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이래서는

임양은 본사 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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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격(體格)은 좋은데 비해 체력(體力)은 약하고, 학력(學歷)은 높은데 비해 학력(學力)은 떨어진다고 한다. 한국 청소년문화의 현실이다. 대학 진학률이 83%다. 한데, 대졸 백수가 300만명이다. 단순히 취업난 때문만은 아니다. 무턱대고 대학에 간 구조적 사회문제다. 해마다 25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야 한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리다. 1970년에 15만8천여명이던 대학생 수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6배가 늘어 255만5천여명이다. 대학도 87개에서 202개로 늘었다. 대졸 학력자 비율이 세계 1위다.

 

영국은 학문을 하기 위한 학생만 대학진학을 한다. 생활전선에 나설 사람은 고졸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고등 보통교육의 고졸만으로도 시민생활에 아무 불편이 없게 돼 있다. 아니라면 고등학교서 제대로 배우지 않은 탓이다. 뭐땜에 대학에 가나, 취직을 위해서라지만 대학 백수에서 본 것 처럼 보장이 없다. 앞으론 더 심해진다. “대학은 어디 나왔냐?”는 것은 혼담에서 으례 나오는 말이다. 대학은 당연히 나왔을 것이고 ‘스카이’(S·K·Y) 출신인 질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남들이 다 대학에 가고 또 보내니깐, 나도 가고 또 보내는 것이 우리의 진학문화다. 입시원서 마감 막판에 전공과목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저 들어갈 수만 있는 만만한 데를 물색하기에 혈안이 되곤 한다.

 

등록금 반값, 구조조정 병행해야

 

등록금이 1천만원 시대다. 그 많은 대학생들 집이 다 요족한 것은 아니다. 아마 등록금에 부담을 갖지 않는 수는 10%도 안될 것이다. 서민층 자제가 대부분이다. 뼈 빠져가며 보내는 진학문화로 재미보는 것은 사립대다. 원래 사학은 재단의 수익용 기본 재산에서 나온 이익금을 대학에 투자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벌써 죽은 법조문이다. 이런 사립대는 거의 없다. 순전히 등록금 수입에만 의존한다. 등록금이 비쌀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대학문화엔 돈벌이 원죄가 있다. 6·25 때 젊은이들이 군대가면 십중팔구 전선으로 갈 무렵, 군대 안보내기 위해 소팔고 논밭 팔아가며 대학 보내는 바람에 사학들은 떼돈을 벌었다. 당시 대학생은 징집이 보류됐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땅을 사둔 것이 요지가 돼 땅장사로 재벌이 된 대학도 있다.

 

“대학장사 불패”의 신화는 후발 사학을 부추겨 생소한 대학이 많다. 마치 ‘우후죽순’ 처럼 생긴 그 많은 대학에서 석학이 얼마나 된다고 실력있는 교수를 초빙하겠는가, 난 그같은 대학도 안 나왔지만 그런 대학과 그런 교수 밑에서 배울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은 의문이다.

 

대학이 지금 같은 개념으로 더 보호되는 것은 국력 소모다. 구조조정에 의한 개편이 필요하다. 대학 다운 대학만이 남아, 대학생 다운 대학생만 배출시켜야 된다. 외국의 대학에 문호를 개방, 국내 대학 역시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우물 안에서 벗어난다.

 

한나라당이 모처럼 집권여당 구실을 한다고 등록금 반값 시책을 들고나서 당내는 물론이고 청와대며 정부하고도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같은 충돌은 좋다. 재원 대책도 없이 포퓰리즘에 치우친다는 비난도 있지만, 아무튼 등록금을 문제삼는 것은 올바른 진맥이다. 그렇다고 어떤 가시적 성과가 당장 있을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어느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반값 등록금 정책이 대학에 예산을 퍼주는 식으로 추진되면 최악의 세금낭비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대학 같지 않은 대학에 반값 등록금 보상으로 국민의 세금을 퍼주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맞다. 이런점은 있다. 구조조정 대상의 대학은 없애도, 그 대학 재학생의 기득권은 살려주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대학 안나와도 대접받는 사회를

 

대학 자체의 노력을 촉구하는 인센티브 부여도 한 방법이다. 그 교수는 “대학들이 기부금이나 산학협력을 통해 등록금 대체방법을 찾는 등 자구책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또 미국은 대학교육에 쓰는 예산 중 학자금 대출 등으로 직접 지원하는 비율이 21.5%이고 노르웨이는 43.8%다. 우리나란 10%도 안 된다. OECD 국가의 평균 비율은 19.5%다.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천정부지의 등록금 앙등은 수술이 불가피한 사회적 등창과 같은 환부다. 아울러 사회적 책임 또한 있다. 학력(學歷) 인플레를 조장, 대학장사를 시키는 장본인이 바로 우리들이다. 대학을 안나와도 실력에 따라 대접하고, 예컨대 며느리 사위로도 반기는 사회적 풍토 조성이 시급하다.

 

임양은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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