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종 에스에이㈜ 대표

도심미관 꼼꼼히 따진 ‘소음과의 전쟁’

“모든 세상이 자동차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열심히 뛸겁니다.” 도로 흡음벽을 제작 생산하는 에스에이㈜의 박춘종 대표(59)는 요즘 하루가 24시간으로는 부족하다. 지난 2001년 9월에 창업해 불과 5년만에 회사를 안정궤도에 올려놓고 이제는 사업다각화까지 모색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러한 고속성장의 비결을 끊임없는 기술력 향상과 ‘발상의 전환’에서 찾았다고 한다. 아직도 항상 쉼없이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서 성공한 중소기업 CEO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경남 남해가 고향인 박 대표의 어릴적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사실 그의 꿈이라기 보다는 부모님의 꿈이었다.

60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서울로 유학온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기대를 한가득 안고 서울로 오긴 했지만 그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스스로 선생님이 되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고는 평범한 학창생활을 보냈다.

이후 상고에 진학했고 66년 졸업과 함께 국내의 한 대형출판사에 입사하면서 그는 세일즈맨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70년 칸막이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에 취업하면서 박 대표는 인생에 한줄기 희망을 발견한다. 그는 이 회사에서 특허와 상표 등록 등의 업무를 담당하면서 칸막이 사이의 소음을 줄이는데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 일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그는 사실 어릴적 유별나게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다. 신기한 물건을 보면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뜯어도 보고, 고장도 많이 내 부모님에게 곧잘 혼나기도 했다고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자신의 재능을 그는 늦게 발견한 것이다.

회사에서 8년간 이런 저런 업무를 하면서 그는 소음이나 방음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 회사 설립은 단순했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 가락동 시장에 갔다가 그 당시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목재 방음판을 유심히 살펴봤다고 한다. 한참을 지켜보다 ‘저 정도는 나도 만들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통나무를 이용한 방갈로 사업을 하고 있던터라 목재를 이용한 사업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젊고 패기가 있어 고민 끝에 3년간 닦아온 방갈로 사업을 뒤로 하고 방음벽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생각은 사업을 시작한지 1년도 채 안돼 자신의 판단 착오였음을 깨달았다. 그가 봤던 것은 방음벽이 아니라 차음벽이었던 것이다.

차음벽은 안에서 나는 소리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밖의 소리 역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단순히 소리를 막아주는 역할만 한다.

이렇게 차음벽을 방음벽으로 잘못 알고 시작한 사업에 그는 오히려 흠뻑 빠졌다. 그 자신도 놀랄 정도로 머리안은 온통 ‘방음’과 ‘소리’와의 전쟁이었다.

처음에는 통나무에 구멍을 내서 그곳에 폴리에스터를 넣은 목재 방음벽을 만들어냈다. 직접 발로 뛰며 다른 제품과 비교하고 연구했다. 시각적 효과는 물론 KS제품 인증, 우수조달제품 인증 등 목재 방음벽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는 그의 성격상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2003년에는 투명흡음벽에 대한 발명특허를 내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2년만에 주문량이 늘면서 업계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목재 전문가에서 방음 전문가로 완벽하게 변신한 것이다.

그는 항상 침대 위에 펜과 메모지를 두고 잠을 잔다. 잠을 자다가도 머릿속을 번쩍 스쳐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것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잊어버리기 전에 꼭 메모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탓이다. 이런 것도 습관이 되다보니 요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잠에서 깨 메모를 하고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나 메모지를 보면 잠시 잊었던 생각이 다시 사진처럼 떠오른다고 한다.

행여나 길을 지나가다가도 좋은 생각이 날까봐 양복안 주머니에는 항상 3~4개의 펜과 수첩을 꼽고 다닐 정도로 철저한 메모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그는 천성이 부지런하다. 1년 중에 그가 쉬는 날은 설날과 추석 두 번 뿐이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회사에 나와 밤낮없이 연구에만 몰두한다.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제품이 상용화되면 거기서 나오는 희열은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에스에이㈜는 현재 국내 투명 흡음벽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제는 발을 넓혀 중국 상해까지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목재방음벽의 생산을 시작으로 소음저감용 방음패널, 목재방음판넬 등은 2005년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우수조달제품으로 인증받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만들어진 제품을 그냥 파는 보편적인 마케팅 영역을 탈피해 시장의 흐름과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늘 고민한다.

최근에는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도심내 고속화도로가 늘어나면서 민원이 늘어나는 것에 주목했다.

이런 고민은 국내 처음으로 투명 흡음벽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기존 방음벽과는 달리 말그대로 소리를 흡수, 소음을 저감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인 방음벽은 이미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하고 그 보다 업그레이드된 흡음벽을 연구, 생산해 틈새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설치작업도 손쉽게 했다. 구조적 안전성도 뛰어나다. 흡음벽은 성남시 탄천변도로와 우회도로 등의 현장성능평가를 통해 그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했다.

전국의 도로에 그의 손길이 묻어 있다.

그가 항상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고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의 집념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에도 부산 등 전국적으로 흡음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차별된 시공을 강조하는 박 대표는 흡음벽 관련 여러가지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기술력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앞세운 고품질의 제품으로 방음벽 시장의 틈새를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이 적중했다고 한다.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나고 대형화되면서 소음이 커지고 있지만 도시민들의 편안한 주거생활을 위한 방법으로는 현재로서는 방음벽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러한 방음벽을 어떻게 특화시켰을까.

우선 박 대표는 외부의 소음이나 실내의 음향을 차단하기 위해 단순히 벽을 두껍게 하는 기존의 방음벽과는 차별화를 뒀다. 그리고 기존 1세대 회사들이 기술 개발보다는 마케팅에 주력했다는데 주목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뛰어난 기술자였다기보다는 8년 가량을 방음벽 회사에서 특허 등을 신청해주며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배우고, 듣고, 직접 몸으로 부딪혀 지금의 실전 기술을 익힌 베테랑 엔지니어다. 때문에 기술력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던터라 ‘선 기술개발, 후 마케팅’ 전략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초심을 잃지 않은 연구정신으로 요즘은 도로의 불투명한 방음벽을 모두 걷어내고 도심 미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투명한 방음벽을 선보였다.

‘터널용 방음판’도 개발 중에 있다. 그는 도심내 소음이 없어지는 그런 날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소음이 없는 조용한 세상이 가장 좋지만, 꼭 방음벽을 설치해야 한다면 도심미관을 고려한 아름답고 효율적인 제품을 사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방음벽이 하나의 작품으로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잡는 그날을 위해 소음과의 전쟁을 계속해 나갈겁니다.”

/조영달기자 dalsarang@kgib.co.kr

/사진=조남진기자 njch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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