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이재명을 가른 승패요인은?...‘선거는 이미지다’ 한·미 대선 사례분석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는 국민들이 후보자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 채 치러졌다. 윤석열 후보는 정치를 시작한 지 1년 미만이었고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을 포함해도 10년, 국민에게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점을 역산하면 겨우 5년 반에 불과했다. 이때 투표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지다. 정치부 기자로, 자리를 옮겨 캠프에서, 선거방송기획단장으로, 또 대권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총 일곱차례 대통령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김구철 전 KBS 정치부 기자가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깨달은 이야기를 책으로 옮겼다. 그가 2020년 박사 학위 논문을 책으로 다시 집필해 출간된 ‘선거는 이미지다_한·미 대선 사례 분석’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락의 요인을 정리해 더욱 이목을 끌고 있다. 오늘날 대통령선거에서 어떤 이미지 구축이 승리를 가져다주고 앞으로 후보자들은 어디에 역점을 두고 준비를 해야 할지를 앞선 한국 대선과 미국의 대선을 통해 분석했다. 저자는 1997년 김대중의 준비된 대통령, 2007년 자신이 제안한 이명박의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은 성공적인 이미지 전략이었다고 평가한다. 그에 반해 1997년 이회창의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 2022년 이재명의 유능한 경제 대통령 캠페인은 실패한 슬로건이라고 짚었다. 특히 2022년 이재명과 윤석열의 대선을 중심으로 이미지와 선거 전략을 분석하고 정치 신인이 대통령선거에서 이긴 이유를 분석했다. 한미 대선 후보의 이미지를 비교하며 차기 대통령 후보들을 분석해 놓은 점도 흥미롭다. 과거부터 대선을 앞둔 현재까지 한국의 정치사를 장식했던 후보자들의 면면이 함께 제시돼 있고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등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 선거에 관한 이야기가 심층적이면서도 읽기 쉽게 풀어졌다. 저자는 “후보의 삶의 궤적이 후보가 내보려는 이미지와 일치하라는 법도 없고, 유권자가 선호하는 이미지들이 후보자의 철학이나 삶과 일치하라는 법도 없다”며 “후보의 삶의 궤적, 후보자가 내보려는 이미지, 선거운동 전략, 정책 등의 다양한 요소의 매트릭스가 시너지를 내려면 방향성이 일치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삶의 역정에서 우러나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게 승리의 요인이라는 저자의 판단을 따라가며 현재를 선거판을 해석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SF’ 거장들의 신작…‘고래눈이 내리다’·‘기병과 마법사’

우주를 가로지르고 외계 문명과 만나며 독자들을 ‘다른 세계’로 이끄는 ‘SF’가 또 한 번 찾아왔다. 국내 SF의 기반을 닦은 김보영, 배명훈 작가가 각각 데뷔 21주년, 20주년을 맞아 신간을 발표했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미지의 길을 개척하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두 작가의 ‘SF’를 소개한다. ■ 고래눈이 내리다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소설가 김보영이 ‘얼마나 닮았는가’ 이후로 5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됐다. ‘세계의 훌륭한 SF 선집’에 실린 작품이자 로제타상의 후보작이었던 ‘고래눈이 내리다’를 표제작으로 해 심해 생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생태 파괴의 문제의식과 지구 회복의 염원을 담아냈다. 이 작품과 짝을 이뤄 주제를 공유하는 ‘귀신숲이 내리다’는 버려진 우주 거주구에서 자라나는 버섯과 산호의 강한 생명력으로 모든 폭력과 공해로 파괴된 세계에 깃들 회복의 힘을 감각하게 한다. 이와 함께 감재사자의 신화를 통해 거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굳건한 내면이 드러나는 ‘까마귀가 날아들다’, 서버로 이주한 인류가 난개발과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자연물을 삭제해버리려는 시도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인 ‘너럭바위를 바라보다’ 등 시의성과 유머를 갖춘 엽편도 즐길 수 있다. 죽음을 다른 세계로의 전환으로 이해하는 ‘봄으로 가는 문’,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를 통해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이들에게 가슴 깊은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작가가 영화 ‘설국열차’의 시나리오 설정과 아이디어 작업을 하며 기획한 ‘새벽 기차’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신간은 과학적이고도 신화적인 세계에서 신선한 반전들을 선사하며 SF의 경이감을 전해온 김 작가의 특징이 잘 녹아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기계와 유기체, 동물과 인간의 구분을 허물고 인간과 문명 중심의 사고를 뒤집는 급진적인 상상력이 가득하다. ■ 기병과 마법사 소설가 배명훈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독창적인 한국형 판타지 소설 ‘기병과 마법사’를 펴냈다. 장편 소설로는 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이다. 이번 작품은 한반도 북부 너머의 대륙을 떠오르게 하는 상상의 공간과 전근대를 연상하게 하는 상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판타지’다. 영민하고 단단한 스물일곱살의 여성 주인공 영윤해가 자신의 힘을 발견해 각성하고 불가항력적인 어둠의 괴물을 퇴치하는 구원과 연대,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영윤해는 역사의 끊어진 고리를 다른 시대 예언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연결하며 독재와 폭정을 저지르는 파괴적 군주와 맞서며 파멸로 얼룩진 세계를 구한다. 책은 한반도와 전근대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상의 세계를 관찰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스스로 움직이는 세계와 인물에 대한 작가 특유의 통찰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충분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개념적 구상을 전개하고, 우리 문화권에서 가능한 판타지 세계를 정교하게 설계했다. 이에 이번 신간은 친숙한 세계, 독보적 인물들의 활약, 속도감 있는 전개, 뛰어난 전투 묘사 등으로 재미와 완결성을 모두 아우르며 배 작가의 여전한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 속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명상법'…‘나는 날마다 지하철에서 명상한다’ [신간소개]

현대인의 일상은 바쁘고 복잡하다. 생각은 쉴 틈 없이 흘러가고, 마음은 늘 어딘가에 가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명상이 뭐길래?’라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펼친 이들은 아마도 잠시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김성수 작가의 신간 ‘나는 날마다 지하철에서 명상한다’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이 책은 요가복이나 명상센터, 스승이 없어도 누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명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명상을 특별한 수행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로 정의한다. 실제로 그는 “명상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혼자서 바쁘게 사는 법이라고 대답할 것”이라 말한다. 격식 없이,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드는 명상.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은 독자들이 일상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12가지 명상 제안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은 ▲행복은 의식 있는 죽음이다: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 삶은 더 생생해진다. 명상은 그 의식을 깨우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모든 순간 두 개의 현실을 산다: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명상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내가 나를 보면 명상, 내가 너를 보면 망상: 자기 성찰 없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왜곡을 낳는다 ▲거울만 자주 봐도 왕초보는 벗어난다: 거울을 보는 일조차 하나의 명상적 습관이 될 수 있다 ▲시작해 보자, 명상: 어렵지 않다. 지금 이 순간 호흡부터 알아차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날마다 지하철에서 명상한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 짧은 호흡 명상이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 ▲명상은 변화를 즐기는 일이다: 변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다. 명상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힘을 기른다 등으로 이뤄졌다. 책 전체를 흐르는 작가의 어조는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김성수 작가는 명상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나는 날마다 지하철에서 명상한다”는 제목이 아니라 그가 실천하고 있는 명상법이자 철학이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지 않아도, 복잡한 승객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고 현재에 머물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디서’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와 만나는 순간을 기대한다. 명상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다는 것이다. 책은 그 만남의 문을 여는 친절한 안내서이자, 스스로를 향한 초대장이다.

“가장 오래된 과학, ‘천문학’을 들여다보다”… ‘우리는 별에서 시작되었다’ 外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머리 위 별들을 나침반으로 길라잡이 삼아왔다. 밤하늘을 품은 우주는 태초의 기원이자, 오래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국내 우주항공의 시대를 기념하는 국가기념일인 제1회 ‘우주항공의 날’(27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과학 ‘천문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소개한다. ■ 우리는 별에서 시작되었다 11월의 어느 밤, 이제 막 연인이 된 두 사람은 연극을 관람하고 돌아가는 길목에 아쉬운 마음을 담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십억 년의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그곳에서 이들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유성이 지나가고 둘은 조용히 소원을 빈다. 마침내 그 소원이 이뤄졌을 때, 남자는 당시는 회상하며 ‘그 밤, 내 인생이 바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별에서 시작되었다’의 서문 속 이야기이자 저자인 로베르토 트로타 본인의 러브 스토리다. 우주론학의 세계 권위자이자 이론물리학 교수인 저자가 펴낸 책은 천문학자가 들려주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별이 없었다면 인류는 어떤 존재였을까?’라는 과학자의 의문에서 시작된 책은 철학, 수학, 천문학, 우주 탐사, AI까지 아우르며 별에서 출발한 인류 문명의 궤적을 따라간다. 동시에 지구와는 정반대의 ‘칼리고’라는 별이 보이지 않는 대체 지구를 문학 가설로 탄생시켜 SF 소설과 같은 몰입감을 전한다. 책은 ‘시인처럼 글을 쓰는 천문학자의 매력적인 인류 역사’(월스트리트저널), ‘황홀한 글’(네이처)이라는 평을 받으며,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스미스소니언’의 ‘2023 최고의 과학책’으로 꼽혔다. ■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의 저자 지웅배 박사는 다소 엉뚱해 보이고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이러한 지적 호기심이 천문학을 발전시키는 훌륭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천문학 역사의 중요한 이론들은 ‘왜 저 별은 그렇게 움직일까?’, ‘지구는 정말 중심일까?’와 같은 사소하지만 거대한 의심과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책은 우리가 놓치기 쉽지만, 중요한 질문들을 다루며 거대하고 광활한 우주의 이야기를 평범한 ‘지구인’들에게 흥미롭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초록색 별은 왜 없지?”라는 질문 하나에서 우리가 빛을 인식하는 방식, 별의 온도와 스펙트럼까지 파고들며 “외계인은 정말 없는 걸까?”라는 의문에서는 우주 생명체 탐사의 현재와 과학적 증거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주는 왜 깜깜하며, 우주의 끝은 어디이고, 블랙홀은 얼마나 뜨겁고 무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철학의 문까지 이른다. 저자는 ‘1.4kg의 우주’라는 별명을 가진 인간의 뇌 신경이 우주와 어떤 유사성을 지니는지 살피며 우주와 인간의 연결고리는 두텁다고 말해준다.

문예지 ‘백조’ 2025년 상반기호 발간, 전통 계승하며 오늘의 문단 말한다

노작홍사용문학관(관장 손택수)은 통권 제20호를 맞이한 문예지 ‘백조’의 2025년 상반기호를 발간했다고 21일 밝혔다. ‘백조’는 지난 2020년 창간 100여 년 만에 제4호로 복간된 이후,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의 세련된 문예지로 거듭나고 있다. 문학관에 따르면 20호부터는 ‘백조’의 표지를 전통과 현대의 미를 아우르는 디자인으로 갈아입었다. 지역문화에 기여한다는 기존의 방향성을 유지하되, 보다 폭넓은 필진을 섭외해 다양성을 확보했다. 상반기호의 표제는 기획란 ‘작가 아카이브’의 첫 연재이기도 한 ‘아카이브 윤석산(尹錫山)’이다. 지역의 원로 문인들을 조명하고, 장기적으로는 구술 채록을 통해 문학사적 축적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초대 작가는 1970년대에 등단해 50여 년의 시력을 이어오고 있는 윤석산 시인이다. 60여년 가까이 작품활동에 매진 중인 현대시문학사의 산증인이자 동학자로서 천도교 교령을 지냈다. 인터뷰 진행은 이정은 시민문화활동가가, 윤석산 시인론은 홍박승진 국문학자가 맡았다. 특집 지면에는 노작홍사용창작단막극제의 최근 3개년 희곡상 수상작을 집중 조명한다. 황정은, 김나영, 김택수 극작가의 작품과 김기란 연극평론가의 작품론을 게재한다. 시 창작란에는 총 15인의 시인이 각각 신작시 2편과 근작시 1편으로 참여했다. 필진은 김바다, 김사인, 김승희, 김이듬, 동명 차창룡, 박균수, 박순원, 박은정, 배수연, 김지민, 안도현, 이기현, 전형철, 정다연, 함명춘 등으로, 명실상부 세대별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신작이 실렸다. 소설 창작란에는 박현옥 소설가의 신작 ‘말하는 사람’, 이지 소설가의 신작 ‘쓸쓸함과 앙금과’를 소개한다.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장은 “통권 제20호를 맞아 새로이 단장한 문예지 ‘백조’의 행보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실패에서 배우는 소방조직 최초의 ‘징비록’ [신간소개]

양주소방서가 전국 최초로 소방조직의 실패 사례를 모은 ‘소방 징비록’을 발간했다. 양주소방서가 선도적으로 추진해 발간한 소방 징비록은 그동안 소방활동 과정에서 감추고 싶었던 현장과 행정의 생생한 실패와 시행착오 사례를 정직하게 담아내고, 이를 조직의 발전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양주소방서는 사례집에서 행정분야 57건, 재난대응분야 65건 등 122건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시행착오 사례도 부록에 20건을 수록해 실용성을 높였다. 사례집은 ‘누가 실패했는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실패 자체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했다. 사례집에는 각 부서의 다양한 시행착오가 담겨 있다. 인사분야에선 특정 인력의 부적정 배치로 조직 내 갈등이 유발된 사례가, 예산분야에서는 낙찰 차액을 예산에 반영하지 않아 연간 사업이 무산된 사례 등이 소개됐다. 재난현장 사례도 생생하다. 구조현장에서 지휘자의 판단 지연으로 작업이 장시간 지체된 사례, 구급분야에서는 응급환자 이송 중 산소통 부족으로 현장대응이 어려웠던 사례가 기록됐다. 예방분야에서는 감지기 설치 기준 오해로 시공업체와 갈등을 빚은 사례 등 현장에서 빈번히 발생할 수 있는 실수들을 짚었다. 권선욱 서장은 “실패를 숨기지 않고 복기하는 조직이 결국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며 “이번 사례집이 소방조직의 ‘징비록’이 되어 실패를 공유하고 학습하는 새로운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두 불평등 전문가의 만남…‘기울어진 평등’ [신간소개]

지난해 5월 세계적인 사상가 토마 피케티와 마이클 샌델이 파리경제대학에서 만나 토론을 펼쳤다. 각각 프랑스와 미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대중 사상가인 두 사람은 만남 자체로 눈길을 모았고, ‘평등과 불평등, 진보’를 키워드로 목소리를 냈다. 평등의 가치는 무엇인지, 불평등이 왜 문제인지, 우리를 둘러싼 각종 격차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다. 이 토론이 올해 한 권의 책 ‘기울어진 평등: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로 출간됐다. 샌델과 피케티는 불평등의 세 가지 측면인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계화와 능력주의, 불평등한 기본재 접근권, 기울어진 정치 참여, 사라진 노동의 존엄성 등 다양한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다. 책에서 이들은 지금 시대에서 ‘노동의 존엄성’은 인정받기 힘들며,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연대의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의 여러 계층이 섞이는 기관들은 갈수록 감소하고,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이 평소 살아가면서 마주칠 일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격차보다도 사회적 격차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두 사람은 이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교육과 의료를 포함한 기본재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투자, 더 높은 누진 과세 체제, 부유층의 정치력 통제, 기업에서의 노조 역할 확대, 대입과 선거에서 추첨제 활용 등 여러 가지 대안도 제시했다. 책은 불평등이 왜 문제인지를 통해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식물의 언어로 읽어나가는 세상…'숲을 읽는 사람'·'나무들의 비밀스러운 생활'

자연과 사랑에 빠져 식물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 이들이 있다. 사라져가는 초목을 수호하는 식물분류학자, 숲의 생태계를 관리하는 산림감독원이 나무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과학적 통찰을 풀어냈다. 인간과 닮은 면모가 많은 ‘나무’의 탄생부터 의사소통 방식, 생존전략 등 나무의 숨겨진 이야기와 함께 자연 보호에 대한 진심어린 목소리를 정교하게 담았다. 식물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모아봤다. ■ 나무들의 비밀스러운 생활 ‘나무들의 비밀스러운 생활’은 어린 시절 자연과 깊은 교감을 한 주인공 ‘페터’가 명성있는 산림감독원이 돼 동식물과 숲을 만나며 품게 된 사색과 통찰을 내레이션 형식으로 전달하는 한 편의 그래픽 소설이다. 책은 페터의 시선에 따라 숲과 나무, 그 안에 살아 숨쉬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놀라운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지난 2015년 독일에서 출간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뒤 ‘그래픽 노블(그림 소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오랜 시간 숲과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탐구해 온 작가이자 각본가인 프레드 베르나르와 그림 작가 벤자민 플라오는 원작자 페터 볼레벤이 펼쳐낸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들을 다채로운 색감의 글과 그림으로 되살려냈다. 이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페터가 숲 바닥에 앉아 한 줌의 흙을 쥐어 보고,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에 관해 사색하거나, 숲길에서 마주친 나무를 세심히 관찰하는 장면 등을 만나게 된다. 땅속 생명체, 나무의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와 기능에 대한 풍부한 과학적 지식도 습득할 수 있다. 책은 자연 보호에 대한 깊은 메시지도 전한다. “인간이 잘 손질한 숲은 결국 반은 죽은 숲”이라고 말하는 페터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대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구의 탄생부터 인간이 숲을 이용해 온 기나긴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이 책은 인간이 나무와 숲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진중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 숲을 읽는 사람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일하고 있는 허태임 식물분류학자가 산문집 ‘숲을 읽는 사람’을 출간했다. 책은 저자가 일하는 풍경과 그 과정에서 마주친 식물들에 대해 들려준다. 저자의 일터는 곰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고, 진드기에 물리거나 해가 져서 깜깜해질지 모르는 인적 드문 산속이다. 저자는 식물에 대한 애정을 품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간다. 해발고도 1천300m 이상에서만 피는 ‘바람꽃’을 보기 위해 산 정상을 오르고, ‘노랑팽나무’를 찾기 위해 59번 국도를 따라 이곳저곳을 누빈다. 울릉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너도밤나무’를 기록하기 위해 울릉도 태하령의 너도밤나무숲을 탐사하기도 한다. 특히 책에는 산속에서 채집한 식물들의 목소리가 담겨 읽는 재미가 있다. 화려한 장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수수한 모습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찔레꽃’,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씨앗에 독성 물질을 심어놓는 ‘귀룽나무’와 씨앗에 날개를 달아 훨훨 날게 하는 ‘박주가리’, 다른 존재와 공생하는 ‘겨우살이’의 이야기가 조곤조곤 이어진다. 이 같은 식물의 이야기는 저자의 다정한 경험과 맞닿아 더욱 확장된다. 어린 시절 식물을 향한 사랑을 처음 일깨워준 할머니, 올괴불나무꽃 향기에 여전히 소녀처럼 기뻐하는 엄마, 호야 화분을 선물로 건넨 두봉 주교, 비무장지대를 나란히 누비며 우정을 나눈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기억이 식물 이야기와 화음을 이루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내 멋대로 즐기는 클래식”…‘당신의 저녁에 클래식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신간소개]

매일 밤 유튜브의 세계에서 조성진과 임윤찬의 연주를 찾아 헤매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클래식 애호가’다. ‘당신의 저녁에 클래식이 있다면 좋겠습니다’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리아나 워소팬 라우흐는 클래식의 ‘클’자도 모르는 것 같고, 클래식에 대해 무지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숨겨진 ‘덕후’들에게 “클래식엔 아무런 ‘자격’이 필요 없다”며 “오늘 밤 그저 이 음악을 즐기면 된다”고 말한다. 철저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며 누구보다 클래식의 세계에 깊이 몸담았던 저자는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 신랄하면서도 재치 있게 담장 높아 보이던 그곳의 이면을 알려준다. 권위의식과 엘리트주의 세상에 서 있던 저자 특유의 유머는 “클래식 별거 아니야”라고 속삭인다. 그 속엔 누구보다 클래식을 사랑하고, 클래식의 세상을 알려주고 싶은 저자의 애정이 담겨있다. 안내자는 따뜻하면서도 친절하게 독자를 이끈다. 1천년이 넘는 클래식의 역사를 짚어주고, 50여개의 그림 자료와 200여개의 각주를 통해 시대별, 작곡가별, 형식별 필수적인 지식을 알려준다. 여기에 저자가 엄선한 20여개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200여곡의 추천곡은 큐알코드로 담겨 클래식 문 앞까지 독자를 안내한다. 클래식 세계의 뒷이야기는 ‘덤’이다. ‘론도형식의 곡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화장실을 미리 다녀오라’는 저자 특유의 농담부터 ‘작곡가의 9번 교향곡은 그 사람의 인생 마지막 교향곡이 된다’는 클래식계의 미신까지 흥미 가득한 에피소드는 독자를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오늘도 그냥 서점 합니다” 친근한 책방, 블랙버드북숍

인생의 큰 전환점에 가장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블랙버드북숍의 권성미 대표. 책과 사람이 좋아 시작한 이 서점은 권씨 본인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 되고 있다. ‘잘 시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검은 새’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업계에서 인정받으며 15년 차 헤드헌터로 일하던 권성미씨는 어느 날 불현듯 암 선고를 받고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됐다. 선항암치료, 수술, 후항암치료, 방사선, 재활치료까지 어렵고 지난한 시기를 보내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책’이었다. “늘 무의식 중에 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단순하게 시작한 편이에요. 오픈 초기에 선별한 책과 의자 몇 개 두고 독서모임을 시작했던 게 생각납니다. 여전히 암 생존자로서 때마다 추적 관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책방을 통해 만난 좋은 이웃들 덕에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점 이름에 영감을 준 비틀스의 노래 ‘Blackbird’는 평소 권씨가 좋아하던 노래다. 부러진 양 날개를 파닥이며 날갯짓하는 검은 새와 그런 검은 새를 응원하는 내용의 노래 가사는 권씨가 브랜딩하고 싶은 서점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권씨는 스스로를 “잘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책방을 열 때도, 책방에서 어떤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기획할 때도 일단 시작하고 본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남양주 다산동을 고를 때도 그랬다. “다산동으로 통합하기 전 ‘가운동’일 때 우연히 이곳에 들렀어요. 이 동네만이 갖고 있던 자연 친화적인 한가로움과 안온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점이 하나도 없는 곳, 저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조건에도 잘 맞았고요.” “오늘도 그냥 서점 합니다.” 블랙버드북숍을 열고 보니 서점이 들어선 상가 자체의 유동 인구가 적고 활성화된 곳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곳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열정 하나로 책방을 꾸려 나갔다. 하나둘 생겨난 단골손님들이 만나고 싶다는 작가들을 섭외하면 그 작가를 언급한 손님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저는 늘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느낌을 좋아하는데 마치 모객도 책방 손님과 함께하는 기분이어서 힘든 줄도 모르더라고요." 한편 블랙버드숍은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오후 5시에 '일요일에 여는 인생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3월엔 '저, 청소일하는데요'의 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김가지님, 4월엔 유튜브크리에이터로서 안내견과 단둘이 여행에 도전하는 시각장애인 양주혜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월, 6월에도 훌륭한 MZ 선생님들이 대기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책과 사람간의 소통은 사라지지 않을 거란 믿음, 그 생각이 지금의 '블랙버드북숍'을 있게 한 버팀목이라고 말하는 권씨는 "서점을 찾는 이웃들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블랙버드북숍이 있어 참 좋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도 그냥 서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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