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손학규가 아니다. 중앙정치 무대의 지체가 달라졌다. 민주당 10·3 전당대회에서의 당대표 당선은 화려한 부활이다. 한나라당 탈당 3년6개월 만이다.
한나라당 탈당은 멍에이긴 하다. 비난 또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어쨌든 경기도지사를 지낸 사람이 굴지의 당대표가 된 것은 괄목할 만하다.
한데, 달라졌어도 그는 역시 손학규다. 줄타기 놀음이 아슬아슬하다. 당대표가 되고 나서 맨 먼저 달려간 곳이 김해 노무현 묘역이다. 이어 호남 우대의 당직 인선을 했다. 이파 저파의 정파를 아우르는 탕평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파 저파마다 아부하는 기생 정치로 비칠 수도 있다.
문젠 원칙이 없단 사실이다. 노무현은 민중 지도자의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다. 대통령직에서 부정 축재한 그를 민중의 지도자로 보는 민중은 없다. 졸개 등 정치 세력만 있을 뿐이다. 민주당의 호남 색깔은 김대중 사후 퇴색됐다. 호남 인맥도 여러 갈래다. 호남 중심 인선은 생색 안 나는 편중 인사다.
여러 정파의 민주당 속에서 야당의 선명성을 살리는 것은 그 자신이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념을 내세운다. 한미 FTA를 반대하고, 4대강공사는 운하사업이라고 우긴다. 전엔 안 했던 소리다. 선명성 부각이란 게 하필이면 구닥다리 정치에 치우치는 것은 유감이다. 정치는 현실이어서 부득이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손학규다운 원칙은 아니다.
진보주의로 둔갑된 그를 보면 생소하지만 이젠 인정한다. 원래의 진보에서 보수로 왔다가 원래의 진보로 되돌아간 걸로 친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이해하려고 한다. 황장엽 빈소를 끝내 찾지 않은 것도 그렇고, 북의 3대 세습이 상식에 안 맞지만 어차피 상대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결단코 용납되지 않은 처신은 박지원의 ‘시진핑 발언’ 두둔이다. 시진핑이 김대중에게 이명박이 한반도 평화 훼방꾼이라고 했다는 박지원의 말은 중국 외교부의 공식 부인으로 거짓말인 게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시진핑의 평화 훼방꾼 설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이를 두고 특정 표현에 매달려선 안된다는 박지원 감싸기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다. 거짓말이 들통난 게 마치 외교관계에 기인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박지원의 비열행위를 거드는 손학규 역시 용렬하다.
손학규는 투쟁 위주의 선명성 노름보다는, 진보의 참 가치를 민중에 인지시키는 정치 변화를 추구해 보이는 차별화가 사는 길이다. 진보주의가 평양정권에 맹종하는 종북주의는 아니며, 진보정치가 의사당을 부수는 폭력정치는 아니며, 분배 우선이 무상급식 같은 포퓰리즘 위주가 아닌 민생의 새 모럴을 모색해 정립하는 것이 민주당을 새롭게 하고, 정치를 새롭게 하고, 나라를 새롭게 하는 길이다.
충고하는 것은 독사 같은 눈으로 이명박을 헐뜯는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한나라당 대권 구도에서 홀대받은 저주를 그런 식으로 푸는 것은 인품을 잘못 의심받기 십상이다.
손학규가 유권자 층에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기는 해도 중도성향 유권자들 지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쩌면 진보층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가 내세운 (2007년 대선에서) 잃어버린 600만표 되찾기는 이런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야만 가능하다. 중도성향에는 보수 중도성향도 있고 진보 중도성향도 있다.
물론 아직은 모른다. 그가 당대표에 이어 민주당 차기 대통령 후보에 오른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상당히 접근했을 뿐이다. 또 민주당 후보로 지명돼도 상대당이 있고 상대당 후보가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는 장차의 일이다. 당장 제1야당 대표로서 거는 기대는 정쟁의 정치가 아닌, 정치의 생산적 변화를 주도하는 큰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지 못하는 손학규일 것 같으면 그의 줄타기는 일찍이 노무현이 말한 대로 ‘보따리장수’에 그치고 만다.
젊었을 적에 위장취업한 구로공단에서 경찰에 쫓기면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생활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합리주의자다. 이러한 그가 ‘보따리장수’가 되지 않기 위해선 손학규는 (정치 무대가) 달라졌어도, 역시 손학규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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