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화 유산의 寶庫, 향교·서원

파주는 볼수록 매력 있는 도시다. 겉보기에는 접경지역의 긴장감과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의 위용, 도농복합도시의 혼재가 주는 다양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궁무진한 역사문화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지리적 이점으로 삼국시대 때부터 파주를 차지하려는 영토쟁탈전이 치열했다. 또한 개성과 한양 중간에 위치해 있어 고려에서 조선까지의 다양한 문화가 숨 쉬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랑할 만한 파주의 문화유산은 전통 교육기관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파주에는 오늘날의 공립학교인 향교와 사립학교인 서원이 각각 네 개씩 있다. 이중에는 복원되지 않은 향교와 서원도 있다. 한 도시에 한 개 있을까 말까 한데, 파주에만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파주가 과거에는 4개의 큰 도시였다는 역사적 증거다.

 

교하, 파주, 적성, 장단, 이렇게 지역별로 하나씩 향교가 있었다. 이중에서 장단향교는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민통선 안에 위치해 있다. 또한 서원이 많다는 것은 우리 지역에 그만큼 뛰어난 선현들이 많았다는 증거다. 조선중기 학자인 청송 성수침 선생과 그의 아들 우계 성혼 선생 등을 모신 파산서원은 서원철폐 때도 존속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다. 또한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신 자운서원, 휴암 백인걸 선생을 모신 용주서원이 있다. 미촌 윤선거 선생을 모셨던 신곡서원은 오늘날 터만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후보시절, 나는 이와 같은 전통적 가치가 등한시 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전통 향교와 서원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시장에 취임한 후 가장 먼저 교하향교에서 초헌관으로 석전대례를 올렸다. 집안 어른 중에 향교의 교장선생님 격인 전교를 지낸 분이 두 분이나 계신다. 그래서 마을에 수령이 부임하게 되면 맨 먼저 향교를 찾아 인사를 올리는 것을 보고 자라온 터였다. 마을 사람들은 집안의 대소사나 마을 공동체의 일을 전교를 포함한 지역 유림들과 상의하는 아름다운 풍습도 있었다. 내가 이렇듯 향교와 서원을 중시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종교단체에서 우려를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향교와 서원은 무엇인가? 우리의 전통이며 문화적인 집적체다. 향교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오성위(五聖位)와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을 모시고 있다. 십팔현 중에서 율곡 이이 선생, 우계 성혼 선생은 파주가 고향인 분이다. 여기서 제례는 종교적인 행사라기보다는 공자를 비롯해 존경하는 선현에게 예를 다하며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이자 근본이 자꾸 잊히고 도외시 되고 무시되다보니 천륜을 저버리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다.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인류의 영원한 삶의 길잡이며, 사랑의 철학이다. 유교의 본산인 중국은 우리를 매우 부러워하고 있다. 오히려 본토는 전통문화가 퇴색되어 가는데 대한민국은 자국의 문화로 승화 발전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파주에는 향교·서원의 전통을 잇는 300여 유림이 활동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전교나 장의와 같은 성균관 조직으로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파주는 향교와 서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고, 유림수도 월등히 많은데 비해 활동이 미약해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유림 대부분이 고령인데다 이들을 이을만한 후세의 관심이 매우 부족한 것이 한몫한다. 무관심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만큼 시민 사회가 전통문화에 대해 소홀하다는 반증이다. 그러한 자존심을 회복해야만 향후 유림의 세계를 이을 젊은이들이 한층 많이 육성될 수 있으며, 향교와 서원의 전통도 이어갈 수 있다.

 

파주는 최근 율곡선생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향교와 서원에 대해 다각도로 육성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 파주가 어떠한 풍파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뿌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고, 전통문화의 가치를 더욱 키우고 발전시키는 일, 바로 후손의 책임이자 의무다. 전통문화를 통해 민족혼을 지키고 법도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면 파주는 자연스럽게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정신문화의 힘은 우리 파주에 그토록 많이 남아있는 향교와 서원, 그리고 전통을 잇는 유림에게서 샘솟는다고 믿는다.

 

이인재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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