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엘레지’

두 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검찰청이 과연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또 하나는 그래도 세상은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검찰에 긴급 체포되기가 바쁘게 예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받은 금전 수수관계를 털어놓은 건 검찰 수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정상문은 고향이 같은 김해인 40년 지기다. 이러한 친구인지라 검찰에서 윗선을 묻어두고 혼자 다 짊어지고 갈 수가 있긴 있다. 그러나 돈의 용처에 대한 추궁 과정에서 자신의 노출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어 선수를 친 것이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서둘러 밝힌 이른바 ‘사과문’이다.

‘사과문’은 그답게 철저히 계산됐다. ‘집(사람)이 빚을 갚으려고 박연차 회장에게 돈을 부탁해 수억원을 받았다’며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것이 전부다. 그 수억원은 3억원이란 말도 있고 10억원이란 말도 있다. 확실한 금액은 검찰에서 밝혀질 것이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검찰 수사에서 진술돼야 하므로 말을 아낄 순 있다. 그러나 ‘사과문’은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게 ‘사소취대’(捨小就大)의 계략이다. 수억원을 받은 것은 시인 함으로써 500만달러를 받은 것은 부인을 부각시키는 의도가 역연하다. 홈페이지에 ‘사과문’ 형식으로 자수까지 했는데 또 다른 돈을 받았으면 받았다고 하지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식의 이미지 만들기로 자신에게 쏠린 500만달러 의혹을 잘라내고자 하는 것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돈을 요구해 받은 것이 정말로 권양숙씨 단독인가 하는 점도 심히 의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받아놓고 부인을 희생번트 삼는 정황이 없지 않다. 아니면 공동정범일 수 있다. 돈의 성격에 대해서도 막상 검찰 수사에 들어가면 엉뚱한 말을 할 공산이 높다. 그의 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빌린 돈”이라고 연막을 친 것은 바로 그같은 엉뚱한 말을 할 조짐이다.

그러나 경험법칙상 빌렸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돈이 건네진 게 2005년부터 2006년 사이라면 한 차례가 아닌 걸로 보아진다.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 돈을 빌리고 나서 빌린 돈도 안 갚고, 또 빌렸다는 것은 먼저 요청했다 해도 이미 빌린 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금전 수수가 한 차례든 몇 차례든, 금전 수수시 특정 대가가 제시됐든 안 됐든 간에 포괄적 뇌물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도덕성을 유별나게 내세운 대통령이 도덕성을 남 모르게 팔아먹은 건 참으로 불행하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래도 세상은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기업인들에게 돈 받는 것을 예사로 여겼던 과거에 비하면, 전직 대통령이 재임시 돈 받은 사실이 들통 날까봐 지레 겁먹고 까발리는 세상은 전보다 나아졌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돈 먹은 정치인이 많아 줄줄인 것은 나아진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자금으로 둘러대면 면책됐던 전에 비해서 처벌 대상이 된 측면에선 나아진 게 사실이다. 처벌 대상에 오른 사람이 전·현직 국회의원, 전직 장관에 이어 전 국회의장들까지 오르다 못해 이젠 전 대통령 내외까지 올랐다.

전 대통령 내외만도 아니다. 대통령 친형, 조카사위까지 연루됐다. 노무현 정권의 비리 몸통이 곧 전 대통령 일가이며, 그 중심에 노무현이 서 있다. 몸은 궁궐같은 봉하마을을 신축한 사저에서 호사를 해도, 맘은 권력 무상에 가시방석처럼 아플 것이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죠?” 이는 노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취임 초 평검사들과 가진 대화의 자리에서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 지역구 사람의 일로 부산지검 모지청에 전화를 걸어 청탁성 압력을 가한 사실을 어느 젊은 검사가 제기했을 때다. 노 전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그렇게 드러내면서, 그러나 화도 내지못해 얼굴만 붉혔다.

노 전 대통령 내외의 검찰 수사는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이르렀다. 기왕 불가피한 악연의 만남이라면, 노 전 대통령은 다 털고, 검찰은 다 털어내야 서로가 산다. 화가 나서 붉혔던 얼굴이 이젠 수치로 붉혀야 할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사회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