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900kg 폭탄 맹폭으로 폐허가 된 지하 18m 벙크의 후세인이 죽었다고 믿을까. 후세인은 과연 죽었나, 아니면 거미줄 같은 지하통로로 이미 도망쳤을까. 그도 아니면 미 CIA의 후세인 소재 제보가 엉터리였을까. 추한 전쟁이다. 침략자와 독재자의 오기 싸움으로 생사람 잡는 게 이라크 전쟁이다.
처음 구실은 후세인이 9·11 뉴욕 테러의 배후 지원자란 것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설은 그 다음 구실이 됐다. 유엔이 사찰단을 내보냈으나 증거를 잡지 못했다. 테러 배후 지원도, 대량 살상 무기도 아무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부시는 그래도 맞다고 우겼다. 유엔이 이라크 공격을 허락하지 않자 굳이 그런 게 뭐 필요하느냐는 식으로 블래어를 데리고 침공에 나섰다. 그러나 공격 구실을 삼은 생화학전 같은 대량 살상 무기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더 다급할 때 써먹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무기가 있다는 부시의 말이 애당초 틀린 것일까.
아무튼 부시의 이라크 침공 구실은 아직 하나도 들어 맞는게 없다. 들어 맞는 말이 없다보니 이제는 이라크 국민의 해방이 눈앞에 왔다고 말한다. 후세인이 악명 높은 독재자인 건 틀림이 없다. 대통령궁도 많아 어느 궁에서는 진짠지 가짠지는 몰라도 금 세면기가 나왔다 하고, 두 아들과 측근을 앞세운 철권정치로 100% 지지율을 조작한 공개투표 등 공포와 최면으로 장기 집권하고 있는 그 또한 희대의 독재자인 것은 맞다. 후세인은 또 떠벌이 허풍쟁이다. 부시와 게임 상대가 안되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맥도 못추고 무너질 줄은 정말 몰랐다. 두더지처럼 땅속에 숨어 텔레비전 쇼의 성전 독려만을 일삼아 국민을 떼주검 속으로 몰아넣은 그는 참으로 치사한 독재자다.
국민을 보호할 자신이 그토록 없으면서 부시의 전쟁을 불러들인 후세인 역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독재와 무슨 상관이 있나. 유엔이 나서면 몰라도 독재를 하든 말든 남의 나라 일에 미국이 간섭할 이유는 없다. 부시는 침략군을 해방군으로 둔갑시키려 한다. 친미 이라크 정권을 세우기 앞서 미 군정을 하겠다고 한다. 미국식 정의가 마침내 군사행동으로 노골화한 것은 참으로 우려스런 현상이다. 세계는 벌써부터 부시의 다음 차례 공격 대상을 점치고 있다. 시리아가 대상일 것으로 보는 관측이 있지만 어디든 더는 안된다.
남의 나라를 멋대로 트집 잡다가 불바다로 만들며 쳐들어가 군정을 펴는 것은 날강도 같은 짓이다. 부시는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말하지만 그 자신도 인권 파탄자다. 미국에 밀입국했다가 들켜 해병대로 참전하여 이번에 전사한 외국 청년은 과테말라 젊은이만이 아니다. 미국 시민권을 얻기위해 목숨을 건 밀입국자 참전군인은 허다하다. 미 국민이 아닌 이들의 참전은 시민권을 미끼 삼은 부시의 용병인 것이다.
하지만 부시가 추하긴 해도 그 위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 같다. 세계질서의 현실이다. 미국은 우리를 이용하려 든다. 우리도 미국을 이용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 쇠락의 미래적 역사관과 현실적 실익의 차이다. 이라크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여도 우리에겐 한반도 평화가 그에 비할 수 없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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