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장자연씨 편지라는 게 가짜로 밝혀졌다. 이미 2년전 결말이 난 일이 호사가들 입에서 다시 회자된 것은, 지난 6일 SBS 방송이 그녀가 31명을 100번도 넘게 성접대 했다는 내용의 이른바 자필 편지 50여통을 단독 입수했다는 보도가 나가고 나서다. 그러나 이 편지 필적 감정 결과 장씨의 필적이 아니라는 게 재수사한 경기지방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발표다.
가짜 편지의 장본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고인과 동갑내기 친구로 지냈다는 사람인 데, 실은 고인과 지역 및 학교 등 성장 배경이 판이하여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이렇게 친구를 자칭한 사람은 정신장애 증세 등으로 수감돼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광주교도소의 장기수 전모씨다. 결국 정신장애자에게 놀아난 셈이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씨와 장씨는 전혀 만날 수 없는 인생항로였고(중략), 전씨는 편집증적 망상장애로 독방을 쓰며 교도소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문제수들이 조작한 편지를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란 건 연합뉴스가 전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의 말이다. 김경일 아주대 교수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중략) 착각할 수 있고 200쪽(전씨가 쓴 50통은 모두 231쪽이다)이 넘는 편지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짜에 당한 잡소리
경찰이 전씨의 감방을 압수 수색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필적 감정을 의뢰한 편지는 그 중 23통이다. 친필 주장 편지의 필적과 고인의 실체 필적이 겉보기엔 유사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획을 긋는 방식과 필압 등이 다르다는 게 감정 내용이다. 예컨대 ‘ㅃ’ 같으면 가짠 세로선을 먼저 긋고 가로 가운데 가로선을 그은 데 비해 진본은 세로선을 마지막에 그은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친필 주장 편지는 필압이 강하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데, 이는 위조된 필적에서 자주 발생되는 필적이다” 양후열 국과수 문서과장의 설명이다.
친필 주장의 SBS 보도는 충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좀 미안한 예를 들겠다. 창녀더러 간밤 횟수를 물어도 화를 낼것이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고인은 연예인 규수다. 생각해보자, 31명에게 100번이상 성접대했다는 기록을 자신이 자필로 남긴다는 게 상식에 맞는 말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실제로도 있을수 없다. 기획사 계약문서가 가혹하다 해도, 그토록 강요당하는 성노가 있다는 것은 과장이기 보다 거짓이다. 편집증적 망상장애의 작화에서나 가능하다.
이런데도 장자연을 말하는 이들은 작화를 진실로 믿는다. 더 설명하면 믿고 싶다보니 진짜처럼 여기는 것이다. 요사스러운 것은 고인을 가장 위하는 척 하는 점이다. 입으로는 몹쓸 가상 행적을 토해내면서 불특정 다수의 상대방을 욕해댄다. 이게 무슨 현상인가, 이도 일종의 관음증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입으로 관음을 즐기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상식밖의 거짓말도 사실이길 바라는 엽기적 심보가 된다.
관음증적 병리현상
납득이 안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모씨라는 사람이 흉내낸 고인의 필체를 어디서 구했냐는 것은 아직 설명이 없다. 하지만 경찰조사 발표를 무턱대로 부인하는 것은 사회 안녕을 위해 옳지 않다. 의문의 꼬투리나 문건을 왜곡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가짜 편지를 만든 전씨에 대한 사법처리가 검토되고 있다. 미진한 대목은 앞으로 또 밝혀질 것이다. 장자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2009년 3월7일 분당 자택에서다. ‘나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문건이 발견됐다. 경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종결지었다. 좋지 못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고인의 전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 등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그해 11월12일이다.
이번 필적 감식에서 경찰이 제시한 원본은 분당경찰서가 당초 확보해 보관하던 장씨의 친필 노트다. 이에 비해 SBS가 전모씨의 가짜 친필을 감정한 것은 문서감정 사설업체로, 대조한 필체도 장씨 필체의 원본이 아닌 사본이다. SBS가 일부러 가짜편지를 알고 내보낸 것은 아니다. 이제 이쯤 됐으면 고인이 편히 쉬도록, 더는 망자를 두고 괴롭히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본사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