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신드롬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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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신정아 얘기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는 뒷전이다. 아마 추석 연휴의 모임에서도 단연 첫손 꼽는 화두로 오를 것이다. 서른다섯살의 미혼 여성이 나라안을 발칵 뒤집어놨다.

린다 김이 말했다. “전문 로비스트인 나를 사기꾼과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김영삼 정부 때 미국의 무기업체 로비스트로 국방부 장관 이양호와 연서를 주고받는 등 부적절한 미인계로 말썽을 산 적이 있다. 신정아 비리에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의 유착관계가 드러나자 일부 언론이 ‘제2 린다사건’으로 보도한데 대해 그같은 불쾌감을 나타냈다.

듣고보니 딴은 틀린 말이 아니다. 신정아는 고도의 사기를 쳤다. 미국의 예일대를 안 나왔고 박사 학위도 가짜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큐레이터다. 화가도 아니다. 한데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군림, 혜성처럼 빛을 뿜었다. 일약 동국대 교수가 되고 광주 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자리에 올랐다.

진짜 박사도 이런 벼락 출세란 여간해선 어렵다. 정부 예산 잘 따오기로 소문난 그녀는 미술계의 마당발이었다. 미술계만이 아니다. 종교단체에도 예산을 따내주곤 했다. 그림도 잘 팔아주었다. 그도 비싼 값으로 정부 기관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크게 구전받아 벌어들인 돈인진 몰라도 주식으로 5억원을 주물렀다. 고가 빌라에 명품으로만 치장하는 호사생활을 일삼았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호사생활을 했으면 누군들 굳이 탓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신정아 하나로 잘 나가던 변양균이 권좌에서 낙마했다. 변양균만이 아니다. 동국대 교수들이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등 분규에 휩싸였다. 불교 조계종 종단이 내분을 겪고 있다. 도대체 그녀가 뭣을 어떻게 했길래 이토록 사방에서 야단인 지 그게 미스터리다.

변양균과의 관계도 그렇다. 단순한 남녀 관계 같으면 그것이 ‘예술적 동지’ 사이든 내연의 사이든 그들의 사생활이다. 그러나 신정아와의 사이에서 변양균의 역할은 남자이기 보단 기획예산처 차관·장관 그리고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분이었고, 신정아는 그같은 신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변양균은 공직 만년에 어쩌다 뒤늦게 안 젊은 정인에게 독직도 감수하면서까지 순정을 다했던 것 같다. 아마 가짜 박사란 걸 알고도 공모자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정아 입장에서는 변양균 같은 순정을 준 것으로 보지않는 것이 세간의 평판이다. 쏟아져 나오는 신정아 행각의 의혹 가운덴 변양균도 몰랐던 놀랄 일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간에 회자가 되고 있는 게 신정아 이면서도, 입방아에 오른 것 만큼은 인식이 나쁘지 않은 점이다. 심지어 그녀가 산 방식을 선망하는 시선조차 없지 않다. ‘대단한 여성’이라고도 한다. 누구 말처럼 사기꾼이다. 가짜 학위에 미모를 내세워 권력층과 미술계와 대학과 종단을 휘저은 사기꾼을 그렇게 보는 것은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이미 정의가 실종된 국가사회에서 불의에 새삼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역설적 정서를 갖는 것 같다.

‘신정아 신드롬’이 그냥 개인의 미인계였다면 신문 사회면 기사에 불과하다. 그러지 않고 연일 1면을 장식하는 것은 권력을 등에 업은 ‘신정아 게이트’이기 때문인 것이다. 권력도 보통 권력이 아니다. 나라 최고의 권부에서 요직을 지내며 최고 권력자의 신임이 두터웠던 최측근이다. 그리고 그 최고 권부는 청렴과 도덕성을 늘 말해왔다.

그러나 청렴이나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어 썩어 문드러진 최고 권부의 비서관이 국세청 간부에 대한 친노 기업인의 뇌물 제공 자리를 마련, 정·관계까지 뇌물 의혹이 번지는 겹경사 아닌 ‘겹흉사’가 겹쳤다. 이런 가운데도 ‘신정아 게이트’가 더 부각되는 ‘신정아 신드롬’은 호사가들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사안의 질이 더 무겁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산처 장관을 지낸 이가 뒷배를 보아 주었으니 정부 예산은 가히 신정아의 쌈지돈이 주머니돈인 셈인 것이다.

이 정권은 정말 희한한 정권이다. 그동안 신드롬도 많고 게이트도 많았지만, 신정아·변양균 같은 사건은 보다 보다 처음 본다. 국내에서만이 아니고 해외 어느 나라에서도 듣도 보도 못했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 지 몰라도, 세간의 이런 화젯거리는 제발 이번 추석 연휴를 끝으로 더 안 생겼으면 한다. 이런 건 있다. 대통령 선거 얘길 하다보면 서로 생각이 달라 말다툼이 벌어질 수가 있다. 하지만 신정아·변양균 얘기엔 냉소는 있어도 언쟁하는 일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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