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4월의 북풍이다. 4월은 봄철이다. 때아닌 북풍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 추진은 표면상 그 개인이 희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기남 북측 노동당 비서가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입원 중인 DJ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좋은 계절에 오시라고 했는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한 말을 방북의 근거로 삼는다. 김 비서는 지난해 8·15 민족대축전 때 서울에 와 문병을 갔었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의 정식 초청은 아직 없다. 이래서 정부가 물밑 작업을 하는 것 같다. 4월 북풍의 시동이 걸릴 진 더 두고 봐야겠지만 가능성은 짙다. 김 비서는 좋은 계절이라고 했다. 4월은 좋은 계절이다. 봄철이다. 북측은 이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김일성 주석의 15일 생일 ‘태양절’이 든 축제의 달이다. 북녘은 사후 10년이 넘은 그를 지금도 주석으로 두고 있다. 유해는 금수산 궁전에 안치됐다.
DJ의 4월 방북은 이 정권 역시 적기인 좋은 계절이다. 5·31 지방선거와 근접하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정계 재편 여부가 시도될 것이다. 이에 DJ 4월 방북의 북풍을 호재로 보는 것 같다.
평양정권 역시 노무현 정권을 도울 수 있는 북풍에 인색할 이유는 있지 않다. 그러나 평양정권이 DJ 4월 방북을 성사시킨다면 더 큰 이유는 다른데 있다. ‘태양절’이 든 4월의 축제를 DJ 방북으로 더욱 빛낼 수 있다고 보는 속셈이 깔렸다. 그 예로 금수산궁전 참배를 요청할 수가 있다.
경의선을 오는 3월에 시범 개통하는데 이어 4월에 개통하는 것으로 들린다. 4월 개통이라는 게 설령 DJ 방북의 기차편을 위한 것으로 단발에 그친다 해도 이벤트임엔 틀림이 없다. 4월의 북풍이 매우 세 찰만 하다. 때 아닌 이런 북풍을 둔 지방선거 관련의 이성적 판단은 유권자들 몫이지만, 이 정권은 적어도 손해는 없다고 보는 감성적 계산을 하고 있는 지 모른다.
그러나 DJ 방북이 반드시 호재인 것 만은 아니다. 통일방안의 낮은 단계 연방제 협의설은 실로 위험하다. 단계가 낮든 높든 연방제는 어디까지나 연방제고 연합제는 연합제다. 남북 연합제가 아닌 남북 연방제 통일방안의 함정이 뭣인가는 이 정권이 더 잘 알 것이다. 국민투표로 국민적 합의를 가져야 하는 통일방안에 구체적 밀실(흥정) 협의는 국민사회가 용납지 않는다.
아니면 DJ가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는 또 하나의 이벤트를 이 정권은 기대할 것이나 이도 별로다. 남북의 ‘노·김’ 정상회담이 빅뉴스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실속) 먹을 게 없다’는 속담 같은 경험을 이미 했다. ‘김·김’ 6·15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 그것은 비유컨데 사랑에 의한 남녀관계 같은 게 아니다. 사실상 돈을 주고 산 것이다. 6·15 직전부터 시작해 수 십조원의 돈이 북에 무작정 흘러 들어갔다.
DJ 방북에 기대하는 것이 있긴 있다. 핵 문제 해결이다. 그리하여 남북 공존공영의 길을 함께 가야 한다. 전쟁 위험의 응달이 없는 양달의 평화를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꼬인 6자회담의 매듭을 푸는 것이 방북의 소임이다.
매사에 탈도 많고 까닭도 많은 북녘 사람들이 호락 호락하게 잘 들어줄 리는 없지만, 그래도 가겠다 하고 보내겠다 하는 것을 말려서는 안 된다. 지방선거용이긴 해도 이를 이유로 못가게 해선 안 된다. 통일방안의 밀실 협의를 우려해서 방북 자체를 지레 막아서도 안 된다. 금수산궁전 참배도 안할 것으로 믿고 가도록 해야 된다. 소리만 요란한 채 빈 손으로 돌아오기 십상인 데 뭐하러 가느냐고 해서도 안 된다. 저자세 방북이라고 말려서도 안 된다.
제갈량(전설)은 조조의 수군 선단을 주유와 함께 섬멸한 화공에 불지않는 겨울철 동남풍을 칠성단에 밤낮 사흘동안 빌어 불러 일으켜 성공했다. 봄에 불지않는 북풍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북에 한결같이 치성하는 이 정권의 ‘제갈량’이 바람은 일으킬 지는 몰라도 성공적 소득은 미궁이다.
문제는 평양에서의 처신과 돌아올 때의 결과에 달렸다. 4월의 봄에 부는 북풍이 되레 이 정권에 부메랑이 되는 악재일 수 있는 것이 DJ 방북이다. 사정이 그렇게 되면 이 정권은 DJ 개인의 일로 돌려 악재에서 발을 빼려고 할 것이다. 분명히 해 둬야 할 게 있다. DJ 방북은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이어야 한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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