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달라져야 산다

인천지하철공사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불발됐다. 찬성 473명(63.4%), 반대 270명(36.2%)으로 3분의 2 이상의 찬성 통과선에서 25표가 부족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에 희희낙락할 입장은 못된다. 비록 부결은 했지만, ‘민노총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냐?’는 상급단체에 대한 배신감에 차있다. 이런 가운데도 부결된 것은 더 두고 보자는 일부의 관망론이 작용된 탓이다.

이미 현대중공업노조에 이어 코오롱노조 등도 탈퇴했다. 영진약품노조는 회사측과 임금동결 고용유지 등을 골자로 하는 노사화합 선언을 가졌다. 이는 투쟁 일변도의 민주노총 노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상급단체의 지침을 휴지화했다. 인천지하철노조 또한 비록 상급단체 변경은 실패했지만, 민주노총의 허수아비 노릇은 거부할 것으로 보아진다.

개별사업장 노조의 민주노총 이탈 및 이탈 움직임은 앞으로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2006년에 75만2천여명이던 조합원이 이듬해 66만4천여명, 지난해 말에는 65만여명으로 줄었다. 민노총은 ‘이탈이 아니고 사업장 감소 때문’이라지만, 사업장 감소보단 이탈 때문에 줄어든 게 진실이다.

민주노총의 정치성은 고질적 병폐다. 산하 개별사업장 노조에 뭣때문에 ‘정치위원회’란 걸 두는가, 노동운동은 근로자의 권익옹호가 주안이다. 노동운동 또한 정치운동이 아니다. 노동운동의 정치운동화는 순수성을 잃은 잡탕이다. ‘귀족노조’란 비판이 이 때문에 제기된다.

개별사업장 노조에는 간곤한 투쟁을 촉구하면서, 상급단체는 잘먹고 잘사는 노조가 되어선 윤리가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한동안 말썽이 있었던 비리는 그랬다고 치자, 중견 간부의 여성조합원 강제추행도 그랬었다고 치더라도, 이에 반성할 줄 모르는 게 더 큰 문제다. 여성조합원 강제추행의 경우, 산별노조에까지 은폐를 시도한 몰염치는 민주노총이 평소 말해온 투명성이 허구임을 드러냈다.

노사평화를 사사건건 반대하며 뒤트는 ‘청개구리’가 되어서는 더 이상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분명히 말한다. 사사건건 흔듦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한다고 보는 전근대적 투쟁의 사고방식은 민중의 외면을 받아 냉소의 대상이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이단이며 노동단체의 기형아다.

진보주의 성향의 노선을 걷는 것은 선택의 자유다. 그러나 그런 노동운동이 반정부운동이 되어서는 궤도 이탈이다.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제도권, 즉 법치 일탈이 그렇다는 것이다. 계급투쟁 사관에 치우친 듯한 이념화는 낡은 유물이다. 무턱댄 반미나 무조건적 종북주의는 진보주의 본연의 면모가 아니다. 혹여 진보주의를 빗댄 혁명적 투쟁이라면 몰라도, 아니라면 노동투쟁을 할 때 하더라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를 혼란케하여 불안을 야기시킬 권리가 주어진 건 아니다.

제3섹터 노동운동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정치참여를 배격하는 가운데 정부나 사측과의 대화협력을 주요 정신으로 하는 신노동운동이다. 어디까지나 근로자의 노동권익을 추구하는 실사구시의 노동운동인 것이다.

이엔 민주노총만이 아니고 한국노총도 반성할 점이 많다. 정치참여는 민주노총이 마이너스형 정치참여로 민주노동당 진출을 발판으로 삼는다면, 한국노총은 플러스형 정치참여로 여권 진출의 거점으로 삼는다고 봐야 된다. 실제로 이리하여 국회의원이 된 노동운동가 출신이 많다.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노동단체를 이용하여 정치권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운동의 순혈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폐습의 시정을 민주노총쪽에 더 강력히 주문하는 것은 그 폐악이 심히 더 한데 이유가 있다.

민주노총은 타협은 굴복이고 노사평화는 입지를 좁힌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삐뚤어진 의식에서 해방돼야 한다. 노동단체의 양대산맥은 필요하다. 그러나 선명성 경쟁은 투쟁 일변도가 능사는 아니다. 산하 조합원들의 실질적 권익 경쟁에 초점을 모으는 데 존재 이유가 있다. 민주노총은 제3섹터 노동운동으로 방향을 돌리는 용기있는 변화가 있어야 산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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