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 대통령 노무현씨가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날이다. 그런데 신문 제작상 하루 먼저 이 글을 쓰면서 엉뚱한 생각이 든다. 가령 꾀병의 건강상 이유를 들어 출두 연기를 요청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내사(나야) 갈려고 했는데 몸이 안 좋아 도저히 못가겠다”고 하면 강제 구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분이라, 가뜩이나 긴장한 가운데 신문 준비를 마친 검찰의 김빼기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어떻든 상경해도, 경남 김해시 진영땅 봉하궁에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까지 조사받으러 올라오는 천리길이 편하진 않을 것이다. 그만이 아니다. 지켜보는 민초들도 국민노릇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엎어진데 대고 뒤통수 누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아들 미국 유학비에 보태 쓴 것으로 보이는 100만달러의 용처에 대해선 진술을 거부하는 등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혐의를 부인할 공산이 높지만, 그의 죄상은 이제 검찰 수사와 법정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노무현씨 자신은 그렇다 쳐도, 그는 과연 불쌍한 사람인가,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감옥갈 처지가 되어 나오는 구속·불구속 논의를 측은지심으로 보는 값싼 감상은 정말 볼썽사납다. 그는 그래도 대저택에서 잘먹고 잘사는 봉하궁궐의 주인이다. 정작 불쌍한 처지는 그 사람 때문에 국민노릇 하기가 힘든 민초들이다. 그에게 기만당한 민중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노무현교’의 광신도들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주술에 걸린 맹신자들 같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은 꽤 점잖은 이다. 이런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치 보복이다”라고 트집 잡았다. 검찰이 혐의를 인지했어도 수사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소린지, 뭔지 알 수 없어 헷갈린다.
노 전 대통령 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씨 회갑 때 1억원짜리 시계를 선물했다는 언론 보도에 “망신 주는 것이냐”며 검찰이 이를 언론에 흘렸다고 검찰을 비난했다. 그러나 비난할 사람은 세상에 억대 시계가 있는 줄조차 몰랐던 민중이고, 비난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30단계의 수공 작업을 거친 스위스제 자판에 수십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를 뇌물로 받은 짝퉁 민중의 지도자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말 낯이 두껍다.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재산이 없고 청렴했으면 옆에서 참모가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런 일을 했을까 싶어 나도 안타까운 마음이다”라는 말은 지성을 의심할 정도다. 그러면서 ‘노무현 게이트’를 가리켜 “생계형 범죄”라고 한 것은 코미디다. 자그마치 600만달러에 3억원을 더 한다. 퇴임하면 나라에서 돈주어 먹여살리고, 비서관 붙여주고, 해외여행도 시켜주는 대통령에게 건넨 600만달러+3억원의 뇌물이 생계형이란 소린 민중의 기가 찰 노릇이다.
역대 정권마다 주군의 추종자가 적잖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종자들 중엔 특히 발군의 충성자가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교’ 교도들처럼 허무맹랑하고 파렴치한 소린 말하지 않았다.
북녘처럼 절대적 권력의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폐쇄사회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개방사회에서 자행되는 저들의 교만은 6년전 정권을 장악할 당시 최면을 건 포퓰리즘의 마술에 민중이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걸로 착각하는 것 같다.
하긴, 그렇다.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을 동정하는 사람도 있다. 또 아돌프 히틀러, 베니치오 무솔리니, 도오조 히데키 등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독일 나치스의 수령,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당 당수, 일본 군벌내각의 수장으로 악명높은 독재자들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이다. 정치나 사회적으로 아무리 악한 사람도, 더러는 좋게 보는 대중심리의 맹점이 없지 않은 것은 언제나 비슷한 현상이긴 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이를 가치관이 전도된 도착심리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나를 버려달라”는 노무현씨의 절박한 역설적 반전 카드가 대중적 후광효과의 심리를 노린 것일지라도, 그를 불쌍하게 볼 사람은 광신도 패거리일 뿐, 민중의 맘속에선 지워진지가 오래다.
이런 건 있다. ‘노무현 게이트’ 척결에 버금가는 여권 실세의 의혹 역시 강도높은 척결의 메스가 가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권 실세의 의혹 또한 언제 터져도 터진다. 길게 묻혀봐야 기껏 4년이다. 묻어놓는 것보다 터뜨리는 것이 현명하다. 오늘 대검 중수부에 소환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경은, 한편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반면교사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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