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간 강화 곳곳에 산재한 역사유적지 답사를 통해 강화역사를 책자로 펴낸 고등학교 교사가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강화 덕신고교 김경준 교사(53·사회)로 최근 ‘태조왕건의 처가는 강화도였다’는 부제의 ‘강화도 역사산책’이란 책을 출간했다.
현재 강화발전연구회 역사분과 전문위원, 두레문화기행 연구위원, 강화사랑교사모임 등에 참여하고 있는 김교사는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인데도 정작 지역 주민들은 강화역사에 대해 의외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하다”며 “강화역사에 대한 주민들의 주인의식을 한단계 끌어올려 범 강화사랑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책자를 발간하게 됐다”고
말한다.
김교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지나간 사실에 대한 나열에서 탈피하고 답사객들이 현장에서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김교사는 이 책에서 강화도의 지명이 고려개국 초 혈구군·해구군에서 바뀌었으며, 왕건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형성했던 호족과의 화합책으로 29명의 부인을 두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당시 혈구진이라는 지명에 불만을 품은 이곳 호족의 뜻을 헤아려 왕건이 ‘강이 둘러싸고 있는 꽃’이란 뜻의 江華로 지명이 개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또 북한 일대가 주무대였던 단군 성조가 강화도에 참성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까닭에 대해서도 김교사는 이를 뒷받침할만한 문헌과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몽고의 침략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강도(江都)정부가 천도의 당위성을 단군과 연결, 국난을 헤쳐 나가기 위한 것 아니었겠느냐며 판단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김교사는 “역사의 보고인 강화도를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해서는 풀 한포기, 돌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애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종만기자 kj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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