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논술

<비빔밥 논술> -독 서 토 론 讀 書 討 論- ▲독서는 논술의 시작.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죠? 논술 외길 10년, 유레카 노하우를 담은 독서 커리큘럼과 토론식 콘텐츠가 여러분을 알찬 논술의 세계로 이끌어요.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면 금상첨화겠네요. <벙어리들> 논술로 읽기 : 벙어리 두의 입을 굳게 다물게 만든 진짜 정체는? “남은 오후 시간은 몹시 지루했다. 이바르는 그저 피곤하고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 무언가 얘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무룩한 그들의 얼굴에는 일종의 오기같은 것만 보일 뿐이었다.” 20일의 파업이 무위로 돌아가고, 사람들은 일터로 돌아왔다. 하지만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넓은 작업장은 망치 소리와 기계톱 소리가 윙윙 채울 뿐이다. 주인공 이바르도 최고참 발레스테르도, 조합대표인 마르쿠도 저마다 할말을 가슴속에 묻어버린 벙어리들이다. 그오후에 공장주 라살의 아이가 갑자기 위독해졌다는 소식이 작업장에 날아든다. 일꾼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어깨가 축 처진 채 ‘잘들 가쇼’ 하고 인사하는 라살에게 끝내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한다. 그들을 벙어리로 만든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김지나(상임연구원) ▲벙어리들 <작 품 해 설> 부조리 앞에서 벙어리가된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 침묵의 강이 흐른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강은 직공과 주인이라는 관계 때문일까? 참으로 무엇이라 말하기 힘든 저마다의 현실, 그 부조리한 현실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벙어리로 사는 것 아닐까? ‘어느 토요일 저녁, 학원 수업을 마치고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갑자기 입을 여는 것조차 쉽지 않은 기분이었다. 지쳐 보이는 어머니는 등을 보인 채 덤덤하게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TV 뉴스를 보고 계시는데, 그 뉴스가 귀에 들어오는지 알 수 없다. 동생의 방문은 언제나처럼 닫혀 있다.’ 이 건조해 보이는 어느 가족의 일상은 사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자주 접하는 모습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입을 여는 순간, 오히려 더 격렬한 갈등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학원에서 돌아온 ‘나’가 동생의 방문을 열자, 동생은 무엇을 하던 중이었는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며 화를 벌컥 낸다. 동생의 화에 기분이 상한 나는, 어머니에게 배고파 죽겠다며 밥을 빨리 달라고 화풀이를 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가 이 집의 식모냐, 학원에 갔다왔으면 인사부터 할 일이지 왜 신경질이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그 소리에 거실에 계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한마디 한다. ‘공부하다 온 아이에게 빨리 밥을 줄 일이지 화를 낼 건 뭐냐고.’ 아버지의 말은 도화선이 되어 두 사람의 격렬한 싸움을 촉발한다. 뭐, 이 정도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시나리오로 상황이 전개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가족들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리하여 침묵의 장막이 가족과 가족 사이에 길게 드리워지는 것이다. 침묵은 최소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가슴속에 그늘져 있는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이 침묵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여러분들은 어떤가? 하고 싶은 말은 태산인데 정작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경험은 없었나? 그때를 잠시 회상해보고 왜, 무엇 때문에 입을 열 수 없었는지 말해보자. 물론 위의 경우는 카뮈의 단편소설 <벙어리들>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주인공 이바르와 최고 고참 일꾼 발레스테르를 비롯해 에스포지토, 마르쿠, 소년 발르리 등은 제통소에서 통을 만들고 수선하는 작업을 하는 직공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일하는 제통업은 망해가는 판국이었고, 따라서 사업주들은 어떻게든 급료를 낮춰 수지를 맞추려 할 뿐이었다. 하루하루 체념하며 살아가던 그들은 어느 날 참다못해 주인과 담판을 벌이지만, 주인 라살은 거두절미하고 ‘싫으면 나가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이 일로 열대여섯 명의 직공은 파업을 강행하지만, 파업은 고작 20일 만에 아무런 소득도 없이 철회된다. 사람들은 다시 제통소로 돌아가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들 벙어리가 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던 것이다. 언뜻 실패한 파업 때문으로 보이는 그들의 침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그들에게 일터는 어떤 의미일까? 그저 통을 만드는 기술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소중한 것이었는데, 첫 담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떠날 테면 떠나라고 말한 주인 라살에게 그들은 심한 배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라살의 아이가 다쳤을 때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워했고, 그러면서도 라살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사람들 사이에 침묵의 강이 흐른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강은 직공과 주인이라는 관계 때문일까? 참으로 무엇이라 말하기 힘든 저마다의 현실, 그 부조리한 현실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벙어리로 사는 것 아닐까? ▲ 40대 노동자, 이바르 주인공 이바르는 제통소(통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40대 노동자로, 다리가 불편하다. 제통업이 사양산업이 되어가고 있지만, 자신의 기술을 버리고 전업할 꿈도 꾸지 못한다. “전업하는 그 자체야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자신의 지식, 손에 익은 기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바르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 구구절절 우리 사회의 40, 50대 가장들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바르가 직면한 직업적 위기 상황마저도 지금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겪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이바르의 제통소는 기술 진보로 더 이상 통을 만드는 일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처럼 IT 기술의 진보는 수많은 직업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던가. 사회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은 모두 변해야 산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몇십 년 동안 해온 일을 두고, 새 일을 찾으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일 수 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바르지만 “스무 살 때 그는 바다를 아무리 보아도 싫증”을 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다는 그에게 언제나 즐거운 해변에서의 주말을 약속해” 주었고, “절름발이이면서도, 아니, 절름발이여서” 수영을 무척 좋아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시가지 한쪽 끝 제통 공장으로 가는 동안 통 바다를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제통 공장’이 이바르의 현실이라면, ‘바다’는 이바르에게는 청춘이며, 꿈이며, 열정이었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렇듯, 이바르는 결혼하고 아들을 낳자, 먹고 살기 위해 부업으로 토요일엔 제통 공장으로, 일요일엔 또 어딘가로 일을 하러 다녔고, 더 이상 깊고 맑은 물, 강렬한 태양, 여인들의 육체로 대표되는 이 고장의 행복을 만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일상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통 메우기 기술은 오랜 숙련이 필요한 어려운 기술이었는데, 이바르가 바로 그런 숙련된 통장이였고, 그것은 그의 자랑이었다. 이바르는 일터에서 돌아와서 집 테라스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해가 기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유를 즐기는, 그런 가장인 것이다. 하지만 파업으로 시작된 상황은 그의 입에 굳게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다시 일하게 되었다는 말에 아내 페르낭드는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주인이 올려주기로 했군요!” 그러나 파업은 실패하지 않았던가. 이바르는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동료에게도, 사정을 뻔히 아는 공장주 라살과 발레스테르에게도 마음속 진심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바르가 왜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는지 전후 상황을 고려하여 그 이유를 찾아 말해보자. ▲ 벙어리가 된 사람들 주인공 이바르는 위기 상황에서도 조용히 체념하며 가족과 일상에 대한 소소한 사랑으로 행복을 채워가는 소시민이다. 이바르 외에 다른 동료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그 외에도 피부가 검붉은 털보 에스포지토, 테너 가수 같은 머리를 한 조합 대표 마르쿠, 공장의 유일한 아랍인 사이드, 감독 발레스테르, 소년 발르리 등이 있다. 최고참 발레스테르가 파업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온 사람들을 위해 공장문을 열어준다. 하지만 그 역시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다. “직공들 중 가장 연장자인 발레스테르는 애초에 파업을 반대했었다. 그러나 에스포지토에게서 주인의 배나 불려주는 사람이란 말을 들은 뒤로 줄곧 아무 말도 않고 있는 터였다.” 에스포지토의 말처럼 주인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서 주인에게 아첨하느라 파업을 반대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는, 후자 쪽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업계 전체가 기울고 있고, 주인 라살 역시 악하고 영악한 인물은 아니지 않는가. 이바르가 라살에 대해 품은 감정 역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발레스테르는 중간 관리자들이 일반 노동자들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듣는 악담을 들었고, 그리하여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발레스테르는 어쩌면 직공들의 입장도, 라살의 입장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을 거고, 누구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니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러분이 발레스테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었겠는가? 조업을 멈춘 작업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발레스테르의 지휘로 일을 시작하자 비로소 “공장 안에는 다시 하나의 열기가, 하나의 생명이 차츰 움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노동으로 다시 생기를 되찾은 작업장.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술로, 무엇인가 사람에게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것. 노동이 가진 이러한 가치를 직공들은 누구보다도 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얼마 후 작업장에 들어선 라살은 발르리에게, 마르쿠에게 말을 건넸지만 직공들은 묵묵부답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넓은 공장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망치 소리와 기계톱 소리뿐이었다. ▲ 왜 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나? 다시 돌아온 작업장에서 이바르는 아랍 노동자 사이드와 점심을 나누어 먹는다. 그의 점심은 달랑 치즈만 들어 있는 샌드위치였다. 그가 좋아하는 스페인 식 오믈렛이나, 기름을 둘러 구운 비프스테이크도 들어 있지 않았다. 사이드는 아예 마른 빵조차 싸올 형편이 못되어 점심 시간에 나무 부스러기들 속에 벌렁 드러누워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직공들의 처지는 이랬다. “체념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러나 체념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입을 닫고 산다…. 말 한마디 않고 똑같은 길을 매일 아침, 점점 숨 가빠지는 길을 가서는, 주말이면 언제나 남는 것 없는 돈을 그저 주는 대로 받아 온다…. 못할 노릇이다.” 결국 직공들은 체념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 주인과 담판을 하러 나선 것이다. 물론 그들도 알고 있다. 라살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의 제통업이 점점 기울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임금을 올려달라고 면담을 요청한 것인데, 라살은 그런 그들을 향해 매몰차게 말한다. 싫으면 아예 나가버리라고. 직공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 라살에 대한 깊은 배반감이 하나일 것이다. 자신들의 사정을 몰라주고 어렵게 말문을 연 면담에서 그렇게 모진 말을 하다니. ‘싫으면 나가라’는 말은 직공들의 입을 채운 자물쇠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그 일을 함으로써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직공들에게 일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 한마디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작업장에 라살이 나타나 직공들에게 인사를 건네도 그들은 그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기가 회복되면 요구하지 않아도 들어줄 테니 합심해서 일하자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라살은 어떤가. 라살 역시 큰 배반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함께 잔뼈가 굵으며 일해온 처지인데, 경기가 좋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건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직공들이 야속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홧김에 싫으면 나가라고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고참 일꾼 에스포지토에게도, 직공들에게도, 이바르에게도, 라살에게도 모두 그 나름대로의 고민과 고충이 있는데, 그들 모두는 각각의 입장과 처지를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 것이다. 라살은 아무리 직공들과 허물없이 생활해왔다고는 해도 한번도 직공들의 집을 가본 일이 없으니 그들의 삶을 제대로 알 턱이 없고, 직공들 역시 주인 라살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이 부조리함이 만들어낸 상황이 그들 모두를 침묵하게 만든 것 아닐까. 그러고 있는데, 사장의 아이가 쓰러졌고, 구급차가 왔다. 위독하다는 소식도 들렸다. 직공들은 속으로 걱정을 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자코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퇴근을 하기 위해 몸을 씻을 때, 라살은 어색하게 “잘들 가쇼.” 하고 인사를 건넨다. 이바르는 막 무슨 말인가 하려 했지만, 문은 이미 닫혀버리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이바르는 그 모든 잘못이 사장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젊었다면 바다 저 너머로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무엇이 그들의 입을 굳게 닫게 만들었나? 순하고 정직한 직공 이바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황혼이 달려오고 있는 바다를 향해 선 채 이렇게 말한다. “아아, 라살이 잘못한 거야!” 이 작품을 노동자와 고용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노동소설로 읽기는 무리다. 아들이 쓰러져 위독한 상태에 빠진 라살의 딱한 처지와 그 와중에도 직공들에게 위로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라살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또 직공들과 함께 일하면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직공들과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구조적인 문제이다. 직공들은 어떤가? 그들은 가난한 중에도 도시락을 나눠 먹고, 아이가 위험에 빠지자 라살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을 가진, 선량한 사람들이다. 임금 인상 요구를 거절한 라살이나, 파업을 한 직공들이나 모두 승자도, 패자도 아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침묵의 책임이 라살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 작품에 나타난 직공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대체 모두의 입을 굳게 막은 진짜 정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60대 이바르를 비롯한 직공들의 처지와 우리 아버지들의 처지는 분명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의 가장들은 그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닥친 본질적인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집안에서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아버지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의 침묵, 동생의 침묵만큼 아버지의 침묵에도 틀림없이 우리가 짐작하기 어려운 어떤 이유가 숨어 있지 않을까? ▲벙어리들 <토론해봅시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왜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게 되었을까요? 이 모든 침묵의 책임이 라살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만일 아니라면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밝히세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1960) 프랑스의 작가, 극작가, 평론가. 프랑스령인 알제리 몽드비 출생. 아버지는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고, 스페인계 어머니는 청각장애를 가진 문맹(文盲)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버지가 참전하여 전사하자, 그는 어머니를 따라 알제리의 빈민가 벨쿠르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수년간 그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겪게 된다. 동물적인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말수가 적은 어머니가 가정부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아이들의 교육과 집안일은 환상적이며 독단적인 데다가 거칠고 극성스러운 할머니가 맡아서 하게 된다. 극히 대조적인 두 여인의 모습은 그의 작가로서의 성장에 큰 영향을 마치게 된다. 카뮈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매일같이 무리하게 일을 했고, 끼니조차 거르기 일쑤였다. 결국 1930년 폐결핵에 걸리면서 죽음과 대면하게 된다. 이처럼 인생의 첫 관문에서 겪게 된 빈곤, 비참,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체험은 그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사상에 밑바탕이 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흔히 ‘부조리의 문학’이라고 일컫는다. 그는 인생의 근원적인 무의미에 대한 반항을 역설적으로 그려내는 한편,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으며, 간결한 문체로 부조리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이방인> <최초의 인간>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 <시지프의 신화> <전락> <반항적인 인간> 등이 있다.

지역명문 세계를 꿈꾼다 / 이천 효양고

‘창의와 성실’로 다양한 인성교육과 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고객만족 명품학교 ‘효양고등학교’.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비평준화 공립 인문계고등학교인 효양고등학교(교장 김택윤)는 지난 2004년에 개교했다. 비록 역사는 짧지만 2007년 제1회 졸업생부터 서울대에 합격생을 배출하는 지역의 신흥 명문고로 도약하고 있어 지역사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이 학교가 지역의 떠오르는 학교로 되기까지는 그 무엇보다 효양고등학교만의 독특하고 확실한 교육적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효양고등학교는 이천의명산 효양산 기슭에 위치해 최고의 초현대식 교육시설로 현대화 된 과학실, 멀티학습실, 시청각실, 어학실, 음악실, 미술실, 개가식 도서실, 심화 학습실, 체력단련실 등을 조성,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최적의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글로벌 인재육성을 위해 원어민교사 유치와 우수시설 확보를 통해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방과 후 활동 거점학교’ ‘자연과학 과정 특성화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수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조 교실’ 등 다양한 교육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내실있는 교육과 교사들의 철저한 진로지도로 올해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 고려대를 비롯한 각종 대학에 97%의 진학률을 보여 지역의 우수한 중학생들이 이 학교로 지원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들 우수 신입생에 대해 겨울방학을 이용 입학 전에 국·영·수 무료 선행학습 과정을 실시하고 원어민 교사와 함께하는 ‘영어 캠프’, 서울지역의 명문대학 견학, 문화행사 관람, 학부형 초청 입시간담회 등 앞서가는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올해 경기도 교육청 지정 ‘자연과학과정 특성화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 학교는 과학분야 권역별 창조교실을 운영하여 학생들의 이공계 진로 및 진학 기회를 확대시켜 주고 있으며 물리 화학 생물 수학 등 7개 분야에 따라 10명의 교사들이 교재개발과 교수방법의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 특별활동 영역에서는 기초과학 실험반, 천체올림피아드반, 수리논술반, 정보화컴퓨터반, 발명동아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진지한 탐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으로 ‘2007년도 학생과학탐구동아리 발표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효양고등학교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학교발전을 위한 중장기 3단계 발전계획을 세우고 현재 2단계 ‘발전 확대기’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와함께 지자체와 도교육청이 주관하는 ‘사교육 없는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학교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제화 세계화 추세에 발맞춰 중국 상해시의 대동중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여름방학을 이용, 자매학교와 다양한 교육활동 교류와 문화체험을 시행하고 있으며 호주의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권의 명문고로 도약하고 있는 효양고등학교는 ‘희망을 키우는 효양고등학교’의 슬로건으로 ‘꿈·도전·밝은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글로벌 인재육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천=김태철기자 kkttcc2580@kgib.co.kr < 인터뷰 > 김택윤 교장 “세계에서 빛날 글로벌인재 육성” -학교를 소개한다면. ▲우리 학교는 개교 4년차로 최신시설을 갖췄으며 밝은 태양을 맞이하는 효양산 기슭에 위치해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신흥 명문고로 발돋움 하고 있다. -학교를 운영하는 방침은. ▲꿈을 펼치는 학생상, 존경받는 스승상, 가정처럼 즐거운 학교상 정립을 추구하고 있다. 또 꿈, 도전, 밝은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도덕인, 실력인, 협동인을 육성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의 교육계획은 무엇인가. ▲학교 교육은 학교를 아끼는 교육가족의 참여로 더욱 발전하고 새로운 역사가 쌓여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 우리나라, 더 나아가 세계속의 빛나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라도록 교육활동을 펼치겠다. -끝으로 학생과 교사에게 당부할 말은. ▲학생들은 꿈을 갖고 도전하는 창의적인 자세로 학업에 임해야 할 것이며 교사들은 정성을 다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실력있는 교사로 거듭나야 한다.

비빕밥 논술

<爭 點 討 論> 시사쟁점등 매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심도있게 생각해보는 코너. 정보의 바다에서 알짜만을 건져 올렸죠. 어때요? 벌써 빠져들고 싶죠? 뭘 망설여요. 그럼 빠져봅시다!! ‘한동안 침체되어 왔던 한국영화계가 <디워>의 흥행몰이로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워>가 몰고 온 논란은 영화계를 넘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네티즌과 영화 평론가들의 <디워>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달라 시작된 <디워> 논란은 이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디워> 논란으로 인해 네티즌들과 충무로 영화인, 평론가들 사이의 감정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기도 했는데요. 네티즌들은 왜 그토록 <디워>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과 열정에 감동해서일까요? 미국시장에 당당히 진출하게 된 민족적 자부심의 표현일까요? 또한 <디워>를 혹평하는 이들에 대한 집단행동은 무엇 때문인가요? <디워> 논란 속으로 함께 들어가봅시다. /김인규 상임연구원 <생 각 열 기> <디워>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공중파 방송의 ‘100분 토론’이었습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공중파 방송의 시사토론 주제로 정한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한 TV 토론 프로그램은 타당한가? 개봉 전부터 예매율 1위를 차지하며 관객의 기대를 모았던 <디워>가 지난 8월 1일 개봉했습니다. <디워>는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끌어 모으며 폭발적인 흥행몰이를 했는데 영화의 흥행과 함께 영화를 둘러싼 논쟁도 한층 뜨거워져 갔습니다. 급기야 지난 8월 9일, 개봉한 지 열흘도 안 돼 <디워>는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의 토론주제로 선정됐습니다. MBC 시사프로그램 ‘100분 토론’에서 “<디워>, 한국영화의 희망인가?”라는 주제로 패널들끼리 열띤 토론이 벌어진 것입니다. 방송이 끝난 이후 <디워> 논란은 평론가와 네티즌 사이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이를 두고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공중파 방송의 시사프로그램 토론주제로 삼은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시민 1 <디워>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해서,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를 TV 시사토론 주제로 삼은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해요. 방송에 나온 내용들도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어떻고, 작품성이 어떻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도 영화매체에서 다루면 될 것을 굳이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할 필요성은 없었죠. 그리고 패널들이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 내용까지 말할 땐 너무 한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결국 생산적인 토론이 되지 못하고 논란만 더 키운 꼴이 되어버렸잖아요. 시청률을 의식한 무책임한 편성이라고 생각해요. ♣ 시민 2 시사프로그램이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라고 봐요. <디워>는 흥행열풍을 몰고 왔을 뿐만 아니라 네티즌과 평론가들 사이에 논쟁이 촉발된 영화이기도 하죠. ‘100분 토론’에서 <디워>를 토론주제로 삼은 것은 단순히 영화의 작품성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죠. 한동안 침체되어 왔던 한국영화계에 <디워>가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인지 진단해 보는 것으로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의 토론주제로 잡아 방영한 것은 적절한 결정이었을까요? 자신의 생각을 말해봅시다. <디워>에 대한 열광은 빗나간 애국주의의 발로인가? 명제Ⅰ. CG기술만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논할 수는 없다! yes> (빗나간 애국주의다)CG기술은 영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영화의 완성도를 논할 때는 극적인 이야기 전개와 주제의 형상화, 배우들의 연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CG기술이 훌륭하더라도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와 잘 조화되지 못하면,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화려한 CG기술로 만들어낸 영상은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지는 몰라도,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고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데 CG기술만 우수하다고 해서 웰메이드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CG기술은 영화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기능만 할 뿐이지, 작품성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가 아니다. 또한 괴수영화, SF영화라고 해서 스토리의 개연성과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배우의 연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장르영화라 해서 영화의 근본적인 속성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CG기술만으로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논하거나, CG기술만 뛰어나도 괜찮다고 옹호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No> (지나친 비판이다)영화는 장르가 구분되어 있다. 멜로영화, 코미디영화, 예술영화, SF영화, 성인영화와 어린이영화 등 각각의 영화장르에 따라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바도 달라진다. 작가주의 예술영화에서는 시나리오의 치밀한 구성과 이야기 전개, 감독의 주제의식, 배우들의 완숙한 연기 등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하지만 괴수영화나 SF영화는 다르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설사 등장하더라도 괴수나 로봇이 주인공일 수 있다. 관객들이 괴수영화와 SF영화에서 원하는 것은 감독의 사회성 짙은 주제의식이나 혼신을 다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다. SF 괴수영화에서는 괴수의 CG를 빼놓고 완성도를 논할 수 없고 특수효과와 CG 등 기술적인 뒷받침이 대단히 중요하다. CG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영상이 자연스럽고 스펙터클할 때 관객들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 현대 SF영화에서 CG기술이 미진하면 시나리오가 훌륭하다 해도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괴수영화에서 CG기술의 완성도를 높였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명제Ⅱ. 평론가는 국익과 상관없이 작품 자체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명제Ⅲ. 애국주의적 접근은 한국 영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제Ⅳ. <디워> 팬들의 집단행동은 ‘사이버 전체주의’에 가깝다 <쟁 점 이 술 술~> 영화 <디워>에 대한 논란이 사회현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습니다. 토론에 앞서 <디워> 논란의 핵심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봅시다. {img5,L,300}1. <디워>는 어떤 영화인가요? 영화 <디워>는 6년의 제작기간과 순수 제작비 300억 원이 소요된 대작이에요. 제작기간과 제작비용 면에서 국내 최고지요. <디워>는 기획단계에서부터 국내시장이 아닌 미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등 전세계 시장을 겨냥하여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어요. 특히 <디워>는 자체 인력만으로 컴퓨터 그래픽(CG)기술을 완성하여 국내 특수효과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또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1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잡고 이달 14일 개봉, 벌써부터 흥행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어요. 현재 <디워>는 영화개봉 19일 만에 관객 700만 명을 돌파해 올해 최고 흥행작으로 떠올랐어요. 2. 심형래 감독은 어떤 인물인가요? 심형래 감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코미디언 중 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영구와 아기공룡 쭈주> <드래곤 투카> <용가리> 등의 영화를 만들며 SF 괴수영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애착을 보여 왔어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심 감독은 99년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된 바 있어요. 3. <디워> 논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디워> 논란은 영화 <디워>를 본 네티즌들의 평가와 영화 평론가들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시작되었어요. 사실 평론가의 평점과 흥행, 관객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번의 경우 그 차이가 극심하고 <디워>에 대한 네티즌들의 기대가 커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기 시작했죠. 특히 개봉 직후 독립영화 감독 이송희일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디워>에 대해 비판한 글을 올린 것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면서 논란은 증폭되었어요. 이송희일 감독은 “<디워>는 영화가 아니라 1970년대 청계천에서 조립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며 비판했고 이에 대해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 이 감독에 대한 악성 댓글 공세가 이어지기도 했죠. <디워> 논란은 8월 9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서 다룬 이후 극에 달했어요. 이 토론에서 진중권 문화평론가는 <디워>에 대해 혹평을 했고 이후 언론을 통해 네티즌들의 집단행동을 빗나간 애국주의나 전체주의라 비판했죠.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오히려 충무로나 평론가 집단이 대중을 무시하며 권력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대중이 적극적으로 문화 상품에 대한 평가에 나설 수 있는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평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죠. 4. <디워> 논란에서 대립되고 있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논란은 영화 내적인 부분과 영화 외적인 부분으로 사실상 나뉘어 있어요. 초기 논란은 영화의 작품성을 두고 시작되었어요.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함에 있어 영화의 기본 서사구조와 CG기술의 우수성이 대립되기도 했죠. 작품 속에 포함된 애국주의적 코드도 논란 속에서 자주 거론되는 부분이에요. 영화 말미에 아리랑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심형래 감독의 인생역정을 자막으로 처리한 부분을 두고 찬반 논란이 많았죠. 영화 외적으로는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자체 개발 CG기술이 할리우드 수준으로 발전했고 이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할리우드를 정복하겠다는 식의 홍보가 논란의 대상 중 하나가 되었죠. 또한 코미디언 출신인 심 감독이 언론을 통해 한국 영화의 온상인 충무로로부터 외면당했다고 발언한 것 때문에 충무로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심 감독과 충무로의 대립이 자주 거론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디워>를 옹호하는 네티즌들이 반대 의견에 대해 집단행동을 보이기도 해 <디워> 현상이 우리 사회의 부정적 애국주의나 전체주의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5. <디워> 현상을 잘못된 애국주의적 경향이라 볼 수 있나요? 이 부분은 이번 토론의 핵심 내용이기도 해요. 일각에서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악성 댓글이나 신상공개 등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는 양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해요. 마치 황우석 사건 당시 황우석을 옹호하는 집단이 보여주었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어떤 현상이 옳건 그르건 간에 집단적 광기에 매달려 소수의 견해를 무참히 박살내고야 마는 <디워>팬들의 행동에서 ‘전체주의 경향’을 읽을 수 있다고 우려해요. 반면 일부 과격한 사이버 테러가 있었지만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네티즌들의 힘이 그만큼 강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요. 자신의 의견을 적극 표명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등 사이버 민주주의의 긍정적 경향으로 정착될 수 있다는 설명이죠. 또한 <디워> 현상이 애국주의적 경향이기보다 사회적 상실감이 큰 젊은 층이 어려운 역경 속에서 성공을 거둔 심 감독에게서 희망을 본 것이라는 설명도 있어요. <유레카논술 제공>

NGO는 새로운 권력주체가 될 수 있는가?

▲새롭게 부각되는 시민 사회 단체 자발적 결사체 가운데에서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시민 사회 단체이다. 시민 사회 단체는 공공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시민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시장 영역, 정치 영역과 함께 민주 사회를 이끌어 가는 3대 축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성숙과 함께 시민 사회 단체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 여성 민우회,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참여 민주 사회 시민 연대, 환경 운동 연합, 경제 정의 실천 시민 연합 등 매우 다양한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문제에서부터 전국적인 문제, 그리고 국제적인 문제까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국제적인 연대를 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시민 사회 단체의 활동이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 교육인적자원부 - 111쪽> ▲자발적 결사체의 발전 자발적 결사체 중에서 요즈음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쳐 사회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 바로 비정부기구, 즉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이다.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조직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다양해진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NGO는 계속적으로 늘어나서 현재 그 수가 5,000개가 넘고 있으며, 한국 여성 민우회,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참여 민주 사회 시민 연대, 환경 운동 연합, 경제 정의 실천 연합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문화 - 천재교육 - 79쪽>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 NGO의 가장 큰 두 가지 특성을 알 수 있을 거야. 하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직된다는 것, 또 하나는 공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지. 특정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와 NGO가 어떤 점이 다르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겠지? 그래서 교과서에서는 ‘시민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시장 영역, 정치 영역과 함께 민주 사회를 이끌어 가는 3대 축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어. 근데 이 말은 무척 의미심장하지 않아? 이것은 곧 경제와 정치 영역 외에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제3의 세력으로서 NGO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말이잖아? 실제로 미디어에서 접하는 NGO의 활동모습은 우리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일본의 포경선과 ‘전투’를 방불하는 집회를 벌이는 그린피스 회원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고래잡이 반대에 동조하게 만들고 말아. 이들의 활동은 정부가 벌이는 어떤 캠페인이나 구호보다도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면이 있어. 이런 NGO의 영향력과 가능성을 놓고 새로운 권력이동의 주체로 보는 시각도 생겨났어. 왜 현대 사회에서 NGO와 같은 비정부 기구, 비영리 기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일까? 여러분은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는 말을 자주 들어 봤을 거야.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뽑았지만 자신들의 당리당략 싸움에 민생현안은 해결하려고도 않지. 정부 공무원이나 관료들은 또 어때? 상명하달식의 관료제는 위에서 정해진 것을 기계적으로 수행할 뿐 이런 일들에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워. 또 정부가 추진하는 일이 반드시 시민들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 ‘어떤 시민’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어떤 시민’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하지만 현대는 과거보다 더 다양한 사회갈등이 존재하고, 개인의 권리와 요구에 대한 의식도 많이 신장돼 있어. 그런데 이런 갈등과 요구를 조정하는데 옛날처럼 국가가 강제적으로 밀어 붙인다던가, 정글의 원칙이 지배하는 자유시장에 맡긴다면 어떻게 되겠어? 사회는 끊임없이 갈등과 혼란이 지속될 거야. 설혹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해도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전체 국민, 아니 전세계인들이 불행해지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서 NGO와 같은 기구들이 나타나 정부나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거나 견제하는 것이지. NGO는 어떤 일을 하는가? NGO의 대표적인 일은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야. 부정부패 감시, 환경파괴 고발, 전쟁반대,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나 그린피스의 환경캠페인 등이 대표적인 예야. 사실 NGO에 대한 가장 큰 이미지는 바로 이러한 고발과 감시, 견제의 이미지이지. 또 하나 대표적인 것은 복지기능이야. 국가나 정부 차원으로 할 수 없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 재난구호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 ‘바람의 딸’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한비야씨가 속한 월드비전이 바로 이런 일을 하고 있어. 아프리카에 의약품이나 식량을 원조하고 쓰나미 같은 재난을 당한 지역에 긴급구호물자를 투입하는 일 등이지. 그 외에도 여성이나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거나 정부와 시민의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는 것, 시민을 상대로 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 등이 NGO의 주요 활동 내역이야. NGO는 새로운 권력인가?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NGO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도 분명히 존재해. NGO가 정부나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으려면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이 독립성이야. 예를 들어 삼성에 대해 소액주주운동을 펼쳤던 참여연대가 삼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어? 당연히 기업에 대한 비판의 칼날이 무디어지겠지.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정부의 토건사업 중심의 막개발에 반대하고 나서는 환경단체가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면 시민기구 특유의 견제, 감시 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NGO자체는 비영리집단이기 때문에 후원이나 상업적인 활동이 없다면 재정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야. 국가는 세금을 걷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일 수 있지만 NGO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력이나 경제력을 원조받는 것도 시민의 자유의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거야. 또 NGO가 정치 권력화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어. NGO가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와 압력을 행사하면서 유권자나 일반시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야. 만약 시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름난 NGO의 활동가가 정치권이나 관료로 전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NGO 활동가들이 관료로 진출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버린다면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NGO 활동에 동참하는 사람도 많아지겠지. 당장 요즘의 대학생들도 순수한 동기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점수를 받기 위해 NGO 단체 주최 캠프나 인턴십에 참여한다고 하잖아. 이것은 현대 시민들이 NGO 기구들에 대해 긍정적이고 믿을 만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새로운 병폐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이 외에도 국제 NGO 기구의 활동이 서구 중심으로 편향돼있는 문제가 있어.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인권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서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 NGO의 도움을 받아 자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의 지배권을 강화시킬 위험이 있지. 만약 여러분이 오늘 그린피스나 녹색연대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고 생각해 봐. 이들의 정책에 동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후원금을 내거나,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했다면 여러분도 이미 NGO의 일원이 된 거야. 그런 사람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테고 바로 그런 이들이 미래 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을 테지./정윤희 (상임연구원)

토론과 논술 1

◇생각열기= “토끼와 거북이가 땅에서 달리기 시합을 한다. 경기는 매주 1회, 4주 연속 진행한다. 매 경기마다 이긴 자에게는 당근 3개를 주고, 지면 1개를 준다는 규칙을 적용 한다. 시합은 시작되었고, 결과는 토끼의 우승이었다.” 이 이야기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약간 변형시킨 것이지만 결과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육지에서 빠른 속도를 가진 토끼가 우승하여 당근 12개를 받았고, 거북이는 4개를 받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를 내보겠다. 시합에서 진 거북이가 심판관에게 따졌다. “이 경기는 문제가 있다. 토끼에게 유리하다. 토끼와 거북이가 동등한 관계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한참동안 고심하던 심판관은 동등한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멈추고 여러분도 한 번 규칙을 만들어 보자. ◇생각 쌓기= 이 수업은 모둠을 만들어서 진행을 한다. 4명이 1모둠으로 구성했다. 돌아가며 말하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한 명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적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기록이가 있고, 사회자 역할을 하는 이끔이를 정해야 한다. 여러 가지 재밌고, 창의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주장과 근거이다. 자신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와 다른 3명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다른 모둠의 친구들에게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의견이 정리되면 이끔이가 나와서 발표를 한다. 이 때 다른 모둠에서 질문을 한다. 이렇게 해서 창과 방패 놀이가 시작한다. 실제 수업에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학생들이 동화적 상상력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장소는 빙판에서 하며 토끼와 거북이가 썰매를 타고, 손에 장갑을 끼고 얼음지치기를 하다는 규칙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규칙은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동화적 상상력으로 문제해결을 한 것이다. 현실에서 가능한 대안을 내세워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육지와 바다에서 10m 경주를 시켜서, 거북이와 토끼의 평균 속도를 측정해서 출발점을 다르게 설정하고, 100m 트랙을 두 개 만들되 토끼는 땅, 거북이는 물에서 경주를 하는 규칙이었다. 그리고 보상도 각자 식생에 따라서 선택권을 갖도록 한다. 매우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한 것이었다. 한 가지 더 나아간 생각은 경기의 공정성을 위하여 토끼와 거북이가 땅과 물을 번갈아 가면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우리한 장소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토끼에게도 물에서 헤엄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물에서 100m 헤엄치는 토끼가 있어야하는 데, 토끼는 물과 상극인 동물이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중이염 등으로 인해서 생명을 부지하지 못한다. 더구나 헤엄치는 토끼는 없다. 결국 이 주장은 근거를 상실한다. 그런데 물에서 100m 수영하는 토끼가 있다. 플로리다의 산호초에 사는 늪토끼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서식지의 파괴로 남아있는 늪 토끼의 서식지는 불과 몇 헥타르 밖에 안 되며, 늪 토끼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 도로를 횡단하거나 섬 사이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수영을! 한다. 이러한 근거를 찾아온 학생이 있었다. 일반인의 상식을 뒤집는 발칙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생각에 날개 달기= 글말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논증적 글쓰기가 논술이라면 입말을 언어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토론이다.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자신의 주장을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논술의 목표이기 때문에 토론과는 목표점이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토론과 논술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토론과정에서 학습자는 논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주장하고 논박을 함으로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논리적 허점을 찾을 수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관점의 다양성을 이해하여 사유의 힘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력이 향상된다. ◇삶과의 접속= 일상에서 토론을 생활하는 것이 논술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논제로 할 것인가이다. 처음부터 광범위하고 세계적인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지 말라. 자신 주변에 펼쳐진 문제부터 토론해야한다. 야간자율학습의 실시 여부나 머리 염색 파마 허용 등과 같은 학생 가까운 논제부터 시작을 한다. 시사적인 문제도 매우 적절하다. 이 때 텔레비전 뉴스, 토론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특히 텔레비전 뉴스는 1분 30초 정도 짧은 시간에 주장과 각계의 전문가 의견을 보여주기 때문에 손쉽게 가정에서 할 수 있다. 방송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뉴스 게시판이 있고, 언제든지 재생해서 볼 수 있다. 뉴스의 전문을 텍스트로 볼 수 있어서 출력해서 읽을 수 있다. 토론은 실생활에서 즐겨야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문제를 볼 줄 알고, 나의 문제로 인식하며, 자신과 관계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는 개방성을 가지고, 깊이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한다. ◇ 적용하기 1. 자신이 가장 재미있었던 토론은 무엇이었는가 그 이유를 말해보자. 2. 우리 가정, 우리 반, 우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토론꺼리들을 찾아서 토론 베스트 5를 만들어보자. 이 규 철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 운동 대표 (성문고 교사)

김봉석의 대중문화로 읽는 논술

<나고야 살인사건>의 원제는‘입 찢어진 여자’, 즉 도시괴담으로 전해지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마스크를 쓴 여자가 찢어진 입을 보이며‘나 이뻐’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아 답을 제대로 못 하면 가위로 자신과 똑같이 입을 찢어버린다는 괴이한 이야기. 70년대말 일본에서 시작된 ‘입 찢어진 여자’ 괴담은 한국으로도 건너와 ‘빨간 마스크’ 등으로 변형되어 떠돌았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나고야살인사건> 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귀신이야기들은 대체로 친구의 친구가 보았다, 아는 친척이 경험한 이야기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괴담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으니까 뭔가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설사 헛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본 사람에게 그 경험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사람이 그 순간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니까. 과거에는 그런 경험적인 사실들이 입에서 입으로 떠돌면서 변형되고,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해 민담이나 설화 같은 것들이 되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구전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개개의 작은 사건들이 삽시간에 ‘사실’로 전해진다. 그렇게 ‘사실’이라는 포장을 쓰고 퍼져나가는 정체불명의 기이한 사건들을 ‘도시 괴담’(Urban Legend)이라고 부른다. <캠퍼스레전드>란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의 원제가 바로 Urban Legend다. 근대이전까지 마을의 신기한 체험이나 귀신이야기는 제한적 일 수밖에 없었다. 근방의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외부의 장사꾼이나 유랑자가 마을에 들러 전해주는 신기한 이야기들 이마을 사람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도시는 익명성이다.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떠도는 것이 도시 괴담이다. 홍콩할매 귀신이나 빨간 마스크 같은 귀신 이야기도 있고 톡톡과 콜라를 같이 먹으면 폭발한다는 기묘한 이야기도 있다. 도시 괴담만을 모아 만든 일본 공포영화 <시부야괴담>에는 어느 역의특정 사물함에 가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거나 모 백화점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여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거나, 자동차 아래에서 손이 나와 발목을 잡았다거나 하는 괴담이 줄지어 나온다. 이런 도시괴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본의 도시괴담>(다른세상)이나 <도시괴담>(딱정벌레)을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일본의 갖가지 도시괴담을 모아놓은 책 <괴담신미미부쿠로>를 만화로 각색한 <실화괴담신미미>에도 자살한 여자의 방에서 들리는 발소리, 폐허가 된 병원에 들어갔다가 귀신을 데리고 나온 남자 등 도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기괴한 사건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링> 같은 공포영화에서 공포의 근원이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과 달리, <실화괴담신미미>에는 ‘이유’나 ‘근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그저 뭔가 불가사의한 것을 체험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버린다. 왜 나타났는지, 그 불가사의한 현상의 근원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거기에는 원인도 결과도 명확하게 없다. 오로지 현상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더 무섭다. <드라큘라>에서 뱀파이어의 공포에 떨던 이들은 그 존재가 무엇인지를 안 다음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똑같은 인간이라도 연쇄살인마가 두려운 것은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귀신도 지옥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공포의 존재다. 도시 괴담이 나오는 것 역시 그런 미지의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초자연적이든 현실적인 사건이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포로, 괴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나고야 살인사건>의 이야기는 입 찢어진 여자가 27년 만에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들이 입 찢어진 여자에게 납치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들이 생기고, 초등학교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하교를 하게 된다. 초등학교 교사인 야마시타 교코는 미카를 집까지 데려다주다가 입 찢어진 여자를 만나 미카가 납치되는 것을 보고 만다. 한편 교코는 동료 교사인 마츠자키 노보루가 납치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괴이한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입 찢어진 여자가 노리는 것은 대체로 초등학교 아이들이다. 그리고 교코와 노보루는 각각 가정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다. 교코는 1년 전에 이혼을 했고, 아이는 교코를 거부하고 남편을 따라갔다. 교코가 아이를 폭행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이를 때렸다가, 금방 후회하고 사과를 한다. 노보루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가혹한 폭행을 당하며 성장했다. 폭력의 후유증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아이들이 입 찢어진 여자의 ‘폭력’에 희생되지 않게 하기위해 힘을 모은다. 그리고 입 찢어진 여자가 노보루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 찢어진 여자의 폭행을 은밀하게 벌어지는 가정 내 폭행과 연결을 지으려 한 점은 중요하다. 가정내 폭력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아이를 때린다. 때리고 나서는 금방 후회하고 사과를 하면서 또다시 때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말은 뻔해진다. 부모를 미워하게 되거나, 맞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이 맞아야 할 이유가 있다며 자학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 내 폭행은 부모와 아이 모두가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부모가 폭행을 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고야 살인사건>은 노보루의 어머니가 입이 찢어지게 된 과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왜 그런 흉악한 괴물 혹은 귀신으로 변해야만 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노보루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을 폭행했던 것처럼, 대상을 바꿔 다른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만 보여준다. 그녀가 변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었다면,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도시괴담에서 출발한 <나고야 살인사건>을 그럴듯한 공포영화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고야 살인사건>은 그저 입 찢어진 여자의 괴이한 능력과 폭력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탓에 <나고야 살인사건>은 그저 하나의 괴담에 머무르고 있다.

매체 활용 논술지도 3

학생들의 다양한 그림 사진 자료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를 단순히 지나쳐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이 어떻게 읽히는 지 생각해 보자.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면으로 해석이 가능한 그림들이다. 여러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점을 수립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할 때 필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다음의 기사와 사진에 대한 논평을 해보자.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쉽게 받아들인 편견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신문 기사를 통해서 2005년의 뉴올리언스의 사태에 대해 ‘흑인은 약탈, 백인은 식량 구조’ 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진, 그림 자료에 대한 자신 만의 독특한 해석, 다각도의 입장에서 접근해 보는 시도 등이 쌓여서 창의적이고 본질에 입각한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포토에세이’라는 형식을 통해 신문 등에 나오는 하나의 사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적어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 자료 활용 논술의 실제> 마르셀 뒤샹(1887∼1968)은 1917년에 일상용품인 변기를 구입해 거꾸로 세운 후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란 제목을 붙여 뉴욕에서 열린 앙데팡당 전에 출품하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004년 올해의 터너상 시상식에 모인 500여 명의 미술 전문가들은 이 작품을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 작품 1위로 선정하였다. 1. 뒤샹의 ‘샘’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지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2.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자유롭게 적어보자. 권윤호 풍덕고 교사

비빕밥논술

시사쟁점 등 매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심도있게 생각해보는 코너. 정보의 바다에서 알짜만을 건져 올렸죠. 어때요? 벌써 빠져들고 싶죠? 뭘 망설여요. 그럼 빠져봅시다!! 신문의 섹션 중에 여러분들이 가장 즐겨 보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치나 경제·사회면보다는 단연 ‘문화’란을 먼저 펼치게 된다구요? 문화라는 말에는 말랑 하면서도 품위를 느끼게 하는 뉘앙스가 있어 어떤 정치성이나 사회성도 배제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이란 말 앞에 무장해제당해 마음을 놓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미지대로 문화에는 어떤 정치성과 사회성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오늘 우리가 본 영화나 드라마, 들었던 음악, 먹었던 음식, 심지어는 학교에서 받았던 교육까지 우리를 둘러싼 문화라고 지칭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더 불평등의 굴레로 옥죄고 있진 않을까요? 문화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문화가 사회적 계급구조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알아보고 앞으로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정윤희 상임연구원 <생 각 열 기> 당신의 문화자본은 몇 점? ■ 다음의 문항에서 자신에게 해당하는 경우를 선택하고 괄호안의 점수를 합하여 자신의 문화자본을 산출해봅시다. 1. 예술교육경험 정규학교 예체능 시간이나 특별활동 시간을 제외하고 최종학교 졸업 이전에 문화 예술 교육을 받은 기간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등) ① 교육받은 기간 없음 (1) ② 6개월 미만 (2) ③ 6개월~1년 미만 (3) ④ 1년~2년 미만 (3) ⑤ 2년~5년 미만 (5) ⑥ 5년 이상 (6) 2. 예술가에 대한 지식 (각 분야마다) ① 팝가수 ② 클래식 연주자, 지휘자 ③ 성악가 ④ 화가 ⑤ 소설가 ⑥ 영화감독 ⑦ 만화가 전혀 모른다 (1) 5명 이상 안다 (3) 10명 이상 안다 (5) 3. 가족과 공유한 문화자본 ① 가족이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②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다 ③ 가족들과 음악회나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다 ④ 가족들과 미술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⑤ 부모님과 함께 참고서가 아닌 교양도서/소설 등 책을 사러 서점에 간 적이 있다 전혀 없다 (1) 1~3회 정도 있다 (3) 5회~10회 정도 있다 (5) 자주 있는 일이다 (7) ● 3~15점 : 문화 자본 하류층 아쉽게도 문화 가난뱅이로 드러난 당신! 미래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공부도 좋지만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가장 손쉬운 문화 체험으로 독서와 음악 감상을 추천합니다. ● 16~35점 : 문화 자본 중산층 고만고만한 문화적 수준을 자랑하는 당신. 다만 설문 문항 2번에서 어느 한 분야에 심하게 치우치지 않았는지 점검해 보세요. 조금 더 분발하면 문화 상류층으로의 출셋길이! 휴일에 갤러리 탐방이나 UCC제작 등 적극적 문화 활동에의 도전을 권해 드립니다. ● 36~45점 : 문화 자본 상류층 독자적인 문화자본을 형성하고 있는 당신! 좋아하는 분야를 특화하여 사회에서 유용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다만 하류층과 중산층에게 선민의식을 갖지 말고, 좋은 것은 함께 공유하는 민주적 문화시민이 되세요. 문화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한편, 지배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문화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그 무엇일까요? 아니면 사회적 억압을 내면화하는 교묘한 수단일까요? 명제 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심화시켜) 수십만원에 달하는 오페라나 음악회티켓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수많은 대중들은 TV에 매몰되곤 한다. 그러한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문학이나 음악, 미술, 심지어 우리가 소비하는 패션이나 식(食)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에는 고급스러운 것과 대중적인 것의 차이가 존재하며 이것은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고급문화에는 단순히 물질적인 면에서 만의 고급스러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섬세하고 깊은 지식, 창조성, 세련됨, 장시간에 걸친 투자 등 돈으로 급조할 수 없는 역사적 배경도 존재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급문화를 동경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간의 차이가 무의미해졌다는 주장은 이런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은폐하거나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김으로써 오히려 그 장벽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심화시키지 않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은 문화향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과거의 개념이다.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문화를 평민문화와 구분해 고급문화라고 칭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문화의 영역에서도 민주화가 실현되었다. 대중문화 속에서도 고급스러운 요소를 찾을 수 있고, 일견 고급스러워 보이는 문화속에도 천박함이 존재한다. 서태지가 만든 대중음악에는 창의성과 세련됨이 존재하지만, 명품이 주는 이미지만을 좇는 부유층들의 모습에선 저급함이 엿보인다. 또한 과거 소수의 특권계층이 독점했던 문화자본은 이제 다수 대중들도 공유하게 되었고 이들은 더욱 활발히 문화의 소비자이자 생산자역할을 해내고 있다. 문화의 질적 수준을 의미하는 고급문화, 대중문화의 구분은 적절치 않다. 누가 문화의 주체이든 그 문화가 가지는 정신적, 미적가치만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명제Ⅱ. 개인의 취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에 의해 결정된다! 명제Ⅲ. 문화는 계층 간의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시킨다! 명제Ⅳ. 문화의 불평등 재생산 구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쟁 점 이 술 술~ > 문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것인데 문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니, 무슨 뜻일까요? 문화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와 기능을 알아보면서 토론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살펴봅시다. 1. 문화란 무엇인가요?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한 사회를 특징지어주는 어떤 시대, 어떤 지역의 인간들이 행하는 삶의 모든 양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유교 문화, 중세 문화, 도시 문화 등 지역과 시대, 지배적인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총체적인 삶의 방식인 것이죠.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좁은 의미의 ‘문화’란 교양이나 고상한 것과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어요. ‘문화생활을 누려야 한다’며 콘서트홀이나 영화관, 미술관 등을 찾는 경우에는 이런 의미가 강하죠. 이처럼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 준다는 면에서 진흥시켜야 할 긍정적인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커요. 그러나 문화의 개념에 ‘고상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다는 것은 문화가 기준이 되어 차별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요. 실제로 우리는‘비문화인’이라는 말이나 ‘문화 수준이 낮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러한 표현에는 특정 문화에 대한 일종의 특권의식이 반영되어 있어요. 2. 문화에도 특권의식이 반영될 수 있는 건가요? 과거 서양이 식민지 개척을 할 당시,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에 대해 ‘문화가 없다’고 하며 이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했어요. 이때의 문화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권적 의식을 내포한 개념이죠. 서구 문화의 잣대로 비서구권의 문화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생긴 의식이기도 해요. 이러한 문화 개념은 자칫 자신보다 문화 수준이 낮다고 생각되는 계급에 대한 지배나 교화를 정당화시킬 우려가 있어요. 문화가 일종의 지배의 도구, 혹은 빌미가 되는 것이죠. 3. 문화가 지배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문화가 지배층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하여 피지배층으로 하여금 복종을 내면화시킨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유교문화권에서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를 주종관계로 보고 이러한 가치를 신봉하라고 가르치는 것 역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이에요. 이러한 가르침은 직접 명령을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문화적 양식을 통해 전파되곤 해 민중의 자발적 동의를 얻게 되고, 결국 무력이나 정치적 노력 없이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도록 만들어요. 사실 불평등의 원인은 사회적인 것에서 찾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문화를 통해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현실을 은폐시키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해요. 그런 면에서 문화는 가장 섬세하고 치밀한 지배의 수단이 될 수 있어요. 특히 미디어의 대중 영향력이 커진 현대사회에서는 대중문화에서조차 이러한 위험 요소가 항상 도사리고 있어요. 4. 대중문화도 지배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될 수 있나요? 자주 접하는 미디어에서 특정 가치관을 은연 중에 유포시키면 우리도 자연히 이에 영향받겠죠. 반공이데올로기가 강조된 군사독재 시절, 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군의 모습은 늑대나 돼지로 묘사되곤 했어요. 이러한 방법은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심문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좋은 것인데 문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니, 무슨 뜻일까요? 문화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와 기능을 알아보면서 토론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살펴봅시다. 어주어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어요. 단순히 ‘북한이 나쁘다’고 선전하는 것보다 문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강하게 심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죠. 또한 대중문화는 정치적 사안과 같은 사회문제로부터 대중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유효한 수단이었어요. 정치인들은 3S(Sex, Sport, Screen)를 활용하기도 했죠. 즉 대중들에게 현실을 잊게 하고 쾌락이나 값싼 오락에 몰두하게 하여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무디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을 과소평가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해요. 한편 문화가 지배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어 영향을 미치는 것 외에 계층에 따라 ‘문화자본’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 재생산된다는 지적도 있어요. 5. 문화자본이란 무엇인가요? 1970년대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해 처음 사용된 말이에요. 경제적 자본이 자산이나 금전 소득과 같은 유형의 자본을 말한다면, 문화자본은 한 개인이 사회화 과정 속에서 획득하여 쌓은 문화적 특성과 습관을 말해요. 특정 문화를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소양, 예술품을 알아 볼 수 있는 심미안, 높은 학력, 풍부한 교양 등이 우수한 문화자본이라고 할 수 있죠. 주로 교육이나 가정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에 개인의 출신성분, 즉 계급에 의해 문화자본의 빈부가 판가름난다고 해요. 경제 자본이 갑작스레 풍부해진 졸부가 문화 자본이 빈약해 상류층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나, 문화자본을 풍부하게 상속받은 계층이 이를 잘 활용하여 다시 지배 계급이 되는 경우 등 문화자본의 중요성이 크다고 보는 입장이 있어요. <유레카논술 제공>

인천 재능대학 / 세상을 바꿀 창의적 인재 키운다

재능대학이 지금까지의 각종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고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실업교육의 산실로 거듭 나고 있다. 졸업생 2만8천명에 35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재능대학이지만 그동안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 현실. 또 업무의 기본인 정관이나 각종 규정이 제대로 정비가 안돼 체계적인 발전을 거듭 하는데 장애로 작용했다. 국내 대학들이 갖고 있는 학사행정의 비능률과 불합리, 낭비적 예산집행 등 각종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재능대학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장이 바뀌면서 과거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학문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재정투자와 불합리한 제도 개선으로 학교발전 기초 다져 그러던 재능대학이 재능교육재단의 대대적인 투자와 이기우(59) 학장 체제를 맞아 발전의 전기를 맞고 있다. 재능교육재단은 대학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300억 원이 넘는 시설 투자와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 조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재정지원을 해도 각종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대학행정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없고, 결국 대학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같은 문제점을 파악한 이 학장은 지난해 8월31일 취임과 동시에 구매시스템, 특성화문제, 비효율적 인력구성, 실험실습기자재 활용 미흡 등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힘을 쏟아 취임 6개월만에 32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지금은 상당한 발전을 거뒀다는 평가다. ◇국제화 차별전략 교육 재능대학은 교육의 내실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화 차별전략’을 도입, 글로벌 교육체제를 갖춰 나가고 있다. 우선 재능대학은 중국 현지 학기제를 실시해 매년 중국 비즈니스과와 관광경영과 80여명의 학생들을 중국해양대학 등에 위탁해 한 학기 동안 현지 교수진에 의한 중국어 수입 및 중국문화, 경제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선양항공공업대학과는 2004년 기술교류 협정을 맺고 IT계열 학과를 중심으로 학생교류를 추진 중이다. 이밖에 ‘어학연수’의 경우 학과 전공에 상관없이 희망 학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여름과 겨울방학 동안 중국 현지 대학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연수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살아 있는 실무교육으로 90%가 넘는 취업률 기록 재능대학은 기업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학문의 범위를 넓혀간다는 계획에 따라 실용, 실기 위주의 교육으로 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으로부터 5년 연속 기술지도 대학으로 선정돼 지난 99년부터 104개 업체에 교수 104명, 학생 230명을 파견, 산업체의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정보화 컨설팅사업에 참여함으로써 기업발전의 촉매역할은 물론 학생들에게 현장 실습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활발한 산학연계는 취업률과도 직결된다. 재능대학은 6년 연속 90%가 넘는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천지역 대학 중에서는 단연 1위이고 수도권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인성교육을 통한 내실있는 인재 양성 재능대학은 최고의 인재가 아닌 반드시 필요한 사람, 기업에 쓸모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아래 인성교육과 내실있는 인재 육성에 힘을 모으고 있다. 재능대학은 최근 경향이 기업에서도 이기적인 기능인 보다는 사람의 인격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인성교육 강화를 위해 봉사학점제를 도입, 강화하고 앞으로 비중을 좀더 높여나갈 방침이다. 이와함께 재능대학은 인성교육 85점과 사회봉사 활동 20시간, 영어와 컴퓨터 90점 이상 등의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는 ‘된사람 인증제’ 자격증을 자체적으로 부여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이영철기자 wyatt@kgib.co.kr <인터뷰> 이 기 우 학장 낭비적 관행 깨고 6개월만에 흑자 ‘작지만 강한’ 글로벌대학 육성 지난해 8월31일 재능대학 학장으로 취임해 1주년을 맞는 이기우 학장에게 학교발전을 위한 노력과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 6개월 만에 만성 적자에서 32억원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부분을 찾아내 하나하나 개선하다 보니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절약해 흑자로 전환시켰다. 또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해 효율적인 재정운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관행타파 및 적법한 회계질서를 확립하다 보니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이 있다면. ▲사회적 수요와 입학지원 등을 고려해 8개 학과의 정원을 조정하고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유사한 학과를 통합했다. 그 결과 기존 23개 학과에서 19개 학과로 줄어들어 좀더 효율적이고 내실있는 교육이 가능하게 됐다. -대학 구성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참여없는 정책은 설공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 일방통행은 하지 않는다. 모든 논의과정에 구성원을 참여시킨다. 그래야만 좋든 싫든 결과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고 주체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 갖는 자세는. ▲나는 좌우명을 성실, 진실, 절실 등 삼실로 삼고 있고, 교직원을 만날때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름부터 고향, 특기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기억한 다음에 만난다. 학장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끼고, 모든 업무처리에서 좀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 교수들에게도 결석이 잦은 학생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왜 결석하는지를 진실한 마음으로 물어 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되면 결석회수도 줄어 들고 학생이 갖고 있는 어려운 문제점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고졸 출신으로 9급에서 출발해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교육부 차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이 학장이 최고위직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매사에 충실하며 혼을 쏟아 붓는 열정 때문이었다.

비빔밥 논술

▲교과서에서 찾은 논술 : '교과서에서 찾은 논술’에서는 철학·역사·사회·문학을 번갈아 연재합니다. ‘철학’코너에서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여러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살펴봅니다. ▲데카르트는 왜“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을까? ●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 흔히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여러분은 데카르트 하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르나요? 아마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일 거예요. 이 명제는 서양 근대철학의 시작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예요. 최근에는 “나는 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식의 패러디까지 등장할 정도로 너무나 익숙한 문구가 되었지요. 그런데 데카르트는 왜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을까요? 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와 이 말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중세 철학을 벗어나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제공했기 때문이에요. 우선 두 철학이 근본적으로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서양의 중세는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였어요. 다시 말해 신의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던 시기였던 것이죠. 신의 말씀은 성직자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 고민할 것도 없이 성직자의 말만 따르면 되었어요. 무엇이 진리인지는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가 보장해 주었으니까요. 학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고, 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요. 신학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철학이 존재할 수 있었고, 신 안에서만 철학적 사고가 허용되었어요. 중세의 철학은 신학의 교리를 증명하고, 신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을 논박하고, 신학을 변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지요. 그 때문에 중세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불렸어요. 이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중세 사람들은 확실성의 근거를 신에게서 찾았죠. 신은 한 마디로 의심해서는 안 되는 절대 진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이런 중세 철학의 룰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갔어요. 이 과정에서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랍니다. 데카르트는 더 이상 신에 의지하지 않고 신에게서 독립한 ‘나’란 주체를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거예요. 즉, 그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의 힘을 신뢰하여, 이성으로 지식의 확실성을 밝힐 수 있다고 봤어요. 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기준이 더 이상 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했죠. 신이 독점했던 지혜의 권위를 인간이 빼앗은 거예요. 이제 인간은 성경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죠. 이렇게 근대철학의 출발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 기초를 데카르트가 닦아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기초를 세웠고, 이성을 중시했다는 걸 그저 지식으로만 안다면 여러분의 철학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 데카르트가 되어 그의 사고과정을 따라가며 논리를 확장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될 겁니다. 자 그럼 데카르트는 어떻게 근대철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는지 교과서를 통해 살펴봅시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_교육인적자원부_111쪽 합리론의 대표자는 데카르트(Descartes, R., 1596~1650)이다. 그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단편적이고 우연한 것이어서, 명백한 진리로 믿을 수 있는 것이 못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한 지식을 찾기 위하여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았다. 이것이 이른바 ‘방법적 회의(懷疑)’이다. 그 결과, 아무리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해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심(생각)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확고 부동한 명제를 얻을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태도에는 인간의 사유 능력, 즉 이성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으며, 이는 대부분의 합리론자들에게 공통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데카르트가 진정 알고 싶었던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거였어요. 그는 열 살 때부터 9년 동안 예수회 신학교에서 신학 중심의 철학인 스콜라 철학을 배웠어요. 하지만 데카르트는 신학에서 얘기하는 견해들을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즉, 신의 말씀이 모두 옳은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런 이유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이전에 배운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완전히 다시 출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요.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한 진리에서 출발하려고 그 진리를 발견하는 데 전력을 다했지요.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또 의심하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이런 그의 철학적 방법을 소위 ‘방법적 회의’라고 불러요. 그는 명증성의 규칙, 분해의 규칙, 합성의 규칙, 열거의 규칙, 네 가지 규칙을 만들어 철저히 학문적 방법론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명증성의 규칙은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거예요. 조금 더 풀어보면,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뚜렷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죠. 분해의 규칙은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라는 거예요. 세 번째 합성의 규칙은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도달하라고 요구하죠. 네 번째 열거의 규칙은 “아무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을 요구하는 규칙이에요. 사실 이 네 가지 규칙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가 얼마나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에 철저했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이 규칙들은 모든 학문에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용되었을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요. 어찌됐든 데카르트는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게 돼요. 바로 “의심(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내가 철수인지, 영희인지 본래부터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는 거죠. 어찌 보면 대단한 발견도 아니에요. 어떻게 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지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인간과 자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의 창조물이라고 여기던 시대에, 신을 제쳐두고 ‘생각하는 나’란 주체가 모든 지식과 사고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발상이었지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데카르트에게는 생각이 존재보다 우선하고 있어요. 즉 생각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주체는 생각하는 나, 곧 정신을 의미해요. 그렇게 설정하는 순간, 육체는 주체와 분리되는 대상인 객체가 되어버려요. 그리고 정신이 육체나 물질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철학은 관념론이라 할 수 있어요.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말한 것과 똑같이 생각, 정신, 관념이 우선한다는 거지요. 한 인간만을 놓고 보면 그런데요, 인간과 자연으로 관계를 좀더 확장시켜 보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가 될까요.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주체가 되고 자연은 대상, 곧 객체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게 되는 거예요. 진리를 위해 자연을 조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후에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돼요. ● 진리에 이르는 길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결국 신으로부터 독립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어요. 하지만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그 순간, 이전에 진리임을 보장해 주었던 절대자까지 사라지고 말았어요. 이제 무엇이 진리인지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거예요. 데카르트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요? ‘생각하는 나’에서 사고를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걸 의미해요. 이성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은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원의 개념은 ‘완전히 둥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완전한 원을 그리기란 쉽지 않고, 완전한 원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데카르트는 실제 모습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이성을 통해 인식하고 있는 완전한 원의 개념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수학이야말로 확실하고 완전한 지식, 즉 진리의 모델이라고 생각했지요. 데카르트의 인식은 자연에 대한 것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어요. 데카르트는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알아야 하듯, 우리 자신의 육체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육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육체에 작용을 미치고, 육체에서 파생하는 감정, 정념을 규제하고 그 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정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성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육체가 제멋대로라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겠죠. 그래서 그는 ‘어떻게 육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도덕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때문에 데카르트는 감정과 정념, 욕망과 육체적 활동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가진 이성이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돼요. 결국 도덕론에 관한 데카르트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상태를 위해서 제멋대로인 육체를 통제하고 욕망을 억제하라는 것이지요. ● 데카르트의 철학이 미친 영향 이러한 데카르트의 철학은 어떤 변화들을 일으켰을까요? 먼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결과적으로 과학의 발전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게 돼요. 역으로 과학의 발전으로 데카르트의 사고가 태동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신의 말씀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도 있어요.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킨 동시에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주장하게 돼요. 즉,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낳은 것이죠. 자연은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진리를 찾기 위해 자연을 실험 대상처럼 조작하고 실험하는 인간의 행위들이 모두 정당화되는 거예요.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자연파괴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과 복제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은 자연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근대철학적 사고가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른바 과학만능주의 사고를 낳는 뿌리를 제공한 거죠. 또한 데카르트는 이성의 힘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성으로 대중의 편견과 무지를 일깨우고, 이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라는 계몽주의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어요. 신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독립된 주체로 인간을 자리매김함으로써 훗날 개인의 자아를 중시하는 인권 개념을 발전시키는데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요. 진리를 향한 한 철학자의 열정이 근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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