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의 의젓한 첫아들에서 갓난 젖먹이 공주까지 11남매면 몇 살 터울일까, 정말 가장 한국적인 가정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K1TV-인간극장에서다. 이 프로그램의 다큐 미니시리즈 5부작 ‘흥부네 11남매’다.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닷새 동안 아침 7시50분부터 8시20분까지 방영된다. 지난 월요일 첫날 1부작을 우연히 중간에서 보았고, 2부작은 못 본 채 어제 3부작은 다 봤다. 오늘 아침 4부작에 이어 금요일인 내일 5부작이 모두 끝난다.
한 자녀만 낳거나, 잘 해야 두 자녀만을 고집하는 것을 적게 낳아 잘 키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자녀와 부모의 행복을 위해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행복한 가정이 많긴 하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본다. 자녀를 잘 키운다는 개념은 어떤 것이며, 행복의 실체적 가치가 뭣인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흥부네 11남매’ 가족의 행복은 그동안 실종된 한국적 가치를 재발견케 한다.
용인에서 이런 일이
전형적인 농촌의 단독주택이다. 대체로 내 방, 네 방이 따로 없다. 어디서나 밥상 놓고 공부하다, 졸리면 그 자리서 뒤엉켜 잔다. 라면을 끓여도 나중에 먹는 형제나 자매는 더 끓이기 귀찮으면 남은 국물에 밥 말아 먹는다. 바깥 놀이는 마치 운동회같다. 궂은 일이 생겨도, 좋은 일이 생겨도 11남매가 층층이 부추기고 다독거리며 서로 알아서 처리한다.
어깨를 온통 파스 딱지로 도배하다시피 한 아버지가 누워 쉬면 중간 아이들은 다릴 주무르고, 꼬맹이들은 얼굴이며 배 위를 기어다닌다. 어머니는 작은 아이들 신경쓰느라, 큰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는 것을 늘 가슴 아파 한다. 이래저래 울음소리도, 웃음소리도 가득하다. 그것은 곧 사람 냄새다.
남매가 많아서 집이 좀 가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그만큼 사는 형편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아니 부자다. 남매가 많은 것이 돈보다 더 귀하고, 보람되고, 얼마나 자랑스런 것인가를 앞으로 살면서 두고 두고 느낄 것이다. 그것은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행복의 원천이다.
형제자매, 즉 남매가 많은 집 자녀들은 인간의 품성 개발이 앞서간다. 우애와 경쟁을 부단히 경험하며 성장한 아이들은 자기 주장의 이기심과 협조의 이타심을 구별할 줄 아는 인격 형성이 빨라진다. 어려서부터 대가족 간의 집단생활 속에 숙성한 인성은 사회생활 또한 원만하다.
농경문화시대의 원래 전통농가 대가족은 아버지 밑에서 형제들 가족이 함께 살았다. 그러므로 한 할아버지 밑에서 사촌이 살면서, 오촌 나아가 육촌이 나오기도 했다. ‘한 지붕 밑에서 육촌 난다’는 속담이 있는 연유다. 이는 분가할 집이 없어서가 아니고, 노동집약형의 농경문화에 실효적 적응을 위해서였다.
다자녀는 행복의 원천
세상이 달라져 정보통신시대의 첨단화에 이르렀다. 전통적 농가의 대가족제는 소용이 없으나, 자녀가 많은 대가족의 인적 가치가 부정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사회는 같기 때문이다.
‘흥부네 11남매’가 지역사회의 화제인 것이 자랑스럽다. 화면에는 장계부락이란 게 나와도 어딘 줄 몰랐으나, 처인구보건소가 나와 비로소 용인이란 것을 알았다. “용인시장님이 상을 줘야 한다”는 것은 어느 용인시민의 말이다. 그렇다. 상을 줘도 단단히 줘야 한다. 요즘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쏟아낸다. 그러나 11남매의 부모는 그 같은 것과 무관한 자발적 기여다. 예컨대 국민훈장 같은 것을 흔히 관변단체장 등 공적을 부풀려 당치 않게 주기보단 바로 이런 국민에게 줘야 한다.
그 많은 자녀의 인물이 모두 준수하다. 이토록 반듯하게 잘 키우고 가르친 부모가 김정수(49) 함은주씨(39) 부부다. 열두째 자녀도 기대할 수 있을만큼 아직 젊다. “운명이다”라는 것은 함은주씨의 말이다. 그러나 역시 쪼들린 티가 김정수씨의 이빨에서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위쪽 앞니가 휑하니 빠진 지가 오래된 것 같은 데도 해 넣을 형편이 못되는 듯 하다.
어떻든 이들 부부는 다자녀의 표상이다. 저출산 대책의 훌륭한 홍보대사다. 우리 사회가 아일 낳기 권장한다면, 이런 부부에게 응분의 대책이 강구돼야 공정한 사회라 할 것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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