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소주세 올린 ‘盧’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들러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소주 등 증류주에 대한 세율을 대폭 올리는 ‘주세법개정안’ 반대는 열린우리당이 거듭 거듭 확정한 당론이다. 그런데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재경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사회봉을 ‘땅땅’ 두들겨 가결을 선포한 사람은 바로 노 대통령이다.

소주는 국민주다. 지난해 소주 내수량은 108만1천833㎘로 전년도 104만4천38㎘에 비해 3.8%가 늘어 IMF환란 때보다 더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 집계가 이렇다. 병으로 따지면 무려 30억509만여 병이다. 20세 이상 성인을 약 3천500만 명으로 잡으면 1인당 평균 87병을 마신 셈이다. 올 음주량은 더 많을 것이다.

소주는 서민주다. 돈 없는 사람들이 주로 많이 마신다. 가난한 노동자, 월급쟁이, 영세상인, 중소기업인들이 선호한다. 노숙자들이 즐기는 술도 또한 소주다. 기분이 좋아서 마실 때도 있지만 울화가 터져 마실 때가 훨씬 더 많다. 노 대통령은 민중의 울화통을 이리저리 잘 터뜨리는 별난 기술자다.

소주는 이래서 민중의 친구다. 불황의 늪에서 민생고로 허우적거리는 민중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준다. 변덕과 배신이 판치는 세태에서 언제나 변하지 않고 위로를 주는 벗이다. 뭣보다 돈이 덜 들어 좋다.

주세법 개정으로 주세율이 지금의 72%에서 90%로 오르면 삼겹살 집에서 받는 병당 가격이 3천원에서 약 4천원으로 뛴다. 소주 한 병 더 걸치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안마시는 것도 아니다. ‘노무현’을 안주 삼아 죄없는 소주병만 더 비울 것이다.

소주세 인상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세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다. 자그마치 221조원 대의 방만한 규모다. 올해보다 무려 6.5%, 그러니까 13조2천억원이 더 많은 팽창예산으로 가고 있다. 이에 돈 만들 구멍이 없다보니 적자국채를 9조원 가량 발행할 계획이다. 국민이 세금으로 갚을 국가채무만 눈더미처럼 불어난다. 2002년에 국민 1인당 279만원이던 국가 채무가 올핸 509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내년에는 국가채무 누적액이 279조원으로 치솟아 국민 1인당 579만원 대가 될 전망이다.

세부담 역시 폭증했다. 2002년에 국민 1인당 284만원이던 세부담이 올핸 340만원이 됐다. 세부담이 늘면 나라빚이 줄든 지 해야할 터인데 빚은 빚대로 세금은 세금대로 더 늘리면서 뭐 하나 딱 부러지게 해놓은 건 없는 것이 이 정권이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잡고 있는 세수입은 142조8천억원이다. 이를위해 세금을 이렇게 저렇게 쥐어 짜내는 것 중의 하나가 엊그제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방망이를 두드린 소주세 인상이다.

열린우리당은 정부의 소주세 인상을 반대하는 대신에 대안을 제시했다. 기업은행 지분 등 정부 보유 주식과 국유지 매각으로 재원을 마련하자고 했다. 세출 예산을 조정해 세수 공백을 메우자고도 했다. 세출예산 삭감은 불요불급한 지출을 없애는 것으로 옳은 조치다. 이런데도 노 대통령은 한덕수 재경부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한 장관은 대통령이 지극히 좋아하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총애하는 사람이어서 그랬는 진 몰라도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당론을 무시당해 여당의 체모가 말이 아닌 열린우리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소주세 인상은 적절치 않다”며 “당의 생각대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석호 제3조정위원장도 “정부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말씀’ 한마디면 ‘일렬종대’ 차렷 자세로 길들여진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반발이다.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주세법개정안을 여당이 국회서 부결시킬 것인지, 아니면 ‘찻잔속 태풍’으로 끝날 것인 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흥미로운 건 따로 있다. “여소야대여서 대통령 노릇 못해 먹겠다”고 걸핏하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분이 사전조율 한마디 없이 여당 당론을 배척한 사실이다. 여당은 하부기관이 아니다. 여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보기보단 보조기구로 보면서 하물며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본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대통령노릇 못해 먹겠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런 인식의 결함에 기인한다.

소주세 올려 국민노릇만 더 힘들게 됐다.

(각의에서 함께 통과된 ‘조세특례제한법개정안’ 악법과 그리고 보통화한 LNG에 대한 특소세 문제는 따로 다루겠습니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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