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어김없이 또 새해를 맞았습니다. 저마다 새로운 마음다짐과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 보고 듣는 것들이 밝고 희망적인 내용보다는 어둡고 실망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간절한 새해 설계가 속절없이 헛 다짐, 괜한 바람이 되지나 않을지 지레 걱정이 듭니다.
특히 더 걱정스러운 점은 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2011년 국가경쟁력보고서’에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사회적 신뢰 수준은 바닥인데 비해 부패 수준이 높다고 적시하여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총선과 대선, 두 차례의 선거를 통해서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정치권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때문인지 최근 정치권은 저마다 쇄신을 한다며 합종연횡과 새 단장을 하느라 부산합니다.
그런데 부산한 정치권을 보노라면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그 어느 정당도 자신의 잘못을 진정성 있게 참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개별의 ‘헌법기관’임을 내세우는 국회의원들, 전·현직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잘못은 많은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없다니 참으로 이상한 노릇입니다. 모든 것을 대통령 또는 당론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리 떳떳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것은 전(前) 정부 때 여야가 합의한 한미FTA법에서 국가간소송제도(ISD)의 문제점을 간과한 점에 대한 정치인들이 태도입니다.
이들은 모두 ‘그때는 잘 몰랐다’고 사과를 했지만 한미FTA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중대한 것이라면 사과 정도로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경우 하나같이 자신의 희생만을 내세운다는 점입니다. 소납은 이런 불출마 선언은 그 자체가 용단일 수 있지만 과거의 예로보아 자칫 국민들의 눈에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거나 다음을 노리는 인기전술로 비쳐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내 잘못이요는 아니더라도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는 참회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국민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여야를 불문하고 쇄신을 얘기하면서 아직은 상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제시보다 상대의 잘못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편승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점입니다.
여야 모두는 집권의 경험이 있는 정당입니다. 따라서 여야 모두 과거에 왜 정권교체를 당했던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가 너보다는 잘못이 적다는 식의 경쟁이 계속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흑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여야를 막론하고 참신한 인물임을 자처하는 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 하는 점입니다. 이 분들의 면면을 보면 과거 정부여당에서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든 이 분들도 국민들로부터 정권교체를 당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전직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과의 특별한 인연을 유난히 강조하거나 이름만 거창한 각종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을 죽 나열하여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과대포장은 특히 총선 예비후보자로 나선 이른바 정치 신인들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해 보입니다. 구태정치라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커 보입니다.
최근 정치권에 쇄신 태풍을 일으킨 결정적 계기는 ‘안철수와 박원순’이라는 예상 밖 인물의 깜짝 등장이었다는데 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들은 ‘안철수와 박원순’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일시적인 것이라며 평가절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자각한 국민은 언제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2, 제3의 ‘안철수와 박원순’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지 이를 국민들의 착시(錯視)로 해석한다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권의 쇄신작업은 ‘자각한 국민들은 무섭다’는 인식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 담 조계종 총무부장·불교방송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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