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탕평책- 이명박과 오바마

술 자리에서 좋은 화제는 남을 칭찬하는 일이다. 반대로 나쁜 화제는 남을 헐뜯는 것이다. 물론 헐뜯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관적이기보단 객관적이어야 한다. 객관적이어도 남을 비판하는 것은 간단 명료하면서 짧게 끝내야 된다.

그런데 패거리 험담은 술자리에서 으레 있기 쉬운 폐습이다. 자기 사람은 잘못을 덮으면서 남의 사람은 들춰가며 꼬집는다. 그러나 이런 패거리 논리가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등뒤에서 비수를 꼽는 배신은 언제나 패거리 안에서 나온다. 술 자리에서만이 아니다. 일상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간교한 벗보다 당당한 적이 더 낫다’는 것은 영국의 속담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가 낙선자 매케인과 두번 째 만났다. 대선 직후 제3의 장소에서 처음 만난 이후 두번 째는 매케인이 시카고에 있는 오바마 정권인수팀 사무실을 찾았다. “현 시기의 긴급한 도전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워싱턴의 ‘나쁜 관행’을 바꾸는 데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는 것은 회동 후 두 사람이 밝힌 공동성명이다.

오바마는 대통령후보 당내 경선에서 맞싸웠던 힐러리와도 회동을 가졌다. 그녀의 국무장관 기용설이 나온 이유다. 이만이 아니다. 조각 대상에 공화당 사람들도 포함된다는 것이 그의 인선 구상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이 속병을 앓고 있는 비주류 문제가 또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원내 172석의 한나라당이다. 과반의석 150석에서도 22석의 여유를 갖는다. 제1당의 집권 여당인데도 맥을 못쓴다. 80~90석은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비주류는 전 대표 박근혜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이다.

오바마의 상대 끌어안기는 기민한 것에 비해 이명박의 상대 끌어안기는 지지부진하다. 저쪽은 선거가 끝나기가 바쁘게 대통령 취임 전에 사회통합의 정지작업을 이미 마쳐가고 있다. 그런데 이쪽은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취임한 지가 언젠데 아직껏 당내 통합도 못이루고 있다.

박근혜는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진 뒤에 “당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승복했다. 매케인은 본선 패배 직후 지지자들에게 이번의 패배는 여러분들의 것이 아니고 나의 패배”라고 말했다.

미국이라고 선거판에서 좋은 말만 주고 받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당내 경선에서 욕설에 가까운 말이 오갔고, 오바마와 매케인은 본선에서 서로의 인신공격이 치열했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당내 경선에서도 험한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명박과 오바마의 다른 점은 오바마는 맘속 앙금을 침전되기 전에 털어낸 것에 비해 이명박은 앙금을 털어내지 못한 채 맘 속에 침전시킨 데 있다.

하긴, 이명박도 조각 당시 박근혜에게 국무총리 자릴 제의하긴 했다. 사양한 것은 박근혜쪽이다. “진실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상대를 끌어안는 덴 진실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체면치레나 보여주기 위한 쇼는 진실성이 있다 할 수가 없다. 진실성은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싹트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것을 버릴 건 버릴 줄 아는데서 신뢰가 선다.

대통령 이명박의 인사파일이 제한된 자기 주변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심지어 정부 산하 공기업의 요직까지 이명박계 주류가 독식한 사실은 그들도 부인치 못한다.

그래도 잘만 돌아가면 괜찮지만 잘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인사가 조직위주가 아닌 정실위주여서 고장이 잦은 건 당연하다. 이 정부가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지 않고 대통령 눈치만 살피는 연유가 이에 있다.

물론 박근혜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차기감’인지 아닌지는 개의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은둔주의나 비판주의가 차기행보를 의식한 것이라면 능사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잘 돼야 박근혜도 차기가 있다. 이명박이 잘못되면 박근혜도 미래가 없다. 무엇보다 민생은 차기보다 현실이 급박하다. 한가한 ‘차기놀음’으로 민생을 등진 ‘신선놀음’이 인정될 수 없는 이유다.

여권 내부에서 ‘탕평론’이 나오고 있다. 주류에서 이같은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하지만 칼자루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명박이 자신의 몫도 버릴 건 버릴 줄 아는 신뢰를 보일 작심이 서야 가능하다. 자기의 것은 다 챙기면서 믿으라는 것은 과욕이다. 과욕엔 진실성이 없다.

탕평책은 ‘탕평론’이란 말도 없는 미국의 오바마가 먼저 쓰고 있다. 힐러리며 매케인이며 공화당 사람들을 끌어안는 국량이 꽤나 넓다. 상대당은 말할 것 없고 자기당조차 끌어안지 못하는 이명박의 협량함은 나라를 위해 유감이다. 시중 민초들의 패거리 주석 논리가 비록 그렇긴 해도, 민초들도 탕평책을 쓰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쓴다. 하물며 비상시국에 처한 대통령의 지위에서 의식이 패거리 논리에 머물러서 안 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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