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4大江

4대강 문젠 날 괴롭혔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게 배우려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말이 중구난방이다. 환경 분야의 시민단체에 물어봤다. 믿기가 어려웠다. 일부의 환경운동가는 운동이 곧 생업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시민운동이 생업의 수단이 되어서는 판단에 이해관계가 얽혀 순수성을 의심받는다.

이명박의 대운하사업은 나도 반대했다. 지금은 신작로도 없었던 조선시대와 달라 고속도로가 사통팔달로 깔렸다. 물류 위주의 대운하는 경제성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운하는 그만두고 4대강 정비를 들고 나왔다. 정비라면 문제가 또 다르다.

금세기 중반이면 물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사실은 물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물을 이용할 줄을 모른다. 연간 내리는 강우량의 약 90%가 바다로 그만 고속 직행한다. 강의 수량을 풍부히 하고 수질을 좋게 하는 것이 4대강 정비사업이라면 반대만 일삼을 일이 아니다.

 

물을 가두는 16개의 보를 가리켜 갑문만 트면 운하가 된다고 한다. 생각해 본다. 물류가 아닌 관광용일 것 같다면 운하인들 꼭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물을 가두면 썩어 수질을 악화시킨다고 한다. 소양강댐 물이 썩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콘크리트 제방으로 습지를 없앤다고 한다. 예컨대 대구 달성습지가 영향을 받도록 설계되진 않았다. 철새 도래지가 없어진다고 한다. 가설이다. 준설을 하면 물이 더러워진다는 걱정은 일시적 현상이다. 강바닥 퇴적물 제거는 뭣보다 긴요하다.

 

반대하는 말을 듣다 보면 서울 마포의 한강물이 홍수가 지면 공덕동 네거리까지 쳐들어왔을 때처럼, 가만놔둬야 한다는 말 같다. 그러나 서울시의 한강 치수는 백미에 꼽히는 것으로 전두환 때에 서울시장 염보현이 이것 하나는 잘해 놨다.

 

생각나는 게 있다. 박정희가 1960년대 말에 처음 경부고속도로 428㎞ 구간을 건설할 적에 야당인 신민당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원짜리 돈을 서울서 부산까지 길에 깔아 없앤다”고 혹평했다. 그 무렵엔 나라에 돈도 없었다. 박정희가 서독에 가서 돈을 빌리는데 잡힐 게 없어 사실상 광부와 간호원으로 가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월급을 담보로 차관을 빌렸다. 그때 서독정부가 박정희에게 권고한 것이 길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속도로 만드는 데 이골이 나 전국이 고속도로 천국이 됐지만, 처음 시발점의 배경엔 이런 기막힌 사연이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1970년 7월7일이다.

 

이명박이 대운하에 이어 왜 고통스런 4대강 문젤 들고 나왔는진 모른다. “4대강을 서울시장 때 재미 본 청계천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반대론자들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4대강과 청계천의 치수사업은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팽개쳐 놔서도 안되는 것이 4대강 치수 문제다. 공사를 하면 강물이 썩는다지만, 4대강 물은 이미 썩고 있다. 우수기엔 홍수로 범람하고, 갈수기엔 건천화하는 강이 된 지 오래다.

 

4대강에 드는 22조5천억원의 예산을 민생 분야로 돌리라는 정치적 주장은 대중영합주의가 다분한 선전선동이다. 당장의 민생도 중요하지만, 후세에 물려주는 치수사업은 더 중요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같은 공격이 분명한 논거를 발견키 어려운 관념적 공론이란 사실이다. 나보다 더 알 것 같지 않은 이들이 4대강 문제가 무슨 악의 화신인 것처럼 덮어놓고 떠든다.

 

물론 하다 보면 부분적 시행착오가 많이 나올 것이다. 안 나온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무를 보기보단 숲을 봐야 한다. 착오를 공개하고 또 시정하는 노력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10일 낙동강·영산강에 이어 오늘은 여주 등지서 한강 물막이 공사가 시작됐다. 금강에서도 곧 첫 삽을 뜬다. 경남 합천 현장에는 ‘쌀값 폭락 농업 위기 외면하고 4대강 삽질이 웬 말이냐’는 현수막을 내건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를 걸고 삼삼오오 지켜보는 주민들 또한 많았다. “영산강 수질이 좋아지고 물이 풍부해질 것이라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지켜보겠다”고 하는가 하면, “홍수나 갈수 걱정이 없는 낙동강이 되면 좋겠다”는 농민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들의 기대를 절대로 져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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