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담은 ‘하얼빈’, 일본 포함 전 세계로…서경덕 “고무적인 일”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가 영화 ‘하얼빈’의 해외 판매 소식을 전하며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서 교수는 1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영화 '하얼빈'이 미국, 일본, 프랑스, 호주 등 전세계 117개국에 판매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는 한국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이제 세계인들이 한국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일본에 판매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서 교수는 3년 전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 ‘영웅'이 일본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점을 언급하며 “당시 일본 SNS에서는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며 많은 일본 누리꾼들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다’, ‘한국이 테러리스트를 영화화한다’는 등의 어이없는 주장을 펼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전 총리가 지난 2014년 안중근 의사에 대해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언급한 사례도 언급하면서 “이는 일본 정부가 올바른 역사 교육을 시행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서 교수는 “영화 ‘하얼빈’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해 한국과 동북아시아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작품으로 배우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등이 출연한다. 1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개봉한 이후 이날까지 누적 관객수 431만여 명을 기록했다.

“‘조례 제정’, ‘이백원 의병장 묘 확인’ 등 큰 성과”…무명의병 5차 포럼서 성과 공유, 방향 모색

무명의병포럼은 16일 오후 2시 경기일보 1층 소회의실에서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제5차 무명의병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은 올해로 광복 80주년, 1895년 봉기한 을미의병 130주년과 함께 무명의병포럼 발족 4년차를 맞아 그동안 추진했던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사업의 새로운 시작과 결실을 준비하고자 마련됐다. 이 자리엔 강진갑 무명의병 포럼 공동준비위원장(㈔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최종식 경기일보 기획이사 및 포럼 공동준비위원장을 비롯해 김영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초빙교수 겸 연극배우, 김지혜 용인문화원 사무국장, 윤정국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연구위원, 이복재 양평의병기념사업회 의병 연구자, 최봉주 양평의병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조미순 ㈜블루디씨 대표 등 15명이 참석했다. 포럼에선 그동안 추진한 주요 네 가지 성과가 공유됐다.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민간공모 지원사업’ 선정(2022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일대 ‘맥켄지 기자 의병사진 촬영장소’에 대한 학술적 고증(2022년) ▲양평 사탄전투에서 전사한 ‘이백원 의병장’ 묘 확인(2022년) ▲‘경기도 무명의병 기억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2024년) 등이다. 최봉주 양평의병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무명의병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방보조금으로 맥켄지가 의병들을 촬영한 장소로 확정된 양평 오빈리에 무명의병 조형물을 만드는 예산이 편성됐다. 이들의 활동을 기념하고 알릴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강진갑 무명의병포럼 공동준비위원장은 “무명의병 연구가 2022년에 시작됐는데 조례가 제정되고 경기도에서 사업에 나서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며 “현장·사례 조사, 발굴, 연구 등을 이어가 사업이 추진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률플러스] 구분소유자들의 집합건물 차량 진입도로 점유 여부

흔히 집합건물 앞에는 집합건물로 들어가는 차량 진입도로(이하 ‘진입도로’라고 한다)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진입도로 부지 소유권이 집합건물 구분소유자들에게 속하지 않는 경우 그 소유자가 구분소유자들을 상대로 그 진입도로 부지 인도 청구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한 분쟁에서 주된 쟁점은 우선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들이 진입도로를 점유하는지 여부이고, 다음으로 진입도로 소유자의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 행사가 제한되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후자의 쟁점인 소유자의 독점적·배타적 사용·수익권 행사가 제한되는지에 관해 판례는 소유자의 토지 소유 경위와 기간, 토지를 공공의 사용에 제공하거나 그 사용을 용인하게 된 경위와 그 규모, 당시 소유자의 의사, 그에 따른 소유자의 이익 유무와 정도, 토지의 위치나 형태, 다른 토지들과의 관계, 주위 환경, 소유자가 보인 행태의 모순 정도 및 이로 인한 일반 공중의 신뢰나 편익 침해 정도, 소유자가 행사하는 권리의 내용이나 행사 방식 및 권리 보호의 필요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소유권 보장과 공공 이익 사이의 비교형량을 해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전자의 쟁점인 진입도로의 점유 여부에 관해 집중해 보자면 판례는 건물 용지의 개념론에 입각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건물의 용지’라 함은 건물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땅으로서 건물의 존립에 필요한 범위 내의 토지를 가리키는데, 어떠한 토지 부분을 도로로 이용하지 않고서는 해당 집합건물의 차량이 공로로 나아갈 수 없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위 토지 부분이 해당 집합건물의 부지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즉, 구분소유자들이 위 토지 부분을 공동으로 점유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법원은 점유란 사회 통념상 그 사람의 사실적 지배에 속한다고 보이는 객관적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하고, 이때 사실적 지배는 반드시 물건을 물리적,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것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사람과의 시간적․공간적 관계와 본권 관계, 타인 지배의 배제 가능성 등을 고려해 사회 관념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사실적 지배에 속한다고 하려면 적어도 타인의 간섭을 배제하는 면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즉 점유를 인정하려면 타인의 간섭을 배제하는 측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쟁점에서도 구분소유자들이 진입도로를 통행하더라도 진입도로 부지 소유자의 점유를 배제할 정도가 아니므로 배타적인 점유를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진입도로 부지 소유자는 구분소유자들을 상대로 진입도로 부분의 인도를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장욱진 화백 제자들…초상 등 작품 ‘장욱진미술관’에 기증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장욱진 화백의 제자들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장욱진 초상’ 등 작품을 기증했다.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종학과 임충섭 작가는 장욱진(1917~1990)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로 인연을 맺었고, 장욱진이 1960년대 이후 유일하게 참여했던 미술단체 ‘앙가쥬망’에서 함께 활동했다. 이번에 기증한 작품은 ‘장욱진 초상’, ‘무제-1000와트’로 스승이자 선배였던 장욱진을 그리며 제작한 작품들이다. 김종학의 ‘장욱진 초상(하드보드에 유채·1970년대)’은 장욱진의 예술적 고민과 고뇌를 포착해 묘사하고 있으며, 임충섭의 ‘무제-1000와트(혼합재료·2000년)’는 장욱진에게 배운 자연과 환경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장욱진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심이 담겨있는 이번 기증작들은 장욱진의 인격적인 면모와 장욱진이 평소에 인간관계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작품들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김지혜 미술관팀장은 “작가의 진정성이 담긴 두 작품은 장욱진의 삶과 예술에 관한 연구와 전시기획 측면에서 활용도가 높다”며 “기증에 대한 큰 뜻을 밝혀주신 김종학, 임충섭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한국정치 병폐지역갈등 타파과연 가능할까... '지역주의 타파도 K콘텐츠처럼' [신간소개]

■ 지역주의 타파도 K콘텐츠처럼 지역주의로 인한 갈등은 한국 정치·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다. 너나 할 것 없이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지만 선거판에선 늘 되살아났다. 되살아난 지역주의는 민주정치를 멍들게 했고 각종 갈등을 불러왔다. 한국에서 지역주의 타파는 과연 가능할까. 경영인이자 사업가이면서 20년 넘게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사회단체에서 활동해 온 박무서 ㈜파워란트팜 대표가 최근 ‘지역주의 타파도 K콘텐츠처럼’을 펴냈다. 저자는 한국의 지역주의는 미국의 인종차별과 갈등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내다봤다. 현재 한국의 정치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로 완전히 분리돼 극도의 정치분열로 나타난 것 역시 지역주의가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지역주의는 어디서 왔을까. 저자는 유교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수직적 관계가 지역주의의 원인인 권위주의와 파벌주의를 초래했다고 본다. 특히 권위주의는 엘리트 충원과 지역개발에서 편중된 지역 이기주의를 이용해 국민의 잠재적인 갈등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이런 잠재적 갈등은 대표자를 선출하거나 지역 간 이해관계가 있는 때에 명백한 갈등으로 표출된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정치환경을 변화시켜야 할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지역갈등 해소방안”이라며 “지역갈등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정치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전망과 극복방안을 실무적이면서 이론적인 차원에서 다뤘다. 지역주의를 초래한 한국의 내외적인 요소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MZ세대’와 ‘케이팝’에 주목한다. MZ세대에겐 지역감정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이들이 인종이나 문화적인 거부감을 버리고서 케이팝으로 전 세계인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고 본다. 세부적인 방안으론 △MZ세대에 의한 혁명과 투표 연령 하향 조정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의 전환 △MZ세대의 적극적인 정치참여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자치단체로의 권력 이양 및 분권화 정책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 중심의 정당이 만들어지면서 지역주의가 생겨났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면 상명하달의 권위주의적 정당 운영과 파벌주의의 정당 운영을 없애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 방식의 정당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화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물리적 지역개념을 붕괴하는 공간도시의 형성, 정부 인사의 획기적 지역 안배 정책 역시 대안으로 뒷받침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주의는 타파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방법 역시 존재한다”는 저자의 제안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인송문학촌 토문재, 입주작가 모집…창작활동 지원

인송문학촌 토문재(촌장 박병두)가 입주 작가를 모집한다. 모집기간은 오는 31일까지로, 문학 장르(시·시조, 소설, 수필, 희곡, 영화 시나리오, 아동문학) 분야와 함께 미술, 음악, 사진 평론 등도 참여할 수 있다. 등단한 기성작가, 지도교수의 추천서 제출이 가능한 예비작가 모두 신청이 가능하다. 선정된 작가는 다음달 10일 인송문학촌 누리집 또는 개별 통보한다. 입주를 희망하는 작가는 인송문학촌 토문재 누리집 공지사항 및 창작레지던스 입주작가 신청 게시판에서 신청서를 받아 이메일로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인송문학촌 토문재 운영위원는 심사기준에 따라 다섯 가지 항목별로 차등 점수를 둬 등단 연도와 매체, 수상과 활동 경력, 인문학적 기여도, 작품실적, 집필 계획의 적합성, 기대효과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선정된 작가는 지난해 선정된 작가와 함께 오는 3월1일부터 12월30일까지 1년, 1개월, 2개월, 3개월, 1주 단위별로 입주하게 된다. 특히 선정된 입주작가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일부 지원을 받아 창작실과 식기재 도구 및 식재료 일체를 전액 무료로 경제적인 부담을 갖지 않고 오로지 창작에만 몰입할 수 있다. 또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며 토문재문학 작품발표 등 다양한 활동이 주어진다. 인송문학촌 토문재는 지난해 추계예술대 교수 김다은 소설가 등 입주작가 69명을 선정했으며, 2022년부터 지금까지 259명의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했다. 인송문학촌 토문재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박병두 작가가 지난 2020년 고향인 해남 땅끝 7천600여㎡ 부지에 사재를 털어 건립했다. 한국의 멋과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담은 전통 한옥으로 지어졌으며 본관과 별관으로 나눠 난초실, 하우실, 인송실, 송정실, 국화실, 목련실 등 창작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인송정 정자와 24시간 토문재 북카페 휴게공간, 세미나실 등도 갖추고 있다. ‘글을 토해 내는 집’이라는 뜻의 토문재는 땅끝 해남의 인문학 명소로 작가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각광을 받고 있다.

화성행궁 안 구경 : 정조의 휴식·수양공간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지금까지 화성행궁을 왕실 행사 공간, 지방행정 공간으로 구분해 홍보했다. 정조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잘못된 구분이다. 한양 궁궐에는 수많은 공간이 있다. 수백년 동안 여러 임금에 의해 확장됐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화성행궁은 한 명의 임금에 의해 완성된 궁이다. 오롯이 정조의 생각이 담긴 공간이다. 화성행궁은 정조의 ‘휴식, 수양, 어머니와의 추억, 백성과의 기억’이 담긴 공간이다. 이번엔 노후를 위한 휴식 공간, 수양 공간을 본다. ■ 휴식을 위한 아름다운 공간: 노래당, 후원, 득중정지, 미로한정 젊을 때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충분히 쉬겠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정조도 쉼을 위한 공간을 준비했다. 첫째, 노후에 중심 거처로 사용할 노래당(老來堂)이다. 노래당은 낙남헌의 뒤편에 위치해 동향한 건물이다. 노래당을 중심으로 뒤편에 정자(미로한정)를, 앞쪽에 정원(득중정지)을, 좌측에 백성(낙남헌)을, 우측에 어머니(장락당)를 둔 공간 배치다. 행궁 북쪽 구역의 중심이고 노후 생활의 중심 공간이다. 노래당의 공간 특징은 노후 생활 공간의 중심에 있는 점, 행궁에서 유일하게 홍예문을 설치한 점, 정전인 봉수당이나 어머니 침전인 장락당도 단청을 하지 않았는데 단청을 한 점이다. ‘노래’라는 말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늙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 편안히 거처하면 그곳이 고향”이라는 시에서 따왔다. 편액은 화성 성역의 총책임자인 채제공이 썼다. 노래당으로 통하는 문의 이름은 난로문(難老門), 가풍문(歌風門), 득한문(得閒門), 삼수문(三壽門)으로 모두 늙지 않고 한가한 쉼을 희망하는 정조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둘째, 연못 득중정지(得中亭池)가 있는 후원이다. 소박한 규모이나 품격 있게 조성해 놓았다. 행궁 뒤에서 시작한 명당수를 중간에 연결해 취병 안을 지나 연못을 거쳐 나간다. 지형의 고저 차를 이용한 자연 급수 시스템으로 친환경 설계다. 취병이란 관목과 넝쿨식물로 만든 자연 식물 울타리(Hedge Wall)를 말한다. 두께는 50㎝ 정도이고 높이는 사람 키를 약간 넘는 정도라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게 했다. 상당히 세련된 조경 공간이다. 현재 발굴조사를 마친 상태다. 복원된다면 정조의 품격을 느낄 또 하나의 공간이다. 세 번째 휴식 공간은 정자인 미로한정(未老閒亭)이다. 위치가 행궁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먼 곳에서도 정자가 보인다. 마찬가지로 정자에 올라서면 눈 아래 행궁의 수많은 지붕이 장관을 이룬다. 미로한정에 올라 꼭 보기 바란다. 이름 ‘미로한’은 ‘장차 늙어서 한가하게 쉰다’란 의미다. ■ 몸과 정신을 수양하기 위한 공간: 득중정, 외정리소, 봉수당 누상고 휴식만으로 노후를 보낼 정조가 아니다. 문무를 겸한 임금으로 노후에도 몸과 마음을 계속 수양하려 했다. 국내외 서적을 늘 읽을 수 있고 본인의 글을 저술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화성행궁 내 공간이 이를 증명한다. 첫째, 몸과 정신수양을 위한 활터 득중정(得中亭)이다. 득중정은 노래당의 서쪽에 위치해 북향을 하고 있다. 특징은 행궁 대부분이 동향인데 득중정과 낙남헌만 북향을 한 점이다. 이유는 과녁까지의 긴 공간이 필요했고 많은 백성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위치와 너른 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화성능행도 중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가 이를 증명한다. 득중정 행사를 그린 것으로 정조가 활을 쏜 후 저녁에 어머니는 물론이고 수많은 백성과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모습이 보인다. 백성에게 공개된 행궁이다. 수원화성에는 활터가 행궁 북쪽 강무당, 행궁 안 득중정, 용연 위 방화수류정, 창룡문 맞은편 동장대 등 모두 네 곳이다. 수원이 활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일 것이다. 득중정에는 활을 쏘는 어사대가 있고 정조 친필의 편액이 걸려있다. ‘득중’은 “활을 쏘아 맞히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못 맞히면 될 수 없다”는 예기(禮記)의 글에서 따왔다고 한다. 둘째, 저술을 위한 외정리소(外整理所)다. 정리소는 왕의 원행을 위한 계획부터 시설, 인력, 의례, 교통, 물자, 회계, 기록 보존까지를 전담하는 통합기구다. 기록 보존도 정리소 임무 중 하나다. 실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외정리소에서 담당해 만들었다. 이때 30만자의 새 활자 ‘정리자’를 주조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저술 작업에 필수적인 기관이다. 성역이 완료된 후에도 외정리소를 화성행궁에 그대로 둔 점에서 집필에 대한 정조의 뜻을 알 수 있다. 셋째, 서고로 사용할 봉수당 내 누상고(樓上庫)다. 누상고란 행각을 2층으로 만들어 지상에서 떠 있는 2층 부분을 창고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 2층 부분 창고를 말한다. 즉, 누상고는 종이류나 습기를 피해야 하는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창고다. 외정리소 대부분이 누상고인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종이를 보관하거나 대체로 서고가 된다. 이런 누상고를 정전인 봉수당에 설치한 것이나 봉수당 행각 대부분을 누상고로 만든 점에서 수많은 책을 가까이 하려는 정조의 뜻을 알 수 있다. 이는 정조가 자신의 저술을 위해 외정리소를 화성행궁에 남겼고 많은 서적을 접하기 위해 서고로 활용하고자 정전 가까이 많은 누상고를 설치한 것이다. 정조는 노후에도 학문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외정리소의 화성행궁 존치와 봉수당 행각의 누상고 설치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왕의 은퇴를 계획하고 화성행궁에 노후를 준비했다. 화성행궁 안의 전각 공간을 통해 마음(文)과 몸(武)의 휴식과 수양을 위한 정조의 노후 계획은 이러했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마음 여행 ‘라트비아 리가’

무인도처럼 고적하고 싸늘한 작업실은 냉혹한 자극이다. 웅크린 채 생각에 잠기다가 먹잇감 본 사마귀처럼 화폭에 덤벼든다. 무모함은 겸손한 추억으로 치환해야지. 문만 열면 허전한 도시가 등을 보이지만 건물 꼭대기 나의 작업실은 파피용(스티브 매퀸)의 독방 같다. 한때 세계를 구름에 달 가듯 드나들며 여행이 인생의 주제였던 때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중단된 나의 여행은 교통사고 환자의 후유증처럼 선뜻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부터 나는 매년 두 달 세계의 오지를 여행해 왔다. 나이 들어도 갈 수 있을 문명 세계는 남겨뒀는데 요즘 욕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행의 의미와 인생관이 바뀌어 가는 이유일까. 내 삶의 여백이 점점 협소해져 천국 여행이 더 가까이 오지나 않을지, 돌아올 수 없는 영원의 행장이 아직 꿈이기를 바란다. 동유럽의 고풍스러운 주황색 건물 사이 거리를 걷고 싶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멋진 풍경을 오늘은 수강생 최승은님이 그렸다. 늘 진지한 태도로 경칩의 개구리처럼 도약하는 그의 그림은 나에게도 즐거운 희망이 된다. 캠퍼스 커플이라는 동갑내기 남편과 특별한 아드님 이창호군에게도 올해의 여행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는 게 마음 여행 같다. 이런 시가 내게로 왔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사람의 마음뿐이다/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정호승 ‘여행’)

“도전은 계속된다” 수원시립미술관, ‘네가 여기에 있어 기쁘다’ [전시리뷰]

“미술관을 방문하던 ‘관람객 고미희’에서 ‘작가 고미희’로 참여한다는 게 굉장히 설레면서도 부담됐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해보라’고 말해주고, 옆에서 믿어주고 도와주는 멘토와 함께 작업하며 용기가 생겼습니다. 제가 이렇게 해냈듯, 전시를 보러 온 관객분들도 저처럼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시민이 작가가 돼 나만의 예술작품을 만들며 작가의 꿈을 실현하고, 이를 전시하는 특별한 도전이 펼쳐지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네가 여기에 있어 기쁘다’ 전시 이야기다. 이번 ‘2024 문화도시 수원 연계사업’ 하반기 프로젝트인 ‘도전! 아티스트’의 결과 전시는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0월 4: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발된 시민 참여자 5인은 현대미술 작가 안성석이 멘토가 돼 2개월간 총 25회가 넘는 워크숍 및 작품 제작 과정을 거쳤다. 전시장에서는 이들의 도전이 담긴 회화·영상·설치 총 10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작가들의 도전 이유와 제작기가 생생하게 담긴 인터뷰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 5명의 시민이 작가가 되기까지 도전의 ‘과정’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프로 작가 못지 않다. 지난 2개월의 시간은 이들의 삶에 잊지 못할 순간이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고 있었다. ‘언제나 꽃은 옳다’라는 시리즈 작업을 펼친 고미희(김고미) 작가는 축하의 순간, 애도의 순간 등 인생의 희로애락에 늘 함께하는 꽃을 주제로 작업을 선보였다. 그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한, 세 아이의 엄마인 평범한 주부다. 학창시절의 꿈을 되살려 다시 미술에 도전하고,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전시를 펼쳐보인 고 작가는 자신처럼 많은 이들이 이 경험을 꼭 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5인 중 유일한 20대이자 취준생인 백예빈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에 참여하는 것에 꼭 엄청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도전하기 전까지 그 문턱은 너무나 높아 보였다. 백 작가는 “원래도 미술을 하고는 싶었지만, 스스로 그 정도의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공모에 합격하고, 멘토와 함께 작업을 거치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며 “그 간극을 메우도록 도와준 멘토에게 고맙다”고 표현했다. ‘도전 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얼마 전 인생에서 꽤나 큰 위기를 겪었던 백 작가는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따온 작품을 선보인 그는 이번 전시에서 매일 아침 거울 속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작성했던 글 등을 작품으로 활용했다. 이처럼 이들은 일상에서 느낀 순간들을 작품에 녹여냈다. 평범한 회사원인 오상미 작가는 ‘남녀 간의 관계’를 주제로 한 미니 드라마를 제작했다. 아이를 돌보고, 회사를 출퇴근하며 새벽같이 일어나 글을 써내려간 그는 작가의 꿈을 되찾게 돼 기쁘다고 말한다. 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게 곁에서 함께한 안성석 작가는 “자신은 작가로서 ‘과연 해도 될까’라는 생각은 집어넣고, 마음껏 창작하도록 용기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표현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커다란 벽이다. 그곳에 마련된 작업 도구를 통해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 누구나 자유롭게 글과 그림을 펼치며 또 다른 작품을 완성하는 도전을 펼칠 수 있다. 수원시립미술관 관계자는 “‘네가 여기에 있어 기쁘다’의 의미는 이러한 도전을 펼친 5인의 작가가 있어 기쁘다는 의미와 함께, 이들의 도전을 보러온 관람객인 ‘네’가 있어 행복하다는 뜻”이라며 “또 다른 시민들이 도전을 펼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31일까지.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조명부터 기후위기까지…경기도미술관에서 주요사업 발표

경기도미술관이 ‘한국현대목판화’의 한국성·역사성을 조명하는 등 올해 미술관을 활성화하기 위한 9개 주요 사업을 진행한다. 경기도미술관은 올해 ▲경기아트프로젝트 ‘한국현대목판화’ ▲동시대 미술의 현장 ‘기후위기와 RE100’ ▲소장품상설기획전 ‘飛물질’ ▲경기작가집중조명전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박혜수, 최수앙’ ▲신진작가 옴니버스 ‘박예나, 김민수, 강나연’ ▲맞춤형 교육프로그램 운영 ▲무장애 ‘경기도미술관 전시안내’ 애플리케이션(앱) 운영 ▲‘체험형’ 미술자료실 운영 ▲문화자원봉사 양성교육 운영 등 총 9개 주요 사업을 통한 활성화 전략을 세웠다고 14일 밝혔다. 주요 전시로는 오는 3월20일 경기아트프로젝트로 한국현대목판화 70년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목판화는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전통성과 향토성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목판화가 2000년대까지 각 시대별로 담아낸 한국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흐름을 예술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 같은 날 소장품상설기획전 ‘飛물질’도 열린다. 실험미술, 퍼포먼스, 개념미술 등을 아우르는 ‘비물질’의 개념과 역사, 작품을 다루는 상설 전시다. 미술관 소장품 중 비물질에 해당하는 작품을 선별해 1차로 전시한 뒤 5월 열리는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담론을 통해 9월 2차 전시를 열어 새롭고 풍부한 전시콘텐츠를 마련할 계획이다. ‘기후위기와 RE100’을 주제로 한 ‘동시대 미술의 현장전’(7월24일)도 눈길을 끈다. 기후위기, 자연생태 환경, 재생 에너지에 관한 예술작품을 통해 위기 극복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의도로 경기도 서해안을 비롯해 생태와 갯벌을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들을 초대해 동시대 미술이 인식하는 생태적 삶의 방식을 새롭게 조명할 예정이다. 11월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경기작가집중조명전’에선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박혜수, 최수앙 작가가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3월부터 약 1년간 신진작가의 작품, 활동을 집중 조명하는 ‘신진작가 옴니버스 전시’도 마련된다. 올해는 박예나, 김민수, 강나영 작가가 참여해 3월, 8월 12월에 프로젝트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경기도미술관이 위치한 안산의 지역적인 특성과 연계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관객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열린다. 북큐레이션 프로그램 ‘경미의 서재’와 ‘관객참여 프로그램’ 등 깊이 있는 미술 자료 콘텐츠를 제공하고, 무장애 관람을 위한 ‘경기도미술관 전시안내 앱’을 운영한다.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학생단체 프로그램 ‘G뮤지엄 스쿨’과 함께 기획전시 작품과 연계한 교육 대상별 맞춤형 프로그램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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