 도사에게 사주를 보려는 미술 콜렉터들이 줄을 기다렸다. 명리학을 연구한 상담가가 개개인의 사주 등에 맞춰 작품 구입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다. 이소영 상담가는 “아트페어와 사주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명리학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작품의 소재와 물성 등으로 사주에 부족한 기운을 작품으로 채울 수 있도록 조언해드리고 있다”며 “좋은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필요한 상징과 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본다면 더 기분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월식 관장은 “옛날 재래시장 한쪽 편에선 서민의 삶을 봐주는 점집이 있지 않았느냐”라며 “그런 점을 차용했다”고 말했다. “화이트 월이 주는 위계감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유통 방식을 고민했다. 그게 바로 사고 파는 걸 넘어선 행위가 이뤄지는 시장”이란 김 관장의 생각은 오타쿠 바자르를 탄생시켰다. 이 곳은 지역예술인들과 미술 애호가들이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사고 팔 통로가 필요하다는 고민에 기획됐다. 전시 작품도 중·저가 위주로 구성해 미술품 소장 진입의 문턱을 낮추고 손쉬운 아트 컬렉팅의 입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올해 첫 시작한 오타쿠 바자르를 정착해 지역 마켓에 자리잡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입장 기간인 28일부터 30일까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용 도슨트, 3층 컨벤션홀 토크라운지에서의 토크프로그램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국내 정상급 갤러리와 다양한 국적, 나잇대의 작가의 미술작품을 호수공원 경치와 함께 즐기고, 힐링하며 만끽해 달라”고 말했다.

[법률플러스]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경우

증여는 당사자 일방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게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민법 제554조). 증여의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다만 우리 민법은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으면 그 구속력을 약하게 규정하고 있다. 서면에 의한 증여란 증여계약 당사자 사이에 있어서 증여자가 자기의 재산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증여의사가 문서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정도로 서면에 나타난 증여를 말하는 것으로서, 비록 서면의 문언 자체는 증여계약서로 돼 있지 않더라도 그 서면의 작성에 이르게 된 경위를 아울러 고려할 때 그 서면이 바로 증여의사를 표시한 서면이라고 인정되면 이를 민법 제555조에서 말하는 서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대법원 2003년 4월11일 선고 2003다1755 판결 참조).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데(민법 제555조), 이 경우,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민법 제558조). 여기에서 ‘이미 이행한 부분’은 증여자가 증여계약에서 부담한 채무의 주요한 부분이 실행된 것을 의미하는데, 동산의 증여는 동산의 인도가 그 이행이 될 것이고, 부동산의 증여는 물권변동에 관한 형식주의 원칙상 부동산의 인도만으로 부족하고 소유권이전등기절차까지 이뤄져야 그 이행을 한 것으로 본다(대법원 1977년 12월27일 선고 77다834 판결 참조). 또한 수증자가 증여자 또는 그 배우자나 직계혈족에 대해 범죄행위를 한 때와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해 부양의무가 있는 경우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도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민법 제556조 제1항). 증여계약 후에 증여자의 재산 상태가 현저히 변경되고 그 이행으로 인해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에도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민법 제557조). 위의 각 경우에도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한편 증여자는 수증자가 증여를 받는 동시에 일정한 부담을 부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증여할 수도 있는데, 이를 부담부 증여라고 한다. 예를 들어 증여자가 자신을 부양할 것을 조건으로 수증자에게 토지를 증여했는데,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증여자는 부담부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부담부 증여의 경우,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됐다고 하더라도 증여자는 수증자의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이미 이행이 완료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상회복으로 증여목적물을 반환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증여와 확연하게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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