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2만불 시대로/동양전자 주식회사

"토종 ‘온도퓨우즈’… 외국인 ‘러브콜’

세계 40개국 수출 ‘名品’ 인정

윤 사장의 학창시절 꿈은 화학자였다. 외우는 것보다 따지는 것이 좋아 대학 전공도 물리학을 선택했을 정도.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 “물리학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더라”는 교수님의 말에 윤 사장은 학자의 꿈을 접고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윤 사장은 이후 35년동안 사업을 하면서 배전반, 화공약품, 스위치박스 등 7가지 품목을 생산한 경험이 있다. 그만큼 여러가지 일을 해봤다는 의미지만 시련도 많이 겪었다는 뜻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지난 1985년, 윤 사장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왔다.

당시 상공부(현 산자부)가 온도퓨우즈를 권장품목으로 정하고 개발자금을 지원했던 것.

윤 사장은 고민끝에 온도퓨우즈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2년여간 시장조사를 거쳐 자금을 형성하고 본격적으로 온도퓨우즈를 제조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설비투자, 해외규격인증, 인건비, 정보·기술력 부족…. 모든 것이 윤 사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했고 은행도 동일 품목의 매출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외면했다. 윤 사장은 할 수 없이 사채시장을 전전해야 했다.

“정부의 개발자금을 지원받았던 삼주퓨우즈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어려울 수록 더욱 더 욕심이 생겼고 도전하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자금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윤 사장은 황일헌 현 전무를 만났다. 황 전무는 1981년부터 관련 제조업을 했었기에 윤 사장에게는 천군만마(千軍萬馬)나 다름없었다.

결국 윤 사장은 국내 기술로는 생산하지 못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온도퓨우즈를 지난 1987년 자체 기술로 개발·생산해 수입대체에 성공했으며 이제는 국내를 넘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해 기술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인내와 끈기, 도전정신으로 무장하고 한번 시작한 것은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온 윤 사장의 인간 승리의 순간이다.

인내·끈기·도전정신 ‘삼박자’

첫째, 정부의 사업을 적극 활용하라

정부나 지자체, KOTRA의 해외전시회, 해외시장개척사업 등을 적극 활용하면 해외시장에 눈을 뜨는데 도움이 된다.

“현재 미국, 대만, 일본 등 6대주 40여개국에 25종의 온도퓨우즈를 수출하고 있다. 이중 95% 이상은 KOTRA 등의 해외시장개척사업에 참여해 일궈낸 것들이다.”

둘째, 정보를 확인하라

“제품을 보고 그냥 주문하는 바이어는 없다”

해외바이어와 수출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미리 현지 KOTRA 등을 활용해 상대 업체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사보다 뛰어난 부분을 철저하게 체크해 준비하는 것은 나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셋째, 선금을 받아라

윤 사장은 35년간 사업을 해왔지만 어음거래는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아무리 좋은 수주라도 그것이 어음거래면 포기했다.

항상 선금을 받고 수출했다. 중소기업은 자금력이 부족해서 어음부도가 발생하거나 수출대금을 떼이면 고사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윤 사장의 경영철학이다.

넷째, 발로 뛰어라

현실에 안주하는 ‘우물안 개구리’가 돼서는 안 된다. 특히 해외시장을 개척할 경우에는 사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기술을 습득하려면 직접 발로 뛰며 부딪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급속도로 발전하는 현실에서 낙오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자부심을 가져라

최근 모 리서치기관에서 “제조업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Never”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을 인정받아 세계대열에 낄 수 있다는 것에서 제조업을 하는 사람은 희열을 느낀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이 기업 사장은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세계무대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인식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다.

‘제품은 기술로 살아남는다’

윤 사장은 IMF 환란 전까지 자금이 바닥나 3차례나 동업자를 구하려고 시도한적이 있다.

그러나 온도퓨우즈를 작은 부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열심히 하기만 하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윤 사장은 강자만이 살 수 있는 냉담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주위의 싸늘한 외면속에서 그가 찾은 해답은 기술우위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

뛰어난 기술력으로 무장한 제품만이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생존논리를 알게 된 윤 사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 나은 상품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윤 사장은 순수기술로 10여년의 연구 끝에 25종의 온도퓨우즈를 개발했고 세계적 메이커인 일본의 NEC와도 당당히 어깨를 겨룰 만큼 기술력 하나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동양전자의 온도퓨우즈는 전체 생산량의 95% 이상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으며 국내 자동차 메이커는 대부분 동양전자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어느 제품이든 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보다 제품을 더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법과 원칙을 알면 세계 시장의 석권도 가능하다.”

윤 사장은 포드, GM, 피아트 등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납품을 하지 못하고 있는 벤츠, BMW까지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제품개발에 오늘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종철기자 jclee@kgib.co.kr

사진/원지영기자 jywon@kgib.co.kr

■인터뷰/동양전자 윤영함 사장

“세계적 수준 기술력 자부”

日 세계적 메이커 NEC와 견줄만

“제품에 문제가 생겨 클레임이 걸리면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허사가 돼 버리기 때문에 항상 완벽을 기해야 한다”

동양전자의 윤영함 사장은 “시행착오는 상품의 완벽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제품에 하지가 발생하면 그동안 쌍인 회사 이미지는 물론 신뢰까지 잃게 된다”면서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동양전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자체 생산설비를 통해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퍼펙트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전제한 윤 사장은 “남들은 원자재를 사서 조립하는 정도의 수준인데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만큼 기술력 하나는 세계적 수준이라는 자부심 때문.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에서 기술개발에 매진했다는 윤 사장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동양전자가 온도퓨우즈를 개발하기 이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온도퓨우즈가 지난 1986년 정부의 국산화 대상품목에 고시되면서 개발에 착수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윤 사장은 “이제 세계적 메이커인 일본의 NEC와도 당당히 어깨를 겨룰 만큼 성장했다”며 “NEC에 비해 동양전자가 부족한 점은 중소기업이라는 점 밖에 없고 기술적인 면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윤 사장의 자신감에서 ‘동양전자’라는 네임벨류만 쌓인다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은 이미 마련돼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었다.

■연혁

1987. 8. 18 동양전자 주식회사 설립

1988. 4. 16 전기용품 형식 승인 및 취득

1989. 5. 4 UL 인증 취득(E 117626)

1995. 9. 20 NT 표시 인증

1996. 12. 16 EM 품질 인증

1998. 1. Dentory 인증 취득(일본)

1998. 11. VDE 인증 취득

1999. 12. 무역의날 백만불수출탑 및 대통령표창 수상

2000. 8. 30 제조물 배상책임(PL) 보험 가입

2001. 4. ISO 9001 인증 획득(2000 version)

2003. 8. 21 CCC 인증 취득

(승인번호:2003010205079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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