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의 입, 고수의 손이 만드는 판소리... ‘구구선 사람들’ [공연리뷰]

지난달 8일 판소리 레미제라블 ‘구구선 사람들’이 안양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소리꾼과 고수가 모여 만든 판소리 작업공동체 입과손스튜디오의 레미제라블 토막시리즈의 최종판인 이 작품은 이 세상을 배 한 척에 담아 그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그려 내고 있다. ■ 소리꾼의 입, 고수의 손이 만드는 판소리 2017년 창단한 입과손스튜디오(이하 입과손)는 소리꾼의 입과 고수의 손이 모여 만든 판소리 작업공동체다. 판소리라는 연희 양식이 가진 여러 가능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며 고유의 예술적 요소를 선택적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주로 한다. 판소리가 지니고 있는 ‘전통의 가능성’과 판소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한다. 소리꾼 이승희·김소진, 고수 이향하·김홍식·신승태, 프로듀서 유현진으로 구성된 입과손은 전통·창작·협업의 판소리를 지향한다. 그중 전통적인 판소리가 갖는 의미를 보존하되 입과손만의 재해석을 가미해 무대에 올린 ‘동초제 심청가’와 ‘강산제 수궁가’는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의 갈래에 속한다. 입과손의 핵심 프로젝트인 ‘창작 판소리’는 기존의 문학작품을 판소리로 재해석하고 있으며 ‘판소리 동화시리즈 안데르센’을 필두로 2020년부터는 ‘레미제라블’의 ‘팡틴, 마리우스, 가브로슈, 자베르’ 등 네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판소리 레미제라블 토막소리시리즈’ 연작을 진행했다. 지난달 8일 안양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3년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한 레미제라블 토막소리시리즈의 최종 작품이다. ‘구구선 사람들’은 인물에 집중했던 이전 작품을 한데 모아 각 인물이 어우러져 살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 ‘세상은 불완전한 한 척의 배’ 하루하루를 버티며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사람들. 정처 없이 떠가는 배 위에서는 누구도 완벽할 수 없고 온전한 안정을 찾기 어렵다. 무대에 등장한 소리꾼은 과연 배 위의 삶만 그렇겠냐고 되묻는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나 구구선 사람들이나 매한가지 아니겠냐며. 구구선은 100에 가닿지 못하고 99에 그치고 마는 모자란 세상을 닮은 배 한 척이다.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레미제라블 같은 고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자칫 무겁고 슬프기만 한 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입과손은 친근함을 택했다. 레미제라블 속 장발장은 ‘장씨’, 장발장을 쫓는 자베르는 ‘조병렬’, 미혼모라는 이유로 일을 뺏기고 세상 끝으로 내몰리는 팡틴은 ‘박미영’, 혁명군의 일원이었던 소년 가브로슈는 ‘가열찬’ 등 발음이 비슷한 배역 이름으로 작품과 무대, 판소리의 벽을 조금은 낮추는 데 성공한다. 소리꾼 2명과 1명의 배우, 드럼, 기타, 키보드, 고수 등 7명이 한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주한다. 때로는 많은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고수가 극에 참여했고 1인 다역은 배우에게도 극을 쫓는 관객에게도 집중력을 요하는 요소가 됐다. 2시간이 조금 안되는 긴 시간 동안 판소리만으로 극을 채우는 것은 무리라고 여겼던 걸까. 입과손의 ‘구구선 사람들’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판소리에서 창극으로, 연극으로 그 구분이 모호해졌고 드럼과 기타가 주도하는 대중음악을 소리꾼들이 노래하기도 했다. 그런 시도는 분명 국악이 낯설고 지루한 청중에겐 도움이 됐겠으나 '진한' 판소리를 기대한 관객에겐 다소 무리수로 여겨졌겠다. 문학 작품을 판소리로 재해석한 것만으로도 ‘창작’의 의미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대서사시에 가까운 레미제라블을 우리의 소리로 부르길 시도했다는 것 자체는 흥미롭고 반가운 도전이었다. 마침내 구구선에서 바라본 저 끝에 육지가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구구선에 남아 있는 구구선 사람들도 이제 99에서 100으로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어쩌면 그 희망이 100으로 도달하기 위한 1이었을지도

청소년 위한 크리스마스 클래식 선물…성정문화재단 ‘24회 성정청소년 열린음악회’ 성료

(재)성정문화재단이 지역사회 청소년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클래식 공연을 선사했다. 성정문화재단은 지난 11일 수원 수일초등학교에서 시작해 17일 김포 운양고등학교, 20일 안양 성문중학교에 이어 ‘제24회 성정청소년 열린음악회’의 마지막 공연을 23일 부천 정명고등학교에서 마무리했다. 성정문화재단이 24년째 이어가고 있는 성정청소년 열린음악회는 매년 11~12월 경기도내 초·중·고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선사하는 ‘찾아가는 음악회’다. 성정문화재단의 대표적인 재능기부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들이 누려야 할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재단이 지난 1994년부터 무료 순회공연을 열어 청소년의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부천 정명고등학교에서 선보인 음악회는 성정문화재단의 104번째 공연으로 플루트, 바이올린,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금관오중주 등 다채로운 악기와 목소리가 어우러져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특히 클래식과 현대 음악에 이어 친숙한 영화 음악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로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은 바이올리니스트 닐루파르 무히디노바가 거쉰의 ‘섬머타임(Summertime)’ 등을 연주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소프라노 자원이 헨델의 ‘울게하소서(Lascia ch‘io pianga)’ 등으로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베이스 김대엽이 ‘My Way’와 ‘백학’을 불러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가 하면, 소프라노 자원과 베이스 김대엽이 ‘크리스마스 캐롤 메들리’로 듀엣 무대를 장식해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 금관5중주 그룹인 라온브라스 앙상블이 영화 ‘겨울왕국’, ‘캐리비안의 해적’의 삽입곡 등 청소년들이 쉽게 접했던 곡들을 연주해 피날레를 장식했다. 김정자 성정문화재단 이사장은 “음악 감상은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현장에서 직접 아티스트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는 음악회로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조화로운 인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립농업박물관, 미래 농업 엿보는 ‘내일의 농업’ 코너 조성

국립농업박물관이 상설전시관 중 ‘내일의 농업’ 코너를 새롭게 조성했다. 상설전시관의 마지막 코너인 ‘내일의 농업’은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앞으로의 변화상을 경험해보는 디지털 체험형 공간으로 구성됐다. ▲작물 유전정보 분석법으로 만드는 나만의 품종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스마트팜 ▲AI가 탑재된 스스로 판단하고 수확할 수 있는 지능형 농사 로봇 ▲버섯, 과일 껍질, 선인장 등 새로운 소재 개발로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등 우리의 ‘내일’을 위한 농업 기술과 노력을 생생히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를 느낄 수 있는 10m 길이의 도입부 영상 ▲투명 디스플레이로 사막·극지·우주에 있는 스마트팜을 제어해보는 체험 ▲농업 부산물을 활용한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자의 홀로그램 영상 등 다채로운 디지털 경험으로 우리 농업을 자유롭게 상상해볼 수 있다. 전시내용을 전달하는 패널은 디지털화해 가독성을 높였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 서비스도 마련됐다. ‘재배’ 코너와 ‘다양한 쓰임’ 코너도 새롭게 마련해 다양한 농기구와 회화 작품, 근대 홍보물 등을 통해 우리 삶 전반에 미치는 농업의 의미와 변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황수철 국립농업박물관장은 “개관 2주년을 맞아 상설전시관 일부를 개편해 새로운 볼거리를 준비했다”며 “디지털 체험형 공간으로 재탄생한 전시관을 관람하며 우리 농업의 ‘내일’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성탄절 분위기 ‘물씬’…다채로운 행사 펼쳐지는 경기도 뮤지엄으로 떠나볼까

크리스마스를 맞아 경기도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뮤지엄에서 펼쳐지는 음악 공연부터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 체험까지 각종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꽉 채워져 있다. 소중한 이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성탄절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 경기도어린이박물관 ‘늘 푸르른 산타 마을’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25일까지 특별행사 ‘늘 푸르른 산타 마을’을 진행한다. 행사는 관람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 1종과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을 위한 업사이클 교육 2종으로 구성됐다. ‘산타클로스’를 키워드로 한 첫 번째 행사는 ‘산타 할아버지네 담벼락’이다. 자선을 베푸는 산타클로스의 이미지에 착안해 기획된 이번 행사는 관람객이 산타클로스의 담벼락에 선행을 적어 붙이면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또 바다유리 업사이클링을 통해 해양 오염의 현재와 업사이클에 대한 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산타클로스의 고향인 ‘로바니에미 마을’은 해가 거의 지지 않는다. 박물관은 이 점에 주목해 바다유리 무드등 제작 프로그램인 ‘해가 지지 않는 나의 마을’을 기획했다. 이와 함께 푸름을 유지하는 상록수(트리)를 바다유리로 영원히 살아있게 만드는 ‘늘 푸른 나의 트리’ 프로그램도 열린다. ■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똑똑똑, 크리스마스’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은 26일까지 크리스마스 주간 문화행사 ‘똑똑똑, 크리스마스’를 진행한다. 행사는 카드 만들기, 작은 음악회, 그림책 콘서트로 구성된다. 25일까지 진행되는 ‘크리스마스 카드만들기’는 기획전 ‘탱탱볼’과 연계한 편지와 스티커로 마음을 전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탱탱볼’의 움직임이 담긴 엽서에 스티커를 붙이며 나만의 카드를 만들어 볼 수 있으며, 2층 기획전시실 앞 로비에서 진행된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박물관은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팝송과 캐롤을 클래식 4중주의 선율로 들려준다. 소요산의 풍경과 어우러진 1층 오손도손룸에서 겨울 느낌 가득한 음악과 경치를 함께 즐길 수 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열리는 ‘그림책 콘서트’는 박물관의 주제인 ‘숲에서 꿈꾸는 어린이’를 위한 생태 동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동화 속 주인공의 목소리와 배경음악이 어우러져 낭독 공연을 더욱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 조명박물관 ‘두근두근,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양주 조명박물관은 내년 1월24일까지 크리스마스 특별전 ‘두근두근,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를 선보인다. 전시는 몇 년간 눈이 오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구경해 본 적 없는 ‘꼬마 눈송이’가 올해 크리스마스엔 멋진 눈사람이 돼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어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별전이 진행되는 동안 주말에 방문하는 관람객은 창작동요 ‘반달’ 100주년 기념공연 ‘동심놀이 반달정원’ 공연과 ‘크리스마스 주제의 만들기 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특히 박물관은 크리스마스 당일에 눈이 올 경우 관람객에게 소정의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연다.

실학박물관 소장자료 ‘김육 초상 일괄’·‘박규수의 평혼의·간평의’ 역사적 가치 인정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의 소장자료가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등으로 지정돼 역사적·과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실학박물관은 최근 소장자료인 ‘김육 초상 일괄’과 ‘박규수의 평혼의·간평의’가 각각 경기도 유형문화유산과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지정·등록됐다고 22일 밝혔다. ‘김육 초상 일괄’은 지난달 29일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는 지난 2009년 청풍김씨 가문에게 받은 기증유물 중 ‘대동법’으로 대표되는 실학자 ‘김육’의 초상화 3점과 초상함·흑장통 등 유물 5점이다. 조선시대 대동법으로 국가 재정의 제도화를 진전시킨 김육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원래의 모습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또 17세기 전반 중국과의 문화적 교류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회화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 김육 초상 3점은 17세기 인물초상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전신좌상본’과 ‘와룡관본’ 2점은 1637년 김육이 사행했을 때 남방 출신의 화가 호병에게 그려온 것으로, 모두 호병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화첩본’은 후손들이 김육과 관련된 내용을 모아 32면으로 장첩한 것으로, 4편의 어제와 1점의 김육 반신상, 연작시 등이 실려있다. 또 청풍김씨 가문에서 김육 초상을 보관했다고 전해져 온 직사각형 목조궤인 ‘초상함’과 흑칠한 긴 원통형 합인 ‘흑장통’은 조선 왕실 공예품 모습의 금속 장식이 부착돼 있는 희소한 자료다. 함께 가치를 인정받은 ‘박규수의 평혼의·간평의’는 지난 10일 제19호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됐다. 이는 실학자 박규수가 혼천의를 간편화해 평면에 투영시킨 휴대용 관측 천문도로, 185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용강지역의 북극 고도를 측정하는 등 천문관측에 몰두했던 박규수가 천문의기인 평혼의를 손수 만들어 노인성(남극성)을 관측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자료는 천문학에 대한 조선 실학자들의 이해 수준을 알 수 있게 하며, 제작자가 박규수라는 점에서도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김필국 실학박물관장은 “앞으로도 우수한 문화유산을 지속 발굴해 문화재 지정을 통한 지역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는 물론 문화재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을 수호하는 어르신(神)” 도시의 틈, 모퉁이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다 [전시리뷰]

“수원의 팔달문·지동·못골·영동시장에는 여러 신이 존재한다. 오래도록 그곳을 수호하고 지켜 온 이들의 이름은 ‘주인장 어르신(神)’, ‘경계-신(神)’이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낯선 작품 너머로 사람들의 쉼 없이 이어지는 말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혼재돼 들려온다. 빨강, 초록, 파랑, 노란색의 탱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낯설지 않은 풍경을 하나둘 발견한다. ‘못골종합시장’의 간판, ‘단체석 완판’이라는 글자 아래 순대곱창 집의 간판, 비워진 뚝배기 그릇과 건어물 상자. 호법신 도상의 일곱 여인은 곧 앞치마를 맨 상인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소음과 같던 소리는 물고기를 파는 어느 상인의 대화 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도심이 된 상권은 변화하는 도시의 유한한 지역성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도시의 생명력을 꺼지지 않게 해주는 존재다. XXX(윤이도,김태희) 팀은 신작 ‘첩첩시상’(2024) 작업을 통해 수원의 네 시장을 오래도록 지켜온 상인에 대한 존경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시장의 수호신으로 형상화된 상인들과 파리퇴치기, 저금통 등 다양한 시장 기물 속에 독특한 유머를 첨가했다. 작품에는 수원 지역 상인들의 문화와 시장에 인접한 사찰과 민간 신앙 문화 등이 절묘하게 뒤섞여있다. XXX의 윤이도 작가는 “작품에 7명의 상인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담았는데, 시장을 방문했을 때 합창단 활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와 종교가 균형을 이루며 독특한 모습으로 발전하는 게 수원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치 이들이 시장을 지켜온 수호신과 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 토끼가 심어 놓은 이스터에그 찾아…5팀5색, 각자가 발견한 도시의 숨은 풍경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순항 중인 전시 ‘토끼를 따라가면 달걀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는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를 발견했듯, 작가들이 수원이라는 도시 곳곳에 숨겨놓은 달걀, ‘이스터에그(게임과 같은 분야의 프로그램 개발자가 사용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숨겨 놓은 메시지나 기능)’를 발견하는 여행이다. 올해 처음으로 진행된 수원시립미술관의 신진 작가 공개모집 ‘얍-프로젝트’의 결과인 이번 전시는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밀레니얼 세대작가 다섯 팀을 만나볼 수 있다. ▲김소라(사진, 설치) ▲신교명(회화, 설치) ▲유다영(사진, 영상) ▲정은별(회화, 조각, 설치) ▲XXX(윤이도, 김태희)(회화, 조각, 설치) 작가가 ‘수원, 장소∙기억∙사람’을 주제로 각자의 시선에서 발견한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진과 미디어, 설치 작업을 진행하는 김소라 작가는 약 40년 전 아버지가 서 있던 시공간을 지금의 세계로 불러들인다. 서장대, 장안공원 등 1970~80년대 수원화성 곳곳에서 촬영한,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필름 사진을 출발점으로 작가는 온라인 지도와 현실 세계로 발을 옮기며 아버지의 발걸음을 재현한다. 아버지의 유물인 오래된 아날로그 필름 사진과 편지를 단서로 삼아 이미지와 소리를 수집하고, 기존의 이미지와 중첩한 조각은 선명하면서도 어딘가 빛바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흩어진다. 위아래로 올리는 블라인드, 옆으로 문을 여는 커튼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 커튼 조각과 그 속에 담긴 아버지의 옛 시간, 공간 한 구석에 열린 문을 통해 너머의 공간으로 들어설 때면 마치 작가의 꿈 속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김 작가는 “수원화성을 걸으며 공간을 매개로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며 “모두의 역사에서 기억되는 건 굵직한 위인일 수 있겠지만, ‘나’라는 개인 역시 지나간 역사의 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정은별은 ‘드리우는 그림자 사이로’(2024)를 통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퉁이 너머의 풍경, 도시의 틈새를 낯선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언뜻 견고해 보이는 사회 속에는 개인이 무력해지는 순간과 불안에 주목한다. 작품은 뒷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시장 한 공간에 자리한 마치 빨래 더미에 널린 것 같은 종이 조각들. 도시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있는 기둥을 돌아 골목 뒤로 들어섰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작품과 만나게 된다. 작가는 수원의 곳곳 재개발, 임대, 폐허의 흔적 등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을 빼곡히 칸마다 기록했다. 포크레인으로 갉아 먹힌 조각 등 각 프레임에 담긴 이야기는 마치 영화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개인의 작은 행동이 불러일으킨 변화, 한 번의 숨에서 파장된 일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유행에 따른 상권의 이동, 일명 ‘핫플레이스(명소)’의 탄생과 이면 등 우리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도시의 뒷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신교명 작가는 스스로 그림 그리는 법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페인팅 로봇 ‘두들러’를 창조해, 장소를 영위하는 인간의 기억을 비인간의 시각으로 추적한다. 신 작가는 수원의 식당가와 관광지, 카페 등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낙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로봇에게 학습시킨다. 낙서에는 추억, 사건, 현상이 담겨있다. 이때 두들러의 학습은 낙서가 담긴 구체적인 장소의 맥락이 제거된 채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해당 장소에 얽힌 낙서의 의도는 본래와 다르게 해석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작가의 의도다. 이미지만으로 세상을 읽어내고, 로봇 메커니즘의 ‘인간스러운 기억’을 새로 만들어낸 인공지능의 결과물을 보며 작가는 오늘날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진철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해 나갈 신진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통일된 수원이 아닌 각자가 바라본 도시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다”며 “앞으로도 ‘얍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작가와 작업 세계를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3월까지.

경기도, 무명의병 기념사업에 첫 발을 내딛는다

구한말 무명의병을 발굴하고 기념·지원하는 사업이 경기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올해 초 ‘경기도 무명의병 기억과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데 따른 후속 조치 사업이다. 내년 광복 80주년과 을사의병 120주년 등을 맞아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가치가 시민사회에 더욱 확산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은 이와 관련한 실태조사 및 기념사업 중장기 계획 용역을 발주했다고 22일 밝혔다. 수행기관으로 선정된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은 체계적인 사업 추진에 앞서 31개 시·군에 흩어져 있는 기존 자료 수집과 신규 자료 발굴, 기념사업 중장기 계획 수립에 나섰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은 용역 착수를 시작으로 내년 2월 역사강좌, 3월과 4월엔 인문포럼과 학술심포지엄을 진행한다. 내년 2월 선보이는 역사문화 강좌의 주제는 ‘강산의 의로운 장부들’이다. 개화기 의병이 누구이며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일반시민의 사전 이해를 돕는 기념 계승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3월 인문포럼과 4월 학술심포지엄에선 기념사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기념 주제를 찾는 학술 활동이 이어진다. ‘바깥포럼 1895’로 진행될 인문포럼은 애국심, 자치역량, 공동체를 향한 헌신과 애도 등을 포함한 21세기에 걸맞은 기념 주제를 모색한다. 4월 학술심포지엄은 ‘어떻게 연구하고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를 주제로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와 정주율이 낮았던 경기도의 역사성, 보이지 않는 것을 기념하는 사업의 정당성을 확립하고자 경기도 무명의병의 시공간적 개념을 역사적으로 짚어본다. 한편 경기일보는 2022년 8월부터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통해 무명의병 활동을 집중 조명하고 전수조사와 기념사업 등에 경기도가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무명의병이 잊히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나아갈 방향의 핵심 가치를 찾는 것이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경기도 무명의병 기념사업의 목표”라며 “확정된 프로그램과 구체적 일정은 재단 누리집 등을 통해 알릴 예정으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찾는 안정…‘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外 [신간소개]

내년이면 전체 인구 중 만65세 이상의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웰빙’과 더불어 ‘웰다잉’이 화두가 되면서 말기의 돌봄과 평온한 마지막을 다룬 책들이 서점가에 속속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들 책은 ‘잘 살기 위해’ 오히려 죽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법의학자 등이 조심스럽게 풀어낸 삶의 끝자락에 관한 책들을 모아봤다. ■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웅진지식하우스 刊)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오는 23일 그의 첫 번째 책을 출간한다. 30여년간 약 4천구의 변사 시신을 부검해 온 이 교수는 그동안 마주했던 여러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들려준다. 책의 1부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에서는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어린아이, 남편과 부부싸움 끝에 살해당한 부인, 의료 과실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여고생 등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고도 항변할 수 없는 고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2부 ‘삶은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에는 죽음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그리스 신화, 철학을 통해 깊이있게 풀어냈다. 특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등 대형참사를 다루며, 최대한 고인의 몸을 온전하게 유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법의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3부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선 불운을 겪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줄 아는 마음가짐, 같은 세상을 사는 공동체로서 연대 의식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배우는 것은 무심코 흘려 보내는 일상이 소중한 이유를 알게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게 한다고 강조한다. ■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프시케의숲 刊) 죽음도 고통스럽지만, 죽음의 과정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큰 병원에서의 집중적인 치료로 인해 일상이 희생되기도 하고,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는 지난한 삶 속에서 암울함이 커지기도 한다. 이 책의 두 저자인 호스피스 의사 김호성과 의료인류학자 송병기는 편리함과 효율주의에서 벗어나 죽음의 과정을 온전하게 여길 수 있는 섬세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이 주목한 것은 ‘호스피스’다. 책은 호스피스를 중심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뤄지는 말기 돌봄과 죽음의 현실을 치열하게 성찰했다. 호스피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비롯해 제도와 시스템적인 특성을 분석했다. 특히 책은 ‘공간, 음식, 말기 진단, 증상, 돌봄, 애도’ 등 여섯 개의 키워드로 환자들과 2년여에 걸쳐 이뤄진 대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책은 환자를 ‘죽게 하지도, 죽게 내버려두지도 않겠다는 응답’으로서 호스피스의 역할을 제시하고, 치료 중심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죽음의 대안을 모색한다.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 23-⑤마야 문명의 최대 유적지 '문명의 보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멕시코는 마야, 아스텍, 톨텍 등 다양한 메소아메리카 고대 문명을 가진 나라이며 500여년간 에스파냐와 미국 등 유럽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서구 문명이 유입돼 혼합(mestizale)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 때문에 점차 미국화돼 가는 모습도 보이지만 멕시코 곳곳에는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활발한 움직임이 있어 여전히 아름답고 여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멕시코는 고대 문명과 선조가 남겨준 문화유산을 기억하며 꾸준히 이어가는 나라이다. 멕시코는 전역에 분포한 고대 피라미드, 다양한 석재 건물과 조각, 전통예술과 미술품 등을 많이 보유한 문명국가다. 그들의 수많은 고대 문화유산은 멕시코시티 국립박물관과 곳곳에 있는 지역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유적으로 멕시코시티 구시가지 중심이자 아스테카 시대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중심지에 있는 소칼로 광장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광장 주변에는 마요르 신전과 아스테카 문명을 대표하는 ‘태양의 돌’ 등 고대 유적 터가 남아 있고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으며 광장 주변에는 대통령궁과 연방대법원 등 주요 행정관청이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신들의 고향’이자 멕시코 최대 피라미드 단지인 아스테카의 테오티우아칸 유적이 멕시코시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사라진 문명의 신비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사포텍과 믹스텍 문명의 몬테 알반과 미틀라 유적이 오악사카 부근에 있다. 유카탄반도에는 마야 문명의 최대 유적지인 ‘잊힌 신들의 도시’ 치첸이트사와 카리브해변의 툴룸 유적 등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멕시코를 중남미 지역 여러 나라 중에서 다양하면서도 찬란한 고대 문명을 가진 ‘문명의 보고(寶庫)’라 칭송한다. 박태수 수필가

화성행궁 뒷산 내포사에 매달린 목어의 비밀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화성 시설물에 포사가 있다. 모두 세 곳이다. 작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설물이다. 화성행궁 뒷산에 내포사와 그곳에 매달린 목어의 비밀을 풀어본다. 수원화성에 군사시설 같지 않은 시설물로 포사가 있다. 의궤에 “치 위에 지은 집을 포루(舖樓)라 하고, 성안에 지은 집을 포사(舖舍)”라고 기록했다. 화성에는 서남포사, 중포사, 내포사 세 곳이 있다. 서남포사는 서남암문 위에 있어 ‘치 위’도 아니고 ‘성안’도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성안의 집’에는 중포사와 내포사만 해당한다. 서남포사는 서남암문 위에 있고 중포사는 미복원인데 팔달구청에서 보이는 언덕 위 삼일고교 끝 건물 위치다. 내포사는 화성행궁 뒷산에 있다. 세 곳 포사에 대한 의궤 설명에서 공통된 점을 보면 위치가 높은 곳인 점, 온돌이 있는 점, 단청에 3토를 사용한 점, 대들보 위에 회를 바른 점이 특징이다. 건축 특징에서 포사의 업무와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첫째, 높은 곳이어야 업무를 수행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 둘째, 추운 겨울이나 밤에도 쉬지 않고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 셋째, 담당 책임자는 계급이 높은 군인이라는 점이다. 포사의 기능이나 역할은 무엇일까. 서남포사에 대해 의궤는 “높은 곳에 있어 멀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군졸을 둬 경보를 알리기 알맞다”라고 했다. 또 중포사는 “성 밖에서 길가에 잠복한 자가 경보를 하면, 성의 각 해당 방면에서 포를 쏘아 보고하고, 포사에 있는 군사가 깃발이나 화포로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포사 세 곳은 맡은 임무에 차이가 있다. 서남포사는 직접 감지하고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이고 중포사는 성 밖 잠복자가 감지해 가까운 성 위의 해당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해당 담당자는 중포사에, 중포사는 내포사에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두 곳의 포사는 행궁 뒷산의 내포사로 보고한다. 내포사는 화성부나 장용외영의 책임자에게 최종 보고한다. 이래서 내포사를 행궁 안에 설치한 것이다. 목적은 같지만 보고 체계는 다르다. 보고 도구로는 ‘도설’에 “깃발이나 화포로 보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임무 수행규칙인 ‘파수절목’에는 불과 횃불이 추가돼 있다. 낮에는 화포와 깃발을, 밤에는 화포, 불, 횃불을 사용한다. 화성행궁 뒷산에는 미로한정이라는 정자와 내포사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행궁의 지붕들이 아름답다. 내포사는 포사로 온돌방 한 칸과 한쪽에 벽이 없이 오픈된 반 칸 방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반 칸 방에 절에서만 볼 수 있는 목어가 달려 있는 것이다. 왜 내포사에 목어를 달아 놓았을까. 목어는 법고, 운판, 범종과 함께 절의 사물이다. 법고는 땅에 사는 축생을,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범종은 28천(天) 모든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의미가 있다. 목어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잠도 자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의미다. 내포사와 목어는 무슨 관계일까. 소리(音)와 관계가 있다. 앞서 말한 화포, 깃발, 불, 횃불 외에 소리도 경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화성을 지키는 규칙 파수절목 중 ‘기계’편에 보면 총, 깃발, 등롱, 기화, 대방, 소방, 깃대를 마련하라 한다. 이 중 방(梆)이 목어다. 의궤 ‘포사에서의 호령’편에는 대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만약 경보를 잘못 울리거나 잘못 전한 경우에는 사점해 처치한다”라 하고 그 방법으로 “밤에는 신포 1발을 놓고, 횃불 한 뭉텅이를 들며, 대방을 쳐서 구분한다”고 기록돼 있다. 신호에 오류가 발생하면 대방을 곁들여 사용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대방(大梆)을 목어로 간주하고 지금의 관리자가 목어를 걸어 놓은 것으로 판단된다. 과연 대방은 목어를 말할까. 의심이 든다. 필자는 대방은 큰 목탁으로, 소방(小梆)은 나무 딱따기로 본다. 그 근거로 첫째, 전쟁 시설물에 꼭 종교용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 둘째, 한자 방은 ‘목어 방’이 맞지만 ‘소리를 내는 나무 기구’란 의미도 있다. 방은 목어, 목탁, 나무 딱따기 모두를 의미한다. 셋째, 화성의 세 개 포사 중 내포사를 제외한 중포사와 서남포사에는 목어를 걸어 놓을 수 있는 장치나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결정적 근거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자정이 넘으면 야경꾼들이 나무 딱따기를 치며 골목길을 누볐다. 대부분 2층 이내 건물만 있었던 수원 사대문 안은 나무 딱따기 소리도 충분히 전달됐다. 대방은 목탁 종류, 소방은 나무 딱따기 종류로 봐도 무방하다. 포사는 규모가 작고 위계가 낮은 시설물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도 있다. 하나는 행행(行幸), 즉 임금이 행차할 경우 두 곳 포사에 장수 2명과 군사 4명으로 파수하게 하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행행이 있으면 파수할 곳으로 27곳 시설물을 지정하는데 그 안에 포사 세 곳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포사 한 곳에 1명의 장수가 책임지게 하고 60곳 중 27곳 안에 포함된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시설물임을 말해 주고 있다. 내포사와 목어에 대해 살펴봤다. 정교하게 제정한 화성 유지 보수 규칙인 수성(修城)절목과 화성 방어 지침인 파수(把守)절목에서 정조의 지속가능한 철학을 엿봤다. 이런 기록들이 수원화성을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시설물로 만들고 있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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