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두 가지다. 이미 구속 기소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리스트와 어느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유서 형식의 문건에 적힌 리스트다.
여배우의 글엔 술접대, 잠자리 등을 강요 당했다는 내용이 적혔다. 다만 강요당했다는 것이므로 더 자세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조사해봐야 할 일이다. 조사 대상이 12명이라고도 하고 13명이라고도 한다. 그 중엔 재계, 언론계 인사도 끼었다니 경찰수사의 추이가 주목된다. 만약 여배우의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마땅히 법정에 세워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연예계의 고질적 부조리를 발본색원하는 계기가 돼야한다.
그런데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는 아주 고약하다. 여배우의 리스트 내용도 고약하지만, 박연차 리스트의 등장 인물은 권력을 쥐었거나 권력을 등에 업고 거액을 받은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 박연차 리스트는 그의 비서실에서 나온 박 회장의 일정이 적힌 다이어리와 수 억대의 뭉칫돈이 지출된 출금전표 등을 근거로 작성된 리스트다.
박연차 리스트의 용의선상에 오른 30여명 중 검찰수사 과정에서 거명된 사람은 14명이다. 이들은 이미 구속됐거나 피의자 신분의 출두를 앞두고 있다. 노건평(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정대근(전 농협중앙회장) 송은복(전 김해시장) 이정욱(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장인태(전 행자부2차관) 박정규(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재(민주당 국회의원) 이종찬(전 청와대 민정수석) 서갑원(민주당 국회의원) 최철국(민주당 국회의원) 김혁규씨(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은 노무현 정권 사람들이다. 이명박 정권 사람들도 있다. 추부길씨(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는 이 대통령의 측근이고 권경석·허태열씨 등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거나 “빌린 돈을 갚았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거물이 잇따라 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박연차 회장은 뭣 때문에 이토록 억 단위 또는 수억 단위의 돈을 뿌렸는가 하는 점이다. 모두 142억원을 뿌렸다. 물론 이득을 챙기거나 권력에 대한 보험료로 준 대가성이긴 하다. 그러나 통큰 영향력 과시욕이 많았던 그의 성격 또한 크게 작용된 것으로 보는 것이 검찰 주변의 관측이다. 박 회장은 1988년 총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선거에서 노건평씨를 통해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 후보를 알게 돼 인연을 맺었다. 그후 노무현씨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측근이면서 돈뭉치까지 뿌리는 양날개를 단 호걸형의 유력 인사로 행세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아우님 대통령’이 “순박한 시골노인”이라고 했던 노건평씨는 결코 순박한 시골노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박 회장 더러 누구 누구에게 돈을 주라고 했는가 하면, 받은 돈을 더러 배달도 했다는 것이 역시 검찰 주변의 말이다. 심지어는 PK(부산 경남)지역의 선거개입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검찰의 리스트 수사에 꽤 협조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질신문도 사양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심경 변화는 태광실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기업인의 본능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뭣보다 권력무상을 실감한데서 온 변화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 권력은 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은 유한하다. 권력과 바꾼 돈은 권력이 떨어지고 나면 재앙을 부르는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누구보다 민중적 도덕성을 내세웠던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그러나 아니다. 언제까지나 거머쥘 것 같았던 권력이 떨어지면서 흥청댄 권력의 비리가 곪아 터져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정권도 벌써 전철을 밟는 조짐이 나타난다.
민중은 하루 3~4만원 벌이에 등뼈가 휜다. 이런 민중의 위임을 받은 권력자들이 권력을 팔아 억대 돈을 게눈 감추듯이 챙기는 못된 버릇은 벼락맞을 일이다.
검찰 리스트 수사는 이제부터 고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 사이에 전달받은 것으로 보이는 500만달러 의혹,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모씨가 관련된 의혹, 검찰 내부의 일부 고위직 관련 의혹 등은 국민사회가 어떻게 풀 것인지를 지켜보는 마지막 고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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