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하루 만에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아시아 최대 규모에 놀랐고, 국가 주도로 출판산업을 육성한다는 점에서 부러움도 느꼈다. 중국의 이러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중국은 다양한 민족이 중화라는 하나의 문명권으로 응집된 국가다. 물리적 힘보다도 문화의 힘으로 주변국과 이민족을 복속시키며 발전해 온 나라다. 그러한 중국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또한 이달 초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독일출판인서적상협회가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세계에서 가장 전통 있는 도서전이며 모든 출판인들의 꿈이기도 하다. 15세기 초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자 작가와 인쇄업자들이 모여들면서 ‘북메쎄(Buch Messe, 책시장)’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됐으니 꽤 유서가 깊다. 전 세계 100개국 7천여 출판사가 참여하는 최대의 도서전이다.
이러한 국제도서전을 통해 나는 파주의 가능성을 봤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를 만든 인쇄술의 종주국이며, 파주출판도시에는 자취를 감춘 활판인쇄술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뿐만 아니라 파주출판도시에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출판관련 기업이 250여개가 모여 있다. 가히 책의 수도라 할 만하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제도서전에 버금가는 책페스티벌을 열어볼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혹자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도 성원이 힘든데 파주에서 열리는 행사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파주는 조개 속에 숨은 진주처럼 문화적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도시다. 구석기시대 문화유산부터 출판도시, 헤이리예술인마을 등 현대적 문화자산까지 풍부하며,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에 의해 기호학파가 탄생하는 등 예로부터 문향의 도시로 불린 역사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 파주출판도시가 자리한 교하읍 문발리(文發里)는 글이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지명이다. 따라서 파주출판도시가 자리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물론 출판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을 개간해 훌륭한 출판도시로 만든 노고에 역사적 가치가 더해져 오늘날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책의 도시가 된 것이다.
내년에 파주에서 북페스티벌을 열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특징을 살려 당당하게 경쟁할 것이다. 파주출판도시에는 영국의 책마을 헤이온와이처럼 다양한 책을 사고파는 책방거리를 조성할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시민들을 중심으로 책 읽는 분위기도 확산시킬 계획이다. 마을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도서관을 만들고, 3명 이상이면 누구나 책 동아리를 만들 수 있는 ‘동네방네 책 토론방’을 운영할 계획이다. 책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문화가 꽃피는 파주가 될 것이다.
파주시장에 취임하면서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과거 바로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황영조 동상을 세우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문화적 자부심에 많은 것을 느꼈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퇴근 후에 술자리로 향하는 것과 달리 미술이나 음악 등 문화모임을 가졌다.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문화가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파주시민들이 퇴근 후 삼삼오오 책을 읽는 모임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며,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가보훈처장으로 재직 중인 손자 김양씨는 “할아버지께서 강조하신 문화의 힘은 기품 있는 나라, 격조 있는 나라였다”고 강조했다.
그 말씀에 비춰서 기품 있는 파주, 격조 있는 파주를 만들고 싶다. ‘문화의 힘’으로 파주에 변화의 불씨를 지피고 싶다. 그러한 문화의 힘이 시민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이인재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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