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신드롬’

미국 제44대 오바마 흑인 대통령의 출현은 투표를 통한 미국 사회의 민중혁명이다. 제16대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146년 만에 노예의 후예가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링컨은 북부에 기반을 둔 공화당이었다. 노예 해방문제를 민주당 기반의 남부가 반대해 남북전쟁까지 치렀다. 북부지역은 상공업이 발달한 데 비해 남부는 영농 위주의 대지주가 많아 부릴 노예가 필요했던 것이다. 1861년에 시작된 남북전쟁은 무려 5년의 격전 끝에 1865년 남부의 항복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번 44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백인 후보 매케인이 민주당의 흑인 후보 오바마에게 패배한 것은 또 한 번의 엄청난 미국 사회의 변화다.

흑인사회는 오바마의 당선을 ‘역사적인 날’로 자축, 크게 평가하고 있다. 백악관이 ‘흑악관’이 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대결이 흑백 충돌 양상인 조짐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인이 흑인에게 준 표보다는 흑인이 백인에게 준 표가 훨씬 적다는 사실이다.

오바마가 민주당 당내 후보로 대권 도전을 선언한 것은 1년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힐러리를 넘볼 것으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힐러리를 따돌렸다. 오바마의 평범함이 힐러리의 화려함을 제압한 것은 분명히 이변이었다. 이어 매케인의 관록, 오바마의 패기 싸움에서 미 국민이 오바마를 선택한 것 역시 새로운 역사의 서막인 대이변이다.

정계 입문 10년이다. 중닭 정도의 병아리다. 경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카리스마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상원 의원이긴 해도 영락없는 촌놈 스타일이다. 흔히 보는 40대 샐러리맨 타입이다. 여기에다 또 흑인이다.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런 조건이 오히려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은 미국사회 민중의 과감한 상식 파괴다.

이른바 정계 거물, 부질없는 관록, 권위적 카리스마, 인물론, 오랜 백인 통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고정 관념에 저항한 결과가 이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다. 오바마는 이 같은 민중 정서의 잠재적 갈망을 정확하게 읽었고, 새로운 역사와 미국의 변화를 다짐하면서 민중의 가슴에 파고 든 것이다. 시운을 탔고, 시운을 또 잘 이용했다.

그렇다고 오바마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흑인사회의 영광이 오바마에 대한 성급한 기대로 ‘흑흑’ 분란의 불씨가 될 공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면이 있다. 미국의 종말을 인종 분란으로 보는 게 미래학의 전망이었던 것이, 이 같은 통설에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 흑인 대통령의 출현은 인종시장인 미국 사회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법하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온 것을 주목하는 것은 초강대국의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백호주의의 잔재가 무너지면서 유색 인종의 세계 무대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흑인 대통령을 뽑은 미국 사회의 상식 파괴는 또 지구촌에 파급되는 영향이 점점 확대될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21세기 들어 금세기의 일대 변혁을 시사하는 첫 청색 신호다.

세상은 변화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류는 멈추지 않으므로 변화를 거듭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도태된다. 오바마가 미치는 필연적 파급 효과는 더욱 발빠른 변화를 보일 것이다. 기존의 상식을 땅에 묻어버릴 순 없어도 기존의 상식에 얽매이다 보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가 다 그렇다. 상식에서 탈피하는 도전적 실험정신이 필요로 하는 때다.

이건 보수와 진보·진보와 보수의 개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진보든 보수든 시대에 불합치한 정체된 관념은 다 깨부숴야 된다. 인류문화의 발달은 언제나 소극적 관념이 아닌 적극적 인식에서 출발되곤 했다. 지금이 그 같은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인 것이다.

오바마는 이민자다. 한국사회도 닫힌 사회관에서 열린 사회관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 100만 결혼 이민의 다문화 가정은 얼마 안가 다문화사회를 형성한다. 다문화가정은 점점 늘고 이들의 자녀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시대가 곧 온다. 민족의 개념보단 국민의 개념이 우선시되는 시대가 다문화사회다. 우리의 해외 이민은 300만 명을 돌파했다. 나라 안에서 외국으로 나간 해외 이민들 가운데도 다문화가정이 또 많다.

미국 사회가 투표를 통한 민중혁명으로 오바마 흑인 대통령을 낳은 현실은 결코 범상치 않다. 누구보다 우선 우리의 위정자들이 정신차려야 된다. 미국과 비슷한 유권자 혁명은 앞으로 나라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의식이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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