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향기/김난실 상방원 대표

한국의 美 세계에 심는 ‘미다스의 손’

전통 액세서리 공예를 전문으로 제조하는 상방원의 김난실 대표(37).

그녀는 과거와 미래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남들보다 뛰어난 색감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다양한 색의 조화를 통해 한국의 미를 알리고 싶어 한다.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된 TV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고급스런 천으로 멋드러지게 꾸며낸 것도 바로 그녀다.

앞으로 방영될 ‘태왕사신기’ 등의 인기 드라마의 테이블웨어도 그녀의 손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요즘 그녀는 오랫동안 꿈꿔오던 자신만의 전시장을 내기 위해 얼마전 수원 인계동에 조그마한 공간도 마련했다. 눈코 뜰새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녀는 요즘 행복하다.

상방원은 전통 문양을 딴 휴대폰 줄이나 안경집, 복주머니, 명함지갑에서부터 테이블웨어 등 패브릭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200여종의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다소 실험적인 제품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말 시장에 선보인 골프 아이언 커버는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녀는 창업 2년의 신생기업을 전통 액세서리 공예시장에서 2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주목받는 기업으로 일궈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작 2억원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신생업체가, 그것도 시장 규모가 작고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전통 액세서리 공예시장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일’이다.

특히 휴대폰 액세서리는 본체가 유행을 많이 타는 제품이다보니 액세서리도 입맛 까다로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여간 쉽지않은 일이다.

김 대표가 전통공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89년 대학(배화여대)에 입학하면서다. 전통복식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액세서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디자인을 좀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91년 대학 졸업 후 2년 넘게 ‘백수’ 생활을 전전했다. 학원을 다니며 그동안 공부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디자인도 배웠다. 급기야는 전통공예가 아닌 3D 애니매이션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 4년동안 회사를 다니며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살았지만 몇몇 마음 맞는 친구들과 천연염색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전통공예에는 열성적이었다.

그리고 결혼과 이어진 출산. 잠시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위해 여러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한 특기적성교육 강사도 해보고, 이런 저런 일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차에 경기도에서 ‘디자인 애니메이션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는 만사를 제쳐두고 수강 신청을 했다. 교육 수료후에는 프리랜서로 학교 강의, 홈페이지 제작에도 손을 대는 등 활동 폭을 넓혀 나갔다. 내친김에 3D 애니메이션 관련 업종의 창업에 도전했다.

큰 자본금이 없던 그녀는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기 위해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입주심사에서 컨설턴트는 뜻밖에도 애니메이션 보다는 전통 액세서리 공예 분야의 창업을 권유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고 한다. 창업한지 6개월이 지나도록 매출이라고는 8천원짜리 핸드폰 액세서리 1개를 판 것이 고작이었다.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만들어낸 제품이 재고로 쌓여가던 그때를 김 대표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구멍난 재정은 짬짬히 해온 3D애니메이션 아르바이트를 통해 메우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런 어려움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인건비와 시설비를 줄이기 위해 같은해 10월 ‘실버손틀’사업을 기획, 사무실과는 별도로 영통사회복지관에 작업 공간을 마련하고, 인근에 살고 있는 할머니 10여명을 고용했다. 그런데 이게 뜻밖에 대박(?)이었다. 마땅한 기술자를 적은 임금에 고용할 처지가 못됐지만 수십년간 시집살이를 해온 할머니들의 바느질 솜씨는 웬만한 기술자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품질에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2005년 3월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들고 무턱대고 전국 리빙디자인대전에 참여했다. 김 대표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둘 부스를 찾았다.

독특한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인 곳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의 대형 의상실과 인테리어업체. 그들은 김 대표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이내 거래를 하자고 나섰다. 시장의 꾸준한 성장세에 보조를 맞춰 신제품 개발과 적극적인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펼쳐온 것이 주효했다. 특히 거래업체에 ‘품질과 기술력 만큼은 최고’라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그런 행운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선지 김 대표는 지금도 기술과 아이디어로 시장 수요에 부응하는 제품을 먼저 선보이고 고객과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홍콩 가정용품 박람회도 찾았다. 이곳에서 한국의 전통공예에 관심이 많았던 두바이 상인이 독특한 자연미에 반해 생각지도 못했던 10만개를 선주문했다.

김 대표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벅차 올랐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한순간에 가시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주문은 받았지만 대량으로 생산할 능력이 없었던 그녀는 납품기일에 맞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길로 그녀는 베트남으로 날아 갔다. 인건비가 싸고, 손재주가 좋아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다는 말만 듣고 주저없이 현지 생산업자를 만나 다행히 납기일에 맞출수가 있었다.

이후 김 대표는 지금처럼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만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때 제조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영업을 위한 판매 네트워크, 그리고 생산라인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녀는 시장 조사를 위해 베트남과 중국 현지를 들렀다. 최종 적격지로 베트남을 선정하고, 당장에 자금을 투자해 시설을 설립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김 대표는 우선 베트남을 통해 주문자생산방식으로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연구개발과 영업, 관리만 전담하게 된다.

대외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에는 미국과 그리스 등에 액세서리 제품의 수출길을 열었다. 이런 것들이 상방원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돼 줄 것으로 김 대표는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요즘 그녀는 전 세계 수공예 액세서리 제품이 경합을 벌인다는 뉴욕이나 라스베가스 시장에 자신의 제품을 선보이는 꿈을 꾸고 있다. 내년에는 이를 발판으로 핸디 크라프트 전시회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처음 시작은 비록 초라했지만 상방원의 지난해 성적표는 한마디로 ‘우등’이다. 지난해 2억원의 매출에서 올해는 3억원 정도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주소비층도 여성과 남성, 주부 등 젊은층까지 확대되는 것도 희망적이다. 최근 들어 매스컴에서도 고구려 등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어 매출액의 고공행진은 무난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전통 액세서리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출시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전통공예를 세계시장의 입맛에 맞게 개발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이 제 작은 소망입니다.”

/조영달기자 dalsarang@kgib.co.kr

/사진=조남진기자 njch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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