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청와대 편지 ‘恨을 버리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

듣기싫은 말이 그리도 듣기 싫습니까. ‘듣기좋은 꽃노래도 석자리 반이라’하였으니 그럴만도 하긴 하겠지요. 하지만 범부가 아니잖습니까. 대통령이기 때문에 다 듣는 얘기로 아시면 됩니다. 이 칼럼도 대통령이 후보시절엔 꽤나 듣기싫은 소릴 했습니다. 그랬던 게 막상 대통령이 되시고 나선 거의 침묵을 지키거나 더러는 되레 두둔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그(대통령)에게 여유를(주자고),’ 이렇게도 말했고 ‘강변의 물(사소한 일)보단 강심의 물 줄기(큰 흐름)를 보자’고도 했습니다. 한폭의 그림을 그리는데도 구도가 잡히기까지는 수많은 소묘가 점철합니다. 하물며 갓 집권하여 국정의 틀을 잡는 덴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이 정부의 국정운영 데생 시점을 반년에서 1년으로 본 가운데 이제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긴 하나 명심하실 것은 국정에는 연습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간 다른 지면에서 많은 공격을 받아야 했던 연유가 이에 없지 않았음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공격이 온건하다 불온하다 하는 것은 민중이 판단할 몫이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입에 담을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무던히도 애쓰신 것은 인정합니다.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지근의 권력기관과 아직까진 전례없이 일정 거리를 두는 것 정말 보기 좋습니다. 흔히들 인재 발굴을 말합니다만 삼고초려할 제갈 공명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잘 아는 측근을 기용하는 파격을 굳이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파탈도 좋습니다. 벌써 국회 시정연설을 두번이나 갖게 되는 것은 임기동안 국회를 한번도 찾지 않았던 전직 대통령들에 비하면 참 좋아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에 대한 비난 가운데는 대통령께서 쓸데없는 말씀을 하신 게 더러 빌미가 된 것을 유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못해 먹겠다” “하야하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씀은 이유가 어떻든 할 말이 못됩니다. 투박한 언어, 거친 표현 역시 서민풍모의 대통령상을 고집하고자 하는 파탈로 짐작되긴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파탈이 순기능쪽으로 가면 보기가 좋지만 역기능쪽으로 가면 왜 그렇지 못한가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통령께선 유난히 맺힌 한(恨)이 무척 많아 보입니다. 파격, 파탈의 고집이나 돌출의 오기 같은 것 역시 재래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풀이로 보면 잘못일까요. 김해 진영의 빈가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른 것은 가히 청소년들에게 교범이 되는 입지전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성장 과정의 불우한 환경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계에 입문해서도 실로 파란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민주당 안에서 한동안 나돈 후보 교체론, 대선과정에서의 열세를 막판에 뒤집기까지는 숱하게 중첩된 역경에 역경의 극복이었습니다. 어찌 가슴에 응어리 진 한이 없다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입니다. 맺힌 한을 이젠 내 던져야 합니다. 전 대통령 박정희가 생각 납니다. 성장 과정의 어려움은 두 분이 다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박 대통령은 정치적 난관없이 총칼로 바로 집권을 시작했고, 그래서 개인의 정치적 한은 당초엔 없었던 데 비해 노 대통령은 천신만고의 정치역정 끝에 집권하여 정치적 한이 피맺힌 점이 다릅니다.

박정희는 그래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보릿고개 같은 가난을 물리쳐 독재자이면서도 오늘의 경제성장에 초석을 다진 공로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가난을 물리친 것은 그 역시 뼈저린 가난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성장기를 거친 대통령께서는 이제 무엇을 해보이시겠습니까. 개혁의 웅지를 짐작 못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정서를 불안케하는 한을 품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듣기좋은 말은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듣기싫은 소릴 들을 줄 아는 대통령이 되시면 참 좋겠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지난 날의 정치 원한에서 해방되는 당당한 면모를 보고 싶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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