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환격’

노무현 대통령은 엊그제 열린우리당 조기 탈당으로 막바지 정치 복선을 깔았다. “당에서 자꾸 나가라는 사람이 있으니까 항상 시비가 된다. 그래서 당적을 정리했다”고 말했지만 암수다.

여권의 소식통에 의해 관측되는 전망은 이렇다. 오는 6월쯤 열린우리당은 탈당파와 통합신당을 창당한다. 호남세의 민주당이 합류할 것이며, 국민중심당도 대상이다. 신당 창당의 이같은 합류는 특히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 저마다 체면을 세운다. 열린우리당이 말한 민주당 회귀 불가, 민주당이 주장한 열린우리당 복귀 요구의 대타협점이 신당 창당의 합류인 것이다.

이엔 김대중의 햇볕정책 계승자인 노무현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가운데, 친노·반노 할 것 없이 일단은 대통령을 우군으로 정권 재창출을 지상과제 삼는 대통합신당이 출범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탈당으로 여당은 없어졌지만 여권은 이래서 실재하다.

여권은 대선 후보 경선은커녕, 전열도 정비치 못한 가운데 한나라당은 대선 후보 경선이 불을 뿜는다. 당내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으면 벌써 대세론에 심취한 것 같다. 한나라당은 과연 정권을 쟁취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40%를 웃도는 당내 주자가 있다고 해서 낙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혼자 뛰고 있다. 뒤늦게나마 상대가 되는 여권의 통합신당이 출현하면 판센 혼자 뛰는 것과는 판이해진다. 한나라당은 대세론이 대세로 굳어지지 못하고, 여론조사에서의 1등이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체험을 교훈삼아 반추해야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으로 얻고 있는 지금의 반사 이익이 대선에서도 반영될 것으로 보는 기대감 역시 어리석다. 여권의 통합신당 신장개업이 대통령의 실정에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나, 변할 수 있는 것이 또한 민심이다. 더욱이 통합신당의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선 노무현의 실정과는 별개가 될 공산이 없지 않다. 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다. 한나라당은 이를 간과한 채 지금의 여권이 일시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규정이 시비가 됐다.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도 하고 개정은 불가하다고도 한다. 어떻게 하든 그것은 당내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게 있다. 경선은 어디까지나 수평적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규정은 방법일 뿐이다. 경선규정을 원칙으로 보는 것은 가치판단의 오류다. 정권 교체의 원칙을 위해선 방법은 정황에 따라 고려하는 탄력성이 필요하다.

두 가지가 문제인 것 같다. 일반국민선거인단의 참여비율과 당 후보 선출 시기다. 물론 현행 규정에도 일반 국민의 참여는 있다. 문젠 비율이다. 비율을 더 늘리자는 것과 완전국민경선에 근사치로 가자는 견해가 있다. 선거는 독불장군이 아니다. 상대가 있다. 상대가 되는 통합신당은 완전국민경선제로 개방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 범국민적 후보의 간판 명분으로 삼을 때, 한나라당은 객관적 대응 논리를 어떻게 내세울 것인지 궁금하다.

통합신당은 대선 후보를 9월쯤 내세운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당내 규정대로 하면 오는 6월20일까지 뽑아야 한다. 근 3개월의 시차가 있다. 한나라당은 상대 당의 경쟁 후보를 암중 모색하는 가운데, 한나라당 후보는 상대당인 통합신당의 일방적 집중타의 샌드백이 될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 후보가 도덕성이 의심되는 점이 많거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면 집중타는 더 난타전이 될 게 뻔하다. 이렇게 되고 나서 성할 후보는 있을 것 같지 않다. 당 후보의 조기 선출이 전략상 과연 좋은 건지 알 수 없다.

대선은 보통 전략적으로 보아 3단계로 구분된다. 오는 12월19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의 법정 선거운동 기간은 본선이다. 정당별 후보가 선출되고 나서 공식 법정 선거운동 기간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제2차 예선이다. 당내 후보를 위한 예비 주자들 싸움은 제1차 예선이다. 정치권에서의 제1차 예선은 한나라당 독판이다. 독판이다 보니 언론이 뒤따라가며 조명을 비추는 폴로라이트의 대상이 되어 착각하기 쉽지만 오는 6월이면 사정이 달라진다. 되레 지금의 제1차 예선 독판을 잘못 치르면 2차 예선이나 본선에 가서 빠져 나오기 힘든 함정을 파기 십상이다.

바둑은 무한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한다. 결코 서둘지 않은 것은 지공의 전략이며 환격은 돌려치기 전술이다. 서둘지 않으면서도 공격의 고삐를 재는 게 지공이고, 상대가 내 바둑알을 먹이로 따먹게 만든 그 자리에서 상대의 바둑을 왕창 더 많이 되잡는 전술이 환격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지공과 환격의 노림 수를 당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했어도 여권은 역시 건재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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