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어줍잖은 ‘고양이’

쥐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형국이다. 보통 쥐가 아닌 들쥐다. 기왕 죽기로 작심하고 대들면 고양이도 물린다. 한 마리의 고양이만도 아니다. 다섯마리의 고양이다. 이 많은 고양이들이 한 마리의 쥐를 상대로 벼르고 어른다. 그러나 쥐는 고양이들을 되받아 쳐 되레 궁지로 몰곤 한다.

평양정권의 허허실실 전법이다. 북의 핵보유 선언에 새삼 놀라는 건 이상하다. 그럼, 핵무기가 있는 줄 몰랐다는 말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진 게 6자회담이다. 핵보유 선언에 대한 경악은 실컷 울고나서 누구의 초상이냐고 묻는 우문과 같다.

북이 보유한 핵무기 수량은 두어 세개쯤 되고 수준은 (탄두로) 쏘아올릴 수는 없는 (비행기) 투하용으로 히로시마 원폭 수위의 위력일 것이라는 등 갖가지 추측이 무성했다. 국내에서도 국정원과 국방부와 통일부의 판단이 저마다 달랐다.

하긴 그렇다. 북의 핵무기 보유 능력의 개연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체는 파악하지 못한 채 가진 것이 이미 지나간 6자회담이다. 북의 핵 보유 선언과 상관없이 저들이 진짜 핵무기를 가졌느냐는 의아심도 든다. 그러나 그토록 공갈을 칠만한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 정황이고 또 그만한 시일을 그동안 밀고 당기면서 충분히 벌었다고 봐야한다.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평양에 간지가 여러날 됐다. 그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못만났다’는 등 소식이 오락가락하더니 지난 21일 비로소 만나긴 만난 모양이다. “미국이 믿을만한 성의를 보이고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견지하며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6자회담을 반대한 적도 없으며 회담의 성공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는 게 김 위원장이 밝혔다는 요지다.

이에 정부측은 “최악의 상황, 추가적 상황 악화를 덜어주는 측면이 있다”(통일부) “6자회담을 완전히 깨버리려는 태도가 아니란 점에서 긍정적이다”(외무부)라고 평가했으나 외신 논평에는 차이가 있다. ‘표현이 애매한 유화 제스처다’(NYT) ‘미국에 회담 중단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다’(마이니치) ‘지원 양보를 얻으려는 북의 오랜 전술이다’(BBC)라고 했다.

문제는 평양정권 관련의 정보 부재다. 우리는 더 말할 것 없고 첩보능력이 가공할 정도인 미국조차 모란봉 능선의 평양 금수산 1호청사 소식엔 한마디로 깜깜하다. 핵에 관한한 서슬이 시퍼런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사찰을 못하고 있다.

단편적 첩보는 미국에 귀동냥하고 북에 대한 교섭은 중국을 유일 창구로 삼고 있는 우리 정부의 현실적 한계가 참으로 딱하다. 그동안 연평균 2천300억원에 해당하는 쌀과 비료며 갖가지 물자를 1조원어치 이상을 북에 지원해 왔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이 인정이고 동포애다. 아무것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북 옹호발언에도 저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평양정권은 민족공조를 말하면서도 공조할 수 있는 정보 뭣 하나를 우리에게 주지않고 있다. 남북간에 가졌던 모든 회담마저 올스톱 됐다.

김정일 위원장의 왕자루이 부장 면담 발언은 새로운 게 아니다. 종전에 주장했던 북미회담 요구의 큰 틀에 속한다. 미국의 북측인권법 제정은 김정일 정권의 평화적 붕괴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부시가 종국적으로 속셈하고 있는 무력에 의한 붕괴와 양대 축을 이룬다. 이 중간 선상의 것이 6자회담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잘 알고 있으므로 미국에 체제보장을 먼저 요구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6자회담 테이블에서 얘기하자는 것이 부시의 주장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역할을 늘 강조해 왔다. 북과 미국의 양자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대통령이 맡아야 할 역할이다. 그러나 중·일·러 등이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6자회담 전략 속에서 정작 조율 상대인 북과 미국에게마저 내심 따돌림 받고 있다. 우리 한국은 어줍지 않은 고양이 신세다. 쥐의 놀림에서 고양이 노릇도 더 제대로 못하며 고양이 무리에 들어있다.

그러나 북의 핵무기 위협에서 가장 두렵게 근접하는 것이 바로 우리다. 어떻게든 한반도의 핵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평양정권을 사생 결단의 막다른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려는 고충은 이해하나 무작정 감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할 말은 해야 진솔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게 대화의 등가성이다.

중국의 대북창구화는 차선책이다. 직접 대화를 가져야 한다. 정부가 이를 노력하는 데도 안되고 있는 것은 정책 결함이다. 이에대한 방안은 나중에 따로 말하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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