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과 이땅의 후손에 대한 과제

김창학 지역사회부장 webmaster@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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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중순 경북 안동 와룡면 양돈단지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지 100일이 됐다. 석달 조금 지난 지금, 구제역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경기지역은 19개 시·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으나 오는 20일 가축 이동제한이 모두 해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가평을 비롯한 시흥·광명·김포·남양주·의정부·동두천·고양·양평·양주지역 등 10개 시·군의 가축 이동제한이 풀렸다. 나머지 시·군도 지역별로 이동제한이 해제될 예정이다. 그동안 자식처럼 키우던 소와 돼지를 가슴과 땅에 묻고 시름의 나날을 보낸 축산 농민들이 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축사를 대청소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잡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단기간 대규모 가축 매몰로 인한 2차 오염의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봄철은 겨울과 달리 기온이 상승, 동물사체의 부패 속도가 빨라진다. 여기에 잦은 봄비와 여름철 집중호우는 매몰지를 훼손하고 이로인한 침출수 유출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전히 가축 매몰을 매뉴얼대로 하면 지하수 오염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웬지 2% 부족하다. 경기도만 해도 용인, 이천 등 지역 곳곳에서 단기간 살처분에 따른 부적절한 매몰 사례가 나오고 있다. 매몰작업을 24시간 내에 완료해야 하는 시간 제한탓에 매뉴얼에 충실하기 보다는 우선 묻고 보자는 마구잡이식 작업이 이뤄진 것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부적정한 실태에 정부의 매뉴얼도 한 몫했다. 농림부는 살처분 매몰지 선정과 관련해 ‘집단가옥, 수원지, 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않은 곳으로 사람 또는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를 제시한 반면, 환경부는 ‘지하수, 하천, 수원지, 집단가옥으로부터 이격(하천, 수원지 등과 30m이상)한 곳’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로인해 일부 매몰 현장에서는 적잖은 혼선을 빚었고 이 때문에 경기도내에서만 소하천이나 도랑으로부터 30m 이내에 매몰한 곳이 149곳이나 됐다. 하천 주변의 매몰지가 유독 걱정스런 이유는 여름 장마철 때문이다. 지자체마다 빗물 유입을 막기 위해 방수포를 덮는 등 나름대로 대비책을 마련했지만 시간당 수백~수십㎜의 장대비가 쏟아지는 집중호우를 견딜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침출수 유출시 주변 지하수나 하천 오염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또 침출수에 따른 지하수 오염을 측정하기 위한 관측정 설치 시기, 가스배출관 조성도 제각각이었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다. 물론, 공무원과 관계자들이 급속히 번지는 구제역을 막기 위해 파김치가 되도록 애쓴 노력을 덮자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이 땅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후손이 숨쉬며 살아야하는 곳으로 미리 빌려 쓸 뿐이다. 이땅에서 살아갈 후손을 생각했다면 굴착기로 살아있는 동물을 구덩이에 쓸어 넣을 수 없었으며 비닐도 깔지 않은 채 매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하천주변에는 매뉴얼 지침 여부를 떠나 행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빠르게 번지는 구제역을 막기에는 장비와 시설, 시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내겠지만 납득하기 힘들다. 정부와 지자체는 수질 오염에 대비한 정밀조사와 함께 철저한 모니터링을 약속하고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매몰지 관리 지원팀 발족, 구제역 현황과 예방법, 분야별 대책 등을 담은 통합된 매뉴얼, 매몰지 관리 실명제, 주민신고제 도입 등 2차 오염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했다. 구제역을 조기 종식하고 청정국의 위치를 되찾으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절실하지만 최상의 지름길은 축산 농가의 철저한 소독과 방역이다.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로 전 국민이 몸도 마음도 지쳤다. 정부와 지자체는 2차 오염을 예방하고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관리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김창학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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