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행복의 조건

사람인 자 한문의 ‘人’은 서로 기대는 형상이다. 서로가 의지하고 산다는 뜻이다. 이 상형문자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공동체사회의 구성원임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은 또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처지와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유유상종으로 편을 가른다.

 

하지만 편을 갈라도 역시 사람살이다. 사람은 서로 의지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편도 상대편을 존중해야 자기 편 또한 존중받는다. 개인이나 편이나 이처럼 상대를 인정하는 가운데 피차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다. 우리의 개념엔 나나 내 편만이 아니라, 너와 네 편도 포함된다.

 

과거 왕조사회에서도 여러 형태의 공동체사회가 있었다. 향약은 ‘권선징악’을 윤리로 삼은 고전적 지방자치다. 지역의 향반들이 모이는 향회에서 좌수와 별감 등 임원을 선출했다. 고을 사또의 지방행정에 영향을 미친 이들의 모임이 비록 양반계층에서 주도되긴 했으나 공동체사회의 형성이었다.

 

이에 비해 두레는 고을 민초들의 공동체사회다. 조선 성종시대에 학자로 대제학을 지낸 성현이 쓴 수필집 격의 ‘용재총화’는 두레를 이렇게 전한다. ‘대체로 이웃의 천민들끼리 회합을 갖는데 적으면 일곱에서 아홉명이요, 많으면 혹 백여명이 되어 매월 돌아가며 술을 마시고, 상을 당한 자가 있으면 같은 상여꾼들끼리 상복을 마련하거나 관을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해 가며 무덤까지 만들어 주니 참으로 좋은 일이다.’

 

동네 구장에게 마을 사람들이 거둬 준 성미벼는 근대 농촌사회의 상부상조다. 면사무소를 들락거리며 동네 일을 보는 구장에게 해마다 가을걷이 때면 집집마다 벼 한 말씩을 거둬 한 해 동안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의 정표로 전하곤 했다. 이 당시 구장은 동네 사람들의 시비를 중재하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구장이 이장으로 바뀐 현대 농촌사회 들어 없어진 줄 알았던 성미벼 풍습이 양평·가평·여주군 등 농촌에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미풍양속이다. 다만 벼 한 말이 현금 2만~3만원으로 바뀌고, 성미벼도 마을세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세월 탓일 것이다. 그런데 외지에서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마을세란 근거가 없어 안 내겠다고 야단인 모양이다. 편의상 부르는 이름이 마을세지 누가 조세법정주의로 정한 세금이라 했겠나, 그래도 성미벼에 이어진 마을세가 농촌사회의 오랜 전통이고 보면 관습법의 일종으로 그곳에서 살려면 따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잘은 몰라도 전원주택을 지었거나 땅 장사를 위해 농촌에 들어가 사는 부자들이 이장이며 반장 그리고 새마을지도자 등이 활동비로 쓰는 몇 푼의 마을세를 안 내겠다고 버티는 것은 정말 째째하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1위에 꼽히는 덴마크는 인구가 불과 600만명을 좀 넘는다. 미국·프랑스·중국처럼 대국도 아니다. 유럽 서북부 유틀란드반도와 섬으로 된 국토 면적이 4만3천68㎢로 남한의 3분의 1보다 조금 더 넓다. 물가도 높다. 택시비가 국내 모범택시보다 비싸다.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뗀다. 이런데 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을까, 예컨대 유치원부터 대학 졸업까지 모두 공짜다. 잔병이든 큰 병이든 어느 병원에서나 역시 공짜로 치료해 준다.

 

그러나 이만으로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로 꼽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생활이 한마디로 행복감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국민들은 일상생활의 범사를 모두 고맙게 생각하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긴다. 그들의 건전한 정신이 오늘날 건강한 국민생활을 누리는 결과를 낳았다. ‘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가정교육에서부터 학교교육, 사회교육에 이르기까지 일관하는 국민생활의 철칙이다. 해서, 남을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가 뿌리내려, 나도 남에게 존중받는 공동체사회가 형성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남을 존중치 않는 것은 마을세를 거부하는 졸부만이 아니다. 정치권에 횡행하는 ‘결사반대’는 상대를 부인하는 소리다. 정치권이 매사에 이렇다 보니 국민사회도 나만 옳다는 떼거지가 판친다. 우린 지금 옛날의 향약보다 못한 정치, 두레보다 못한 사회에 살고 있다. 서로 기대는 모양의 사람인 자는 개인만이 아니고, 공동체사회 역시 거역할 수 없는 순리다. 순리는 행복의 길이고, 역리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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