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는 데 화장실 앞에 둘째가 서 있습니다. 겁이 많은 언니가 화장실 문을 조금 열어 놓은채 동생을 세워 둔 거죠. 동생의 입장에서 보면 언니니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냄새를 감수하면서 보초서기를 할 수 있었겠죠. 물론 평소 투덕거리기를 잘해 야단을 맞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과하다 싶게 혼을 낼라치면 어느새 우애가 하늘을 찌릅니다. 의기투합해 대들 땐 자매의 힘으로 안될 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죠. 아이가 하나인 부모들이 봤으면 시쳇말로 부러워 죽었을 겁니다.
맞벌이 한답시고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태반인 제게 그나마 아이가 둘인 건 천만 다행입니다. 아이 혼자 집에 있는데 야근을 해야한다면 아마 불안 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저 개인은 물론이고 회사입장에서도 큰 손해였겠죠.
그래도 요새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올해 본보가 ‘아이는 경쟁력이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출산장려 캠페인을 벌이면서 도내 일하기 좋은 기업들을 찾아 알리고 있는데 깜짝 놀랄만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업들이 꼭 대기업이 아니란 겁니다. 연초 본보를 통해 보도된 주식회사 ‘맛있는 생각’만 해도 그렇습니다. ‘굽네치킨’으로 더 잘 알려진 이 회사는 첫째 아이 출산시 50 만원, 둘째는 무려 1천만원, 셋째는 2 천만원 등 아이를 낳을 때마다 지원금을 줍니다. 그것 뿐이면 기르는데 어려움이 따르겠죠. 요즘 학비가 좀 비쌉니까. 맛있는 생각은 자녀 출생부터 중학교까지는 매월 1인당 20만원을 주고 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학비전액을 지원해 줍니다. 직원들에게 연간 휴가비로 40만원을 지급하고 가족 여행 경비로도 70만원을 준답니다. 남성에게도 배우자 출산시 유급출산휴가 3일을 줬는데 올들어서는 배우자의 생일을 챙겨주는 ‘가족의 날’, 자녀 출산 후 100 일까지 매주 금요일 조기 퇴근하는 ‘반일근무제’ 등을 추가 실시하는 등 새로운 가족친화경영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 시행입니다. 아이가 아파 출근이 늦어지면 그 만큼 늦게까지 일하면 된다네요.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주말을 이용할 수도 있구요. 유치원 발표회나 학교 운동회에 갈 수 없어 애태우는 일도 없답니다. 그날 쉬고 그 만큼 다른 날 더하면 되니까요. 이런 직장이라면 혼자인 아이를 위해 동생을 낳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경기도가 실시한 ‘가족친화수준’ 조사에서 전국의 중소기업 평균 수준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 ‘일하기 좋은 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경기도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환경이라는 걸 간파하고 광역지자체중 전국 최초로 일하기 좋은기업 인증제를 시행한거죠. 여성가족부에서 가족친화 우수기업 인증제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전국의 기업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선정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해 선정된 ‘경기도 일하기 좋은 10대기업’에는 맛있는 생각 외에도 태준제약, 농우바이오 등 중소기업위주로 선정됐습니다. 도내 기업중 99% 가 중소기업이라는 현실에서 많은 중소기업 CEO들이 갖고 있는 ‘가족친화경영은 돈많은 대기업만 한다’는 생각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결과입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가족친화제도 도입여부는 전적으로 CEO의 의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내 기업인들에게 가족친화경영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 경기도가 나섰다는 건 무조건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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