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묘엄 스님 봉녕사 우화궁에 분향소 마련…6일 전국비구니회장 엄수

유훈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되라” 남겨

수원 광교산 자락 봉녕사 승가대학의 학장이자 금강율원의 율주로서 이 시대의 한국불교 비구니 대강백이시자 청정율사이셨던 세주 묘엄스님이 2일 오전 9시5분, 봉녕사에서 세수 80세로 입적했다.

 

봉녕사측에 따르면 분향소는 수원 봉녕사 우화궁 1층에 마련됐으며, 오후 3시부터 일반인 조문이 가능하며 조화는 일체 받지 않고 있다. 

 

영결식은 오는 6일 오전 11시 봉녕사 우화궁 앞에서 거행될 예정이며 이어 경내에서 다비식이 엄수될 예정이다.

 

묘엄스님은 친언니, 형부, 조카 등 가족들과 제자들이 지켜본 가운데 입적하면서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으라”는 말씀과 함께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는 유훈을 남기셨다.

이날 임종을 지킨 한 제자는 “마지막에 숨을 몰아 쉬시긴 하셨지만 평소처럼 편안한 모습이셨다”며 “성철스님의 선과 자운스님의 율과 운허스님의 경을 이어받으시면서 당대고승들로부터 선·교·율 삼장을 모두 전수받으신 비구니계의 보기 드문 어른으로, 척박했던 시대 속에서도 처절한 수행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불심등(傳佛心燈)의 법맥과 함께 하신 한국불교 현대사의 산 역사와 같은 분이셨다”고 밝혔다.

스님의 입적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 불자는 “부처님 말씀을 배우기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고 가르치기는 더욱 어려운데 봉녕사에서 강원과 율원을 세우신 후 60여 성상을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이 가르치시는 일에 그 원력을 다하시며 지행합일의 경지에서 소요하시던 분이셨다”며 “여법한 수행자의 삶 그대로를 늘 한결같이 보여주시던  스님의 청안한 모습이 불자들의 마음 깊이 새겨져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라고 말했다.

 

 

1931년 진주에서 출생한 묘헌 스님은 1945년 대승사에서 월혜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같은해 대승사에서 성철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58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불교 정화운동의 선봉주자이자 통합종단 초대총무원장, 3대 종정을 지내신 청담스님의 딸로 널리 알려진 묘엄스님은 봉암사 결사에도 참여한 스님으로, 성철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유일한 비구니 제자이기도 하다.

 

성철스님과 자운스님, 운허스님 등 당대 선지식으로부터 선(禪)과 율(律), 경(經) 삼장을 전수받은 스님은 동학사, 운문사에서 강사와 강주로 후학 양성에 매진하다가 1970년대 수원 봉녕사에 터를 잡았다.

봉녕사에 정착하면서 선원을 개설할 요량으로 맨 처음 선방을 지어 4년간 정진에 힘쓰다 1974년 강원을 설립하고 강주에 취임해 후학양성에 힘써왔다.

봉녕사 강원 개원 이후 40년간 학장을 맡아 현재까지 39회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한국 비구니교단의 미래를 밝히는 동량들을 양성해 오신 스님은 강원의 교가를 직접 작사하는 남다른 애정을 보였으며, 팔십 노구에도 화엄경 강의와 율원강의를 맡아 하시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승가학원으로 출발한 강원을 1987년 승가대학으로 승격시킨데 이어, 세계 비구니계에 유래 없는 업적을 세웠다. 바로 세계 최초의 비구니 율원을 개원한 것이다.

1999년 봉녕사에 금강율원을 연 묘엄스님은 율원장으로 취임했다가 2007년 조계종 전계대화상 성수스님으로 율주로 임명됐다.

 

스님의 원력은 도량불사와 교육불사에만 머물지 않고 최근에는 사찰음식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2009년부터 사찰음식대향연을 열어왔다.

 

올해로 3회를 치른 봉녕사 사찰음식대향연은 사찰음식축제 가운데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스님은 지난 10월 9일 행사 회향식에도 직접 참석해 사찰음식에 담긴 정신문화의 선양을 역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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