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진 석 ㈜진글라이더 대표
“하늘을 나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사업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공부하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마도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동경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창공은 인류에게 있어 신비로운 공간이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패러글라이딩 제조업체 ㈜진글라이더는 비행에 대한 인류의 소망을 실현시켜주는 기업이다.
“하늘을 나는 것이 그냥 좋았다”는 송진석 대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비행에 대한 열정이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 냈다.
◇취미가 직업으로= 대학교에 다니던 송 대표는 어느날 신문 한구석에 난 행글라이더 비행 기사를 보고 마음이 이끌렸다. 당시 이름도 모르는 형제가 한강에서 행글라이더를 탔다는 것만 보고 무조건 찾아가 비행법을 배우기를 청했다.
이렇게 송 대표는 비행과 인연을 맺었다. 중간중간 얼굴 뼈가 으스러지는 사고도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아 10여년 후 결국 송 대표는 잘 다니던 현대그룹을 그만두고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패러글라이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일 세계선수권대회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나니까 사표도 미련없이 낼 수 있었다. 우선은 사업보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국내에 보급해 보자는 취지가 앞섰다. 말그대로 취미로 시작해 전문 기업인이 된 송 대표는 “그때는 어떤 목적의식 보다는 비행하는 것이 단지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내유일의 기업= 패러글라이딩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워낙 군소업체들이 많다보니 전문적인 기업은 드물다.
용인에 본사를 둔 진글라이더 역시 국내에서 유일하다. 송 대표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내 시장 자체의 방향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간 5천여개의 패러글라이딩을 생산해 내며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진글라이더는 국내소비시장은 20억원 안팎으로 그리 크지 않지만 동호회 회원이 3만여명에 이를 만큼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기도 하다.
전세계 70개국에서 판매되는 진글라이더는 마케팅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마케팅을 전담하고 있는 직원은 프랑스인으로 주시장인 유럽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고유성만을 고집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여기에 송 대표가 직접 패러글라이딩 선수로 활약하고, 전문 팀도 보유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접 팀을 구성해 세계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전세계를 다니면서 선수들을 붙잡고 홍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라= 진글라이더 송 대표는 패러글라이딩 분야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다.
송 대표가 비행을 배울때만 해도 비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때가 1987년도의 일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정책적으로 팀을 구성해서 대회에도 참가시켰다. 패러글라이딩은 생각보다 접근성이 어려워 관심이 있어도 쉽게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전국의 비행 동호회 활공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아직까지도 직접 비행에 나서며 제품의 안전성과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있다.
협회 행사를 진글라이더에서 지원하며 주기적으로 선수를 길러내고, 교육전문가도 배출한다. 현장에서 선수들이나 회원들과 함께 호흡해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디자인이 생명이다= 외제차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것처럼 패러글라이딩 분야도 디자인이 생명이다. 디자이너가 누구냐에 따라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대회를 돌아다니던 송 대표를 두고 동료 선수들은 이름의 가운데 글자인 ‘진’으로 불렀다. 이것이 진글라이더의 상호이자 디자이너 송 대표의 이름이기도 하다. 회사 설립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해외 바이어들은 송 대표의 이름만 믿고 찾아왔다. 설립 이전부터 투자가 몰려왔다.
송 대표는 “기업인이라는 생각보다는 비행하는 사람, 실제로 경기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며 “지금도 스스로가 달리는 광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지의 공간을 향해= 지금이야 세계 패러글라이딩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송 대표에게도 첫번째 동업 실패와 그로인한 생활고도 있었다. 어떤 때는 쌀이 떨어져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남들 다 힘들던 외환위기때 그 역시 참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자존심이 있었다. 다른 업종처럼 예제가 있는 업종이 아니라는 생각이 개척정신이라는 또 하나의 사명감을 던져준 것이다.
“무엇보다 제품 자체를 사용자 입장에서 만들었던 것이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한다”는 송 대표는 “처음부터 메이드인 코리아를 벗어나려고 글로벌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 것이 상당히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장충식기자 jcs@kgib.co.kr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