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종교인의 일상적 책무

어느덧 10월도 반이 지났습니다. 황금 들녘은 추수가 시작됐고, 높고 높은 푸른 하늘에는 겨울 철새 때가 무리지어 남쪽을 향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

 

TV보도를 보니 어떤 곳은 20여일이나 철새가 빨리 찾아왔다고 합니다. 겨울 철새가 빨리 오면 겨울도 그만큼 빨리 온다고 하는데 올 겨울은 빨리 오려는 모양입니다. 겨울이 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고 또 해마다 겪는 것이니 웬만하게 사는 이들은 겨울이 빨리 오든 늦게 오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그런 겨울을 힘겹게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긴 장마로 인해 홍수 피해를 당한 수재민들과 저축은행 사태로 인한 피해자들, 지난 5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부양의무자 확인조사에 따라 수급비가 삭감되거나 수급자에서 탈락한 사람들, 지난 9월에 서울역에서 강제 퇴거를 당한 노숙인들은 그 어느 해보다도 힘겨운 겨울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유럽의 재정위기에 따른 경제 불안과 공공요금 인상, 장바구니 물가의 상승, 빈부격차의 심화, 10월의 선거부터 총선, 대선으로 이어질 정치권의 사활을 건 대 격돌 등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예로부터 춥고 배고픈 설움이 가장 큰 설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춥고 배고픈 설움의 근본적 원인인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납은 종교계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2천500만명이 넘습니다. 사찰과 교회, 성당의 수를 합하면 복지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의 수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면 어느 종교이든 ‘나눔’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눔’을 불경에서는 자비라고 하고 성경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또 불경은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하여 모두에게 부처님의 마음과 자질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고 성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하여 모두에게 하느님의 본성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종교인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는 듯합니다.

 

부처님과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듯이 우리의 자비와 사랑이 일상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풀어 얘기하면 자비와 사랑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나 명절 때, 연말연시 등과 같이 특별한 때에 특별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 살아계신 부처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 9월말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우수씨입니다. 50대 중반이었던 김우수씨는 홀몸으로 중국집 배달부를 하며 고시원 쪽방에 살았지만 70만원 안팎의 월급에서 매달 5만∼10만원씩을 내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후원했고 4천000만원의 보험까지 아이들을 위해 쓰라고 후원단체 명의로 들었다고 합니다. 김우수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소납도 그 중 한 사람으로 뼈저리게 참회하고 또 참회합니다. 모쪼록 올 겨울은 모든 종교인, 종교계의 참회와 회개를 통해 온 누리가 빠짐없이 따뜻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영담 조계종 총무부장ㆍ불교방송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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