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막상 들어가서 보니까 마치 창고가 텅 빈 종가집 살림을 맡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박정희’가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을 약 15만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된 뒤 밝힌 청와대 입성 소회가 이러 하였다. 그는 군사혁명 주도자로 근 2년을 사실상 집권한 예비기간을 거쳤으면서도 청와대 밖 군정과 청와대 안 민정의 차이점을 청와대 주인이 되고나서 비로소 실감했던 것이다.
‘노무현’ 의 집권에 정치적 입지가 다른 ‘박정희’와 비교하는 게 아니고 청와대 밖에서 보는 것과 청와대 안에서 보는 관점은 이처럼 다를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노무현 대통령의 형편은 박정희 대통령의 처지에 비해 나라 사정이 아주 다르긴 하나 청와대 주인의 입장에서 느끼는 점은 같을 것으로 보아진다. ‘반미’를 불사하던 ‘노무현’이 지난 방미 길에 ‘친미’로 돌아섰다면서 ‘굴욕론’까지 쏟으며 폄훼하는 목소리가 시끄럽게 한다.
예를 한번 들어본다. 만약 국가 안보가 불안하고 불투명하여 외자 이탈과 함께 수출이 막혀 민생이 북녘처럼 심히 어려워지면 어떻게 될까, 입맛 눈맛 말맛이 높을대로 높아진 남녘 사람들은 북녘 사람들처럼 끽 소리 못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난리가 날 것이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고 엊그젠 “재앙”을 들먹인 저들 말처럼 대량 살상무기를 동원하는 전쟁이 재발된다면 또 어떻게 될까, ‘자유’와 ‘인권’이 사치스런 넋두리가 되는 6·25 때보다 더 무서운 지옥같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설마’가 아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이리 되어도 좋다면 미국과 속 편하게 등져도 괜찮겠지만 빈대 보기 싫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부시의 독선이 역겨워 욕하고 속은 불편해도 수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미국과 아주 등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남쪽 국방력이 북쪽에 비해 80%정도 밖에 안되는 현실에서 SOFA 개선을 또 따질 때 따지더라도 미군더러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와대 밖에서의 ‘노무현’ 말은 비판자였으며 지금의 ‘친미 굴욕론’ 역시 비판자의 소리다. 그러나 책임과 비판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 청와대 안의 대통령 ‘노무현’은 비판자일수 없는 고독한 책임자인 것이다.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다짐한 취임 선서의 이행을 위해서는 능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이다. 대통령의 대미관 변화는 국가의 실익과 국민의 실리를 위해선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실용주의의 선택인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성향의 ‘노무현’이 보수성향으로 변할 것으로는 절대로 믿기지 않는다. 다만 대미 관계에 친미도 반미도 아닌 용미를 위해서는 보수든 진보든 그런 개념을 뛰어 넘는 고뇌의 결단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통령의 방미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충심으로 함께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경제에 미국의 눈치가 필요없고, 미국이 아니어도 안보가 걱정없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 소망스럽지 않은가 생각한다. 미국을 무시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라고 해서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는 러시아나 중국 또는 프랑스 등이 아니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자생력이 강한 나라다. 이들 나라에 미국의 영향력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미국을 무시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작은 나라이면서도 강한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친미, 반미를 탓하기 앞서 우리들 스스로가 앞가림을 잘해야 한다. 배알로 말하자면 ‘굴욕론’을 들먹이는 이들보다 ‘노무현’이 더 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므로 달랐을 뿐인 것이다. 훗날 회고록을 쓴다면 “나는 그 때 철저한 연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기술할 것으로 촌탁된다. 청와대측 듣기 좋아라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듣기 싫은 소릴 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