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강심의 물 줄기를

(인권이라기 보다는) 민권변호사였다. (논리 정연하게 따졌던) 국회 5공 청문회 스타, 그리고 3당 합당 반대 등 정치역정, 패배를 무릅쓰고 우정 부산 선거구를 선택한 총선 출마의 뚝심, 그래도 그가 막상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다. 대선 공식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이다. 이 칼럼에서 ‘급진좌파…’라고 했다. 그의 지지자들로부터 전국에서 벌떼깥은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거친 항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그가 당선되고 나서다. 이 무렵 비난하는 독자들이 (지금도 있겠지만) 있었다. 아부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쳤다면 유감이지만, 대통령의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권력에 비위 맞추고 싶을 만큼 겁먹을 생각은 없다.

개인적 입장에서는 투표 때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지만 될 수도 있겠다고 여겨진 것은 투표일 전이다. 두 아들 며느리 중 큰아들 내외는 표가 갈라지고 둘째 아이 내외는 그에게 다 표가 가는 것으로 감이 잡혔다. (물론 사회적 감도 비슷했다)

당선되고 나서 보인 그의 의지는 여전히 단호했으나 언어는 순화되고 모습은 정중하였다. 전에 볼 수 없이 정리된 영 다른 면모였다. 나는 해방후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제헌국회 총선을 죽창 등으로 사람을 마구 죽여가며 반대했던 공산주의자와 맞서 싸운 민족 진영의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빨갱이들의 습격 때문에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었고 이래서 가산마저 탕진됐다) 한국민주당 골수였던 선친은 군인이 되어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전쟁의 참화를 체험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20대엔 한동안 진보주의자가 되려고 무던히 노력하기도 하다가 결국 나는 오늘날 보수의 입장에 서있다. 얘기가 장황한데는 이유가 있다. 보수주의도 이젠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평양 정권은 전범단체이긴 하나 과거에 집착하여 민족의 진운을 방해해서는 그 역시 죄악이다. 미국을 붙잡아야 하지만 이젠 ‘예스맨’에서 탈피해가며 잡아도 잡는 게 참다운 국익이다. 그는 당선자 시절 ‘좌파 시각은 오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컨대 고른 성장, 분배 정의가 좌파 논리일 수는 없다. 우파도 마찬가지다. 크게 보아 사회복지 정책의 틀은 모두 이 범주 안에 든다.

세월은 시류다. 흐르는 물은 앞서기를 다투지 않지만 정체를 거부한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알고보면 거역할 수 없는 시류의 대세다. 무엇보다 이 시대는 변화를 갈망한다. 국가사회가 뭔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새 정부가) 표방하는 개혁과 통합, 이는 모순의 관계이면서 상승의 관계다. 그러므로 정말 어렵다. 역기능이 아닌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체든 객체든 (수술의 통증과 같은) 뼈아픈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물론 노무현 정부도 탈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내부 갈등도 있고 실책도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의혹도 제기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강물의 흐름을 보려면 거꾸로 맴돌기도 하는 강변의 물을 보기보다는 강심의 줄기를 보아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잘 하겠다는 사람에게) 일단은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이제 막 출발한 대표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트집이 아니고 응원이다.

지난 대선 이튿날 어느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전화로 아들이) “어머니! 어머니 뜻대로 안되어 마음 상하시지요?” (어머니) “아니다. 네 뜻대로 된 것을 축하한다” (아들) “축하는요…축하는 5년 뒤에 봐야지요” 이런 대화는 비단 이 집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자신이 간곤했을 때를 생각하면 해답이 나온다. 청와대 주인은 아무나 되나, 그러면서도 어려운 것은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다. 좋은 대통령이 되기를 간곡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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