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 새바람이 분다.
상급단체를 위한 정치투쟁을 버리고, 조합원을 위한 경제투쟁을 하겠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도 강성노조로 소문난 기아자동차 노조 안에서 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주장이 차기 위원장 선거공약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출마한 가태희 후보(46)는 ‘민주노총 탈퇴’를 조합원들에게 으뜸가는 입후보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금까지 노동계에서 없었던 신선한 이변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을 잇달아 탈퇴한 대형 노조들이 적잖았으나, 위원장 선거에서 공약으로 나온 적은 없다.
실용노선의 집행부가 들어서 조합원을 설득, 찬반투표를 거쳐 탈퇴했다. KT, 인천지하철노조 등의 경우다.
그런데 기아차노조에선 이번에 갖는 차기위원장 선거 입후보 공약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직접 들고 나왔다. 물론 결과는 오는 27일 치러지는 투표를 지켜봐야 안다. 하지만 ‘민노총 탈퇴’ 공약 자체를 충격적 변화로 보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노동계만도 아니다.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것 또한 당연하다.
민노총 탈퇴를 미리 조합원에게 당당히 물어 정면 돌파를 하고자 하는, 그 위원장 후보 노동자는 민주노총 조직국장을 지냈다. 2005년엔 기아차노조 부위원장도 했다. 굳이 만나볼 이유는 없었다.
선거본부 양기주 대변인의 말을 간접으로 들은 배경 설명은 이렇다.
“민주노총의 비민주성과 정파주의는 참된 민주노동운동이라 할 수 없으며, 더 중요한 것은 기아차 조합원이 민주노총식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아닌 민노총의 상습적 정치투쟁운동은 새삼 말 할 것 없이 세인이 다 아는 공지의 사실이다.
문젠 그 같은 정치투쟁이 누굴 위한 것이었느냐는 것이다. 조합원 노동자나 조합을 위했다고 하기에는 결과가 공허하다.
상급단체가 불법을 부추긴 일선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영화를 누린 것은 상급단체인 바로 민노총이다.
민노총이 민노당 국회의원들의 산실이 된 사실도 그런 사례에 든다.
노동운동은 존중돼야 한다.
이런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천박한 정치운동으로 각인된 책임이 민주노총에 있다.
기아차노조는 조합원이 무려 3만300여명에 이른다.
1995년 민주노총 창설의 주역이었다.
이 같은 민노총 아성의 변화는 한국 노동운동의 획기적인 전환을 시사한다.
사회봉사를 노동운동의 새로운 과제로 삼겠다는 것은 특히 주목된다.
정치투쟁 대신에 조합원들을 위한 경제적 투쟁에 주력하는 한편, 사회봉사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에 내는 연간 조합비가 자그만치 31억원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이 돈이 그동안 어떻게 쓰여졌는진 의문이다. 이 돈을 조합원 복지에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독거노인 등을 위한 사회봉사 활동에 쓸 것이라고 한다.
노조의 이색적 사회봉사는 소비층에 기업의 이미지와 회사 가치를 높이는 노사 일체의 시범으로 보인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용자와 노동자는 불가분의 관계다.
불가분의 관계가 협력보단, 대립으로 치중된 덴, 사용자 측의 책임도 없진 않다. 그러나 노동자 측의 책임이 큰 것은 그간 정치투쟁이 낳은 역기능이다.
정치투쟁에서 자유로운 노조의 사회봉사 활동은 노사의 새로운 윤리관 확립이다.
흔히 노사의 협력적 관계를 ‘어용’으로 매도하는 것은 정치투쟁을 부추기는 흑색선전이다. 협력 관계에서 내세우는 권익 요구가 더 설득력 있게 압박한다.
이것이 뜻을 이루지 못해 불행히 파업이 일어난다 해도, 이 같은 파업은 순수한 노동운동으로 국민사회의 지지를 받는다.
이런 노동운동을 보고 싶어 한다.
며칠 남지 않은 기아자동차 노조의 차기 위원장 선거에 사회의 관심이 쏠린 연유가 이에 있다.
올해까지 19년 연속 파업을 일으킨 강성 노조에서 ‘노동운동 주권 회복’를 위해 나온 민노총 탈퇴 선언 공약은 중차대한 진로의 분수령이다.
선택은 조합원들 몫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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